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JO (죠르미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죠르노x미스타/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Red camel by 스눕
8
0
0

2019년 할로윈을 맞아 썼습니다.

배경은 5부 이후. 죠르노와 SPW 재단의 행보 등등 여러 설정은 제가 상상해서 창작했습니다.


10월 31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10월 31일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바로 다음 날인 11월 1일이 더욱 더 뜻 깊은 날이기 때문이다.

11월 1일. 만성절(萬聖節). 이 날은 모든 성인(聖人)을 기리는 날이다. 이 날은 교회와 성당에서 크건 작건 식을 올리며 성인의 축일을 영광스럽게 보낸다.

‘갱이 법적 공휴일을 지킬일도 없으니 나야 뭐, 내일도 출근이지만.’

나는 차를 몰며 흘깃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빨간 불에 걸린 사이 길 거리를 바라보면 오늘따라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많이 보였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이 유난히 들떠서 특이한 옷을 입고 뛰어다니고 있다. 

‘근처에서 무슨 축제라도 열리나?’

만성절은 쉬는 날이다 보니 당연히 관광객이 많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거리가 더 번잡했다.

‘아, 혹시 그거려나.’

나는 차 핸들을 잡은 상태로 다시 옆을 바라보았다. 키가 작은 꼬마 한명이 손에 주황색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호박 모양의 플라스틱 바구니이다. 역시나. 나는 그제서야 까닭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10월 31일. 오늘은 할로윈이었다.

할로윈은 이탈리아에서 크게 챙기는 행사는 아니다. 아무래도 다음 날이 워낙 더 귀한 날이다보니, 연달아 이어지는 축제의 연장선으로 기억된다.

그렇지만 요새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의 영향이라고 해야할까. 미국 문화가 익숙해져서 할로윈을 챙기는 사람도 늘고 있었다. 가게에서도 할로윈이라며 마케팅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당장 어제 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도 박쥐와 유령 모양의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에겐 재밌는 옷을 입을 수 있는 날이기에 더 인기가 높은 듯 하다. 잠시 신호등에 걸린 사이에 벌써 몇 명인가 할로윈 옷차림을 한 아이들과 그 가족을 볼 수 있었다.

‘나 어릴 때만해도 가면 축제가 제일 재밌었는데 말이지.’

어느새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런 작은 변화가 재미있었다.

요 몇 년사이. 크고 작은 변화가 너무나도 많았다.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사람을 떠나 보내야했다.

그 이별과 반대로 나는 또 많은 것을 새롭게 얻었고. 새로운 사람과 만났다.

몇 달전의 나, 귀도 미스타는 파시오네 패밀리의 말단이었다. 부챠라티 팀의 말단 총잡이인 내가 실질적 넘버2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말로 짧다.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세상이 빙빙 돈다. 

모두가 빠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내가 섬기는 사람도. 크게 변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신호등은 푸르게 바뀌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운전대 옆에 꽂아둔 핸드폰을 열어 스피커를 켠다. 곁눈질로 바라본 이름은 죠르노의 이름이었다. 단순히 이름을 적은 글씨일 뿐인데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죠르노 죠바나.

나의 앞길을 비추어주는 태양과도 같은 사람.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나의 보스.

내가 섬기는 사람이다.

“어. 죠르노.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 뭐라도 사갈까?”

나는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죠르노는 운전중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했더니, 별일 아니라며 서둘러 끊으려고 했다. 조금 서운해서 더 붙잡자 죠르노는 자신의 용건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스타가 어디까지 오셨는지 궁금했어요. 죠르노는 말해놓고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했다. 빨리 만나고 싶은건 나 역시 그랬는데. 뭘 숨기려고 하는지 귀여울 따름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근처 보이는 건물을 몇개 말했다. 이제 다 와가. 조금 뒤에 보자. 네. 그래요. 전화를 끊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움직였다.

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다르다.

어디가 다른지 명확하게 짚을순 없다. 그렇지만 내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목소리의 떨림. 죠르노의 말투. 사소한 차이점 하나하나가 나에게 큰 변화처럼 다가온다. 그 죠르노가 무언가 긴장을 하고 있다.왜일까. 나를 만날 생각에 설레나? 아니, 그럴 시기는 좀 지나지 않았나. 오늘은 무언가 다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죠르노의 집 근처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죠르노의 집에 들어서자, 죠르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현관 근처 쇼파에서 일어났다. 왜 여기에 있었어. 내 말에 죠르노는 조금 굳은 얼굴로 나를 안내했다.

사람을 불러서 시켰는지 큰 식탁에 음식이 이미 차려져 있었다. 나는 손을 씻고 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직사각형으로 긴 테이블이지만 죠르노는 상석이 아니라 옆쪽에 앉았다. 나도 그를 따라서 다른 쪽 옆면에 앉아 서로 마주 보고 앉았다. 드세요. 죠르노의 손짓에 나는 가볍게 와인을 들었다. 건배라도 할래? 내 말에 죠르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와인을 든 죠르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역시 그답지 않다. 나는 속으로 위화감을 삼켰다.

