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코스 설계법
죠르노x미스타/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2019년 작성
죠죠 5부 엔딩 이후 배경입니다
태양이 진 도시가 이렇게 눈이 부실 수 있을까. 밤을 수놓은 빛은 강물위에 금색으로 자수를 놓은 듯 현란하다. 태양보다 더 화려한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수많은 건물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단순히 아름다운 정도를 넘어 호사스럽고 현란하다.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이었다.
“우와~ 여기 야경 정말 좋구나.”
미스타는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죠르노, 여기 와봐. 여기가 사람이 적어서 잘 보여. 손을 크게 흔드는 모습이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죠르노는 웃으며 미스타를 따라갔다.
“봐봐.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야경이라는 말이 있는데 과장이 아녔어.”
“네. 일부러 오길 잘했네요.”
들뜬건 두 사람 뿐이 아니다. 주변의 관광객도 박수를 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여기저기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카메라를 가져올걸 그랬나봐요. 아까워라. 죠르노의 말에 미스타는 웃으며 죠르노의 허리를 껴안았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를 써서 필름에 담아낸다고 해도 지금 네 눈에 담아내는 것 보단 아름답지 않을걸?”
네 눈에 비추어진 풍경이 명화니까.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정말이지 말은 잘하시네요.”
연인이 되고 나서 안 사실인데, 미스타는 이탈리아 남자의 편견을 더 강화시켜줄 정도로 로맨틱한 말을 곧 잘 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여기!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지 않아?”
봐봐. 이렇게 크게 소리를 쳐야 될 정도잖아. 미스타는 바로 옆에 서 있는데도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러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웠다.
“어쩔 수 없죠. 그만큼 미켈란젤로 언덕의 야경은 관광명소니까요.”
그거야 그렇지. 미스타도 죠르노의 말에 바로 수긍했다. 정말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여기저기 시끄러웠다. 풍경이 좋은건 맞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싶다.
“미스타는 처음 오나요?”
“예전에 온 적 있어. 그때는 낮이었는데, 지금처럼 사람 무지하게 많았거든. 그래서 구경은 잘 못했어.”
대신에 언덕 밑에 시장을 갔는데 엄청 힘들더라고. 미스타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언제. 누구와. 왜 왔을까. 죠르노는 더 묻지 않았다.
“하긴. 지금도 저희는 관광 온게 아니니까요.”
죠르노는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이탈리아 피렌체.
전 세계의 모든 여행자가 꿈에서라도 반드시 가보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피렌체는 나폴리와는 꽤 떨어진 지역이다. 로마를 지나서도 한참 올라와야 하는 이곳까지 온 건 어디까지나 돈 파시오네로의 업무다.
나폴리를 중심으로 시칠리아 섬까지는 어느 정도 손에 넣었지만, 북부 쪽은 아직도 파시오네의 영향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북부 이탈리아에선 파시오네가 마약에서 손을 뗀다는 사실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주축이 되어 파시오네를 경계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이때 이탈리아 반도를 나누어 먹은 조직의 수장끼리 모인 회의를 한다고 하기에, 죠르노는 그 경계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피렌체로 왔다.
“호위를 몇 명 더 데려 오는게 좋았으려나?”
미스타는 죠르노가 가진 긴장을 읽어냈다. 미스타는 죠르노의 허리를 감싸 품에 안은 채 죠르노의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듯이 만졌다.
보스가 회의에 나서는데 사람을 너무 적게 대동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일부러 허세라도 부렸어야했는데.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그들은 제가 스트리트 보스(*겉으로 내세우는 용도의 얼굴 마담과 같은 보스. 실권은 없다)가 아닐까 의문을 품고 있겠죠.”
15세, 아니 이제 막 16세가 된 금발의 미소년이 사실 이탈리아를 손에 넣어가던 조직 파시오네의 보스라고 나왔다. 과연 어느 바보가 이 말을 한 번에 믿겠는가. 얼굴만 내세운 보스라고 생각하는 쪽이 죠르노가 생각해도 말이 맞는다.
“저는 여기서 싸움을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런 일이야 말로 무다 하잖아요. 죠르노는 말하다가 고개를 위로 들어 미스타의 뺨을 만졌다.
“그리고, 우리끼리 단 둘이 와서 데이트 같고 좋지 않나요?”
“후후. 죠르노. 나랑 생각이 맞았네.”
미스타는 죠르노의 시선을 마주 잡으며 웃었다. 우리 둘뿐이라 나는 기분이 정말로 좋아. 너를 독점한 기분이거든. 내 럭키보이. 귓가에 얹히는 말에 죠르노는 웃으며 미스타의 얼굴을 당겼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주변에 사람이 많지만 죠르노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은 관광지. 수많은 사람이 연인과 함께 오는 장소다. 모두 자신만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바쁘다. 때문에 남성끼리의 커플을 신기하게 볼만큼 한가한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미스타는 입술을 붙인채 킥킥 웃었다. 죠르노가 눈을 뜨면 미스타가 고개를 들고 말한다. 죠르노. 너도 아직 열다섯 살이 맞구나. 분위기를 다 타고.
