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02
일부 설정은 오타쿠적 날조 / 용과 같이 7 외전 엔딩까지 스포일러 포함
2020년, 봄을 앞둔 2월. 다이도지 일파의 아지트.
내부는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복도에는 중상을 입고 쓰러진 요원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이들이 해결을 위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겨다니고 있었으며, 혼란을 틈타 주모자는 현장을 빠르게 달아나기 시작했다.
"───저, 저자식 잡아! 절대로 놓치지 마라!"
"젠장, 제대로 감시했어야지! 당장 가서 막아!!"
"……죄송합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시간은 불과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드 네임 '사자'가 일전에 입은 상처들을 조금 돌봐주고, 에이전트로서 필요한 교육을 이어간다. 그게 미야노코시의 정해진 일정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간단하게 소독약이나 밴드를 챙겨 자리를 나섰다.
콘크리트 위에 간단한 마감만 덧댄 삭막한 벽과 바닥에 책상 하나, 의자 둘. 으레 표현하기로는 '취조실'이나 '구금실'에서나 볼법한 풍경의 방. 처음 두 사람이 만났던 곳이면서, 동시에 가장 익숙한 장소.
미야노코시는 먼저 앉아있던 남자의 상태를 살폈다. 남자, 그러니까 코드네임 '사자'는 첫 만남때보다는 확실하게 덜 사나워 보였다. 말 한 마디에 두 마디를 으르렁거리던 때가 무색하게, 지금은 매정하리만치 무뚝뚝하고 말수가 없었기 때문에 늘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은 미야노코시의 역할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 시간이 제법 편했다. 자신이 일임한 에이전트가 있다는 사실도 좋았고, 사자가 적응을 잘 해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이제는 제법 '에이전트'스러워지셨네요, 사자. 역시 대단해요. 이것도 저것도 가르쳐드리면 금방 배우시고…. 하하. 저는 배우는데 꽤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랬나."
"네, 처음은 에이전트도 아니었어요.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보냈죠. 가능성을 봐주셨던 은사님이 안계셨더라면 아마 저희가 만날 일도……, ……잠깐. 지금 대답을 해주신 건가요?!"
"뭐고, 내는 말대꾸 하면 안되는기가."
사자는 왼손 재활에 필요한 마사지를 받는 와중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미야노코시는 잠시 입을 마름모꼴로 벌린 채 어버버버 거리다가, 겨우 고개를 좌우로 털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그, 그러니까, 근 2주 간은 아무 말씀도 안하셔서, 저는 제가 싫어서 그러신 줄… 알았거든요."
"잘 알고 있구마. 니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래이."
"하하, 애초에 사자가 절 아주 조금이라도 좋아해주실 거라곤…… 생각조차 안하고 있긴 한데요. "
사자가 에이전트가 된 건 불과 한 두 개월도 안됐지만, 그에게 전달되는 임무는 대체로 위험한 것들 뿐이었다. 다이도지의 심기를 거스른 대가는 그런 것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독한 조직이다. 갈 곳 없는 자신을 받아준데에는 분명 감사를 몇 번 전해도 모자라지만, 이런 부분들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그 '죠류'를 상대한 실력이 있는만큼, 다이도지는 사자를 시험해보고 싶어했다. 그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연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그런 곳에 소속되어 그의 관리인으로 있는 만큼,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임무가 들어오는 걸 막아줄 힘조차 없는 말단이니 어련하겠는가. 그러니 미야노코시는 사자가 자기를 싫어한다 해도 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스스로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그를 돕고 싶었다. 위험 요소가 있다면 할 수 있는 만큼 미리 치워둔다거나, 합리적인 이동 동선, 필요한 도구 등을 제공하는 것. 그리고 지금처럼 상처를 봐주는 것 정도였지만, 사자는 그런 작은 호의가 거슬린다고 생각했는지 임무가 끝날 때마다 도와주는 건 고맙지만 혼자서도 할 수 있다며 한마디 쏘아붙이기 일수였다. ……거기에 '저는 사자가 걱정돼서 그래요!'라고 대꾸했더니 그 뒤로는 어떤 말에도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2주, 홀로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테지. 그런 와중에 드디어 그에게서 응답이 들려온 것이다! 미야노코시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가가 약간 촉촉해졌다.
