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JO (죠르미스)

We Must Love

죠르노x미스타/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Red camel by 스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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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작성

호위팀이 함께 있는 세계의 죠르노와 미스타입니다.

원작의 촘촘한 시간선과는 관련이 없는 배경이 되었네요.


“미스타. 당신은 나를 좋아하게 될거예요.”

귀도 미스타. 18세. 내가 그 이상한 고백을 들은 때는 따뜻한 태양에 기분이 늘어졌던 시에스타 시간이었다.

부챠라티가 새로운 신입을 팀에 데려왔다. 죠르노 죠바나. 나이는 15세. 곱슬거리는 긴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졌으며 서있는 자세가 꼿꼿하고 당당한 미소년이다.

우리 부챠라티 팀의 반응을 보자면. 우선 나란차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또 들어왔다며 은근 반가워했다. 물론 나란차보다 푸고도 연하이지만, 경력으로 선배이기에 동생 취급을 못했던 탓이 클 것이다. 푸고 역시 부챠라티에 대한 신뢰가 크기에 큰 반발은 없는 듯 하다. 그에 비해 아바키오는 묘하게 경계하는 기색이다. 어린 나이의 애송이가 긴장한 기색도 없고 겁내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뒤가 구리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도 미스타. 나는 솔직히 말하면 이 신입이 이유도 없이 마음에 들었다.

왜냐고 물으면 어디까지나 내 감이다. 신입인 죠르노가 오고 나서 일이 잘 풀렸다. 즉, 고로 이 신입은 운이 좋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운 좋은 럭키 보이 옆에 붙어 있으면 뭐라도 떨어질 것이다. ~라는 내 나름 완벽한 결론이다.

그런 신입, 죠르노가 갑자기 나에게 한 말이 이런 말이다.

“미스타. 당신은 나를 좋아하게 될거예요.”

“……뭐?”

시에스타라지만 부챠라티는 오늘 뭔가 일이 바쁘다. 머리가 좋은 푸고가 부챠라티를 따라 갔고, 아바키오는 내 식사 초대를 거절했다. 나란차와 같이 갈까 했더니 나란차는 이미 어디론가 나가서 연락이 되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쩌다보니 신입인 죠르노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잠시만. 지금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냐. 나는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다 다시 화들짝 놀랐다.

“응? 지금 뭐라고?”

“그러니까…. 미스타. 언젠가 당신은 나를 좋아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다시 들어도 이상한 말이다. 나는 포크로 음식을 집으려다 말고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너 혹시 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싶은데 말실수로 잘못 말했다든지….”

“아뇨. 아닙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씀드리는…. 그래요. 쉽게 말하면 통보에 가깝겠네요.”

죠르노는 그런 말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죠르노의 표정은 진지하고 차분해서 농담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나는 음식을 넘길 기분이 들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내 질문에 죠르노는 입에 있는 음식을 삼키고 나서 물을 한입 마시고는 답했다. 그 행동이 무척이나 우아하고 침착했다.

“왜냐면……. 그건 뭐라고 설명해드리기 힘드네요.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그리고는 정말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나는 죠르노의 얼굴에서 농담이 아님을 느꼈다.

“혹시해서 묻는데. 네 스탠드 말이야. 미래를 볼 수 있다든지 예지 능력이라도 있어?”

“네? 아, 아뇨. 골드 익스피리언스에 그런 능력은 없어요.”

죠르노는 무슨 이상한 사실을 묻냐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니. 그러면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미스타. 결론이 그렇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이상하다니까. 나는 포크의 손잡이를 위에서 아래로 잡은 위치를 바꾸며 빙빙 돌렸다. 죠르노의 말은 너무 확신이 있어서 마치 무언가의 예언, 혹은 신탁과도 같이 들렸다.

“왜 그렇게 된다고 확신하는데?”

“저는 미스타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더 궁금한데요.”

“으음~”

나는 원래 복잡하고 어려운 사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빙빙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기보다 그냥 칼로 잘라서 매듭을 푸는 쪽을 선택한다. 결국 식사나 하자 싶어 나는 포크에 이리저리 꼬인 파스타를 한입에 넣었다. 죠르노는 여느 때와 같이 조용하고 침착하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방금 전에 우리 둘이 한 대화가 아무것도 아닌 주제처럼 느껴지듯이 말이다.

음식을 씹고 삼켜 넘기는 동안 죠르노를 관찰했다. 솔직하게 외모에선 흠잡을 곳이 없다. 아니, 부족한 부분 자체가 없다. 지금 당장에도 지나가는 몇몇 어린 여학생들이 식사를 하는 죠르노를 돌아볼 정도다. 나는 파스타를 꿀꺽 넘기고 말했다.

“저기 죠르노. 나에게도 취향이 있잖아.”

죠르노는 고개를 들어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네. 사람은 다 저마다의 기호가 있으니까요. 가볍게 답하고는 조용히 냅킨에 입을 닦았다.

“혹시 미스타는 제가 취향에 안 맞기라도 하나요?”

아니. 이렇게까지 정곡으로 질문할 줄이야. 나는 당황해서 괜히 입을 한번 뻐끔거렸다. 따지면 굳이 맞지 않는다고 할 것 까진 또 아니고. 나는 오갈 곳 없는 손이 어색해서 괜히 모자를 긁적였다.