“이제는 열여섯 살입니다만.”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났잖아요. 그것도 다섯 달은 지났는데. 죠르노가 투덜거렸다.
“그게 중요했어?”
미스타가 웃으며 일부러 소리가 나게 다시 얕게 키스를 하고 죠르노의 귀를 쓰다듬었다. 죠르노는 자신의 심장이 원래 귀에 달린게 아닐까 착각을 했다. 쿵쿵 뛰는 고동소리가 귓불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잘 될지도. 죠르노는 중얼거렸다. 미스타가 뭐라고 말했는지 죠르노에게 물었지만 죠르노는 웃기만 했다. 이제 저 밑으로 가볼까요? 강가의 야경도 보고 싶어요. 죠르노는 미스타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죠르노. 그거 알아? 미스타는 죠르노의 뒷모습에 대고 말했다. 죠르노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경에도 빛나는 금발 머리와 붉게 달아오른 두 뺨.
“죠르노. 여기 네가 야경에서 가장 아름다워.”
뭐예요. 그게. 죠르노는 열기가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부끄러움과 기쁨에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미스타가 크게 웃으며 이번엔 자신이 죠르노의 손목을 잡아 이끌었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달아오른 볼을 식히려 애썼다.
죠르노 죠바나에겐 목표가 있다.
파시오네의 보스가 되어서 이태리를 손에 넣고 마약을 근절시키며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그런 미래……도 물론 있지만. 오늘만의 목표가 따로 있다.
미스타와 연인이 된 것 까지는 죠르노가 생각해도 꽤 순탄한 흐름이었다. 반대로 오히려 그 이후가 죠르노에겐 무척 어려웠다.
미스타는 지금까지 사람사이의 관계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친구도 많고, 가볍게 사귀는 지인도 무척 많으며 연애 경험도 많다. 그러다보니 미스타에겐 이미 익숙해진 모든 사건과 행동이 죠르노에겐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다가왔다. 처음으로 키스한날 죠르노는 집에 돌아가서 한참이나 그 감촉 때문에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연인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좋을까. 죠르노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피렌체에서 회의가 있다고 들었을 때.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피렌체는 아름다운 도시다. 나폴리와 함께 이태리에서도 손꼽히는 멋진 도시이다.
‘무엇보다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파시오네의 보스임과 동시에 아직 16살. 첫사랑에 성공해 연애를 하는 소년의 계획은 거창하며 웅장했다. 미스타와 어떻게든 더…. 더 무언가 연인 같은 일을 하고 말테다……! 라는 지극히 구체적이지도 않은 사적인 목표로 말이다.
“죠르노. 저기 강에 물고기 지나가는 것 같아. 봤어?”
“네? 아, 네. 그러네요.”
생각에 빠져 있는 죠르노를 미스타의 목소리가 건져 올린다. 두 사람은 언덕에서 내려와 강 쪽의 야경을 보았다. 물결 위에 반짝이는 금가루라도 뿌린 듯이 화려한 광경이다.
“무슨 물고기야? 너 물고기나 동물 잘 알잖아.”
“글쎄요…. 어두워서 잘 못 봤어요.”
죠르노는 다른 생각을 하느라 보질 못했지만 그렇게 둘러댔다. 미스타는 시선을 강에서 죠르노에게로 돌렸다. 죠르노는 무언가 들킨 사람처럼 약간 부끄러워졌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태연함을 유지했다. 미스타가 죠르노에게 손을 뻗더니, 죠르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이마에 키스를 했다. 강 바로 앞에 서 있기에 뒤에 있는 관광객들이 잠시 그 둘을 바라봤지만 미스타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민이라도 있어? 머릿속이 복잡해 보여.”
“……아. 그게…….”
맞아요. 머릿속이 복잡하기야 하네요. 전부 미스타. 당신으로 가득 차있지만요.
“역시 바쁠 텐데 나 때문에 괜히 나왔나?”
여유있게 관광할 시간은 없었는데. 미스타가 자책하듯 중얼거렸기에 죠르노는 다급하게 말했다.
“아녜요. 미스타.”
정말 아녜요. 저는 미스타와 함께 있어서 무엇보다 좋아요.
“그렇게 말해주면 기쁘고.”
미스타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더니 죠르노의 팔짱을 꼈다.
“자. 그럼 이만 돌아갈까? 너도 피곤해 보이니까.”
회의는 내일부터 시작이다. 꼬박 하루가 남은 상황이다. 그러네요. 준비할 것도 있고. 죠르노는 자연스럽게 미스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선 긴장이 벌써부터 피어올랐다.
미스타가 먼저 돌아가자고 하다니. 엄청나게 상황이 좋게 굴러가고 있다…! 죠르노는 생각했다.
“참. 조직에서 잡아준 호텔이 있어요.”
이미 짐은 그쪽으로 보내놨거든요. 이미 휠맨은 그쪽에 차를 대고 쉬고 있으라 했어요. 죠르노는 어색하지 않게 말을 이었다.
“좋네. 그럼 거기로 가자. 택시를 잡을까? 아니면 기사를 부를까?”
“어느 쪽이든 좋아요.”