그리고 식사를 다 끝내고 나서. 내가 쇼파에 앉아 영화를 보자고 말했다. 테이프를 미리 빌려왔다는 내 말에 죠르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막상 빌려온 테이프는 맨 마지막 부분으로 감겨 있었다. 첫 부분으로 되감는 몇분 동안. 검게 된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검은 브라운관에 죠르노의 얼굴이 거울처럼 비추어진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는 얼굴이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하다. 나는 괜히 창 밖으로 시선을 넘겼다. 달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스타. 할 얘기가 있습니다.”

영화가 되감아지는 몇분. 그 적막을 틈타서 죠르노는 입을 열었다.

“미스타. 사실 제 아버지는 흡혈귀였다고 해요.”

그리고 그 때. 때마침 다 감아진 비디오 테이프가 재생이 되었다.

영화사의 로고와 함께 들려온 죠르노의 발언이. 마치 영화의 도입부처럼 느껴졌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잠시 기억을 돌려서, 나와 죠르노에게 몇달 전에 있었던 일이다.

폴나레프가 SPW 재단과 연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후 몇 달이 흘렀을 때다. 정치와 경제에 해박하지 않은 나라도 SPW 재단이 엄청난 세계적 부호가 이끄는 재단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런 재단에 도움을 받고 있고, 세계적 부동산 재벌과 친하다니. 폴나레프 정체가 뭐야?

‘그런 사람이 우리 간부여도 되는거야?’

내 질문에 죠르노는 살며시 웃으며 오히려 더 좋다고 말했다. 뭐, 나도 인정한다. 죠르노는 아직 15세. 아니, 이제 16세이다. 사회적 명성은커녕 변변한 연줄하나 없다. 지금은 원래 보스인 디아볼로가 가진 것을 얻었을 뿐이지. 그가 실질적으로 쥐고 있던 인맥이라곤 나, 귀도 미스타가 전부이다. 그나마 따지면 푸고일까.

그런 죠르노에게 SPW재단과 인연이 깊은 폴나레프가 함께 하고 있는건 꽤 다행이었다. 나도 간부 중 하나로서 그렇게 생각했다. 파시오네는 그 덕에 디아볼로가 보스였을때보다 더 쉽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 문제로 부터의 연장선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죠르노의 혈통에 관한 얘기가 SPW재단에서부터 전해졌다. 일본에서 박사로 있다는 쿠죠 죠타로의 편지가 폴나레프에게 전해졌다.

폴나레프와 그는 마치 나와 죠르노처럼 오래전에 함께 목숨을 건 여행을 했다고 한다. 사상 최악의 스탠드술사와 세계의 존명을 걸고 싸웠다나 뭐라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료를 잃었다는 폴나레프의 말에 나는 나의 경험이 떠올라 더 묻지 않고도 많은 감정을 공감할 수 있었다.

폴나레프는 자신의 동료인 쿠죠와 연락이 닿자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있는 죠르노에 대해 말하자, 쿠죠 죠타로는 죠르노가 죠스타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전해왔다.

죠르노는 자신의 생부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한다. 생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가 그립진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호기심은 가지고 있었다. 

“정말로 단순히 호기심일 뿐예요.”

죠르노는 그렇게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 다르다. 죠르노는 언제나 자신의 지갑에 친 아버지의 사진을 넣고 다닌다. 그것이 죠르노가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정보이다.

“그래서. 뭐라고 하나요? 쿠죠 씨는.”

폴나레프에게 죠르노가 물어보자, 거북이의 안에서 폴나레프가 답했다.

“으음……. 이건 직접 만나서 말하고 싶다고 하는데.”

“잠시만~ 설마 죠르노 보고 일본까지 가라는 뜻은 아니겠지?”

그때의 나는 대놓고 목소리를 높였다. 죠르노가 평범한 16세 소년이라면 일본까지 여행삼아 가도 된다. 그렇지만 죠르노는 돈 파시오네, 우리의 보스이다. 함부로 관광을 가듯이 자리를 비울 수 없다.

“경비를 대줄테니 이쪽으로 오라고 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신진 모르겠지만 말야.”

내가 언짢아진 것을 알고 죠르노가 내 팔을 잡았다. 그러지마요. 미스타. 죠르노는 폴나레프가 난처해하는걸 걱정한듯 하다. 나는 짧게 혀를 차며 못이기는척 고개를 돌렸다.

“그렇지만 미스타의 말대로 저는 외국에 가기가 조금 힘드니까요. 안전은 보장해드릴테니 쿠죠 씨께서 이쪽으로 오라고 해주시면 안될까요?”

