JOJO (죠르미스)

소년미(少年美)

죠르노x미스타/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Red camel by 스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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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작성


소년이란 시기는 무얼까.

사람은 성장과정에서 모습이나 형태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애벌레가 번데기를 지나 날개가 생겨 나비가 되거나, 올챙이가 다리가 돋고 꼬리가 사라지는 성장과정과는 다르다. 사람은 그렇게 격정적인 변화를 거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돼지처럼 점박이가 사라진다거나 소처럼 색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보통은 말이다.

죠르노는 어렸을 때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금발로 변한건 얼마전이라는 얘기를 듣고, 미스타는 마치 새나 짐승 같은 변화라고 말했다. 죠르노는 그 표현에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죠르노 자신도 신기하게 느꼈다고 답했을 뿐이다.

“그러게요. 미스타의 말대로라면 저는 탈피나 변태를 한 후 성인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어요.”

죠르노의 그 말에 미스타는 눈을 한번 꿈뻑였다. 그리고 죠르노를 다시 봤다. 한참을 바라보고 미스타는 입을 열었다. 아니. 너 성인하고는 거리가 멀어. 꽤 단호한 말이다.

“너는 어디까지나 소년이잖아.”

미스타는 사람의 성장과정을 식물에 비유했다. 소년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는 과정이지만 그렇다고 떡잎을 달고 있는 시기도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꽃은 꽃이지만 아직 봉오리를 다 피지 않은 꽃. 미스타는 죠르노가 그런 꽃을 닮았다고 느꼈다.

“그러니까 넌 아직 사춘기. 소년기다 이 말이지!”

유년기는 지났지만 청년기도 아니니까.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반발하지 않았다. 그런가요. 틀린 표현은 아니네요. 전 아직 어른은 아니니까요. 죠르노의 흐려지는 말꼬리에 뭔가 서운함이 있음을 미스타는 감지했다.

죠르노는 언제나 반짝반짝하다. 아름다운 보석이 그러하듯. 혹은 태양을 반사하는 강이 그러하듯. 죠르노는 윤이 나고 빛이 난다. 그래서 미스타는 죠르노를 언제 보더라도 깨끗하고. 예쁘다는 감상을 가졌다.

그렇지만 미스타가 이런 말을 입 밖에 낸다면 죠르노는 그 예쁜 얼굴로 미스타를 한번 노려보고는 애 취급을 할 생각이냐며 최대한 무뚝뚝하게 말할 것이다. 솔직하게 미스타에겐 그것조차 귀엽게 느껴져서 별로 큰 효과는 없다. 그렇지만 어쩌란 말인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아, 틀리진 않지만 좀 다른가.’

미스타는 양치질을 하며 길고 긴 생각을 했다. 보석은 거울처럼 빛을 반사할 뿐이다. 그렇지만 죠르노는 그런 빛과는 다른 빛을 낸다. 잎사귀를 닮은 푸른 눈. 그 위로 드리운 금색의 속눈썹. 하얀 피부에 감도는 장밋빛을 띈 양 볼. 바람에 날리는 황금을 닮은 머리카락. 모두 반짝거리고 있다.

“음~ 빛을 내는건 역시 태양이나 전등이나 불꽃 정도뿐이라고 해야하나.”

“미스타. 아침부터 무슨 혼잣말을 그리 크게 하고 있어요?”

미스타는 칫솔을 입에 문채 거울 앞에서 혼자 중얼대고 있다가 뒤를 돌았다. 오오 본 죠르노~ 죠르노. 미스타의 말은 입에 칫솔이 물려있기에 발음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죠르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답인사를 주었다.

“아니~ 그러니까. 빛을 내는 건 태양뿐이지? 보석은 스스로 빛을 내진 않잖아. 그래서 보석 가게에서도 더 잘팔리라고 다이아몬드 위에 촘촘하게 조명을 두는 거고.”

“네. 다이아몬드에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형질은 없으니까요.”