죠르노는 미스타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사실은 조직에서 조사한게 아니라 죠르노가 조사했고, 휠맨은 다른 층에 묵으라고 지시했지만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전에 피렌체행 기차를 탄 적 있었지. 기억나?”
“조금은요. 저는 그때 적의 스탠드에 당해서 쓰러져있었으니…….”
그때는 그러고 보니 그랬지. 야경에 취해 옛날 얘기를 중얼거리며 둘은 택시를 잡았다.
호텔은 무척 고급스러운 호텔이었다. 죠르노가 며칠 동안 열심히 조사하고 고민하며 골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미스타는 로비에서부터 들떠서는 지나가는 호텔리어에게 팁을 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더니, 방에 들어오고 나서는 창문 쪽으로 달려갔다. 체면이나 기품이라곤 하나도 없이 들뜬 모습이다.
“우와아~ 전망 하나 죽여주는데? 이런 방. 용케도 잡았네.”
창밖에 보이는 풍경은 방금 전까지 밖에서 바라본 야경을 그대로 액자에 담은 듯하다. 큰 유리창 아래를 내려다보면 사람의 머리만 점점이 되어 빽빽하게 흘러가는 모습이 보여 마치 신이라도 된 기분이다.
“네. 나름 애썼죠. 예약이 갑자기 빌리도 없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내놓으라고 협박을…….”
죠르노는 뿌듯하게 말하다가 유리창 너머로 미스타의 눈을 바라보고 말을 정정했다.
“…했단건 아니고요.”
하하. 아무리 파시오네라고 해도 그랬을라고. 미스타는 전망을 구경하더니 와인바에 있는 와인을 신나서 가져왔다. 아무리봐도 미스타는 한동안은 술을 마실 것 같다. 죠르노는 괜히 옷장을 열어보았다. 미리 정리된 죠르노의 옷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흠흠. 저기 미스타. 몇 번이나 혼자서 연습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저 먼저 샤워할까 하는데요.”
“어. 해. 여기 샤워실 하나밖에 없어?”
크기로 보면 두 개 있을 것 같은데. 묻지 말고 맘대로 써. 미스타는 아무렇지 않게 죠르노에게 답했다. 죠르노는 지적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까진 또 나지 않아서 말없이 목욕 가운을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죠르노는 뿌옇게 번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샤워실은 꽤 넓고 자잘한 마감하나하나 모두 고급럽다. 양치질 컵을 두는 선반에도 도금된 장식이 박혀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죠르노는 긴장에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죠르노에게 보이는건 거울 너머 굳은 자신의 얼굴이다.
미스타와 연애를 한지 얼마나 되었더라. 정식으로 교제해서 연인이 된 시기를 따지면 아직 일년은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 죠르노와 미스타는 연인으로서의 행동이 사귀기 전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죠르노가 보기엔 원래 하던 정도에서 입맞춤이 더해진 정도일까. …아니. 좋기는 좋은데. 불만은 아닌데. 죠르노는 괜히 자기 자신에게 변명을 했다.
미스타와 자신의 나이 차이는 그렇게까지 많이 나지 않는다. 세 살 차이라면 오히려 좁게 나는 편이다. 다만 경험의 차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의미에서 어린애 취급을 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보여주겠다. 나는 절대 어린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죠르노는 비장한 눈빛으로 뿌연 거울을 바라보았다.
목욕 가운을 정리하고 머리를 수건으로 틀며 밖에 나오자 어느새 미스타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 나왔어?”
마침 잘 됐다. 여기 와서 이거 봐봐. 죠르노. 미스타는 한손에 와인 잔을 들고 죠르노를 불렀다.
…뭔가 계획이랑 다르다. 죠르노는 조금 고민했지만, 그렇다고 붉게 변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는 미스타를 무시할 정도로 강철심장은 아니다.
“왜 그래요?”
침대는 무척 컸다. 그러고보니 예약할 때 가장 큰 사이즈로 부탁했던가. 죠르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스타의 옆에 앉았다.
“지금 기억이 영 안나서. 토스카나 배경으로 한 영화중에 유명한 작품 있지 않아?”
미스타는 리모콘을 누르면서 침대에 눕듯이 기댄 채 말했다.
“그 왜, 남녀가 피렌체에서 만나서 눈 맞았는데 약혼자가 따로 있던 그런 영화 말이야!”
그 영화에 오늘 우리가 갔던 곳 나왔던 것 같아서 갑자기 보고 싶어지지 뭐야. 엄청 유명한데…. 미국영화였던 것 같기도 하고. 미스타는 그렇게 리모콘을 잡고 중얼거렸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죠르노가 시무룩해져 답하자, 미스타가 손에 든 와인잔을 옆에 내려두고 팔을 뻗었다.
“왜 그래. 죠르노. 왜이리 풀이 죽었어?”
죠르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스타의 팔을 베고 누웠다.
“미스타. 그보다 말이죠…….”
죠르노가 미스타의 손목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미스타가 간지럽다 웃으며 죠르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이려나. 죠르노는 최대한 멋지고 근사한 얼굴로 미스타를 올려다보려 애썼다. 심장이 진정되질 않는다. 분위기도 좋고 타이밍도 좋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계획대로……….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너 내일이 회의잖아.”