죠르노의 정중한 제안에 폴나레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 나도 그러려고 했어. 죠르노 네가 외국으로 가는 일은 번거로울테니까…. SPW 재단의 직원과 죠타로가 이태리로 오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려 했지.”

흐음. 그렇게 되면 죠스타씨가 오는일은 좀 무리시려나. 연세도 있으시고. 폴나레프는 작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대신에 일정은 제가 최대한 맞춰드릴게요.”

“그래. 그러면 다음달 정도로…….”

폴나레프와 죠르노가 일정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나는 괜히 발을 토닥 거리며 삐죽거렸다.

죠르노의 혈통이나 가족에 대한 문제라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우편이나, 요새는 뭐 메일이라는 것도 있고. 서류를 보내주면서 말하면 그만 아닌가.

‘아니면 우리 파시오네와 SPW 재단이 뭔가 더 은밀하게 하고 싶다는 뜻이려나.’

SPW 재단은 이상할 정도로 파시오네를 도와주었다. 처음엔 폴나레프가 SPW재단에 엄청난 은인이라도 되나 하고 넘어갔는데, 갈수록 그들의 목표가 죠르노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미국의 부동산왕으로 유명한 세계적 재벌과 죠르노가 친척 사이라는거야 이제 이해는 했지만……. 왠지 그 이유뿐만은 아닐 것 같았다. 죠르노의 존재가 그들에게도 매우 중요한게 틀림없다. 역시 이번에도 내 감일 뿐이지만 말이다.

‘…재벌 노인이 말년에 예상하지 못한 가까운 혈통을 알게 되어서 반가워서 그러는거면 좋겠는데….’

내 걱정이 기우였으면.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SPW 재단의 사람과 함께 온 쿠죠 죠타로라는 사람은 엄청난 위압감이 있었다. 특유의 분위기가 죠르노와 비슷하면서도 또 달랐다. 죠르노는 우아하면서 섬세한 카리스마인데 죠타로는 엄청나게 강인하면서 묵직한 카리스마였다. 죠르노와 다르지만 닮았다. 그것이 내가 가진 첫 인상이었다.

“쿠죠 죠타로다.”

자기소개는 짧은 설명으로 끝이었다.

“죠르노 죠바나입니다. 여기선 시오바나 하루노라고 해야 할까요?”

죠타로는 그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모자챙을 잡고 말했다. 마음대로 해. 그 답에 죠르노는 그러면 죠르노로, 라면서 자신의 호칭을 정리했다.

“이쪽은 제 오른팔이자 동료인 귀도 미스타입니다. 그리고 이 거북이가….”

죠르노가 폴나레프를 소개해주자, 그 강인한 죠타로의 눈에도 살짝 다른 빛이 돌았다. 그리움. 반가움. 그런 단어이리라 나는 생각했다. 나 역시 만약 부챠라티, 혹은 나란차나 아바키오를 다시 만나면 그럴테니 말이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둘만의 대화를 짧게 했다. 원래 쿠죠 죠타로는 말이 긴 성격은 아닌지 폴나레프와도 정말로 짧은 대화를 했다.

“그러면 죠르노. 이 서류를.”

죠타로는 모자 챙을 잡으며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죠르노가 조심스럽게 뜯어보려고 하자 죠타로가 나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같이 있어도 되겠나?”

나? 내가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누르듯이 가리키자 죠르노가 나를 바라보았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보안이 필요한 내용이다. 밖으로 발설되면 무척 위험해.”

죠타로는 묵직하게 말했다. 그 말에서 나와 죠르노는 죠타로의 뜻을 읽었다.

“그는 제 믿음직한 동료입니다. 목숨을 함께 나누는 사이이기에 비밀도 공유해도 됩니다만…….”

“죠르노 씨. 그래도 혼자서 읽으시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SPW 재단의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을 하고도 나와 죠르노의 눈치를 보았다. 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겁을 먹은건 아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정말로 내가 알면 안되는 이유가 말이다. 다만 죠르노는 어찌할지 모르고 난처해했다. 죠르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다.

“아, 신경쓰지마. 그럼 나는 뒤돌아 있을게.”

만약 대화가 필요하면 나는 잘 못알아 들으니까 일본어로 해도 돼. 나는 그렇게 말하며 두 팔을 들어 내 뒷머리를 잡듯이 올렸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끼익 소리를 나게 뺐다.

“그렇지만…. 나를 이 방에서 나가게 하진 마.”

나는 큰 소리로 일부러 힘을 주어 말했다. 그만큼 불안했다. 이 넓은 방에 죠르노를 혼자 두기 싫었다. 앞에 앉아 있는 쿠죠 죠타로라는 스탠드사. 그리고 SPW재단의 직원에 죠르노를 방치하기가 정말로 싫었다. 그들을 경계하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죠르노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야레야레다제…….”