“그리고 난 말이지. 지금까지 사귀었던 사람이 전부 말이 많고 애교가 많았거든.”

굳이 그런 사람만 고른건 아닌데 또 막상 만나면 엇비슷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나도 말이 많은 편이라서 과묵한 상대보다는 대화의 맞장구를 쳐줄 수 있는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나랑 취미가 맞으면 좋고……. 아. 기왕이면 영화 보는 성향이 같으면 더 좋아.”

나는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축구 경기를 보거나 영화를 보며 지낸다. 축구는 보통 술집에서 보니까 여자 친구와 같이 갈 장소는 아니기에 빼두면 남는 데이트 장소는 극장이다. 그러다보니 영화 보는 취향이 겹치는 사람이 사귀기 편하다. 영화관에 나와서 서로 싸우는 연인이라니. 최악 아닌가.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역시 입맛?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싫어한다면 맞춰줄 수 있지만…. 내가 싫어하는 음식을 좋아하면 좀 힘들 것도 같고.”

기왕이면 서로 같은 입맛이면 좋잖아. 내가 먹어서 기분 좋은 음식을 연인도 먹고 기분 좋게 웃어주면 그거 자체로 행복하다고.

내 긴 설명에 죠르노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푸른 눈동자에는 그 어떤 망설임도 없다.

“방금 말씀하신 그 기분은 저도 알 것 같네요.”

“그렇지?”

“네. 미스타랑 저는 우선 음식에 있어서 취향은 겹치니까요.”

예를들면 지금 이 가게. 이 가게도 미스타의 제안이었죠. 미스타가 맛있게 먹은 요리, 저도 무척 입에 맞았어요.

“그래서 미스타와 함께 하는 식사가 즐겁고 기뻤어요.”

“그랬다면 다행이네.”

나는 빈 접시를 한쪽으로 살짝 밀었다. 이제 디저트가 나올 시간이다. 뭐 먹을래? 나는 딸기 소르베토로. 내 말에 죠르노가 메뉴판을 보더니 말했다. 그러면 저는 레몬으로 할게요. 짧은 대화를 한 후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미스타. 하나 제 쪽에서 여쭈어 봐도 될까요.”

“응? 어. 그래. 뭔데?”

마침 디저트가 나왔다. 나는 디저트를 받으며 답했다.

“미스타는 연애 상대의 외모는 어떤 쪽이 취향인가요?”

그걸 네가 묻기냐. 또 다시 심란한 대화주제의 연장선이다. 나는 작은 스푼을 입에 물기 바로 전에 말했다.

“외모라면 나 뭔가 딱 취향이다 하는 점은 없어.”

확실한 뭔가 기준이 있진 않아. 날씬한 체형이건, 통통한 체형이건. 이런 기준도 없어. 금발이면 화려해서 좋지만 흑발은 섹시해서 좋고 갈색머리는 발랄해서. 진져는 매력적이라서 좋지.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렇지만 기왕에 누가 봐도 예쁜 사람이면 나도 좋아.”

원래 나는 카페에서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면 반드시 말을 거는 성격이다. 길을 가다가 눈을 돌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여성이 있어도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이태리 남자로서는 평균 아닌가? 죠르노는 내 답에 작게 웃었다.

“다행이다. 저 외모는 자신이 있거든요.”

그걸 네 입으로 말하기냐. 뭐. 사실이지만.

나는 죠르노를 지적하면서 그의 환한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죠르노는 나를 좋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상한 방법으로 고백을 했을까? 결국 죠르노와 헤어질 때까지 계속 죠르노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애초에 죠르노 죠바나는 어떤 사람이더라. 나는 죠르노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았다. 우리 둘은 만난 일수로 따지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죠르노에 대해서 아는 사실을 열거해도 그리 많지 않다. 우선 15세. 그리고……….

‘스탠드의 능력은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런 사실은 연애랑 큰 상관 없으니 내버려두고.’

참,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근처에 있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로 국립학교라는 점에서 머리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푸고 수준까진 아니겠지만.

‘그리고………. 아. 젤라토를 좋아하나? 자주 먹던데.’

아닌가. 단 음식은 거의 다 좋아하나? 식탐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돌체를 시킬 때 언제나 유난히 단 종류로 시켰다.

‘……역시 나는 죠르노의 특징이라고 할만한 건 많이 모르네.’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취미는 뭔지. 주로 옷을 즐겨 입는지. 휴일엔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뭘까. 보다가 운 영화라도 있을까.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야구? 아니면 역시 이태리인 답게 축구? 축구를 좋아한다면 어떤 선수를 좋아할까?

‘그리고 사람을 좋아한다면 어떤 사람을…?’

질문의 끝에 걸린 마지막 질문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답을 한발 먼저 생각했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을…….

“으악! 뭔 생각이야? 자뻑이 심해도 정도가 있지!”

난 내 스스로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서 내 뺨을 때렸다. 때리고 보니 좀 아프다.

“미~스타아아~”

얼얼한 볼을 만지고 있을 때 귀에 익숙잖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식으로 쨍쨍 거리는건 아마 나란차일텐데, 나란차랑은 좀 다른 소년의 목소리였다.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더니. 죠르노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서 있었다.