준비해야하지 않아? 미스타의 질문에 죠르노의 잘 만들어진 표정은 무너졌다. 네? 지금요? 죠르노의 질문에 미스타는 죠르노의 금발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쓸어주었다.
“피곤하더라도 할 일은 해야지. 그치? 우리의 보스.”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내일이 회의인 것도 맞고. 중요한 회의인 것도 맞다. 때문에 보스인 죠르노가 준비해야하는 것도 맞는 일인데…. 왜 이리 억울한지…. 죠르노는 미스타의 손목을 잡은 채 미스타를 올려봤다.
“미스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않나요?”
“응? 너도 영화보고 싶어졌어?”
“아뇨…….”
우리는 연인끼리가 아닌가. 연인의 도시라는 곳에 와서 이보다 더 멋질 수도 없는 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죠르노는 답답해졌지만 직접 자신이 말할 수는 없었다. 미스타가 아무렇지 않게 영화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빨리 끝내고 올게요.”
“그래그래. 언제나 수고가 많아. 우리의 위대한 죠죠.”
“그만두세요.”
부끄러워 하기는. 귀엽게~ 미스타는 뭐가 좋은지 이가 다 보이게 웃으며 죠르노의 볼을 두 손으로 잡았다. 가까워진 얼굴에 죠르노가 눈을 깜빡거리기만 하는 동안, 미스타는 죠르노의 이마에 입술을 붙였다. 도장을 찍듯이 누른 입술에서 와인 향이 난다.
“우리 위대한 보스. 힘내라고~ 내가 응원하고 있으니까.”
죠르노는 실망하기야 했지만, 그래도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변한 미스타가 또 귀엽게 보여서 화가 나진 않았다.
“응원이라면 이쪽보다…….”
대신에 조금 앙갚음은 해야겠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뒷머리에 손바닥을 가져다댔다. 짧은 미스타의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온다. 죠르노는 그 머리를 우악스럽게 잡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힘을 주어 자신의 쪽으로 당기기만 했다. 미스타는 그 작은 힘에도 자신의 몸 방향을 바꾸어 주었다. 죠르노와 얼굴을 가까이 했을 땐 오히려 미스타 쪽이 먼저 눈을 감고 빙긋 웃었다.
죠르노는 아직도 뜨거운 물을 맞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몸에 열이 올랐다. 머리에 맥박이 느껴진다. 귀가 달구어진 듯 뜨겁다. 미스타의 허리를 좀 더 끌어안으려고 팔을 잡으면, 미스타가 오히려 반대로 입술을 뗐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오늘 힘들더라도 조금 더 힘내자고.”
스칼렛 오하라의 유명한 대사인데. 알고 있어? 미스타는 기분 좋게 웃었다. 아. 역시 미스타의 이 표정엔 이길 수 없다. 죠르노는 스스로 기권을 했다.
보나 노떼. 미스타. 죠르노는 담담히 말하려 했지만 미스타를 잡았던 손엔 미련이 남았는지 끝까지 그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스치려 애썼다. 야속한 미스타. 내 마음도 모르고. 죠르노는 항의 아닌 항의를 하며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 옆방으로 갔다.
“본 죠르노! 죠르노.”
죠르노가 눈을 떠보니 이미 태양이 높게 떠 있다. 그렇지만 미스타는 본 포메르지오가 아니라 굳이 본 죠르노로 인사를 했다. 본 죠르노. 죠르노도 답인사를 하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장식이 되어있는 벽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켰다.
어제 회의 준비를 하다가 너무 늦게 자버렸다. 정리할 자료라든지 숙지할 정보가 많아서 전부 외우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너무 피곤해서 죠르노는 자신이 어떻게 침대에 들어왔는지도 잘 기억이 안났다.
이렇게 멋진 곳에서 연인과 단둘이 왔는데 정작 자신은 서류와 싸우다 기절하듯이 자버리다니. 그 부분이 너무나도 분통하고 억울했다.
죠르노가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있자, 미스타는 커튼을 활짝 걷었다. 야경과는 정반대지만 뒤지지 않을 정도의 번잡하고 화려한 도시가 보였다. 그렇지만 회의가 바로 코앞이기에 그 풍경을 감상할 시간도 없다.
“가방은 대충 챙겨놓긴 했는데. 마지막으로 검토해봐.”
미스타는 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맸다. 말끔한 정장이라니. 평소에는 자주 하지 않는 복장이다.
미스타는 평소와 다르게 건홀더를 찬 후 재킷을 걸쳤다. 이곳 경찰이랑 시비 걸릴 일만 없음 되겠지. 미스타는 거울 앞에서 몇 번 옷 매무새를 점검했다.
“그렇게 입으니 당신도 이제 좀 카포 같네요.”
“언제는 아녔어?”
거울로 비추어 보이는 미스타의 얼굴이 좋았다. 죠르노는 자신도 준비를 시작했다.
결국 몇 시간에 걸친 회의는 어떻게 잘 끝났다. 잘이라고 좋게 말해도 되려나. 의문이 몇 개 있긴 해도 당초의 목표는 달성했다.