미스타는 한손에 칫솔을 든 채 열심히 말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이상하다고! 영원히 빛나는 다이아몬드라는 광고는 완전히 틀렸잖아. 거짓말 아냐? 정확하게는 빛나는 빛을 반사할뿐입니다~ 라고 해야 맞잖아.”

“하하. 전 세계 쥬얼리 업체를 허위광고로 고소라도 하면 재밌겠네요.”

은근히 승산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죠르노는 미스타의 긴 말에 응수해주면서 자신의 머리를 묶고 칫솔을 들었다.

“꼭 그러자는 의미는 아니고.”

그나저나 죠르노. 욕실은 여기 말고도 또 있잖아. 미스타의 질문에 죠르노는 무시하고 치약을 짜고 양치질을 시작했다.

“하긴. 달이 빛나는 밤이라는 표현도 다 틀렸다는 소리네.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걸 고쳐야하겠어. 역시 올리비아 핫세가 맞았어. 달은 변덕쟁이일 뿐만 아니라 거짓말쟁이라고!”

“이젠 셰익스피어에게까지 그 책임이 올라가나요?”

죠르노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스타의 길고 긴 말에 굳이 하나하나 답을 해주었다. 그 동안 미스타는 우물거리며 양치질을 끝냈다. 미스타는 물이 흥건한 턱을 수건에 닦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에 대해서야. 죠르노!”

저요? 뭉개진 발음으로 죠르노가 칫솔질을 하며 말했다. 명확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미스타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즉, 너는 엄청나게 빛나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

“………?”

죠르노는 칫솔질을 하는 손을 멈추었다. 치약이 한 가득 있는 입으로 말을 하기는 싫었는지 소리가 아니라 눈빛으로 답한다. 그게 무슨 소리래요. 죠르노의 푸른 눈에 일렁이는 대답에 미스타는 답했다.

“잘 생각해봐. 너는 단순히 빛을 반사해내는 거울이나 보석이 아냐. 네 자체가 빛을 내고 있어! 그러니까 너는 태양이다. 죠르노. 네 아름다움은 태양이라고!”

죠르노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은 듯 했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닦았다. 물을 아직 다 닦아내지 않은 미스타가 신나게 팔을 휘저으며 큰 소리로 말한 덕에 죠르노의 얼굴에 물인지 침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마구 튀었다. 죠르노는 얼굴을 닦고 나서 컵을 들어 물을 뱉었다.

“아, 미안 미안. 그러니까 내 말은….”

미스타는 자신의 얼굴을 대강 닦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죠르노를 바라보았다.

죠르노는 방금전에 일어나서 머리도 헝클어진 채 내려가 있고, 눈빛도 평소보다 멍하다. 지금 막 세수를 해 물기 젖은 피부는 촉촉하다.

미스타는 자신도 모르게 죠르노의 뺨에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가져다대고는 누르듯이 만졌다. 죠르노가 조금 놀라 미스타를 올려다본다. 미스타 자신도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라 놀랐지만 그렇다고 손을 멈추진 않았다. 미스타는 애초에 단순한 성격이다. 생각한 바를 숨기거나 속이지 않는다. 지금 그는 죠르노를 무척 만지고 싶었을 뿐이다.

“……너. 보들보들하면서 촉촉해서 마치 새벽에 피는 꽃 같아.”

늦은 밤을 지새우고 해가 뜨는 아침에 집에 들어올 때. 가끔 길엔 이름 모를 꽃이 움트고 있었다. 그 꽃과 죠르노는 닮았다. 둘 모두 활짝 핀 모습이 기대가 되어 기다리게 만드는 모습이다.

“그리고……….”

미스타는 가만히 죠르노의 뺨을 지나 턱을 만졌다. 죠르노는 미스타를 제지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빤히 뜨며 미스타를 바라보았다. 미스타에게 푸른 죠르노의 시선이 꽂힌다. 미스타와 죠르노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그제야 죠르노는 눈을 살며시 감았다.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상하고, 수줍게 기다리는 얼굴이었지만 미스타는 죠르노의 예상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미스타는 자신의 검지 손가락으로 죠르노의 턱을 쓴 자리를 역방향으로 몇 번 쓰다듬었다.