죠타로가 혀를 차듯이 말했다. 일본어였다. 나는 그 말의 뜻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왜인지 어감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알겠습니다. 죠르노 씨. 우선 그 서류를 읽어주시죠.”

네. 죠르노는 짧게 말하고 봉투를 뜯었다. 나는 뒤를 돌아 다리를 꼬고 앉았다. 혹시 모르거나 의문사항이 있으시면 질문해주시기 바랍니다. SPW측 직원이 말했다. 네. 죠르노는 짧게 답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정적이 흘렀다. 죠르노가 무언가 숨을 크게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놀랄만한 사실이라도 있을까. 내가 곁눈질을 하면 서류를 집중해 읽는 죠르노의 모습이 보였다.

‘출생의 비밀……. 같은 부류려나.’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나오지. 알고보니 죠르노는 대 부호의 아들이라든지. 아니면 숨겨진 왕족? 권력의 싸움에 버려진 첩의 자식? 당시의 나는 속편하게 그런 흔한 할리퀸 영화에 나오는 반전을 속으로 생각했다.

한참을 조용하던 죠르노가 헛기침을 하더니 무언가 물어보았다. 그 질문은 일본어였다. 죠르노는 어린시절에만 일본에 살았기에 아주 유창하진 않다고 내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죠르노가 일본어로 굳이 물어보다니. 아무래도 내가 알아선 안되는 모양이다. 나는 조금 섭섭했지만 두 눈을 감았다. 알 수 없는 이국의 말이 그날따라 더 멀게 느껴졌다.

그 만남 이후. SPW재단과 우리 파시오네는 몇가지의 사업을 더 함께 하게 되었다. 죠르노는 돌아와서 간부들에게 그 사업에 대한 얘기만을 했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다.

즉, 나 역시 죠르노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죠르노에게서 이름이야 들었다. 디오 브란도. 영국인이라고 한다. 

“그러면 죠르노는 영국인과 일본인의 혼혈이네.”

내 말에 죠르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에, 라고 조금 힘없이 대답했다.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 디오라는 사람은 그다지 좋은 사람은 아녔던 것 같다. 폴나레프가 디오라는 이름이 나올때마다 기분이 언짢아 보였기에 일부러 몇 번 말을 돌렸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죠르노가 어떻게 죠스타 가문에도 속하는지는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디오가 알고보면 죠스타 가문과 혈연 관계인가? 아니면 입양된 자식?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있기야 했지만 죠르노에게 묻지는 못했다. 가볍게 호기심을 담아 물어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에게 필요했으면 죠르노가 알려줬겠지.’

죠르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비밀이다. 그렇기에 내가 물어봐서가 아니라. 죠르노의 뜻으로 나에게 알려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오늘. 10월 31일.

죠르노가 나에게 먼저 자신의 출생에 대해 말해주었다.

“미스타. 사실 제 아버지는 흡혈귀였다고 해요.”

라고 말이다.

“………어어. 그래?”

나는 조금 늦게 답했다. 맥없는 말투였다. 마침 시작된 영화의 흘러간 대사보다도 소리가 작았다. 죠르노는 나를 보며 다시 말했다.

“별로 놀라지도 않네요. 미스타.”

죠르노의 말에 답하듯이 영화의 대사가 들린다. 모든 소리가 내 귀를 울린다. 그러니까. 지금 죠르노가 뭐라고 했지. 나는 죠르노가 말한 문장을 몇 번 머릿속에서 다시 반복했다. 영화 속 주인공이 대사를 읊는다. 나는 그 말이 끝나고나서야 말했다.

“아, 죠르노. 혹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영화 봤어? 그 영화에서 키어스틴 던스트가 진짜로 연기 잘했거든.”

맞다. 그 영화 청소년은 못보나? 나는 수다스럽게 말했다. 내 긴 말이 끝나자 죠르노가 말했다.

“제 말. 농담 아녜요.”

“응. 농담 아닌 것 알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에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흡혈귀가 나온다. 하얀 피부에 분홍빛 뺨을 가지고, 빛나는 금발머리를 한 사랑스러운 소녀로 보이는 흡혈귀였다. 그녀는 어린 얼굴로 어른의 말과 행동을 했다.

나는 죠르노를 바라보며 그 흡혈귀를 떠올렸다. 눈 앞의 죠르노는 아직 소년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깊고 고독한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어찌 그 얼굴을 보고 농담이라고 생각할까. 영화속의 흡혈귀처럼. 죠르노의 얼굴이 수백년 전 어떤 고성에 명화로 걸려도 납득할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반응을 보여주면 안될까요?”

나름 용기를 낸 고백이었을까. 죠르노는 자신의 두손을 스스로 맞잡았다. 아아, 그래. 내 눈앞의 죠르노는 클라우디아나 레스타가 아니다. 오랜 세월 고독 속에 살던 흡혈귀가 아니다. 그는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결국은 16세의 죠르노 죠바나다.