‘경고라고 해야 하나. 권고라고 해야 하나. 파시오네의 입장은 전달했다만…….’
마약을 배제하는 갱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하는 조직도 많다. 죠르노를 보며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속으론 어린애의 헛소리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마약근절은 죠르노의 가장 굽일 수 없는 목표다. 그 어떤 협박을 늘어놓아도 죠르노가 마음을 바꿀 일은 없다.
“수고 하셨습니다. 보스.”
건물 밖을 나오면서, 미스타가 죠르노에게 말을 걸었다. 죠르노는 한숨을 쉬듯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미스타에게 주었다. 쉬고 싶네요. 차량은? 죠르노의 질문에 미스타가 바로 앞을 가리켰다.
“휠 맨은 대기 시켜놓았어. 가자고.”
다행이네요. 죠르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정신이 피곤해져서 몸을 가누기조차 귀찮았다. 차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긴장이 풀어져 깊은 한숨이 나왔다.
“죠죠. 어디로 모실까요.”
“우선 호텔로 가죠. 쉬고 싶어졌으니까요.”
바로 모시겠습니다. 운전사는 차를 몰며 말했다. 죠르노의 옆자리에 앉은 미스타도 역시 지쳤는지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기왕 멋진 도시에 왔는데. 관광을 잘 하지 못해서 아쉽네.”
창밖을 보던 미스타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죠르노는 그 말을 놓칠세라 바로 답했다.
“나중에 둘이 또 따로 오죠.”
“그럴 시간은 있고?”
“없으면 만들면 되니까요.”
“헤헤. 기특한 얘기를 다 하네. 나의 보스~!”
미스타는 씩 웃으며 죠르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하가 보고 있는데 너무한 행동이 아닌지 항의하고 싶지만, 솔직하게 기분이 좋았다. 죠르노는 미스타에게 고개를 맡기듯이 몸을 떠밀었다. 엇차, 미스타가 가볍게 죠르노를 품에 안았다.
“그나저나 차가 엄청 막히네.”
“죄송합니다. 미스타 님. 정체 구간인지라…….”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관광지니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미스타는 고개를 갸웃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죠르노도 미스타를 따라서 미스타의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특별한건 보이지 않는다. 관광지답게 여러 가게가 즐비한 상가가 있고, 다양한 인종의 사람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멀리에서 클랙슨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린다.
“역시 이상한데. 저기 좀 봐봐.”
미스타가 창문에 손가락을 가리킨다. 큰 트레일러를 단 화물차가 맞은편 교차로에서 다가오고 있다.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큰 화물 트럭이다. 그렇지만 뭔가 이상하다. 이 교차로는 사거리의 교차로. 차가 많이 막히고 있기에 멀리서부터 속도를 줄여야 할 텐데……. 오히려 속도를 올리고 있다.
“젠장, 저놈 자식. 이쪽으로 돌진할 생각이야!”
사거리의 신호등은 붉은 신호다. 화물차는 멈추지 않았다.
“뭐해! 차 돌려!”
“그, 그렇지만. 미스타님.”
옆 차선은 물론이고 사방에 차가 있어 어떻게 차를 돌려 나갈 수도 없다.
“돌리라면 빨리 돌려. 몇 대 박는다고 해도 안 죽어. 중앙선 반대로 나가라고!”
미스타는 창문을 내리며 총을 뽑아 들었다. 피스톨즈, 일할 시간이다. 그리고 죠르노. 너 안전벨트 매. 그렇게 말하며 권총을 두 손으로 잡은 미스타의 눈빛은 고요하다. 트레일러 바퀴는 총 여섯 개. 그중에 한쪽 면에 있는 바퀴 여섯 개를 터트렸다. 보통의 총탄이면 두꺼운 바퀴를 저렇게 깔끔하게 관통할 순 없지만, 섹스 피스톨즈의 힘이 있어 가능했다.
“지금이야. 어서 밟아!”
미스타는 운전석의 뒤를 한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론 창문을 잡았다. 바퀴가 터진 트레일러가 휘청거리더니 옆으로 밀리기 시작한다. 화물차의 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전혀 밟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친 새끼. 미스타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와 동시에 트레일러의 헛도는 바퀴가 몇 번이나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도로에 상흔을 입힌다.
그동안 죠르노와 미스타가 탄 차는 옆차선의 차를 완전히 밀면서 다른 차선으로 빠졌다. 아예 역주행을 할 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지면이 흔들린다.
죠르노가 차 뒷유리를 보면 트레일러를 포함해 차가 완전히 옆으로 넘어졌다. 그 때문에 도로는 난리가 났다. 콰광. 콰광. 연속으로 소리가 울린다. 트레일러에 깔린 차량 몇 대가 보기 흉한 소리를 내며 부수어지고 있다. 조금만 늦었어도 이쪽도 당했을 것이다.
“죠르노! 고개 숙여!”
미스타가 죠르노의 어깨를 잡아 누르며 외쳤다. 거친 손길이지만 죠르노는 미스타의 말에 따랐다. 그와 동시에 유리가 깨지며 차 안으로 총알이 들어왔다. 이 사선(射線)대로라면 운전사의 머리에 관통하겠지만, 총알은 방향을 틀어서 차체 위를 뚫고 나갔다.