“우와! 완전 신기해. 죠르노. 너도 수염이 나는구나!”

그리고는 전혀 다른 온도로 엉뚱한 얘기를 입에 담았다.

“……네?”

죠르노는 갑작스러운 말에 조금 당황해 평소라면 잘 지어보이지 않는 얼빠진 표정으로 미스타를 바라보았다. 미스타는 어느새 완전히 대화주제를 바꾸고 죠르노의 턱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이거 봐봐. 너도 수염 나긴 하는구나. 하긴 그럴 나이구나~ 그래도 신기해. 난 너라면 전혀 나지 않을 줄 알았어!”

“그, 그런가요. 많이 나진 않고 지금까지 거의 안 나긴 했지만…….”

죠르노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고개를 돌려 거울을 바라봤다. 그렇지만 매일 보는 자신의 얼굴에서 달라진 점을 찾기는 좀 어렵다.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죠르노가 중얼거리며 답하자 미스타는 죠르노의 목소리보다 네 배는 클 목소리로 말했다.

“잘 봐. 여기여기. 나도 처음엔 솜털인줄 알았는데 수염 맞아. 수염.”

사람도 어릴 땐 솜털이 가득하다고? 털 갈이 전의 동물처럼 말이지. 땅을 솟아나는 새싹이라든지 아직 어린 펭귄처럼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거든. 난 그래서 너도 쓰다듬으면 부드러울 줄 알았는데 까슬까슬한거 보니 이건 확실히 수염이야. 미스타는 길고 장황한 말을 떠벌 거렸다.

“알았으니 그만 말해요.”

죠르노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턱을 올려보았다. 말을 들어서 보니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죠르노는 미간을 찌푸리고 까다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 모습이 귀엽고 재밌어서 미스타는 또 혼자 캬캬 거리며 크게 웃었다.

뭐가 그리 재밌어요. 미스타. 웃음 소리를 듣고 죠르노가 삐친 듯이 말했기 때문에 미스타는 미안하다고 짧게 답했다. 죠르노는 미스타에게 한발 다가가서 미스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방금 전 거울을 볼때보다 더 가깝다. 바로 코앞으로 온 얼굴에 미스타가 조금 놀랄 때, 죠르노가 먼저 말했다.

“매번 느끼는데……. 미스타는 수염 빨리 나나봐요.”

“어어. 나야 뭐. 그렇지.”

미스타는 숱이 많은 체질이다. 머리카락도 빨리 자라고 속눈썹도 촘촘해서 먼지가 올라갈 정도다. 당연히 수염도 빨리 난다. 이런 특징은 선천적 체질이니까. 미스타는 풍성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스타. 저……….”

“응?”

“저, 미스타가 면도 하는 거 보고 싶어요!”

죠르노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미스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못할 건 없지만. 이렇게 빤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좀 신경 쓰이는데. 아니 많이 신경 쓰이는데…! 미스타는 죠르노에게 말했다.

“죠르노. 그렇게 재미있을 건 없지 않아?”

“저는 남이 면도 하는 모습을 이렇게 보는게 처음이거든요.”

죠르노의 답에 미스타는 더 묻지 않았다. 미스타는 굳이 입에 담지 않을 죠르노의 사정도 알고 있다. 죠르노는 가정환경이 밝지 않다. 부모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며 형제도 없다. 또래의 친구도 귀찮지 않을 정도로만 사귀고 있을 뿐이라 했다.

“혹시 해서 묻는데. 너는 면도 해본 경험 있어?”

“아뇨. 전혀 없어요. 하는 법도 모르고요.”

혼자서 거슬리는 앞머리를 잘라보는 정도라면 모를까. 할 필요가 없었죠. 죠르노는 자신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짝 말며 말했다. 마치 부끄러운 사실을 숨기듯이 답하듯 보였다. 그 답에 미스타는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러면 내가 알려줄까? 이 미스타 형님께서~”

“………….”