“한참 찾았잖아요~ 어디에 가 있었어요.”

“……어?”

지금 나한테 한 말이지? 그것도 죠르노가? 나는 믿어지지 않아서 뒤를 한번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이번엔 죠르노에게 성큼 다가가서 죠르노의 뒤를 살펴봤다. 혹시 나란차가 뒤에서 장난이라도 치자고 말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할만큼 죠르노의 말투는 어색했다.

죠르노는 언제나 똑 부러지고 이성적인 말투를 사용한다. 그런 죠르노가 말끝을 늘이면서 느릿느릿 말하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다니. 뭐 잘못 먹었나? 아니면 뭔가 내기라도 해서 벌칙이라도 하는 중일까? 그런 생각만 들뿐이다.

“………….”

그동안 죠르노는 가만히 선 채 주먹을 꾹 쥐었다. 죠르노의 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가까이에서 보니 얼굴도 붉다.

“죠르노. 너….”

“이, 이러니까 연습이 필요했는데. 아아……. 실수였죠. 이상했죠. 다시. 다시 해볼게요.”

죠르노는 주먹으로 눈을 비비더니만 손을 펴서 완전히 얼굴을 푹 가렸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나는 죠르노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죠르노는 귀까지 붉어졌다.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너 설마. 지금 나름 애교 부리는 중이었어?”

“……….”

죠르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보여주지 않아서 아쉽다. 나는 죠르노의 말에 크게 웃었다.

“푸하하! 너 진짜. 가지가지 한다.”

“미스타. 혹시 지금의 저. 꼴 사나워서 별로인가요?”

죠르노는 얼굴을 가린 채 말했다. 풀죽은 목소리에 나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니. 오히려 역으로 귀여워.”

“……그렇다면.”

내 답에 죠르노의 목소리가 평소처럼 돌아왔다. 그리고는 붉어진 얼굴로 입꼬리를 올린다.

“작전은 얼추 성공이네요. 그렇죠? 미스타.”

무슨 작전인데. 나한테 환심을 받는 작전?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그나저나 죠르노. 여긴 무슨 일이야.”

“미스타가 지나갈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너 되게 끈질기고 치밀하구나…….”

확실히 이 동네는 자주 다니는 골목이긴 하지만. 무슨 고양이를 기다리는 아이도 아니고. 내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린다니. 대단할 정도다.

“미스타. 혹시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은 싫나요?”

그렇다면 차라리 우연히 만났다고 할 걸 그랬어요. 역시 우리는 운명이라고 말하는 쪽이 좋았나요? 죠르노의 말에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계획적인 사람? 싫진 않아.”

“으음…….”

“지금은 오히려 와아 대단하네! 하고 감탄했을 뿐이야.”

그렇지만 역시 운명이라든지 숙명이라는 말이 더 좋기야 해. 나 그런 로맨틱한 영화 좋아하거든.

내 결론에 죠르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자신의 어깨에 올려있는 내 손을 잡아 내리고는 두 손으로 잡았다. 우리 둘 사이의 키 차이는 그렇게까지 많이 나진 않는다. 죠르노가 조금 발을 세우거나, 혹은 내가 고개를 숙이면 비슷해진다. 죠르노는 내 쪽으로 몸을 높였다. 고개가 가까워진다. 어라. 잠시만. 이 각도. 자, 잠시만. 나는 뒤늦게 놀라 내 허리를 세웠다. 죠르노의 얼굴이 멀어진다. 휴. 죠르노 몰래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스타. 저…. 시간이 괜찮으면 영화 보러 갈래요?”

“응? 영화?”

혹시 데이트 신청이야? 내 표현에 죠르노는 자신의 밑 입술을 말듯이 물고는 소리 없이 나를 보았다.

“그래. 그럼 지금 보러가자.”

와아. 정말요? 죠르노는 내 답에 기쁜지 웃었다. 아, 이 얼굴은 제법 마음에 든다. 나는 죠르노가 굳이 콧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평범한 로맨스 영화였다. 아무리 봐도 예쁜데 왜인지 인기 없는 여자 주인공이 잘생겼지만 성격이 나쁜 남자 주인공과 싸우다가 연인이 되는 헐리웃 영화이다. 영화관의 관객은 거의 커플 밖에 없었다. 남자끼리 온건 아마 우리 둘뿐인 것 같다. 그래도 제법 내 취향의 영화였다.

“영화. 어땠어?”

“저는 이런 종류의 영화를 자주 보진 않아서요. 아, 그래도 재미는 있네요.”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 영화는 내가 고른 영화이다. 죠르노는 내 취향이 알고 싶다고 말했지만…. 아무래도 내 기호에만 맞췄기 때문에 죠르노에겐 재미가 없진 않을까 생각했다.

“넌 평소엔 어떤 영화를 봐? 액션? 아니면 호러?”

“사실 전 영화관에 자주 오는 편은 아녜요. 어렸을 때 극장에 오면 애들이 표를 뺏고 괴롭히곤 했던 기억이 나서….”

나는 그 말에 죠르노를 돌아봤다. 뭐? 정말? 네. 정말요. 죠르노는 표정의 변화 없이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어릴 때의 지금보다 작았을 죠르노가 다른 사람에게 괴롭힘을 받는 일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나빠졌다.