“넘버 6. 잘했어.”
미스타는 짧게 칭찬을 했다. 울리는 총 소리에 운전사는 어깨를 들썩이며 목을 숙였다.
“너무 쫄지 말라고. 이 미스타 님과 있는 한 총은 맞을 일 없을 테니까. ……아마도 말이지!”
미스타는 운전석을 한손으로 잡은 채 몸을 뒤로 완전히 돌렸다.
미스타. 적은 몇 명이나 되나요. 총구를 겨누는 미스타를 바라보며, 죠르노는 물었다.
“글쎄다. 잘 세질 못하겠어. 매복해 있는 놈들도 있을 테지만……. 우선 살아서 우리를 따라오는 놈들은 차량 네 대 분이야.”
음……. 네 대…. 미스타는 쓴 음식을 먹은 사람처럼 입을 찌푸렸다. 네 대라니. 미스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이 안 좋을 것 같은 수이다.
“안 되겠다. 다음 큰 사거리를 돌기 전에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골목으로 들어가.”
4라는 숫자는 운이 안 좋아서 싫단 말이지. 미스타는 영 찜찜한지 중얼거렸다.
지금 도로엔 다른 차가 너무 많다. 표면상으로 덮어주기 힘들 정도로 일을 벌이면 경찰이 귀찮게 굴게 뻔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죠르노가 한심 하다는 듯이 속마음을 그대로 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렇게 나와 봤자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 그만큼 파시오네를 만만하게 생각했나? 보스 혼자라면 칠 수 있다고?
“걱정 말라고. 보스.”
“걱정이 아니라 화가 났을 뿐입니다.”
미스타와 죠르노가 말하는 사이, 차가 덜컹거리며 크게 흔들렸다. 아마도 신호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방향을 바꾼 모양이다. 운전사는 긴장한 얼굴로 앞을 주시했다.
들어온 길은 큰 도로보다 좁고 사람이 적었다. 속도가 잠시 줄어서인지 다시 총탄이 차에 박혔다. 운전수가 놀라 히익 거리는 꼴사나운 비명을 흘리자, 미스타가 몸을 앞으로 해 핸들을 대신 잡았다.
“신경 쓰지 말고 액셀이나 밟아!”
“아뇨, 미스타. 잠시만요.”
죠르노가 미스타의 팔을 잡으며 미스타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도망가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차 밖으로 내리죠.”
“죠죠! 위험합니다!”
운전수가 죠르노에게 놀라 말했지만 미스타는 오히려 죠르노를 빤히 바라보았다. 미스타는 마치 미술작품을 감정하듯이 조용히 죠르노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진짜로 화났구나.”
“네. 조금은요.”
이 뒤에 당신이랑 데이트를 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죠르노의 농담 같은 진담에 미스타는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리고는 달리는 차 안에서 문을 열었다. 열린 문에 총탄이 박혔지만 미스타는 상관없이 죠르노를 돌아보았다.
“그러면 절반만 상대해줘. 내 보스.”
“절반씩이나 양보해 주다니요. 나의 오른팔께서는 너무 상냥하다니까요.”
누구부터 할까. 나부터?
가벼운 말투로 무거운 얘기를 꺼냈다.
도로엔 두꺼운 가시 덩굴이 도로를 덮었다. 죠르노 스탠드를 해지해 다시 원래의 가로등으로 돌려놓았다. 죽은 시체 몇 개가 땅에 후두둑 떨어진다. 죠르노는 어깨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스탠드 술사가 없다면 방심하지 않는 이상 언제나 일방적일 정도로 끝난다.
방금 전까지 울리던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거짓말처럼 고요하다. 죠르노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어제의 이 시간 때만 해도 그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미스타와 함께 감상했다. 보통의 연인처럼 걸으며, 평범한 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었다. 흐르는 강물이. 웃음 소리가. 그리고 서로의 발걸음이 모두 즐거웠다.
그렇지만 죠르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너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다니던 곳일까. 일상의 번잡함이 숨 쉬었을 평범한 골목이지만 지금은 피와 시체가 뒹굴고 있을 뿐이다. 주변에 있는 작은 건물 그 어디에도 창문이 열린 집은 없다. 오히려 커튼이 굳게 쳐져 있다. 마치 지금 자신들을 그 누구도 보지 않았음을 강조하듯이 말이다.
이 세상을 죠르노 죠바나는 선택했다. 빛으로의 길이 아닌, 어쩌면 어둠으로 가는 길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뒷면의 길이다. 그렇지만 죠르노는 자신이 걷는 길이 빛을 향함을 믿고 있다. 까닭 없는 맹신이 아니다. 확신이다.
당신이 나의 곁에 있는 한. 지남철을 지닌 나침반처럼 길을 헤맬리 없다. 죠르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차 문을 열었다.
“미스타. 다친 곳은 없어요?
미스타는 붉어진 손으로 콧등을 비볐는지 얼굴 정 중앙에 가로로 핏자국이 있다. 좀 봐봐요. 어디 다쳤어요? 죠르노는 차 뒷좌석에 앉은 미스타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자신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스타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냐 괜찮아. 큰 부상은 아냐.”