죠르노는 답 대신 입을 굳게 다물고 미스타를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미스타는 작게 미소를 머금은 채 죠르노와 시선을 마주했다. 미스타는 죠르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연상의 남성중에서 의지할건 어찌되었건 미스타 자신뿐이다. 미스타는 득의양양하게 씩 웃었다. 본의는 아니지만 죠르노를 외딴길로 몰아세우고 자신의 쪽으로 오라고 강요하는 기분이 든다. 조금 비겁한가 싶지만 어쩌겠는가.

“그……. 그러면 알려주세요.”

죠르노가 우물쭈물하며 머뭇거리다 겨우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니. 언제나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는 죠르노에게서 보기 드문 모습이다. 이런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충분히 몇 번이나 더 비겁해지겠다고 미스타는 생각했다.

“당연하지~ 어차피 살면서 한번쯤은 해야 하잖아?”

아니 한번이 다 뭐야. 나중엔 하루에 한번은 하게 된다고? 미스타는 기분이 들떠서 찬장에서 면도날을 집어 들며 쾌활하게 말했다.

“방금 전에 세수는 했으니까….”

우선 면도날을 다시 물로 씻고. 혹시라도 오래되었거나 상했다 싶으면 바로 교체해. 괜히 피부가 다칠 수 있으니까. 미스타는 따뜻한 물에 면도날을 씻으며 말했다.

“그런데 쉐이빙 폼을 꼭 발라야 해요?”

“음~ 바르지 않으면 피부 다칠걸.”

비누로 때우는 사람도 있다곤 하는데 난 별로 추천 안 해. 피부 상한다고. 다치기도 쉽고. 미스타의 설명에 죠르노는 미스타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뚫어져라 응시했다.

“의외로 얼굴에 신경 많이 쓰는군요! 미스타!”

“의외는 뭐야, 의외는.”

“그렇지만 미스타. 평소엔 부상을 입고 상처투성이여도 상관도 안하잖아요? 당연히 얼굴에 나는 상처도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죠.”

“시꺼.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잖아.”

그리고. 남자가 되어서 본인이 수염 정리하다가 얼굴 다쳤다고 하면 얼마나 멍청이 같겠어. 미스타는 부끄러움에 더 말을 길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우선 정방향으로 결을 따라서…….”

아, 물론 역방향으로 해도 상관없어. 식사하는 손도 사람마다 다 다르듯이 본인이 하기 편한 방향으로 하면 되지만 나는 우선 이렇게 하거든. 미스타가 거울을 보며 평소처럼 면도를 하려 했다. 다만 옆에 찔리는 시선이 칼날보다 날카롭게 느껴진다. 너무 빤히 보고 있으니까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왜 또. 뭐가 문제야. 미스타는 소리가 되지 않는 질문을 시선으로 던졌다. 미스타의 옆얼굴을 보며 죠르노는 후후 웃었다.

“미스타. 지금 되게 남성적이라 색다르게 섹시하다는 사실 알아요?”

“고~맙수다!!”

갑자기 날아온 직구라니! 죠르노는 축구를 했으면 공격수였을거야. 상대방 수비수가 얼마가 있든 골을 꽂아 넣는 스트라이커 말이지! 아주 완전 득점왕이야! 미스타는 죠르노의 시선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답하며 자신은 거울만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까끌까끌한 사포보다 더 뜨거운 시선이 얼굴에 꽂히는 기분이다. 결국 미스타는 평소보다 더 서둘러서 면도를 끝냈다.

“자. 죠르노. 이제 알겠지? 한번 해봐.”

“지금요? 그렇지만 제 수염은 그렇게까지 많이 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냐. 봐봐. 이렇게 만지면 느껴진다니까.”

내가 봐줄 때 한번 해봐. 뭐 어때. 미스타는 죠르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죠르노는 한숨을 쉬었지만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미스타가 하라는 대로 했다. 먼저 세수를 하라고 했죠. 아까 했지만 한번 더 할까요? 면도기는 어떻게 잡으면 되나요? 연필을 잡듯이? 아니면 칫솔을 잡듯이? 미스타는 죠르노가 이것저것 물어보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좋았다. 재미가 있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죠르노의 어색해하는 표정까지 무척 좋았다.

