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JO (죠르미스)

맹세의 무게

죠르노x미스타/죠죠의 기묘한 모험 5부

Red camel by 스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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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작성

죠죠 5부 엔딩 이후의 설정입니다.

부상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죠르노 죠바나는 무다(*불필요한)한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말할 때 두 번 이상 말하는 것도 싫어하며 동기가 없는 일을 무의미하게 행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런 죠르노가 생각하지 않은 일을 충동적으로 해버렸다. 죠르노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몰라 당황했다. 그건 거의 반사적 행동에 가까웠다.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행동. 뇌가 아니라 척수를 중추로 해서 자극에 의한 무조건반사에 가까운……….

 “……….” 

죠르노는 긴 생각을 접었다. 언제나 사고의 회전이 빠르고 이성적인 침착함이 그의 장점이지만, 지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죠르노는 손 위에 올려 둔 작은 상자를 바라보았다. 정사각형의 모양의 상자는 도톰하게 두께가 있어 두 손을 포개면 숨겨지기야 하겠지만 완벽하게 손안에 쥐기엔 힘든 크기였다. 상자 자체가 아름답고 고풍스러웠다. 그 위엔 이름만 대도 모두가 알 고급 브랜드의 문양이 자수로 새겨져있다. 죠르노는 그 작은 상자 안에 자신의 모든 고민을 쏟아 넣을 기세로 한숨을 쉬었다.

 

반지를 사버렸다.

정말로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일의 발단을 굳이 처음부터 골라보자면 며칠전의 사건 정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죠르노와 미스타는 오래간만에 쉬는 날이 겹쳤다. 갱이 출퇴근 시간이 있을리가 없다. 그러다보니 둘은 맞물리지 않는 일상을 보냈다.

그런 바쁜 일정 속에 정말로 우연히 비슷하게 일정이 비었다. 영화가 보고 싶다며 미스타는 본인의 집으로 가자고 했다. 옛날에 살던 아파트는 옆방에서 치는 기타소리도 다 들렸는데, 이 집은 내가 아무리 크게 영화나 노래를 들어도 아무도 모를거야. 미스타는 와인에 취했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낄낄거리며 떠들었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집에 들어가고 나서 왜 미스타가 집에서 영화를 보자고 했는지 이해했다. 푹신한 쇼파 앞에 큰 스피커가 여러 방향으로 놓여있다. 꽤나 그럴싸한 모습이다. 이런 걸 홈 씨어터라고 하던가요? 미국에서 만든 단어를 입에 담으며 죠르노는 먼저 쇼파에 앉았다. 응. 맞아. 나중에는 포커 테이블도 살려고. 미스타는 냉장고에서 새로운 술과 음식을 꺼내왔다. 죠르노도 음료수를 들고 가볍게 건배를 하며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 상영되는 영화는 미스타가 몇 번이나 좋아한다고 했던 영화다. ‘귀여운 여인’. 미스타는 이 영화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대사나 노래를 그대로 따라 읊기 시작했다.

뒷내용이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지만 죠르노 역시 그 영화를 즐겁게 보았다. 그 영화의 내용이 즐거웠기보다, 그 영화를 감상하는 미스타의 반응이 좋았다. 미스타는 화면에서 나오는 기쁨에 따라 웃고, 분노에 따라 화내다가, 영화 속 연인의 사연에 안타까워했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 내용일 텐데도 둘의 이야기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나, 이 프러포즈 장면이 봐도 봐도 좋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이잖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남자가 높은 철제계단을 올라 사랑을 전하는 씬. 정말 멋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각오를 하고 공포를 이겨내는 부분이 말이야.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턱을 괴고 답했다. 미스타는 매번 취향이 정말로 로맨티시스트 같아요. 죠르노의 답에 미스타는 화면을 가리켰다. 봐봐. 죠르노. 이 부분이야. 미스타는 붉은 장미를 들고 고백하는 리차드 기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 흔하게 나오는 구도와 장면이라 사실 죠르노에겐 그다지 감흥이 없지만 그냥 멋지다고 답해주었다. 공주님을 구하려 한 왕자님의 뒷얘기를 알아? 미스타는 이미 자신이 리차드 기어가 되어서 대사를 따라하고 있다.

“미스타. 당신은 리차드 기어 쪽 보다는….”

죠르노는 무언가 생각나서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 해봤자 별로 의미도 없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무다한 일이다.

그렇지만 미스타는 그 죠르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응? 무슨 말 했어? 그 동안 영화는 줄리아 로버츠의 대사로 흘러갔다.