죠르노는 손수건으로 미스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얼굴에 튄 피는 미스타의 피가 아니다. 그렇지만 미스타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큰 상처는 아닌데. 허벅지에 총알이 좀 스쳤어.”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미스타의 얼굴을 닦아주며 고개를 내렸다. 미스타의 옷은 온통 피가 젖어 축축하다. 이래선 어디가 다쳤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우선 이쪽을 빠져나가줘. 죠르노는 운전수에게 짧은 지시를 하고 몸을 더 숙였다.
“다리를 다쳤어요? 어느 쪽이죠? 왼쪽? 아니면 둘 다 인가요?”
검은색의 정장 바지를 입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차안에 불을 켜야겠다. 죠르노가 천장 쪽으로 손을 들 때 였다. 차가 크게 덜컹거리자, 미스타가 몸을 일으켜 허리를 세워 앉았다. 다친 다리가 불편했을까. 죠르노가 생각하는 동안 미스타가 팔을 뻗었다. 그 팔은 죠르노의 얼굴 옆을 지나갔다. 미스타의 손바닥이 죠르노의 등 뒤에 있는 유리창에 닿았다. 피 묻은 손바닥의 자국이 유리창에 묻었다.
미스타. 어디 아파요? 죠르노가 물으며 미스타를 올려보면, 미스타가 다른 쪽 손으로 죠르노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죠르노에게 입을 맞추었다. 죠르노는 아직 상황을 미처 다 파악하지 못해 크게 눈을 뜬 채 깜빡였다.
맞닿은 입술이 뜨겁다. 거친 숨이 뱉어진다. 정제되지 않은 미스타의 날숨이 그대로 죠르노에게 삼켜졌다. 미스타. 죠르노가 살짝 말했지만 미스타는 오히려 고개를 돌려 방향을 바꾸며 죠르노에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엉킨 혀가 부끄럽기보다 이대로 언어 그대로 잡아먹히나 싶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죠르노가 자신의 손으로 미스타를 당기면 미스타가 목이 긁힌 동물처럼 콧소리를 냈다. 숨이 빠질 뿐 한 그 소리에 죠르노는 귀가 뜨거워졌다.
그렇게 한참을 입을 맞추고 있다 숨이 막힐 것 같을 때 미스타는 입을 뗐다. 온통 침 범벅이가 된 턱을 손등으로 쓸며 말했다.
“죠, 죠르노.”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부르고, 듣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평소와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죠르노라는 이름에 저렇게 숨을 뱉는 공간이 많았던가. 죠르노는 자신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
“죠르노. 나 큰일 났어.”
짧은 문장을 말하는데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소리가 났는지 모른다. 미스타는 목이 아니라 코를 울리며 말하고 있었다. 죠르노는 차마 어디가 어떻게 큰일이 났냐고 묻지도 못했다.
“아무래도 나 흥분한 것 같아. 못 참겠어.”
미스타는 죠르노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죽인 손으로 죠르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자비도 없이 고요했던 눈동자가 지금은 달구어져 죠르노를 바라본다. 이 까만 눈동자가 탄환이라면, 이미 나는 뚫렸다. 죠르노는 그렇게 생각했다.
“미스타. 조금만 참아요. 우선 상처부터 치료하고. 그리고 나중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다. 너무 심장이 빨리 쿵쾅거려서 뇌가 정지된 느낌이다. 죠르노는 머리에 떠다니는 생각중 아무거나 하나를 잡아 올려 말했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 둘만 있을 때 해줄게요.”
“으응? 뭘? 뭘 해준다는 뜻이야~?”
미스타는 죠르노의 목에 얼굴을 대더니 죠르노의 품에서 낮게 웃었다. 우리 보스 의외로 응큼하구나. 미스타는 평소보다 배로 혀를 굴리며 말한다.
우선 죠르노는 미스타의 상처를 치료하자 싶어, 방금 전 그의 얼굴을 닦아준 손수건을 그의 환부에 가져다 댔다. 다친 부위는 무릎 위의 부분인데 피에 젖은 바지는 상처까지 걷어 올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미스타의 벨트에 손을 가져대자 미스타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다시 죠르노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서 해도 괜찮은데.”
아무 걱정도 없어 보이는 밝은 미소였지만, 달구어진 눈동자가 손을 대면 녹아버릴 것 같이 느껴졌다.
“……우선 조용히 해요.”
휠 맨이 당황하잖아요. 죠르노는 뒷목까지 붉어져서는 애써 태연히 답했다. 정장 바지를 내리자 경미한 부상처럼 말한 미스타의 표현과는 달리 살점이 꽤 깊게 파여 있다. 이 부상으로 아픈 기색도 없었다니. 죠르노는 입안이 쓴 한숨을 쉬며 환부에 손수건을 눌렀다.
아, 아흣, 죠르노. 아파. 미스타는 죠르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평소처럼 반사적으로 내뱉는 신음과는 좀 다르다. 죠르노는 골드 익스피리언스의 능력을 사용하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는 아파도 잘 참고 있었으면서. 왜 제가 고쳐줄 때만 그렇게 아파해요?”