“뭘 그렇게 웃고 있어요.”

역시 내 모습이 이상하죠? 죠르노는 투덜거렸다. 그런 죠르노의 바로 옆에서 미스타는 실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질 못하더니 결국 풍선이 터지듯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 못 참겠어. 죠르노. 너 볼이 빵빵한 하얀 푸들 같아!"

결국 못 참고 미스타는 생각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큰 웃음소리와 함께 말이다. 하얀 폼 크림을 얼굴에 바른 죠르노가 미스타를 대놓고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미스타 눈엔 얼굴에 쉐이빙 폼을 바른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얼굴에 묻은 하얀 크림이 마치 생크림을 바른 빵처럼 보일 뿐이다.

“미~스~타~”

“알았어. 미안. 그렇지만 덕분에 알았어. 왜 꽃가게에서 장미꽃 근처에 안개꽃을 같이 껴서 꽃다발을 만드는지 말이지!”

이제 와서 그런 말로 기분 좋게 만들어주어도 늦었거든요. 죠르노는 괜히 고개를 미스타와 반대쪽으로 돌리고는 면도기를 잡았다.

죠르노는 거울에 얼굴을 바짝 댄 채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거울에 가까이 얼굴을 댔는지 죠르노의 숨결에 맞추어서 거울이 뿌옇게 흐려졌다가, 다시 깨끗하게 되고 있었다.

미스타는 말없이 죠르노가 어떻게 하는지를 관찰하면서 신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미스타 본인도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상적 행동인데도, 죠르노가 하니 무언가 비현실적이게 보이는 신비함이 있다. 면도를 하는 손놀림이 마치 조각상을 만들어내는 석공처럼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아니. 이럴 땐 그 자신이 조각상처럼 생겼지만.’

미스타가 또 멀리 의식의 흐름을 타고 떠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아얏. 짧은 소리가 욕실에 울린다. 죠르노가 반사적으로 낸 소리다.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심하진 않아요. 놀랬을 뿐예요.”

“괜찮아? 한번 봐봐.”

괜찮대도요. 죠르노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미스타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아직 거품이 좀 남은 얼굴에 가느다란 실선처럼 붉은 선이 보인다. 날에 살짝 베인 모양지만 죠르노의 말처럼 깊은 상처는 아니다. 그래도 이건 꽤 따가웠겠다. 미스타는 상처를 보고 말했다. 생채기에 가까운 상처지만 주변엔 아직 거품이 남았다. 괜히 상처에 들어가면 덧날지도 몰라. 어서 닦아야겠어.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자신의 다친 부분을 거울로 보며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역시 처음이라 익숙하질 않아서 실수를 했네요. 여기선 반대 방향으로 당기듯이 했어야했는데. 밀어버리다가 그만 광대뼈를 생각 못했어요.”

처음엔 다 그렇지. 나도 한동안 엄청 베였어. 미스타의 답에 죠르노는 시선을 옮겨 미스타에게로 던졌다.

“미스타. 나머지는 미스타가 해주겠어요?

나머지? 거의 다 했잖아. 미스타는 답했지만 죠르노는 미스타의 손을 잡았다.

“음~ 그렇지만 잘 모르겠어요. 미스타가 다시 알려주세요.”

죠르노의 말에 미스타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그러면 그러지 뭐. 미스타는 몸을 엉거주춤하게 굽혀 죠르노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한 다음 면도날을 잡았다.

“기본은 우선 턱을 들고 하면 편해. 어차피 너야 별로 나지도 않았으니까 상관없지만…. 그다음 여기는 네 말대로 결을 따라 긋는 게 좋겠고….”

죠르노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미스타는 얼굴이 가까워졌기에 목소리를 작게 낮추었다. 소곤대는 목소리가 오히려 자극이 되는지 죠르노는 간지러워하듯 어깨를 들썩였다.

