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천문지부를 위한 가이드
2022 합작 참여작: HELLO&FAREWELL / MY WORLD
*F.E.A.R.사의 TRPG룰, 더블크로스 3rd Edition의 '오버드' 설정을 차용했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천문지부를 위한 가이드
공백 포함 12451자
흰색의 모래가 폭풍처럼 날아들어 헬멧을 따각따각 두드려댔다. 그 소리에 코코는 정신을 차렸다. 헬멧은, 코코는 반쯤 모래에 묻혀있었다. 몸을 일으키고자 모래 속에 손을 뻗었을 때 부드러운 모래 속으로 손이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코코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고 휘청였고, 일어나 앉는 대신 몸을 반 바퀴 돌려 이곳의 하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항성을 보았다. 통증이 느껴지는 팔을 더듬거려 모래의 틈새를 잡으니 부러진 헬멧 장식이 손가락에 감겨들었다. 행성의 대기를 통해 보는 우주는 코코가 알던 색이 아니었다.
어쩌다가 이곳에 떨어지게 된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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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멸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류는 살아남았고, 지구가 멸망했다.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어버린 지구를 버리고 인류는 우주로 날아올랐다. 멸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고 인류는 지구를 지키는 대신 우주로의 도약을 선택했다. 조금씩 만들어 합치고 이어붙인 인공 행성의 크기를 재어 모두 더한다면 지구랑 비슷했다. 행성만 한 인공의 위성을 인공의 중력으로 붙잡아둔 채, 인류는 그곳을 전초기지 삼아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차출되는 것은 늘 오버드였다.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이 남지 않은 시대의 인류로 태어나, 가능성에 매달려 착륙할 땅을 찾아 헤매야 하는 오버드들. 코코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의 우주선은 딱 다섯 명이 들어갈 만큼 좁았다. 회의실도 겸하는 조종실과 식량을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식량칸, 산소 생성 공간을 제외하면 개인적인 공간이라고는 일인용 침대가 들어가면 거의 남지 않았다. 벽을 뚫어 매트리스를 넣은 형식의 침대는 길이와 폭은 충분해도 높이는 그렇지 않아서, 180에 가까운 코코가 그 가장자리에 앉아있을 때면 정수리가 닿고도 남아 항상 불편하게 목을 구부리고 있어야 했다.
코코는 실밥이 뜯어지려고 하는 야구공을 쥐고 손안에서 굴렸다. 이제 모르페우스만의 순수한 모래로 바꾸어낼 수 있는 것은 손안에 쥔 야구공밖에는 없었다. 코코는 야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우주선에 탑승해서 평생을 우주선에서 살아가기 전에 딱 하나 사적인 물건을 가져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하여 고른 것이었다. 코코를 낳아준 부모가 좋아하던 것이었나, 아니면 양부모가 좋아하던 것이었나. 아무튼 간에 인류 개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존재로 판정되어 보육원에서 또래와 같이 자라기 전의 코코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었다. 코코는 엄지손가락으로 뜯어지려고 하는 실밥을 만지작거렸다. 실밥이 완전히 뜯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는 손길이었다. 자신의 생물학적 부모와 양부모가 지나온 시간만이 실밥을 간신히 이어붙이고 있었다. 코코는 야구공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버려도 모르페우스의 능력만 있다면 완벽히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키지 않는 것은, 제아무리 모르페우스라고 해도 시간만은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일까?
굳이 레니게이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공용 공간의 아주 작은 정원의 모래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코코는 우주선 안에서는 개인 공간에서야 레니게이드를 사용할 마음이 들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눈치 빠른 나츠키나 아라카즈나 쿄헤이는 눈치채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레아에게도 알려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탐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 그들도 레니게이드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오버드가 배정받는 우주선이 전부 똑같은 모양인 것처럼 모든 오버드는 인간의 인공 행성, 즉 본함에서가 아니라면 레니게이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오버드가 공유하는 레니게이드에 새겨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코코는 생각했다.