“그……. 그건….”
미스타는 무언가 억울하다는 듯 표정을 찌푸리더니 죠르노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올렸다.
“네가 만져주고 있으면 기분이 좋거든.”
응? 무슨 뜻인지 알지. 넌 머리 좋잖아. 미스타는 장난을 계획한 사람처럼 웃으며 죠르노를 당겼다. 죠르노는 넘어가주는 척 미스타의 위에 쓰러지듯 자세를 잡았다.
“그러니까 저는 차 안은 싫다니까요.”
왜? 미스타의 질문에 죠르노는 운전석 쪽을 곁눈질했다. 미스타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것 같다.
“저도 나름대로 낭만이란게 존재하거든요.”
죠르노의 성격이 아무리 무다한 일은 싫어한다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깔끔하고 아름다운 것을 선호한다. 그것도 연인과의 일에 연관이 되었다면 나중에 추억할 때도 아름답게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면 좋다고 생각했다.
죠르노는 사람과의 사랑이 처음이다. 이렇게 깊은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생소하다. 그렇기에 이 마음의 높이를 조심스러우면서도 견고하게 올려가고 싶었다.
“애초에 미스타.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쪽은 당신이 아녔나요?”
이 사람은 어디서 어떻게 버튼이 눌렸기에 이리 태도가 달라지나. 죠르노는 새삼 그게 궁금했다.
죠르노는 사실 미스타에게 맞춰서 계획을 세웠다. 사랑의 세레나데를 노래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아름다운 야경을 등지고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 나오는 작품을 참고했다. 미스타의 취향을 생각하면 그 역시 이런 과하게 로맨틱한 상황을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상황뿐인 어제는 어땠는가. 그다지 동해하지 않았다. 마치 평소 일상의 연장선처럼 대했으면서. 왜 갑자기. 이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타는지 죠르노는 섭섭함보다 궁금함이 앞섰다.
“응? 그런데. 왜?”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어제 최선을 다해 나름의……. 무드를 잡고 있었단 말입니다.”
“어제? ……아하.”
미스타는 잠시 어제를 떠올리더니 크게 웃었다.
“분명히 멋지기야 했지. 멋진 야경에. 근사한 호텔. 그리고 아름다운 나의 사랑.”
미스타는 죠르노의 뺨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헤헤. 최고의 밤을 선물해주려 했었어? 귀여워라~”
“제 나름 노력은 했다 이거죠. 그런데………. 미스타는 별로 취향이 아녔어요?”
“취향이기야 했지. 그렇지만….”
미스타는 자신이 좋아하는 수많은 영화를 빗대어 말했다. 두 손을 맞잡은 연인이 추는 탱고. 아름다운 샹들리에 아래에서의 스텝. 매혹적인 드레스와 그에 잘 어울리는 꽃다발. 분명히 그런 장면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어제의 그 밤은 너무 멋졌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아서 기쁘고 좋지만 그 자체가 동화 같다고 해야 할까…. 남의 이야기 같았던거야.”
죠르노는 그 말에 미스타의 뜻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죠르노는 착각을 했다. 미스타가 아름다운 배우의 사랑고백에 가슴이 들뜨는 것은 그것을 듣는 청자가 미스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미스타가 보는 눈 앞의 죠르노는 영화 속의 배우보다 잘생기고 멋지다. 죠르노는 미스타가 좋아하는 모니카 벨루치처럼 아름다우면서, 그의 영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까지 닮았다. 상반된 매력을 가진 완벽한 연인이 만약 자신에게 꽃다발을 준다고 하면 미스타는 그 장면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네마로 기억할 것이다. 즉,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처럼 말이다.
“제 판단의 실수네요.”
죠르노가 준비한 모든 것을 미스타는 좋아했다. 그렇지만 미스타는 그 선물을 아름다운 디오라마처럼 감상했다. 자신이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완벽한. 그 자체로 기분이 좋은 시간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라.”
“지금은 우리의 시간이기 때문인가요?”
어려운 표현은 잘 모르겠지만. 비슷한가? 미스타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우리가 밟고 있는 곳은 이곳이다. 아름답기보다 처절하며, 행복하기보다 위태롭다.
생명의 위험에서 상대를 죽이고, 숨을 거두는 적을 내려다볼 때 미스타는 비로소 실감했다. 지금. 우리들은 이곳에 살아있다.
죠르노는 그런 미스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이 체험하는 사실적 경험을 더 좋아한다. 우리 둘이 존재하는 세상은 다른 어떤 풍경도 아니라 지금 여기이다. 미스타는 그 사실에 지나치게 매료되어, 흥분한 것이다.
“정말이지. 미스타 당신…….”
미스타가 죠르노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죠르노는 대답대신에 그의 몸을 올라타며 키스를 해주었다.
로맨스 영화의 키스신 치고는 지나치게 미학적이지 않지만 어쩌겠어요. 당신 같은 사람은 그 어떤 영화 어디에도 없겠죠.
피투성이의 얼굴로 애교를 부리며, 상처입은 몸으로 사랑을 갈구하는 나의 연인. 죠르노의 표현에 미스타의 웃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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