"……그래도 얼라, 니라서 대꾸라도 해주는 기다. 다른 놈들한텐 기대도 없다 안카나."
"~~……?!"
"그 눈빛은 또 뭐고. 저리 치아라."
"앗, 죄, 죄송해요……."
어쩐 일로 이다지도 다정한 말-물론 미야노코시의 기준이다.-을 건네주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오랜만의 대화에 제법 기분이 좋아진 미야노코시는 약품들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자는 어딘가 뚱, 한 얼굴로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럼…… 필요한 것들 챙겨서 다시 올게요. 여기서 잠시 대기하고 계셔주세요."
그게 소동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었다.
"제가 책임지고 막을테니 여러분은 수습을 부탁드려요!"
미야노코시는 자신의 실수를 곰씹으며 사자가 달려간 방향으로 빠르게 튀어나갔다. 설마 그 잠깐을 이용해서 다른 에이전트들을 전부 습격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상대가 2년간 주변을 속여왔던 상대임을 생각하면, 아무리 목줄이 채워졌다 한들 방심해선 안될 일이었는데. '사자', 시시도라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작은 화답 하나에 무너진 것도 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을 요시무라가 알게 된다면 사자의 머리에 총구가 먼저 들이밀어질 것이다. 그런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마침 비상조치가 내려진 뒤로 신속하게 내려온 셔터 덕분에, 미야노코시는 그와 엇갈리지 않고 가장 먼저 조우할 수 있었다. 지나오며 쓰러뜨린 사람들의 피인지 그의 것인지 모를 붉은 얼룩이 손등이며 흰 와이셔츠 주변에 튀어 더럽혀진 모습을 보고는, 미야노코시는 인상을 찌푸렸다.
"얼라 왔는교. 생각보단 빠르게 왔구마."
"사…, 사자! ……겨우 따라잡았네요."
"다른 자슥들 쓰러진 걸 보고도 온기가. 핫, 배짱은 칭찬해주꾸마."
"당신이 여길 나가고 싶어한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결정적인 순간을 잡게 된다면, 분명 이렇게 행동할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도, 저는……."
"처음에 말했을낀데. 니같은 얼라한테 내를 맡긴건 큰 실수 한 기라고."
명백한 조롱. 사자는 미야노코시를 내려다보았다. 너처럼 약해빠진 녀석이 그렇게 해서 어떻게 남을 휘어 잡겠다고. 미야노코시는 순간적으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렸다. 원해서 떠올린 기억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인 빈틈을 보이기엔 적당했다. 사자는 그대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묵직한 주먹을 내질렀다. 그대로 맞고 나가떨어진다면 그에겐 다행이었을테지만, 미야노코시는 묵직한 주먹을 두 손으로 간신히 막으며 버텼다.
"말씀하신 대로, 이건 명백한…… 제 불찰입니다."
"……이게."
"그러니까 제가,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당신을 막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관리인이니까요."
붙잡고 있던 주먹이 뒤로 떨어져 나갔다. 그 반동으로 주춤거리고 있자니 곧바로 다음 수가 들어왔다. 그가 곧잘 버릇처럼 내지르는 발차기. 저것도 맞으면 상당히 아픈 것이라, 미야노코시는 재빨리 몸을 뒤로 빼고 사자를 향해 온몸을 내질러 들이받았다. 평소같았다면 개미가 인간의 발에 박치기 하는 꼴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자세를 다잡는 찰나의 시간이 기회였다.
"쳇, 성가시게……!"
그래도 상대는 죠류를 겪어본 자인만큼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이정도로 하중을 실었다면 흔들릴 법도 한데, 큰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잡은 사자는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그의 옆구리와 얼굴로 주먹질을 하고는, 그럼에도 떨어지지 않자 미야노코시의 뒷덜미를 잡고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크학, 하고 짧게 신음을 뱉은 미야노코시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러나 곧 사자가 목덜미를 강하게 움켜쥔 탓에 옴짝달싹 못한 채 축 늘어질 수 밖에 없었다.
"말이야 입만 뚫려있으믄 누구든 번드르르하게 말할 수 있는 기라. 봐라. 결국 이래 됐다 안 카나."