셋에서 여섯까지의 오버드를 태우고 우주 곳곳으로 날아가는 각각의 우주선은 지부라고 불렸다. 인류가 지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단순한 호기심과 개척 욕구 때문이었던 때에는 우주선에는 신화의 이름을 붙였다고는 하지만 옛말이었다. 이제는 지부의 최종 목적지인 행성의 이름을 딴다. 코코가 있는 곳은 OVERED B-6-12 지부였다. 그들 지부의 목적지로 설정된 곳은 OVERED 프로젝트의 B 은하의 6번째 항성의 12번째 행성이라는 뜻이었다. B 번째로 발견된 은하의 6번째로 발견된 항성을 12번째로 돌고 있는 행성. 숫자가 참으로 많아서 붙임표(-)로 구별할 수밖에 없었다.
나츠키는 그럴 수만 있다면 지부를 천문지부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별에 둘러싸여 있으니 별을 관찰하긴 더 좋아요.' 출발 전 상부에 적당한 크기의 천체망원경을 요구한 것도 그였다. 요구는 받아들여졌지만, 막상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오버드는 없었다. 어디로 날아가든 노랗고 하얗고 심지어는 파란 항성은 항상 시야에 존재했다. 그것을 굳이 들여다볼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츠키는 내킬 때마다 망원경을 찾았다. 별을 의미하는 사어死語의 이름을 가진 오버드다웠다.
"지부장님, Stella: 스텔라, 나츠키 뭐가 보여요?"
코코는 나츠키가 망원경 근처에 있을 때마다 물었고,
"흰색 별이요. 아, 하나가 아니었네요. 쌍둥이 별입니다."
나츠키는 그럴 때마다 알파벳과 숫자로 이루어진 이름을 대는 대신 보이는 것 그대로를 묘사했다.
"코코, 그거 아나요. B612라는 이름의 별은 원래 있었다는 걸. 어느 책에 의하면 어린 왕자가 혼자 살고 있는 별이래요."
"거짓말이죠? 이 우주에 인간을 제외한 지적 생명체는 없잖아요. 아차, 오버드도 포함해서요."
"하하, 모르는 일이죠. 우주는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으니까요."
이때의 대화는 언제나 이렇게 마무리되고는 했다.
은하와 은하 사이의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우주선을 만들 만큼 인간의 기술은 발달했지만 역설적으로 퇴화하기도 했다. 상당수의 기술을 오버드의 발현된 레니게이드에 손을 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승무원들이 헬멧과 우주복을 굳이 갖춰 입지 않아도 오르쿠스의 능력 아래 우주 유영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모르페우스만 있다면 우주선의 그 어떤 부품도 만들어낼 수 있었고 하누만이 있다면 엔진이 작동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우주선을 띄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오버드의 레니게이드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나츠키가 원한다면 코코는 지부의 모르페우스로서 천체망원경의 구조를 외워서 하나 만들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나츠키는 코코에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들어내지 않아도 되는 우주선의 부품에 코코는 가끔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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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은하에서 또 다른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최초 발견자는 지부장인 스텔라. 탐사를 위한 항해 중 또 다른 가능성의 행성을 찾아내고 부가적인 탐사를 진행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었으나 코코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버드의 능력조차 바래게 하는 우주의 크기를 알기에 탐사선에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을 지겨움과 함께 보냈으나, 준비와 예견되지 않은 또다른 가능성의 행성을 탐사하기에 앞서 코코는 자신이 약간 들떴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전 지부에서는 번번이 초기탐사 인원에서는 제외되고는 했다. 코코가 우주복을 갖춰 입고 행성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초기탐사 후, 위험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이 확인된 이후였다. 그때마다 이전 지부장님은 우주는 넓으니 다음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결국은 해당 지부에서 떨어져 나오기 전까지 코코는 그 어떤 초기탐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주는 팽창하고 또 팽창하고 있을 터였다. 다음 세대부터는 아마 은하 간의 항해를 위해 더 엄청난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할지도 몰랐다. 그 과정에서 갈려나가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오버드일 터였고, 그러므로 초기탐사의 기회는 언젠가 코코에게 찾아올 터였고.