“나쁜 놈들이네.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중에 지나갈 때 말해줘. 내가 엉덩이라도 차 줄테니.”

“하하. 괜찮아요. 전부 어릴 때 일인걸요.”

내 말에 죠르노는 일부러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괜찮아요. 그거보다…. 영화 얘기를 해요. 우리.”

어렵지 않은 영화라 좋았어요. 전체적 내용은 평범했지만…. 곳곳에 나오는 유머신은 꽤 재밌었고요. 죠르노는 화제를 바꾸려 꽤 노력했다. 아무래도 방금 전의 주제가 그에겐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모르는 척 넘어가주었다.

“미국 놈들은 코미디를 좋아하는 것 같아. 뭐, 나도 좋아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던 죠르노를 떠올렸다. 옆자리에 앉은 죠르노는 팝콘도 잘 집어먹지 않으며 영화에 집중했다. 그 옆모습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렇게까지 집중해서 볼 영화는 아녔는데. 귀엽게도 말이다.

“미스타는요?”

“나는 역시 키스신이 좋던데.”

내가 꼽자면 당연히 영화 중반에 있던 키스신이다. 헐리웃 영화답게 지금쯤 키스신이 나오겠지 싶은 순간에 남녀 주인공이 로맨틱한 키스를 나눈다.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다음, 남자가 만든 요리를 나누어 먹다가 쇼파에서 몸을 겹치며 하는 러브신이었다.

“뭔가 보고 있으면 이쪽이 간질간질해지고 기분이 좋잖아. 안 그래?”

영화를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있으면, 죠르노는 손을 부채질 하듯이 흔들었다.

“저……. 저는. 좀 부끄러웠어요.”

그 모습에 영화를 보던 죠르노를 떠올렸다. 하긴. 영화관에서 너 안절부절 못했지. 괜히 팔걸이에 손을 올려두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팝콘을 집어 들다 나와 손이 우연히 손이 닿은 이후로는 팝콘도 안먹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겐 그런 죠르노의 반응이 영화보다 재밌었다.

“너 그렇게 부끄러워해서 연애는 어떻게 했냐.”

“네?”

흘러가듯 던진 말에 죠르노는 조금 놀라했다.

“왜. 연애 해본 경험 없어?”

“……네. 없어요.”

어라. 그건 정말 의외다. 나와 함께 다닐 때만 봐도 죠르노는 여러 여자들의 시선을 받곤 했다. 잘생겼다면서 부끄러워하는 어린 여학생들부터 죠르노를 귀여워하는 연상의 누님들까지. 가만히 있어도 호감을 쉽게 살만큼 멋진 외모다. 나는 죠르노에게 물었다. 여자한테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아니. 실제로 많지 않아? 내 질문에 죠르노는 입을 다물었다.

“무다하고 불필요 하니까 딱히…….”

그래. 조금 아깝다만 본인이 저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러고보니 아무리 예쁜 여자가 말을 걸어도 죠르노가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하는 모습은 본 기억이 없다. 죠르노가 부끄러워한다면…. 역시 내 앞에서만 그러했나? 아니. 내가 지금 또 무슨 생각을……. 난 재빨리 다른 방향으로 말을 돌렸다.

“그러면 너, 여자 친구 집에 놀러간 적도 없겠네.”

“다, 당연하죠!”

죠르노는 뜨거운 것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말했다. 깜짝이야. 아니면 아니지. 그렇게 놀랄건 또 뭐람.

“혹시…………. 미스타는 있어요?”

죠르노는 헛기침을 하더니 내게 물었다. 꽤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그렇게까지 신중하게 물어볼 것도 아닌데.

“응. 당연하게 있지.”

“다……당연하게요?”

“그래. 나는 말야. 남자랑 사귀어본적은 없어도 여자랑은 많이 사귀어 봤다니까.”

나는 뻐기며 말하다가 아차 싶었다. 다 말하고 나서야 난 죠르노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발견했다. 앙다문 두 입술은 조그만 틈도 벌어지지 않았고 미간은 찌푸려진 채 깊게 패였다.

‘……아……. 말실수 해버렸다…!’

아무리 사실이라지만 말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텐데. 언제나 기특할 정도로 어른스럽고 침착한 죠르노를 놀리는 일이 너무나도 재밌는 바람에 그만 실언해버렸다. 나는 내 실수를 빨리 인정하기로 했다.

“그, 그……. 죠르노. 있잖아.”

“……….”

여전히 죠르노의 얼굴은 굳어있다. 뭐라고 말해야하지? 힘내라 내 머리!

“나 사실 남자하고 사귀어 볼 생각은 전혀 안하고 살아서…….”

“아……. 네.”

망했다. 나름 나온 부가 설명이 이거라니. 이게 아닌데. 난 생각 속에서 내 머리를 주먹으로 쾅쾅 때렸다. 다른, 다른 답을 해서 수습해야한다.

“그러니까 나한테 그렇게까지 맞춰주려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이다. 죠르노의 얼굴은 이제 하얗기보다 회색에 가까워졌다 싶을 정도로 핏기가 사라졌다. 아무래도 영 좋지 않은 쪽으로 내 말을 해석한 모양이다.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뜻은….”

