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리사] 헌화

 시저 안토니오 체펠리는 스승에게 평생 세 번의 꽃을 선물했다.

 시저 안토니오 체펠리는 스승에게 평생 세 번의 꽃을 선물했다.

 그가 처음 꽃을 가져온 날은 언제였더라. 엘리자베스 죠스타—리사리사라는 이름은 잠깐 제쳐 두어도 좋을 테다—는 눈을 감았다. 5년 전의 봄이 분명했다. 에어 서플레이나의 서늘한 공기에 장미 향이 실려 왔다. 싱그러운 정취는커녕, 가난한 젊은이가 손을 떨며 내밀었을 몇 푼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저, 내게 이것을 주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태연하게 이런 말을 뱉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난 죠지가 주는 꽃을 좋아했다. 그가 어릴 적에 꺾어다 준 들꽃, 청혼할 때 안겨주던 장미, 아들이 잠든 요람 곁에 두던 수선화까지. 절제를 미덕으로 삼으며 파문을 익힌 만큼, 꽃에 실어놓은 감정을 읽기란 아주 쉬웠다. 나 자신이 고요해지면 상대의 고동이 느껴지는 법이다. 그래서 제자의 의도가 빤히 보였다. 저 눈빛에 아득한 존경이 흐르는가. 그러하다. 그렇다고 저 경애에 불순물이 없는가. 그럴 리가. 그곳에는 명백한 연정이 있었다. 그가 베네치아 시가지에서 소녀들에게 다가설 때의 만용과 과감함은 없다. 스승은 제자의 눈에서 존경보다 두려움에 주목했다. 그는 떨고 있었다. 눈앞의 소녀를 제 사랑으로 구원할 때와 달랐다. 양 뺨과 귀가 붉게 물든 건 말할 것도 없고, 스승과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시선이 이리저리 튄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이상, 무의미한 행동일 텐데도 말이다.


“일단 고마워요. 받아두도록 하죠. 제자에게 꽃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더는 묻지 않는 게 좋겠다. 꽃다발을 받아든 그녀는 가벼이 미소 지었다. 선물을 받았다고 활짝 웃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적절한 기쁨에 의한, 적절한 감사 인사는 될 테다.


 두 번째 꽃은 튤립이었던가. 인제 와서 꽃의 이름과 모양을 논하는 건 의미가 없으리라. 때는 3년 전 여름이었다. 열여섯의 부끄러움과 무식이 한껏 사라지고, 능수능란함이 무르익어갈 때였다. 제자 또래의 하녀나, 제 밑에서 수련하던 사범들이 갖은 소문을 옮겼다. 그날은 항구 맞은편 찻집 종업원에게 뺨을 맞았더란다. 일주일 전에는 그 아가씨와 입을 맞추었다고 했는데. 제자는 스승이 제 소문을 들었으리라 짐작은 하면서도 꽃다발을 들었다. 저 확신에 찬 구애와 떨림. 그의 예상대로 스승은 제 참된 가치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떨쳐내지 못한 아집 또한 알아차렸다. 숨김없이 그대로 연정을 속삭이지 못해, 끝내 꽃으로만 피어난 결단.



“... 어머니처럼 존경하는 선생님께, 바칩니다.”


 처세술도 늘었다. 젊음과 열정으로 치장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속내는 들킨 지 오래일지라도, 그럴싸한 명분이 있다. 결코, 당신의 마음을 넘보지 않겠다는 태도. 존중이 있고 그 아래 미련이 있다. 미련에는 불씨가 남아 손대는 순간 다시 타오를 것만 같다. 찬물을 끼얹다간 모든 것이 쓸려나갈 것이기에 스승은 손을 올려 불씨를 짓눌렀다. 다정하고 단호한 대처였다. 그녀는 한치의 떨림 없이 왼손으로 선글라스를 내렸다. 검은 렌즈를 걷어낸 뒤에 바라보는 초록 눈. ‘질투는 초록 눈의 괴물이다.’ 옛 극작가가 이렇게 노래했던가. 어린 제자는 무엇을 질투하고 있는가. 그는 운명을 질투하고 있었다. 스승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는 운명의 잔혹함과 그 운명에 몸 바쳐야 하는 제 사명 때문에. 초록색 삿된 의지로 일어서서 작은 부정에 매달리는 영혼. 값싼 연민을 느끼지는 않는다. 스승이라면 무릇 그래야 하는 법이다.


“고마워요. 수지에게 꽃병을 사 오게 해야겠어요.”


 그리고 이런 심정을 제쳐놓아야 하는 것 또한 스승의 책무다.


 마지막 꽃을 가져온 날에는 비가 내렸다. 에시디시가 들이닥친 날로부터 사흘 전이었다. 시저는 외투로 꽃다발을 감싸며, 에어 서플레이나 항구에서 뛰어왔다. 그가 용케 미끄러지지 않고 달려올 수 있는 건 역시 파문 덕이라고, 수지가 감탄했다. 죠셉은 그 잘난 꼴이 망가졌다며 마스크를 잊고 웃다가 캑캑거렸다. 그때 시저의 시선은 위로 향했다. 속눈썹 사이에 빗방울이 고여, 눈을 뜨기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비구름이 아닌, 테라스에 나온 스승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늘 이 시간에 나와서 차를 즐기던 그녀가, 눈길 한번 주길 바랐으리라. 그는 곧바로 성의 계단을 올랐다. 제 방에서 젖은 옷을 재빠르게 갈아입고,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어낸 뒤에 다시 꽃다발을 들었을 테다. 그의 품에 안겨있던 루드베키아—앙증맞은 해바라기를 닮았다—꽃다발은 무사했다. 짓눌리고 젖은 곳 하나 없었다.


“시저.”


“네, 선생님.”


“... 잘 받을게요. 앞으로도 정진하길 바라요.”


 그녀는 한동안 신경 쓰지 않던 꽃병을 꺼냈다. 이번에도 꽂아두어 그의 성의를 기억하려 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작은 잡념이 방해했다. 해 뜨지 않은 날에 찾아온 작은 해바라기라니. 제자가 해바라기를 좋아함은 이미 알고 있었다. 파문은 태양을 좇는 힘. 그러니 굳건한 맹목에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꽃을 가만 바라보던 그녀는 제자에게 다시 눈길을 주었다. 저 완전한 결의를 보아라. 가장 아름답게 피어올라, 후회 없이 꺾일 준비된 꽃이다. 꺾인 꽃에 물을 줘가며 부질없는 삶을 주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녀는 꽃다발을 벽에 매달았다. 숙명을 마치고 매달린 성자처럼, 우상이 되어 기억에 남도록.


 젊은 제자가 돌무더기 아래 성자처럼 죽고, 그의 벗이자 제 아들이 울부짖던 순간이 아직도 스승의 눈에 선하다. 이름을 되찾은 엘리자베스는 또다시 담배를 거꾸로 들었다. 그녀를 뒤흔드는 일이 사라진 만큼, 오랜만에 되살아난 버릇이다. 아무도 그녀의 실수를 목격하지 않은—사실 주변인들이 그녀를 배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것을 확인한 뒤, 담배를 돌려서 물었다. 불길을 따라 머릿속에 향이 가득 차오른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아닌 리사리사가 되살아난다. 그녀는 인제야 실감한다. 시저가 리사리사에게 바친 꽃은 곧 죽은 엘리자베스에게 헌화였다는 사실을. 젊은 연정과 존경은 때때로 영혼의 본질에 스며, 위로와 향수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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