“알았어. 미안해. 다시 말해줘.”

나는 리모콘으로 영화를 정지했다. 이미 영화는 몇분 재생되었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상관없다. 그러고는 죠르노를 마주보듯이 몸을 돌렸다. 죠르노는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숨을 마셨다.

“미스타……. 사실. 제 친 아버지는 흡혈귀라고 합니다.”

긴장을 했는지 방금전보다 조금 더 경직된 문장이다.

나는 쇼파에 앉은 채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넘어진 사람처럼 뒤로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뭐?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일이!”

“……….”

죠르노의 푸른눈이 나를 노려본다. 삐친 표정이 조금 귀엽다. 하하. 더 놀려주고 싶지만 정말로 화를 낼지도 모른다. 나는 기울인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왜. 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너무 가볍잖아요.”

“싫었어?”

내 질문에 죠르노는 크게 원을 그리듯이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거렸다. 여전히 푸른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아, 알았어. 나는 두 손을 휘저었다.

“알았어. 장르가 개그인건 싫다는 뜻이지.”

나는 쇼파 위에 두 다리를 올려 앉았다.

“자, 그러면 감독님의 취향이 어떤 쪽인지 말씀해주시죠.”

나는 장난스러운 인터뷰어처럼 말을 걸었다. 죠르노는 여전히 나를 노려보았다. 역시 이것도 장난스러워서 싫으려나. 그렇지만 죠르노는 더 말하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가, 조금 생각에 잠겼다.

“뭔가……. 조금 더 고상하고 아름답고…….”

그리고는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탐미적이고 에로스가 적당히 있으며, 전체적으로 시리어스 하지만 로맨스 요소가 우아하게 있는 고전풍의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으음. 무척 까다로운 주문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진짜 어려운데……. 혹시 토드 브라우닝의 드라큘라까지 올라가야해?”

“그건 또 무슨 영화예요?”

죠르노가 입을 벌리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니. 진짜 몰라? 내 말에 죠르노는 답대신 입을 다물었다. 더 하다가는 진짜로 삐칠지도 모른다. 나는 주먹을 쥐고 헛기침을 했다.

“알겠어~! 진짜로 알겠으니까. 다시 한번만 해줘.”

“미스타…….”

죠르노는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이번이 세 번째라는 사실은 알고 있죠? 만약에 또 다시 할 생각이라면―.”

“아아! 알겠다니까. 절대로 네 번 까진 안가게 해. 귀도 미스타 인생에 NG는 세 번까지 뿐으로 정했으니까!”

내 말에 죠르노는 눈을 감고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다시 쉬었다.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이 사람 진지하긴 할까….’라며 중얼거린 혼잣말을 뱉었다. 나는 모르는척 목을 가다듬었다. 자. 준비 됐어. 내 신호에 죠르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짧은 사이. 죠르노는 연기에 집중한 배우처럼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스타. 제 아버지는 사실 흡혈귀였다고 합니다.”

세 번째 하는 말이다. 나는 이번에는 입을 다물고 죠르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죠르노 역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정말로 놀랐다. 가벼운 마음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름다운 미남을 인터뷰하러 간 라디오 작가처럼. 흡혈귀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일부러 다시 생각하며 내 앞에 있는 죠르노를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집에 올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로 별 생각이 없었다. 큰 축제를 앞두고 죠르노와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려 왔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갑자기 엄청난 고백이 떨어졌다.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때문에 나는 몇번이고 진지해진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졌다. 그 충격적 사실이 나에게 너무나도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슬슬 받아들여야했다.

“……너는 인간과 흡혈귀의 혼혈이었구나.”

“네. 그렇게 되네요.”

죠르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죠르노도 내 표정에서 내 진심을 들여다본 것 같다. 나는 죠르노의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 농담을 할 생각도 없다. 단지 너무나도 궁금한 것이 많았다. 어디서부터 물어야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죠르노가 먼저 말했다.

“흡혈귀와 인간의 하프인 사람은 저 말고도 몇 명 더 있나봐요. SPW 재단에 의하면……. 저랑 같은 아버지를 둔 사람이 몇명 더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너랑 배다른 형제가 있다는 소리네.”

“그렇다고 해요.”

죠르노는 남의 얘기를 하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형제나, 가족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듯이 말이다.

“조사에 따르면 그들보다 제가 더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해요. 외모라든지. 금발 머리라든지….”

죠르노는 내가 묻지도 않은 말을 중얼중얼 길게 이었다. 나는 그 꼬리를 물고 늘어진 말에서 죠르노가 숨기고 싶어하는 사실을 파악했다.

“잠시만. 죠르노. 외모가 닮았다고 해서 너도 네 아빠처럼 흡혈귀가 된다는 뜻은 아니잖아.”