으악! 뭐라고 말해야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좋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죠르노는 굳은 눈빛으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잘생겨서 그런가. 저렇게 정색한 얼굴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멋지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을 풀어주지 않을 수도 없다.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는 아무말이나 해보자!

“아아. 맞다. 저기. 나중에 우리 집 놀러올래?”

나는 그저 죠르노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다면 뭐라도 좋다. 당황해서 여러개의 조각으로 나뉜 생각의 파편을 잡아 이어 맞췄다. 그래서 튀어나온 말이 이런 말이다.

“네?……….”

내 말에 죠르노는 굳은 표정 그대로 나를 바라봤다. 아아, 이것도 아닌가? 영 반응이 좋지 않아. 역시 그냥 해본 소리라고 해야겠어. 나는 뻘쭘해져서 턱을 손가락 하나로 긁적이며 생각했다.

“그, 그냥 해본 말―”

“저, 정말요? 정말 가도 돼요?”

언제요? 지금 당장요? 죠르노는 숨도 쉬지 않고 급하게 말을 줄줄 이었다.

“어어…. 아. 오늘은 아니고. 미안. 내가 오늘은 좀 할 일이 있어.”

“그러셨군요……….”

죠르노는 다시 물에 젖은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런.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잖아.

“나중에. 그러니까 며칠 뒤에….”

“네. 저는 언제라도 좋아요. 미스타가 집에 초대해주다니. 정말 기뻐요.”

다시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평소보다 푸른 눈이 더 커졌고 볼은 붉다. 단거리 달리기라도 하고 온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얼마나 들떴는지 그 감정이 나에게 점염되듯 전해진다. 이런 얼굴을 보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다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으응! 그래. 너 좋을 때 오라고.”

아아. 결국 이렇게 말해버렸다. 몇 번이나 웃으며 정말이냐 묻는 죠르노의 얼굴을 보고 좋은게 좋은일이라 납득했다.

“네! 기대할게요.”

죠르노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손 안에 갇힌 죠르노의 고동이 기분 좋게 울린다. 역시 죠르노. 나는 너의 웃는 얼굴을 보는 쪽이 훨씬 좋아.

“미스타. 죠르노랑 요새 둘만 너무 같이 다니지 않아?”

오늘은 조금 한가하다.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겠다. 배도 부르고 기분이 좋아서 눈을 감고 낮잠을 자려고 했는데, 옆에서 나란차가 말했다. 가만히 보니까 요 며칠 둘이서만 붙어 다니고. 나란차는 읽고 있던 코믹스를 엎어 놓으며 말했다.

“혹시~ 둘이~ 설마~”

“설마. 뭐.”

괜히 찔린 마음에 의자에 누워 눈만 뜨며 나란차를 바라봤다. 나란차는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설마 나 빼고 둘이서만 맛집 탐방 다니는거 아냐? 역시 나 따돌리지? 그치?”

너무해~ 나도 껴서 먹으러 다니자고. 나란차가 주먹을 쥐고 가볍게 퉁퉁 쳤다. 으윽 그런거 아냐. 나는 귀찮아져서 대충 답했다.

“뭐…. 오늘도 만나기야 하지만.”

“이거 봐봐. 나만 따돌린다니까?”

“그런거 아니래도.”

나는 일부러 누운 몸 자세를 바꾸고 나란차를 무시하기로 했다. 나란차에게 등을 돌리고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요 며칠간 나와 죠르노가 보내는 시간은 평범하게 연애를 시작했을 때 할 만한 행동이긴 했다. 죠르노에게서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해야하나. 미래 예측이라고 해야 맞을까. 무슨 표현이 맞을지 모르는 이상한 말을 듣고 나서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차근차근 데이트 코스를 밟아가며 진도를 나아가고 있잖아….’

나는 내 자신도 조금 놀랐다.

“그래서 오늘은 뭐 먹으러가? 나도 갈래~”

나란차는 의자에 누워있는 나를 흔들었다. 나는 눈을 한쪽만 살며시 뜨며 파리를 쫓듯이 팔을 휘저었다.

“어디도 안가.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했어.”

“진짜? 그렇지만 미스타 집. 엄청 더럽잖아.”

야. 누가 보면 오해 하겠다? 엄청까진 아냐. 평균적인 남성 혼자 사는 집이 다 그렇지 뭐. 나는 발끈해서 말했다.

쓰레기가 많다거나, 바닥이 더러운 편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깔끔하지 않은 편이긴 하다. 여기저기 대충 쌓아둔 짐 하며 어수선하긴 하다. 당장 오늘도 어제 입은 옷을 벗어던져둔 채로 나왔으니 말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죠르노를 떠올렸다. 죠르노는 언제나 깔끔하다. 가까이에 서서 숨을 쉬면 자연스럽게 향긋한 비누냄새가 나곤 한다. 머리스타일도 매번 정돈되어있고 옷도 각이 잡혀 깨끗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테이블 위의 매너나 식습관도 깔끔한걸 보면 분명히 집도 깔끔할 것이다. 만약 죠르노를 껴안고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불쾌한 냄새가 날 리 없다.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을까.

