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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억] 영혼의 형태

스탠드는 영혼의 발현. 그렇다면,

* 20년 죠죠뎐:부죠자죠에 냈던 배포본을 웹공개합니다(220828 포스타입에 업로드했던 것을 이쪽으로 옮겨옴)

* 이 글은 5부 스핀오프 수치심 없는 퍼플 헤이즈에 나온 스탠드 성향 해석에 대한 날조로 출발했으며,,,

* 너무 옛날 글이라 조오오오금 부끄러워졌지만, 그래도 글 자체는 좋아하므로. 여러분, 더 북도 읽어주세요….


매앰―, 매앰―.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드문드문해진 매미 울음소리가 아스라히 먼 곳에서 들렸다. 멀리, 너르게 퍼지다가 허공에서 산산히 조각나는 울음소리를 턱을 괸 채 듣고 있던 죠스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있잖냐, 오쿠야스. 넌 뭘 그렇게 지우고 싶었던 거야?”

“엉? 쌩뚱맞게 뭔 소리야, 죠스케.”

하겐다즈 딸기 컵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퍼먹고 있던 오쿠야스는 죠스케의 뜬금 없는 질문에 눈을 껌벅였다. 무슨 의미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본인 말로도 머리 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들어찼다. 그 얼굴을 보고서 죠스케는 아차 싶어 황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이미 말은 엎질러진 뒤였다. 며칠 동안 맘속을 맴돌고 있던, 저보다 한참 연상인 조카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 스탠드는 영혼의 발현이지.

그랬다. 스탠드는 영혼의 발현. 며칠 전에 스피드웨건 재단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죠타로 씨가 전해주었다. 본체의 성향이 스탠드 발현에 특정한 패턴을 부여한다는 것 같다는 것. 백 퍼센트로 결론 지으려면 아직 자료가 모자라지만 현 시점에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군체형 스탠드술사는 영혼에 뭔가 결함이 있는 경우라는 것.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만난 스탠드술사의 면면을 떠올리자면 영혼의 형태, 그러니까 그 사람의 정신을 지탱하는 소원이나 신념 따위를 구현한 것이 스탠드라는 설명은 충분히 납득이 갔다.

예를 들어, 자신의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무엇이든 망가진 것을 원래대로 고치는 능력. 이는 틀림없이 어렸을 때, 누군가의 빈자리를 보며 살아간 탓이었을 테다. 누군가가 없다는 공백을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채워가며 살아가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단단한 등. 그 삶의 모양에 더해, 열병에 끓어 정신이 혼미하던 와중에 자책하며 울던 엄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뻗은 의식의 발현이 크레이지 다이아몬드가 치유하고 되돌리는 힘을 가지게 된 원동력일 것이라고.

죠타로 씨도 환경과 의식이 스탠드의 성질을 결정할 것이라는 제 추측을 동의하며, 자기 경험도 조금 풀어 놓았다. 결정적인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스탠드가 막 발현한 즈음에는 그 성질이 상당히 유동적인 것 같다고.

― 어쩌면 내 스타 플라티나가 원거리 형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뜻이지. 그랬다면, 아니...만약이라는 건 없지만서도 말야.

혈기 넘치던 시절, 구치소에서의 일을 어렴풋하게 흘리던 죠타로가 물안개처럼 흐린 미소를 지었더랬다.

 