…뭔가 얼굴이 너무 가까운데. 미스타는 자신이 칼을 들고 있으니 잘못 실수했다간 죠르노가 다치겠다 싶어서 숨을 잠시 참았다. 사실 죠르노의 얼굴엔 깎아낼 수염도 별로 없다. 억센 수염 위면 더 쉬울텐데, 보송한 솜털 위로 날이 선 칼날을 문대는 느낌이라 오히려 더 긴장이 된다. 그렇지만 미스타는 원래 긴장에 손을 떠는 사람은 아니다. 총을 잡았을 때 그는 엄청나게 집중을 하면 시간을 쪼갤 기세로 집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쉐이빙 폼이 다 닦이지 않은 얼굴에 사각대며 날이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자. 다 됐습니다. 손님.”

미스타가 연기를 하듯이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타는 한 손에 물을 묻힌 후 어린 아이나 작은 동물에게 그러하듯 죠르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혹시 미스타. 방금 전에 숨을 아예 쉬지 않고 있었나요?”

“응? 응. 왜?”

폐활량 좋지? 헤헤. 감탄해줘도 좋다고. 미스타가 킬킬 대며 웃었지만 죠르노는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죠르노의 감긴 눈이 움찔거리더니 천천히 떠졌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광경. 영화관에서 본적이 있었다.

“그 왜 사마귀가 포스터인 영화 말인데. 거기서 꽃이 피는 모습을 엄청 느린 재생으로 보여주거든.”

“……네?”

또 무슨 말을. 죠르노의 물음에 미스타는 중간을 무시하고 결론만 말했다.

“방금 네 표정. 천천히 만개하는 꽃을 닮았었어.”

계절을 맞이하고 긴 나날을 숨어 있다가 이제야 피어난 꽃처럼 말이지.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미스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수정처럼 미스타를 비춘다.

“계속 이렇게 미스타의 얼굴이 가까웠었다면 중간에 눈을 뜰걸 그랬어요.”

“왜? 내 얼굴. 가까이에서 보면 더 미남이기라도 해?”

“당신의 까만 눈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으면 기분이 좋으니까요.”

바보네. 죠르노~! 그러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야 하겠는걸. 나는 언제라도 너만 보니까. 미스타는 그런 말을 노래하듯이 흥얼거렸다. 죠르노는 두 손으로 자신의 뺨을 감쌌다. 볼의 홍조가 귀로 옮겨진 듯이 두 귀가 빨개진다.

“참. 미스타는 여러 가지로 손재주가 좋네요.”

총 손질 할때도 그렇고. 손으로 하는건 대체로 다 잘하나봐요. 죠르노는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색한 대화의 흐름속에서 미스타는 죠르노의 마음을 발견했다.

“헤헤. 너도 익숙해지면 잘 하게 될거야.”

미스타는 자신의 손을 털고는 죠르노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아직 물기가 남아 촉촉한 죠르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멋진 남자가 되어서 피어달라고. 귀여운 나의 사랑.”

누군가는 장미에 가시가 있어서 유난히 아름답다고 하지만, 미스타의 생각은 또 달랐다. 모든 꽃은 그 꽃이 가지는 각자의 특징이 있다. 날카로운 잎사귀. 두꺼운 잎. 달콤한 향기. 그리고 화려한 색상. 어떠한 꽃으로 자랄지는 그 꽃이 피고 나서야 알 수 있다.

지금 미스타의 눈앞에 있는 꽃은 어떠한 모습일까. 미스타는 그 모습을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

“그런데 미스타. 혹시 이거 아세요? 옛날 이발사는 털이 나 있는 무릎을 면도하면서 면도 기술을 익혔다고 하더라고요.”

“아하~ 하긴. 턱선이랑 무릎은 좀 비슷한 느낌이 있긴 하네. 그런데 그렇게 연습하면 이발사의 무릎은 다 상처투성이겠어.”

“네. 그렇지만 저는 무릎에도 딱히 털이 나지 않아서 연습할 수가 없지만요…….”

“………….”

“미스타는 다리에도 털 되게 많지 않아요?”

“아, 안 돼. 하지마. 크하하. 간지럽다고. 야야! 죠르노! 그 칼 내려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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