“미스타. 혹시 ‘라 트라비아타’는 본적 있어요?”

죠르노는 말을 돌렸다. 미스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보러 간 영화이지? 그건 알지만 오페라는 일부러 보러 다니지 않으니까.”

“그러면 나중에 저랑 같이 보러 갈래요?”

이 영화에 나오는 오페라 극장보다 더 멋진 곳으로 가요. 죠르노는 미스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좋지. 솔직히 샌프라시스코 따위 밀라노에 비할쏘냐~ 더 화려하고 큰 곳으로 가자고.”

그러고보니 나 라 스칼라 극장 앞에서 사진 찍은 적은 있는데. 들어간 적은 없어. 언제 둘이 함께 가자. 미스타는 벌써부터 여행계획을 세우며 신나했다.

“그런 극장에 가려면 입을 옷부터 정해야겠네. 정장에 구두를 신고가야 되잖아. 허름하게 입고 갔다간 표가 있어도 나가라고 할걸?”

가방은 뭐가 좋으려나. 미스타는 죠르노가 잡아 끈 팔을 풀지 않고 오히려 몸을 기댔다. 죠르노가 미스타의 팔을 잡을까 고민하는 사이. 미스타가 먼저 죠르노의 손에 깍지를 끼듯 손가락을 잡았다.

“아아~ 기대된다.”

“오페라는 공연 시간이 길어서 지루할지도 몰라요.”

“그럴 리가. 너랑 보면 뭐든지 재미 있을걸.”

미스타는 어금니를 문채 씩 웃었다. 죠르노도 그 얼굴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영화 속의 주인공도 이랬을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를 보고 있는 여인에게 반하듯이. 영화를 보면서 눈을 반짝이는 당신의 옆모습에 나도 눈을 빼앗겼다. 죠르노는 그 얘기를 입 밖에 내지 않고 미스타의 손을 맞잡았다.

“참, ‘라 트라비아타’는 보통 일본에선 춘희(椿姫)라는 제목도 써요.”

뜻은 동백꽃이란 단어와 공주라는 단어라고 해야 하나. 아, 이럴 땐 공주라는 의미 보다는 여성의 이름에 붙는 단어로서의 의미가 강해요. 죠르노는 이번에야말로 그의 말버릇을 빌리면 무다한 말을 했다. 핵심이 없이 빙빙 돌아가는 잡담에도 미스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헤에…. 그 얘기. 새드 엔딩이야?”

“네. 원작 소설대로니까요.”

그러면 나 오페라 보다가 울지도 몰라. 난 해피엔딩이 좋으니까. 알고 있어? 나의 럭키보이. 미스타는 죠르노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죠르노는 자신보다 큰 미스타의 무게마저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영화 속 연인의 고백은 끝나 있었다.

 

 

사람은 약속의 증표를 원한다. 맹세와 서약의 증거를 세운다. 하물며 감정에 대해서도 증좌를 요구한다. 감정의 맹세를 형태로 잡은 것이 결혼이라는 계약적 관습으로 이어진다고 죠르노는 생각했다.

반지를 사게 된 이유는 아마도 이런 이유다. 둘이 함께 본 그 영화는 해피엔딩이었다. 뭐라고 말로 정의하기도 힘든 이유지만, 죠르노는 그 반지를 보는 순간 반드시 사야겠다는 충동이 생겼다. 죠르노는 그 영화를 보는 미스타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이다.

영화를 감상하던 미스타의 옆모습을 머리에서 그려본다. 앞을 응시하는 까만 눈동자. 남성다운 선이 굵은 코와 턱의 모습. 그리고 그의 얼굴 전체를 떠 올린다. 상투적 로맨스 영화를 보며 미스타는 무슨 생각을 할까. 죠르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반지를 골랐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전해주느냐 하는 문제다.

그 미스타이다. 사람을 총으로 쏠 땐 연초(煙硝)의 그슬림보다 더 어두운 눈빛을 하면서, 다른 이의 사랑 이야기를 들을 땐 반짝이는 눈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미스타에게 아무렇게나 마음을 건넬 수는 없다. 그렇다고 죠르노가 철제 계단을 올라가 붉은 장미꽃을 들고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죠르노는 몇 번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무엇보다도……. 미스타가 반지를 낄 것 같진 않은데.”