‘아, 안되겠어. 역시 좀 일찍 가서 치워놔야지.’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낮잠이 저 멀리 날아갔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코믹스를 읽던 나란차가 나를 바라봤다. 어엉? 미스타 어디가? 나란차의 말에 돌아보지 않고 대충 팔을 흔들었다. 해야 할 일 생각났어. 나 먼저 간다. 그리고는 나란차의 인사를 듣지도 않고 먼저 카페 밖을 나왔다.

결국 나는 죠르노가 오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몇 시간은 일찍 집에 돌아가서 청소를 했다.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난 살면서 남자를 집에 초대하고 이렇게까지 청소를 하려 한 적은 절대 없다. 문을 열면서 들어오는 친구를 피해 발로 대충 짐을 멀리 밀어두는 정도였다고 해야 하나. 여자를 초대해도 이렇게까지 부끄럽진 않았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창문을 연다음 어깨를 두들겼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기타소리가 오늘따라 짜증이 난다. 저 놈은 언제까지 연주할 생각이야. 슬슬 현관문을 걷어차면서 닥치라고 시비를 걸고 와야 하나.

참다참다 열이 받아서 문을 열자, 문 앞에 초인종을 누르려고 서있던 죠르노가 보였다. 죠르노는 눈을 크게하고 놀란 토끼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어? 죠르노. 일찍 왔네?”

약속까지 30분은 더 남았는데. 내 말에 죠르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네. 혹시라도 늦을까봐 긴장해서 너무 일찍 나와 버렸어요.”

네가 사는 기숙사에서 여기까지 오래 걸리는 거리도 아닌데. 뭘 그리 서둘렀어. 내 말에 죠르노가 신발 코를 땅에 비비며 말했다.

“너무 빨리 와버렸나요? 폐를 끼쳤다면 죄송해요.”

그렇지만 준비하다보니 너무 초조해져서. 죠르노의 작은 혼잣말 같은 말에 나는 과감하게 고개를 저었다. 폐라니. 전혀 그렇지 않아.

“아, 아냐. 그런건. 아아~ 들어와.”

아직 옆방은 시끄럽지만 노래라도 틀어두면 되겠지. 나는 죠르노를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게 옆으로 비켜섰다. 죠르노는 조금 주저하더니 실례하겠다는 말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가만히 보니 죠르노의 양손에 무슨 봉투가 있다. 꽤 무거워 보인다.

“그나저나 뭘 그리 많이 가져왔어?”

내가 봉투를 잡으려 하자 죠르노가 자신 쪽으로 당겼다.

“먹을거리를 좀 사왔어요.”

먹고 싶은게 따로 있었어? 물어보면 죠르노는 봉투를 꽉 잡은 채 말했다.

“아니요. 제가 요리해드리려고요.”

“네가?”

왜? 내가 놀라 물어보면 죠르노가 설명을 시작했다.

“전에 같이 영화를 볼 때 미스타가 말했잖아요. 그래서……. 좋아할줄 알고….”

죠르노는 언제나 생각이 빠르고 사고가 명확하다. 아마 전에 같이 본 영화에서 내 감상을 듣고 내가 좋아할만한 일을 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기특하기도 해라. 얼굴에 미소가 번질 것 같다.

“좋아. 네가 직접 해주려고? 그거 엄청 기대되는데.”

“딱히 기대하실 실력 정도는 못돼요. 혼자 먹을 음식만 만들어봐서요.”

“그래도. 네가 해준다면 분명 좋아.”

나는 봉투를 낚아채듯이 잡았다.

“무거울 텐데. 여기 올려놓으면 돼.”

나는 죠르노가 들고 온 짐을 들며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 여기저기에 반창고가 붙어있다. 자세히 보니 손이 온통 상처투성이다. 놀라서 죠르노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상처는 검지손가락 끝. 그리고 엄지손가락이 붙어있는 손바닥 밑에 몰려있다. 전부 요리를 하다가 다치기 쉬운 위치이다.

요리를 잘하려고 연습을 많이 했나보다. 죠르노는 어쩜 상처까지 귀여운지 모르겠다.

“그럼 온 김에 손만 씻고 바로 할게요.”

“뭘 하려고? 아하~ 파스타 할 생각이구나. 혹시 까르보나라?”

“네. 맞아요. 역시 너무 무난하고 평범하려나요.”

“아니. 딱 좋아. 마침 잘 어울리는 와인도 있으니까….”

내가 찬장을 뒤지며 와인을 찾자, 죠르노가 내 등을 밀었다.

“제가 대접해드리고 싶으니까 미스타는 쉬고 계세요.”

“엥? 그래도 돼?”

나 후배 하나 잘 뒀네. 나는 크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죠르노는 못들은 척 앞치마를 둘렀다.

죠르노가 한 요리는 보기에는 꽤 훌륭했다. 우리 집에 미리 있던 접시에 예쁘게 담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렇지만 포크로 한입 베어 물고 나서는…….

“역시 맛 없죠.”

내가 뭐라 맛을 보기 전에 죠르노가 먼저 나서서 딱 잘라 말했다. 죠르노는 내 앞에서 풀이 죽어 앉아있다. 이럴 땐 빈말이라도 맛있지 않냐고 물어야 할텐데. 요리 한 당사자가 맛이 없다고 단언한걸 보면 어지간히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나는 입에 머금은 파스타면을 급히 삼키고 말했다.

“아, 아냐. 아주 맛없지는 않아.”

“아주 맛없지는……….”