나의 질문에 죠르노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너, 딱히 흡혈귀 같지 않았잖아. 그렇다면 앞으로도 그러지 않겠어?”

너 마늘 못먹던가? 아니잖아. 그렇다고 태양 빛에서 아파한 적도 없고. 은 십자가를 보고 도망가지도 않고. 맞다. 흐르는 물도 잘 건넜잖아. 나는 주절주절 영화에서 나온 흡혈귀의 특징을 열거했다.

죠르노는 그 말을 다 듣고나서 나를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가 차가운 달처럼 보였다. 창밖에 두고 온 달이 어느새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알고 계시나요. 미스타? 저는 이미 살면서 한번 몸이 크게 바뀐적이 있답니다. 마치 탈피하듯이 말이죠.”

죠르노는 말을 하면서 자신의 금색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렸다. 언제나 정갈하게 땋아 묶여있던 죠르노의 긴 머리가 지금은 풀어져 어깨를 흘러 내렸다. 나는 그 얘기를 전에 죠르노에게 들어서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느날 자고 일어났더니 흑발에서 금발로 바뀌었다는 얘기, 맞지? 내 말에 죠르노는 답했다.

“그렇다면 어느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햇빛에 몸이 타들어갈수도 있겠죠.”

“죠르노. 너…….”

나는 그 뒤로 말을 차마 뭐라 잇지 못했다.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사실처럼 넘기고 싶었다. 야, 뭐 그런 농담이 다 있어.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 그렇게 경박하게 받아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가정이다. 그렇지만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다. 나는 입안이 바싹 말라가는 기분을 느꼈다. 어떤 말을 골라 꺼내야할까. 너무 고민이 되었다.

“……심각하긴 한가봐요. 미스타가 그런 진지한 표정을 다 할 정도라니.”

죠르노는 씁쓸하게 말했다. 나는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했다. 죠르노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하고 싶었다. 괜찮아. 그렇게 될리 없어. 그의 등을 다독여주어야 했다. 괜한 생각하지마.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아. 그렇지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럼 너 언젠가 흡혈귀로 변할 수도 있다는 뜻이야?

그 질문이 내 뇌를 가득 채웠다. 조금만 입을 벌려도 그런 질문이 입 밖에 뱀처럼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조금 굳은채 있었다.

“있잖아요. 미스타. 보여줄게 있어요.”

쇼파위에 앉은 죠르노가 몸을 내 쪽으로 바싹 당겨서 다시 앉았다. 우리 둘의 거리는 매우 좁다. 나는 손을 둘 곳을 찾지 못해 어색하게 내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졸지에 상당히 다소곳한 자세가 되었다.

“아니. 보여주고 싶었다 쪽이 맞겠네요.”

가까이에 있는 죠르노의 얼굴이 너무나도 잘 보인다. 속눈썹에 드리워진 그림자 개수까지 셀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죠르노는 천천히 입을 벌렸다. 선홍빛의 입술 아래에 하얀 치아가 보였다. 특히나…. 뾰족하게 튀어나온 송곳니가 너무나도 선명했다.

나는 무척 놀랐지만 일부러 침을 크게 삼켰다.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려 노력했다.

“그……. 영화처럼 막 튀어나오지는 않는구나.”

혹시라도 목소리가 떨렸으면 어쩌지. 눈동자가 당황한 표정을 나타내면 어쩌지. 나는 그런 고민을 함께 삼켰다.

“조금 덧니가 심한 사람 정도? 그렇게 보여.”

살면서 그 정도 덧니 튀어나온 사람도 몇 봤고. 나는 말했다. 일부러 죠르노를 안심시키려 과장한 표현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죠르노의 송곳니는 그렇게까지 영화의 특수 분장처럼 이질적이진 않았다.

“그렇죠? 실제 흡혈귀는 이 정도인가봐요. 하긴. 아무래도 너무 크면 본인의 입술을 찢을테니 비효율적이네요.”

죠르노의 입버릇을 빌리면 그것도 무다한 일이다.

“보기엔 아무렇지 않죠? 그 누구도 지금까지 지적하지 않았거든요.”

“그러게. 너를 모르는 사람이면 잘 모를걸. 나니까 알 수 있지.”

만약 죠르노의 평소 치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원래 저랬나 여기며 넘어갈 것 같았다.

“미스타야 뭐…. 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내 말에 죠르노는 조금 웃었다. 나는 손을 죠르노의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죠르노가 약간 입을 벌려주었다.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죠르노의 송곳니를 살짝 만져보았다. 반질반질 하면서 단단하고 뾰족했다. 힘을 주어 만지면 손가락이 베일 것 같았다.

“만약 원래도 이렇게 생긴 송곳니였다면, 키스할 때 몇 번이나 찔렸을테니까 말이지.”