미스타의 성격은 귀찮은걸 싫어하는 단순한 성격이다. 멋을 부리기는 좋아하지만 거추장스러운 장신구는 꺼리곤 했다. 가방을 들기도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하물며 반지라니. 팔찌도. 목걸이도 아니고 반지라니. 죠르노는 자신의 선택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귀도 미스타는 총잡이다. 리볼버를 쏘기 때문일까. 미스타가 반지를 착용한 모습은 본적 없다. 평소에는 손목시계도 잘 차지 않는 사람인데. 혹시 괜한 선물이면 어쩌지. 죠르노는 반지를 보며 약간의 후회와 불안을 가졌다.

“……그래도 좋아해주지 않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준 선물인데. 죠르노는 그렇게 투정하듯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준 선물이니 기뻐해주지 않을까 하는 추측과, 그렇지만 역시 필요 없는 물건이 아닐까 하는 자책이 손을 잡고 빙빙 돈다.

영화 속에서 붉은 루비 목걸이를 본 줄리아 로버츠는 꽤 기뻐하곤 했다. 그 목걸이가 보기 힘든 값비싼 물건이라서?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래도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기회가 온다면.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미스타가 좋아할만한 프러포즈를 해보자. 그의 취향을 생각하면 낯부끄러울 정도로 화려해야 할까. 나에겐 좀 부끄럽지만 미스타가 좋아한다면 유치한대도 따라줄 수 있다. 죠르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반지를 열어보았다.

미스타의 성격이라면 죠르노가 주는 단순한 선물이면 무조건 좋아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이 선물도 좋아해줄까.

죠르노에겐 서약과 맹세를 둥그렇게 이어 붙여 형태를 만든 이 선물의 무게가 마음에 걸린다.

 

 

이제 막 해가 저물기 시작한 거리의 풍경이 좋다. 귀를 스치는 바람마저 사랑스럽다.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은 이토록 기쁘다. 죠르노는 미스타와 차를 주차해놓고 조금 걷자 말했다. 이 시간이 아까웠던 건 미스타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시원스레 그러자 말해주었다. 둘은 사람이 많은 거리를 걸었다.

“웬일이야. 네가 먼저 영화를 예매하고.”

“보고 싶은 영화가 이번에 개봉해서요.”

그래도 굳이 예매까지 하다니. 어차피 아무 때나 가서 자리를 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 미스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기에 죠르노는 미소로 답했다. 이 영화는 이번에 개봉한 헐리웃의 로맨틱 코메디 장르로, 원래 죠르노라면 볼일이 거의 없는 작품이다. 어디까지나 미스타의 취향인 영화이다. 그 사실을 미스타도 당연히 알아차렸겠지. 죠르노는 생각했다.

“영화 다 보고 나오면 조금 늦었지만 우리 함께 저녁 먹을래요?”

“좋기야한데…. 뭔가 이것저것 준비한 게 많은걸. 나의 보스. 바쁠 텐데 정말로 무슨 일 있어?”

미스타는 입 꼬리를 올려 웃었다. 검은 눈동자가 죠르노를 내려다본다. 죠르노의 속마음을 뚫어보려는 그 표정에 모르는 척 잘 만들어진 아름다운 미소로 답한다. 아뇨. 아무것도. 별건 아녜요.

“그냥. 요새 미스타도 바쁘고. 저도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오래간만에 같이 시간을 보내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 싶었죠.”

“으음~ 그렇구나.”

그랬구나~ 그랬어~. 말끝을 늘리며 미스타는 콧노래를 부르듯이 말했다. 미스타가 눈치가 없는 바보는 아니기에 죠르노의 속내를 어느 정도 눈치 챘을 것이다. 미스타는 팔을 뻗어 죠르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재밌겠다. 기대할게.”

“영화요? 평은 좋더라고요. 미국 본토에서도 흥행했고.”

“아니. 그거 말고. 다른 쪽.”

히죽히죽 웃는 얼굴에 여유가 넘친다. 조금은 긴장을 하거나 부끄러워하는 쪽이 더 보고 싶었는데. 죠르노는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큰 기대를 품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좋게 흘러가주지 않을까. 아. 영화를 너무 긴 영화로 예매했다.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이 마음을 끌어안고 영화를 감상해야한다니. 죠르노는 자신이 고른 영화가 엉겁처럼 길게 느껴져 후회가 되었다.

죠르노는 품에 둔 선물을 잠시 확인해보았다. 이상하게 상자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 느껴진다. 그럴 리가 없는데. 심장 박동이 손끝에서 쿵쿵거린다. 이 뜨거움을 조금이라도 빨리 미스타에게 전해주고 싶다.