누가 누굴 막겠다는기가? 사자는 기가 찬 듯이 코웃음을 쳤다. 미야노코시는 제 목덜미를 쥔 손을 어떻게든 떼려 안간힘을 썼지만, 애당초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쓰는 힘'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분명 잘못된 방식이라는 건 알지만. 그런데도,
"……사자는 역시 대단하네요."
미야노코시는 어쩐지 웃음이 났다.
"뭘 실실 쪼개는기고."
그와 대비되게, 사자의 얼굴은 더 없이 험악하게 찌푸려졌다.
"……그자식이랑 비슷한 이름도 글코, 처음 봤을 때부터 그 면상이 제일로 싫었다 아이가. 내를 보면서 비웃기라도 하고 싶드나?"
'그자식'? 앞문장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미야노코시는 뒤이어진 말에 점점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갔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충격을 받거나, 조금 상처받은 모습에 가까웠다. 자신이 늘상 웃음을 지었던 것이 그에겐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구나. 미야노코시는 괴로운 표정으로 다시금 사자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남은 손을 재빠르게 그의 어깨 뒤쪽을 가격하며 몸을 뒤집었다. 순간의 기습으로 서로의 위치가 달라지자, 사자는 적잖이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가, 곧 평소의 으르렁거리는 인상으로 돌아왔다. 미야노코시는 온몸으로 그를 짓누르며 쥐고있던 손목을 조심스럽게 비틀었다. 짧은 신음과 함께 사자의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지자, 그는 겨우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비웃은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일 뿐이죠."
"……~~~큭."
"저는 사자에게도, 어느 누구에게도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요. 하지만 사자는 저에게 굳이 다정하지 않으셔도 상관 없어요."
"물론 방금처럼 말씀하신 건 조금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미야노코시는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조금 웅얼거렸다.
"……그래서 이런 방식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꼭 누군가를 죽이고 다치게 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나요? 그런 건 당신에게 새로운 목줄을 채우는 거나 다름 없어요."
"니가 뭘 안다꼬 지껄이나."
"네, 제가 사자에 대해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당신을 막는 겁니다. 적어도 지금보다 더 최악으로 치닫지는 말아야죠."
"얼라 주제에……."
사자는 고개를 힘겹게 들어 미야노코시를 바라보았다. 바라보았다기 보단 노려본 쪽에 가까웠지만, 미야노코시는 개의치 않았다.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나,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제게는 아무 문제 없다는 것처럼 다시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사자는 다시금 눈 앞의 사내가 얼마나 나사빠진 녀석인지 실감했다.
미야노코시는 시시도가 살아오며 본 사람들의 모습들과는 영 달랐다. 돈을 위해서라면 제 자식도 물건처럼 가져다 파는 남자도 보았고, 그런 아이들을 단지 유흥거리로 소비하는 작자들도 보았으며, 급기야는 사람의 목숨줄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사내도 보았다. ──개중에는 지옥에서 끌어올려준 손길도 있었지만, 도리어 그 뒤통수를 쳤으니 자신이 더 얹을 말은 없었다.
터무니 없는 액수의 돈으로 굴복시키거나 상대를 공포에 떨게 하는 힘이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품에 끌어안아 다독이는 것으로 타인을 가두겠다니.
이자슥, 그냥 바보였던기가.
"그래도 사자는 정말 대단해요. 그 많은 인원을 혼자 물리치고 오셨잖아요. 저도 조금은 그 덕을 봤다고 해야겠네요."
"……또 그 소리가."
"앗, 비슷한 말을 했던가요? 죄송해요. ……그럼 일단은 돌아가도록 해요. 처분에 관한 건 나중에 생각하죠."
미야노코시는 사자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찬 공기가 내려앉은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사자는 예상보다 얌전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미야노코시는 생각했다. 일파의 전력에 피해를 입힌 만큼 앞으로 사자에게 내려질 처분이 가볍진 않을 것이라고. 몇일 간 햇빛을 못볼 각오도 해야겠지만, 몇 번을 생각해보아도 그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책임을 지겠다'는 말에는 그런 의미를 담았으니까. 그저 그가 받을 어떠한 고통을 자신이 조금이라도 나눠받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아, 이건 이타적이라기보다 이기적인 것에 가까운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를 조금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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