이미 혀나 입술이 너덜너덜해졌겠어. 매일 피투성이가 되었겠는걸? 나는 농담을 던졌다.

“하하. 그러게요.”

죠르노는 짧게 웃었다. 그렇지만 아무리봐도 건조한 웃음을 애써 지어낼 뿐이다. 내 재미있지도 않은 농담에 억지로 웃는 흉내를 낼건 없는데. 나는 그 웃음에 가슴이 아팠다.

왠지 오늘따라 죠르노의 안색이 정말로 창백했다. 내 기분 탓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런지…. 나는 손을 움직여 죠르노의 뺨에 손바닥을 댔다. 죠르노는 얼굴을 살짝 기대듯이 기울였다. 그리고는 죠르노는 내 손에 기댄채 눈을 감았다.

“죠르노.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나는 죠르노의 뺨을 만지며 물었다. 이렇게 만지고 있으면 확실히 따뜻하다.

“나는 네가 흡혈귀가 되어도 상관하지 않아.”

이제와서 흡혈귀가 된다고 해서 내가 죠르노를 떠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을 했다.

“네가 배가 고프다면 내 목에 송곳니를 박아넣어도 반항하지 않을 수 있어.”

겁이 많고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나지만, 네 앞에선 내 목숨이 뭐가 중요할까. 네 한끼 식사가 되어서 끝난다고 해도 괜찮아.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니면 네가 바라면 밤의 일족이 된 너를 네 관속까지 따라가 줄 수도 있고.”

영생은 다른 의미로 영원한 고독이 된다. 누군가 옆을 따라가주길 바란다면 함께 해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니길 나이길 바랬다.

그렇게 나는 죠르노가 바란다면 무엇이든 해줄 수 있다. 

내 목숨을 바라건. 육체를 바라건. 아니면 정신을 바라건. 모든 시간과 영혼과 육신을 다해서 이루어주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렇지만 반대로…….”

나는 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이 말라온다. 이상하게 갈증이 났다.

“반대로. 네가 너를 죽여달라고 해도 너를 죽여줄 수 있어.”

“……….”

죠르노는 말 없이 눈을 떴다. 나의 손에 기댄채 나를 올려다본다. 푸른 눈이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그렇지만 그 온도는 이상하게 뜨거워보였다. 푸른 불꽃과도 같이. 계속 타오르게 보인다.

“필요하다면 나에게 은탄환을 쥐어주면서 말해. 그러면 너의 심장을 겨냥해서 한방에 관통해 줄테니까.”

내 사격 실력 알잖아. 명령만 해주면 바로 해줄 수 있어. 나는 말했다.

“그리고 나도 곧 너를 따라 죽으면 되겠지. 어때?”

꽤 괜찮은 계획이다. 갈증의 끝에 내뱉은 내 말에 죠르노는 몸을 일으켰다.

“……미스타.”

죠르노는 그의 뺨에 대고 있던 내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의 방향으로 당겼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지만 나는 죠르노 쪽으로 몸을 기댔다. 맞닿은 심장의 고동소리가 기분이 좋다. 너는 내 앞에 이렇게 살아 있는데. 나는 왜 죽어가는 이야기를 했을까. 말을 해놓고도 조금 후회가 되었다.

“저, 지금 당장. 미스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죠르노는 무릎을 꿇듯이 쇼파에 자세를 잡은 후 몸을 세웠다. 그의 앉은 키가 나보다 커졌다. 

죠르노는 내 어깨를 양 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키스를 할 때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각도와 방향이다. 죠르노의 얼굴이 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심장이 역류하듯이 쿵쾅거리는 흐름을 느꼈다.

긴장을 다 하네요. 미스타. 죠르노는 재미있다는 듯 작게 말했다. 내가 무어라 답하기 전에 죠르노가 내 옆 목에 입을 맞추었다. 소름이 오소소 돋는 기분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죠르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다. 무언가 몸을 지탱할 것이 필요했다.

죠르노는 내 목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입을 벌렸다. 죠르노가 천천히 내 목을 핥고 있었다. 으윽, 나는 짧게 신음을 흘리며 목을 움츠렸다. 간지럽다는 표현으론 부족한 기분이 머리에 올라왔다. 손바닥이 저릴 정도로 긴장된다. 나는 죠르노의 어깨에서 손을 내려 그의 등을 팔로 휘감듯이 안아잡았다. 머리가 빙빙 돈다. 뾰족한 죠르노의 송곳니가 내 목을 조금 찔렀다. 가느다란 바늘이 살갗을 긁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앞으로 밀려올 감각이 무엇이든간에 감내하기로 결심했다. 엄창난 고통이 올 것이다. 의식이 멀어질 수도 있다. 숨이 끊어질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는 각오를 다졌다. 그 각오 위에, 죠르노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DOLCETTO, SCHERZETTO? (Trick Or Treat)”

죠르노의 말에 나는 눈을 떴다. 뭐? 내가 소리를 내어 묻기도 전에 죠르노가 내 목을 물었다. 따끔하기야 했지만 엄청날 정도의 고통이 밀려오진 않았다. 그냥 가볍게 장난삼아 물때의 아픔이다. 아, 아파! 내 말에 죠르노는 입을 내 목에서 떼었다. 나는 내 목을 손으로 쓸었다. 죠르노의 침이 묻어서 축축하고 이에 물려 욱신거렸다. 그렇지만 그뿐이었다.