그날부터 죠스케는 제가 아는 스탠드술사들과 그 능력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액트 1~3는 확실히 코이치가 맞다. 속으로 담아둔 말이 한가득이고, 효과음처럼 스포트라이트 밖에 서기를 기꺼워하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강한 중력으로 굳건하게 버텨설 수 있는 강한 마음의 소유자니까. 러브 디럭스의 유카코는 또 어떤가. 머리카락은 인간의 신체 가운데에서도 가장 질기고 강한 곳이다. 단위면적당 버틸 수 있는 힘이 강철의 절반급에 이르는 강력함은 그녀의 영혼을 주장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남의 이야기를 읽고 재구성할 수 있는, 괴이쩍은 능력의 헤븐즈 도어도 역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키시베 로한의 스탠드였다. 토니오에 이르면 말할 것도 없었다. 쉐프로서의 목표와 자긍심을 이루는 수단으로 펄 잼은 딱 맞다고 밖엔 할 수 없지 않은가. 음, 생각해보니 이 사람도 군체형 스탠드술사였다. 하기사 첫만남을 생각하면 독특한 사람이긴 했다. 그 외에 적으로 만났던 다른 스탠드술사들까지 떠올려보라면 결국 그 주인에 그 스탠드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다면 더 핸드, 니지무라 오쿠야스의 스탠드는 어떤가.

“난 머리가 나쁘니까 말이지―. 어려운 고민은 제껴놓고 몸부터 움직여보겠다 이거야~”

“죠-스케! 여름 시즌 파르페 나왔다는데 같이 먹으러 가자!”

“키야, 역시 여기 젤라또가 최고라니깐?? 아저씨 써비스 감사!!”

평소의 오쿠야스를 떠올려보면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도 되돌릴 수 없게 뭐든지 지워버리는 더 핸드가 정말 그의 영혼인지 의문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죠스케는 떠듬떠듬 설명을 시작했다.

“스탠드는 자기 영혼의 형태라고, 죠타로 씨가.”

“읭, 갑자기 어려운 소릴 하구 그래. 그치만 죠타로 씨 말이니까 맞겠지? 으음, 스탠드가 영혼이라―, 죠스케 너도 코이치도 딱이네. 로한 선생님도 토니오 씨도 그렇구, 또―.”

오쿠야스는 처음에는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꼽아보고서 그 의미를 깨달은 듯, 험악한 인상이 다 가려지도록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네!! 우와, 신기하다!”

정작 듣고 싶은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너 자신의 스탠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아주 직구를 던졌어야 했던 걸지도 몰랐다.

“그래서 물어본 거잖아. 내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로도 네 더 핸드가 지운 건 복구할 수 없으니까. 더 핸드, 너인 게 맞는 거 같아?”

“으음, 그런 복잡한 건 역시 잘 모르겠단 말이지―. 혹시 나, 쓰레기 버리는 게 그렇게 귀찮았었나?”

“윽, 야, 사람이 진지하게 묻고 있는데―”

겨우 그런 일상적인 이유로 더 핸드가 발현했을 리가 없었다. 무언가 더 강력한 이유가 있을 테다. 고열로 사경을 헤매던 아이가 늘 바랐던, 뭐든 고치고 싶었던 열망처럼.

오쿠야스의 염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그토록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없애고 싶었던 걸까. 크레이지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낸 제 소망보다 훨씬 강력했을 그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기에.

아이스크림 스푼을 잘근잘근 씹으며 골머리 앓는 소리를 내던 오쿠야스가 문득 탄성을 울렸다.

“아, 죠타로 씨가 스탠드는 그 상황에 반응해서 만들어진다고도 했지? 그럼 형이 날 화살로 쏜 그 밤 때문일지도?”

여기서 예상치 못하게 니지무라 케이쵸가 언급되었다. 아니, 사실 잘 생각해보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니지무라 가의 사정은 오쿠야스와 처음 만난 그날에 전부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니.

니지무라 형제는 화살에 의해 스탠드술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한 번, 죽음을 경험한 셈이다. 코이치가 스탠드술사로 각성했던 계기를 똑똑하게 기억하는 죠스케인지라, 아무래도 괜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싶어 아연실색했다. 그렇지만 그의 걱정과 달리 오쿠야스는 그런 것 따윈 전혀 의식에 없이, 그저 형을 추억하는 건 간만이구나 하는 태도로 킥킥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릴 때 말야~ 나 밤잠 많았거든? 뭐 아버지가 때리면 그땐 깼지만. 어쨌든 갑자기 한밤중인데 눈이 확 떠지는 거 있지? 그러면 눈앞에 형이 딱 있는 거야. 화살 들고서. 처음엔 꿈인줄 알았는데, 형이 말야 ‘오쿠야스, 어떤 결과가 나와도 난 사과하지 않을 거다, 이왕이면 여기서 눈을 감는 게 너를 위해 나을 테지만.’ 이라고 하면서 가슴을 팍 찔렀는데... 눈을 뜨니까 아침인 거 있지―.”