죠르노가 미스타를 올려다보는 순간, 미스타가 갑자기 죠르노를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눈동자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나서 알았다.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죠르노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땐 이미 총 소리가 죠르노의 귀에 울렸다.

귓전에 울린 총소리 때문에 약간 머리가 멍하다. 죠르노. 내 뒤로 가. 미스타의 입모양이 그런 말을 한다. 죠르노의 시야엔 골목 저 너머에 피를 뿜으며 쓰러지는 사람이 보인다. 미스타는 적을 발견하자마자 총을 꺼내 단 한발로 적을 즉사시켰다. 스탠드를 꺼낼 것도 없이 깔끔한 처리였다.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길을 가던 행인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어수선하게 뛴다.

“적이 더 있을지 몰라.”

미스타는 주변을 둘러보며 차갑게 말했다. 머리에 총을 맞아 죽은 시체에서 피가 흐른다. 살점이 튀고 피가 흐르는 시체에 행인들은 패닉에 빠져 소리를 지르고 난리였다. 이래서야 이 인파 어디에 적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경계심에 미스타가 으르렁 거리듯 말한다. 뭐를 그리 구경하고 있어. 썩 꺼지지 못해? 일부러 거친 말을 뱉으며 상관없는 사람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행인들은 미스타를 피해 도망갔다.

미스타. 뒷처리 팀을 부르도록 하죠. 죠르노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굳이 이곳에 남아서 귀찮은 일에 연루되기는 싫다. 사람을 총으로 죽였으니 경찰에서 꼬투리라도 잡으면 번거롭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가야한다. 조각 같은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서늘하게 나타난다. 완벽한 계획에 흠이 갔다. 아름다웠던 풍경에 피투성이가 되어 뒹구는 시체가 생기다니. 마음이 좋지 않다.

“헤헤. 우리 둘, 장르가 갑자기 로맨스에서 액션이 되어버렸어.”

미스타는 총을 집어넣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시간은? 괜찮아요. 걸어가도 충분해요. 그럼 가자. 상영시간 중간에 들어가는 놈 재수 없잖아. 아아. 맞아요. 화면을 가리게 되니까요. 그래. 그런 놈은 되지 말자고. 미스타와 죠르노는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무척이나 평범한 일상의 대화다.

미스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태연하게 앞을 바라본다. 죠르노가 그런 미스타의 옆으로 갈 때였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 사이로 무언가 잡힌다. 뾰족한 바늘이 신발 안에 들어온 기분이다. 긴장이 등을 달린다. 죠르노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 미스타가 먼저 총을 뽑는다. 그렇지만 방금 전처럼 총 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에 들린 것은 끼릭거리는 철과 철이 맞닿는 마찰음이다.

행인이 많아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살기가 쏟아진다 싶을 때 미스타는 적을 파악했다. 다만 상대는 이미 죠르노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놈이 품에서 무기를 꺼낼 때, 미스타는 팔을 뻗어 적을 막았다. 놈이 들고 있던 무기는 손도끼. 리볼버의 총신에 도끼 날이 맞부딪쳐서 귀를 찢는 소리가 들린다. 미스타의 팔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죠르노가 놀라 바라보니 총과 도끼 날 사이에 낀 손가락 마디가 잘려 땅에 떨어진다.

“미스타!”

죠르노가 스탠드를 꺼낼까 하는 순간에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린다. 지근거리였던 만큼 총알은 정확하게 적의 머리를 관통했다. 피가 터져 옷에 튀어 바지가 축축해졌다. 죠르노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보았다. 얼굴과 머리에는 피가 튀지 않았다. 아무래도 미스타가 자신을 감싸듯이 서 있던 덕이다.

“괜찮아. 엄지랑 검지는 있어서.”

그 대신에 미스타는 상대의 피를 온통 뒤집어썼다. 미스타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더니 혀를 찼다.

“나름 신경 써서 입고 온 옷인데. 이 꼴로 극장에 가도 되나?”

“매표소 직원이 놀라면 케첩을 쏟았다고 하죠.”

“그런 말을 잘도 믿겠다……. 하긴. 오페라 극장도 아니니 괜찮겠지.”

미스타는 리볼버를 집어넣으려다 손에서 권총을 떨어뜨릴 뻔했다. 손가락이 부족하다보니 지지하다가 미끄러졌다. 미스타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죠르노. 손 좀 치료해줘. 이러다 영화에 늦겠어.”

“그러니까 미스타. 제 스탠드 능력은 치료가 아니라……….”