죠르노는 한숨처럼 말하고는 자신도 요리를 한입 먹어보았다. 그러더니 또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미스타. 잘 하려고 했는데.”

“괜찮다니까~ 괜찮아. 맛있어.”

“아뇨. 제가 스스로 했으니 객관적으로 알 수 있어요.”

역시 별로 맛없어요. 죠르노는 시무룩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내가 먹기엔 조금 계란이 비리기야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죠르노가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혼자 해먹는 정도라면 한끼 식사로 이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아주 맛있진 않지만…. 으음….

나는 죠르노의 풀죽은 얼굴을 보았다. 실수를 잘 하지 않는 죠르노에겐 이정도 실수도 용납이 되지 않으려나. 축 내려간 어깨가 가슴이 아프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난 내 접시 위 음식을 냄비에 다시 쏟아 넣었다. 죠르노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올려보았다. 그 동안 나는 죠르노의 접시도 들어 냄비에 쏟았다.

“괜찮아. 여기서 조금만 더 하면 엄청 맛있어지니까.”

미스타는 냄비 째로 음식을 부엌으로 들고 갔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뒤를 따라왔다. 미스타는 불 위에 냄비를 올려두고, 찬장에서 이런저런 재료를 다시 꺼냈다.

“그리고 맛이 없진 않아. 그냥 맛이 심심했을 뿐이야.”

냉장고에 남은 채소를 뒤적여 본다. 반 토막 나 그릇에 담겨있던 토마토와 자몽이 보인다. 버터와 치즈도 마시다 남은 와인도 합세하면 대강 샐러드 재료는 거의 다 있다. 냄비에 있던 파스타를 다시 요리하며 소금과 후추를 다시 쳤다. 파스타가 익는 동안 샐러드를 만들었다.

“자. 이렇게 먹으면 어때. 샐러드도 곁들여서 먹어 봐.”

나는 완성된 요리를 식탁에 다시 올려두었다. 내 어깨 너머로 보고 있던 죠르노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한입 먹더니 눈을 크게 떴다.

“우와. 미스타. 맛있어졌어요.”

마법이라도 부렸어요? 죠르노의 감탄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씩 웃었다.

“그치? 네 요리도 나쁘지 않았다니까.”

“그렇지만 미스타가 다시 해줬잖아요.”

“아니지. 애초에 망했으면 이렇게까지 못해. 조금만 더 하면 충분히 훌륭한 요리였으니까 가능했지.”

그랬나요. 응. 그랬지. 우리 둘은 짧은 대화를 하고 식사를 이어갔다. 참. 설거지는 네가 해줘. 내 말에 죠르노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끝내고 죠르노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쇼파에 누웠다. 남은 와인을 홀짝 거리고 있으면 죠르노가 옆에 와서 앉았다.

“미스타. 나중엔 제가 더 맛있는 요리를 해드릴게요.”

앞으로 제가 요리를 더 연습 할테니까. 분명히 더 잘하게 될 수 있어요. 죠르노의 말에 나는 와인잔을 흔들며 답했다.

“글쎄. 지금도 충분한데. 굳이 더 잘할 필요 있나?”

난 오늘 네가 해준 요리로도 충분해. 비꼬는게 아니라 정말로 대단하단 얘기야. 그러니 굳이 나 때문에 네가 더 힘내지 않아도 돼.

“난 죠르노. 네가 나를 위해서 무언가 해준 자체로도 충분히 기뻐.”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죠르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넌 지금 그대로도 충분해.”

나는 그저 죠르노에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미스타. 죠르노가 나를 부른다. 나는 와인을 목으로 넘기고 죠르노를 돌아보았다. 내 옆에 바싹 앉은 죠르노의 얼굴이 레드 와인처럼 붉다.

“저도 기뻐요. 미스타.”

죠르노가 내 손을 잡았다. 뜨거운 물로 갓 세수를 하고 나온 사람처럼 손이 뜨겁다. 죠르노는 긴장했는지 손가락을 어찌 가누지 못하고 내 손을 잡았다가, 손가락을 잡았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그 반응이 재밌어서 내가 먼저 죠르노의 손에 깍지를 끼며 잡아보았다. 내가 죠르노와 시선을 마주하면, 죠르노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가 힘을 주어 닫혔다. 뻣뻣하게 굳어 턱을 당긴다. 각오를 다짐한 굳은 얼굴로 내 어깨를 당긴다. 미스타. 죠르노가 다시 나를 불렀지만 나는 소리 내어 대답하지 않았다. 죠르노의 큰 두 눈이 감긴다. 그러고는 나에게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나는 입술이 마주칠 때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심각한 키스는 처음이다. 키스라고 해도 될지 모를 정도의 긴장이 손 끝 죠르노에게서 느껴진다. 단순히 입술이 맞닿을 뿐의 키스인데도 왜 이리 긴장을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나는 죠르노가 입술을 떼었을 때 이미 웃고 있었다.

“…역시 이상하죠.”

죠르노는 내가 요리를 먹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역시 처음 해봐서 어쩔 수 없었어요. 변명인지 아니면 반성인지 모를 말이 이어진다.

“어. 어설프긴 엄청 어설프더라 너.”