거실에 나가니까 배드 컴퍼니가 쫙 깔려있어서 놀랐다구~. 어렸을 때 형이 레고 좋아하긴 했지만, 그거 치워버린지 오래됐으니까. 헤헤.

아니, 웃을 이야기인가. 죠스케는 지금 이 이야기의 어디에 웃긴 데가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한참동안 그날의 아침정경을 떠올리며 키들거리던 오쿠야스는 돌연 흐린하늘 같은 표정을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이지, 형은 내가 스탠드술사가 되지 않는다면 죽어버릴 테니까, 그래서 밤에 찌른 거 같아. 만약 죽더라도 자다가 죽는 게 나을 거라고. 응, 그러니까 난 잠결에 이런 악몽 같은 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지도?”

그게 현실이든 형이든 아버지든, 아니면 나든 그냥 다 지워졌으면―하고 바랐을지도 몰라. 난 단순하니까 어려운 문제 같은 건,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것 밖엔 못하거든.

이번에야말로 죠스케의 눈가가 왈칵 젖어들었다. 애써 버티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린 날의 오쿠야스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현실이라는 이름의 악몽은 고치지 못한다고, 거기서 도망칠 수도 없다고 무의식중에 결론짓고 그냥 전부 지워버리고 싶어한 거다. 그 증거가 더 핸드였다. 바보같이 웃고, 시시덕한 이야기를 떠들고, 단순한 잣대로 살아가더라도 니지무라 오쿠야스의 영혼이 가진 형태는 결국―.

“죠, 죠스케―? 왜 울어?? 나 뭔가 잘못했어?”

“―아냐, 오쿠야스. 넌 잘못없어. 그냥, 그냥―내가 남은 인생은 절대로 행복하게 해줄게. 그런 생각따위는 다시는 안 하게 할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손을 휘젓던 오쿠야스가 죠스케의 열렬한 고백에 덜그럭 멈췄다가, 이를 드러내며 희게 웃었다.

“그런 생각은 말야~ 죠스케 덕분에 없어진지 오래라구. 어라, 근데 없애는 스탠드는 내 더 핸드잖아. 그럼 고쳤다고 해야 맞나, 죠스케?”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야 고치는 거는 네 전문이잖아. 여튼, 죠타로 씨가 너보고 한 말, 완전 딱 맞아. 내가 본 어른들 중에서 젤루 똑똑한 사람이라니깐?”

“엥?”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스탠드라고. 정말 딱이라구.”

울음을 마중물 삼아 벅차오르는 감정이 심장에서 뿜어져 혈관을 통해 온몸으로 넘쳐흘렀다. 연민, 애정, 안도, 뿌듯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엮여 다이아몬드처럼 굳혀진 결의.

그 보석이 피워낸 찬란한 빛무리를 차마 언어로 내어놓을 수가 없어서 죠스케는 오쿠야스를 무작정 꽉, 제 안에서 끓어오른 애정처럼 끌어안았다.

‘니지무라 케이쵸 씨, 당신하곤 끝이 안 좋았지만 오쿠야스는 내가 절대로 퍼펙트하게 책임질테니까요. 동생 분, 제게 주십쇼.’

형님의 다음 월기일에는 성묘를 같이 가도 되는지 물어봐야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죠스케는 양팔에 들어찬 삶의 온기를 만끽했다.

빈 자리를 공백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 공백이 단순히 부서진 것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는 결코 부서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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