죠르노는 한숨을 작게 쉬었다. 오늘 죠르노의 계획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오늘 죠르노는 분명 멋진 옷을 입고 미스타를 만났다.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머리를 손질하고 나왔다. 지금은 옷에는 피가 쏟아져있고, 머리는 헝클어졌다. 틀어진 건 옷차림뿐만이 아니다. 죠르노는 오늘 일정으로 미스타 취향의 영화를 둘이서 함께 보려고 했다. 영화가 끝나고 아름다운 리스토란테에 가려고 했다. 그러고 나서 미스타에게….

“어디 뭐 바꿀만한 물건 있어? 내 탄환이라도 줄까?”

미스타는 옷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죠르노도 자신의 품을 뒤졌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 이상하게도 뜨겁고 무겁게 느껴지는 선물이다.

죠르노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탄환을 꺼내는 미스타의 손위로 자신의 손을 꺼냈다. 검푸른 벨벳으로 된 네모난 상자는 그 안에 담긴 물건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려줄수 있을 정도로 고상하고 기품이 있었다. 미스타는 그 상자를 보고 아무말없이 시선을 고정시켰다. 죠르노. 미스타가 자신을 불렀지만 죠르노는 듣지 못한 사람처럼 상자를 열었다. 무척 떨릴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침착했다. 죠르노는 고요한 푸른 눈동자로 미스타를 바라본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디자인을 무척 고심했거든요.”

미스타. 당신은 보는 눈이 좋은 편이니까요. 세련되지 않은 디자인이면 싫어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심플하면 또 미스타와 어울리지 않고. 적당히 화려하면서 그렇다고 촌스럽지 않은 반지가 뭐가 있을까. 어떤 보석이 어울릴까. 한참을 고민했어요. 그 고민하는 내내 저는 행복했어요.

“그렇지만 반지는 언젠가는 잃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또 모를 일이죠. 작은 사고로 없어질지도. 혹은 그대의 마음이 변해서 일부러 뺄 수도 있겠고요. 죠르노는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죠르노는 미스타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쥐고 위로 들었다. 미스타의 손은 피범벅이가 되어 붉다. 잘린 손가락중 약지가 있던 자리 쪽에 반지를 끼운다. 아직 남은 손가락 뿌리에 걸친 반지가 금빛으로 빛나나 싶더니만 손가락이 되었다.

“………죠르노?”

미스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반지. 나에게 주는거 아녔어? 미스타의 까만 눈이 이 상황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했다. 죠르노는 무게를 두어 답했다.

“맹세를 한다면 지워질 수 있는 곳에 새기고 싶진 않았을 뿐입니다.”

바람과 파도에 사라질 모래 위에 적은 글씨가 되고 싶진 않다. 맹세를 한다면 우리의 미래에 걸고. 나의 영혼을 다해서.

“사랑해요. 미스타. 나와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해줘요.”

죠르노는 길고 장황한 비유는 하질 못했다. 무다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마음이 가진 무게를 대신할 순 없기 때문이다.

죠르노의 말에 미스타는 웃었다. 죠르노가 손을 놓아주었기에 미스타는 팔을 당겨 자신의 새로 생긴 손가락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까만 눈이 죠르노를 바라본다.

“선물. 고마워. 기뻐. 정말로 잘 간직할게.”

그리고는 마치 반지를 자랑하는 사람처럼 손가락을 펴서 손을 내려다보았다. 미스타의 손가락엔 그 무엇도 걸려있지 않지만 미스타는 환하게 웃었다.

답은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나는 죽더라도 너의 옆에서 죽을거야. 죠르노.”

미스타는 피를 뒤집어쓴 얼굴로 웃었다.

붉은 루비 목걸이를 목에 건 영화 속 연인보다도 밝게. 그러면서 연서에는 걸맞지 않는 투박한 표현을 한다.

죠르노는 그런 미스타의 답이 무척 좋았다.

“갈까요. 미스타.”

“응.”

이번 영화도 해피엔딩이면 좋겠어. 우리처럼 말이야. 미스타의 말에 죠르노는 웃었다.

 

사람은 말이 아니라 형태로 자신의 마음을 묶으려 한다. 원형으로 된 가벼운 반지가 나타내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라 믿고 사람은 그 서약을 나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은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당신과 하나가 되어 당신과 숨 쉬도록.

언제나 함께할 수 있도록 가벼우면서 그 무엇보다 무거워 절대 놓치지 않도록.

 

맹세와 각오는 이곳에.

하나가 되어 묶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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