네 말 대로 어쩔 수 없긴 하네. 처음부터 잘하긴 힘드니까. 나는 웃음을 참는걸 포기했다. 내 입에서 참지 못한 웃음을 흘러나온다. 나는 와인을 다시 한잔 마셨다.

“역시 미스타는 키스 잘하는 사람이 좋나요?”

나는 죠르노의 질문에 와인을 마시다 기침을 했다. 작게 사례가 들렸다. 이게 뭔 질문이래.

“뭐~ 사람 사귈 때 굳이 그런 것 까지 따지나? 난 안따져.”

“미스타가 그러면 다행이네요.”

죠르노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내 말 어디서 안식을 가졌는진 전혀 모르지만 편안해보였다. 나는 그런 사소한 반응이 너무 재밌었다. 내 말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하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표정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러면 어떠려나. 나는 와인잔을 든채 죠르노의 가슴에 쓰러지듯 기댔다. 미, 미스타. 와인이 쏟아질지도 몰라요. 죠르노는 내게 이상한 지적을 했다. 머리는 좋은데 바보다. 이놈. 몸이 한껏 굳어져서 의미도 없을 지적인데 말이다.

“죠르노. 있잖아. 이제 그만 나에 대해 물어보고 네 얘기를 해줘.”

“제 얘기요?”

응. 네 얘기. 나는 죠르노에게 기댄 상태로 와인을 다시 마셨다. 내 머리가 불편한지 죠르노는 끄응 거리는 소리를 작게 냈다.

“죠르노. 너는 뭘 좋아해? 나는 전혀 모르잖아.”

무슨 음악을 즐겨들어? 여행을 간다면 어디를 가고 싶어? 시를 읊는다면 어떤 시가 좋아? 살면서 보다가 운 영화는 있어? 싫어하는 건 뭐야? 먹기 싫은 음식이라든지. 무서워하거나 기분 나쁜게 있다면 그건 또 뭔지. 평소에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나는 전혀 모르잖아. 나는 길게 질문에 질문을 꼬리 붙여 이었다.

“너에 대해서도 알려줘. 죠르노.”

“미스타도 저를 알고 싶어요?”

“응. 나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내가 말하자 죠르노는 숨을 크게 마셨다. 그의 숨소리가 내 머리 바로 위에서 울린다. 내가 머리를 대고 누워서일까. 죠르노의 심장의 고동소리가 북처럼 크게 들렸다. 미스타. 저는요. 죠르노는 조심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그거라면…. 이미 제가 좋아하고 있으니 하지 않아도 돼요.”

아. 이제 무리다. 죠르노의 답에 나는 푸하하 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미스타. 죠르노가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내 허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아마 죠르노를 깔고 누운 채 웃어서 좀 무거웠던 모양이다. 미안 미안. 나는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나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몰라. 그렇지만 덕분에 하나는 알아버렸네.”

손에 든 와인잔을 빙빙 돌리다 남은 와인을 다 털어 넣듯이 마신다. 혀끝이 얼얼하며 씁쓸한 맛이 입안에 감돌지만 이상하게 달콤하게 느껴졌다. 나는 빈 와인잔을 내려두었다.

“죠르노. 너는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

내가 한 질문에 죠르노는 고개를 저었다. 어라. 의외의 답이네. 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죠르노는 말했다.

“아뇨. 미스타. 질문이 틀렸어요.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좋아하고 있어요.”

그게 뭐야. 하하. 귀여운 말을 하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도 죠르노. 너를 좋아해.”

애교가 능숙하지 않지만 귀엽고. 영화 보는 취향은 다르지만 같이 보고 있으면 즐거워. 요리를 잘하지 못해도 충분히 행복했고 키스를 잘하지도 않지만 사랑스러우니까.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어.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쇼파 위에 무릎을 꿇듯이 앉은 채 죠르노를 바라보면 앉은 키 자체는 내가 더 크기에 시선의 격차가 방금전과 반대가 되었다.

“봐봐요. 제 말이 맞죠. 당신은 저를 좋아하게 된다고.”

죠르노의 자신만만해 하는 웃음을 보니 왜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내가 먼저 죠르노에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키스 하나에 어색해하고 긴장하는 죠르노와는 다르다. 나는 자연스럽게 죠르노의 입술을 물어뜯을 기세로 입을 맞추었다. 죠르노의 당황한 굳은 손이 어디를 갈지 방황하고 있다. 나는 죠르노의 손목을 잡고 내 어깨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있지. 죠르노. 나는 좀 과격한 키스가 좋거든.”

나는 입을 댄 채 중얼거렸다.

“그것도 연습 해야겠네요. 그러면.”

더 잘할 수 있어질거예요. 기특한 말에 내 입에선 참지 못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사실은 나도 죠르노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때 취향을 따지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사람마다 이상형이란 기준은 존재한다. 검은 긴 생머리가 좋다. 목소리가 좋고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좋다. 몸매가 좋고 매력적인 사람이 좋다.

그렇지만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희망하는 조건일 뿐이다. 그 모든 조건이 하나 둘씩 필요 없어진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저런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이었던가. 스스로 질문하는 날이 온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이 바로 사랑이다.

죠르노. 다음에는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자.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네가 즐겨 입는 옷을 함께 맞춰 입은 채. 네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을게.

나는 그런 미래를 그리며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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