“아아. 아쉬워라. NG예요 미스타.”

바라본 죠르노의 표정이 전혀 달라졌다. 죠르노는 생긋생긋 웃으며 말했다.

“제 연기는 완벽했는데. 그렇죠?”

다시 자세히 보니 죠르노의 치아가 원래 대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평소대로 말이다. 죠르노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송곳니를 살짝 만졌다.

“예전에는 앞니를 해파리로 바꾼적도 있거든요. 후후. 크기와 모양을 바꾸는 일 정도야.”

“………뭐?”

나는 멍청이처럼 얼이 빠져 말했다. 천천히 상황이 파악되자 곧 이어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내가 NG 받은 곳은 어디인데?

“아직도 모르겠어요? 은탄환에 죽는건 뱀파이어가 아니라 웨어울프잖아요.”

아, 그거야. 확실히 내 실수네. 나는 숨을 뱉으며 웃었다. 저절로 안도의 미소가 지어진다. 죠르노도 내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다. 마치 거울처럼 그의 표정이 나와 비슷해진다.

“그래도 이번 장면은 좀 마음에 들었어요.”

“정말?”

황금사자상 정도는 받을 수 있을까? 내 말에 죠르노는 레드카펫이 밟고 싶다면 내일 당장 깔아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뭐. 그렇게 까지야. 죠르노가 하면 농담 같지가 않은 말이다.

“그나저나 미스타. 사탕은 안주시나요?”

“응? 사탕? 오늘 딱히 돌체는 없어.”

내 답에 죠르노의 입술이 살며시 당겨 올라간다. 장난을 한입 베어 문 얼굴로 두 눈을 반짝인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선물을 코 앞에 둔 아이의 표정이 이리 순수할까. 나는 생기가 도는 죠르노의 눈에 정신을 빼앗겨서 죠르노가 무얼 하는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죠르노는 내 어깨를 잡더니 그대로 나를 뒤로 밀었다. 쇼파에 걸쳐 앉은 상태 그대로 나는 쇼파에 눕듯이 넘어졌다.

죠르노는 내 위에 올라타듯이 앉은 다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사탕이 없다니. 괴롭혀 드려도 된다는 뜻이죠?”

“아아, 잠시만. 죠르노.”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 말이 뚝하고 떨어졌다. 죠르노는 선물포장을 뜯는 아이처럼 웃으며 내 스웨터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간지럽고 부끄러운 마음에 어찌할지 몸을 바스락 거리듯이 움직이다가 죠르노의 손이 더 올라가자 그냥 마음을 놓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튀어나온다.

잔혹하게 물어 뜯기는 상상을 했던 잠시 전을 떠올린다. 단 몇분 동안이지만 서늘하게 보이던 죠르노의 눈빛이 너무나도 매서우면서 아름다웠다. 그때 죠르노가 보여준 얼굴은 정말로 장난이었을까. 아니. 분명 속임수는 아니다. 내가 맛본 것은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를 악몽의 한조각이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죠르노에게 말했다.

“오늘밤은 그러면 흡혈귀에 먹히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수 밖에.”

상냥하게 먹어줄거지? 내 말에 죠르노는 웃음을 거두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방금전에 연기로 보여준 그 표정이다. 정말로 밤의 제왕이라도 된 듯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더니 자신도 웃겼는지 다시 웃었다. 푸하하. 터져나온 웃음이 가볍게 날아간다.

노력은 해볼게요. 죠르노는 그렇게 말하며 내 목 대신에 입술을 물었다. 자비 없는 키스가 아니라, 조심스러운 키스였다. 그 입맞춤이 이상하게 더 애를 태우듯이 느껴져 나는 죠르노의 뒷목을 잡았다. 죠르노의 숨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그 숨결에 웃음이 조금 섞여 있다.

너는 언제나 타오르는 태양과 같구나. 만약 네가 영원히 긴긴 밤에만 존재한다고 해도 절대로 차가워지지 않을테지. 어쩌면 나는 그 뜨거움에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네가 없으면 살아갈 미래조차 그려지지 않는다.그것은 어떤 저주보다도 더 무거운 각오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죠르노에게 몸을 맡겼다. 

깊은 어둠속에 가라앉은 죽은 자를 위한 밤이 깊어갔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