"브리핑하겠습니다. 현재 발견된 가능성은 OVERED B-9-7-1. 항성이 아니라 위성이지만 조사 결과 바다가 존재함이 확인되었습니다. 중력도 00으로 지구와 비슷합니다."
"초기탐사 인원은 두 명. 저와 메모리얼이 갈 겁니다. 메모리얼, 우주복으로 갈아입고 간이 탐사선 앞으로 오세요."
"네~"
"나머지는 통신을 켜놓고 조종실에서 대기합니다."
"네에."
"응."
지시에 대답하지 않은 것은 코코뿐이었다. 나츠키가 대답하지 않은 코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의아함보다는 걱정스러움이 더 많은 눈빛이었다.
"슈팅스타?"
"아, 네, 네. ⋯그런데요, 다음 초기탐사 때는 절 내려보내 주시면 안될까요?"
그 말에 나츠키는 부드럽게 웃었고 아라카즈는 장난스럽게 생각해보겠다고 말했고 둘 모두는 우주복을 찾아 나갔다. 안된다는 말은 없었지만 동시에 허락도 아닌 애매한 행동과 웃음과 말뿐이었다. 코코는 부루퉁해져서 괜히 발을 구르며 양옆으로 쿄헤이와 레아와 팔짱을 끼고 조종실로 향했다.
그리고 결과는 이랬다. 우주선에 단 하나 있었던 2인용 간이 탐사선은 완전히 망가졌고, 나츠키와 아라카즈는 다친 채 오르쿠스의 능력으로 간신히 복귀했다.
"나츠키! 카즈카즈!"
비명 대신 이름을 불렀다. 코코든 쿄헤이든 레아든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피 흘리며 간신히 복귀한 나츠키와 아라카즈였다. 우주선에서 조사한 위험요소는 전혀 없었는데도 이륙한 간이 탐사선이 어느 순간 작동을 완전히 멈추어버렸다. 산소 기능도 마찬가지라서 탐사선의 계기판의 불이 전부 나가자마자 아라카즈가 간이 탐사선만큼의 영역을 만들어낸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간이 탐사선도 우주선이라고 아라카즈는 복귀할 때면 헬멧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 간이 탐사선의 곁을 나츠키의 마안이 지켰다.
"아아⋯ 괜찮아용. 자자, 봐봐요. 샘플은 착실히 챙겨왔죠?"
"지금 중요한 거, 그거 아니야."
"나 지금 레아한테 혼나는 건가요?"
"혼나도 돼요! 혼나는 거 맞아요!"
"이럴 때에는 우리가 어른들을 혼낼만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코코, 쿄헤이와 레아가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그들에게 구급상자를 하나씩 들려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약을 바르기 힘든 곳을 다쳤다면 부르라는 말은 쿄헤이가 잊지 않고 덧붙였다.
"우리의, 오버드의 기원이 외계일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코코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우주선의 그 어디보다도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에 다섯 체의 오버드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가로세로가 각각 30cm는 겨우 될까 말까 하는 멸균기 앞은 머리 다섯 개 전부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럼에도 나츠키는 평소처럼 거리를 두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채집물에서 그 위성에서는 존재할 리 없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 말은 아직 좀 이르네. 밝혀진 건 그냥 오버드와 접촉한 적 없는 위성에서 레니게이드가 발견되었다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아직 탐사 되지 않은 구역이었잖아요?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멸균기 안에 든 것은 손바닥 두 개를 이어붙이면 온전히 가려지는 크기의 무언가였다. 그것은 정말 무언가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각 모서리가 둥글고 판판한 그것은 우주처럼 어두웠지만 동시에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빛은 파장으로 이루어졌을 텐데, 그것이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빛으로 이루어진 무지개는 더 뻗어 나가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특정 거리까지만 존재했다. 마치 그것을 보호하듯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것을 보호하는 어떤 힘 때문에 뻗어 나가지 못하고 있거나. 멸균기에 시선을 집중한 모든 오버드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무지개의 군데군데는 인간은 볼 수 없어 명명되지 않은 색으로 비워져 있었다.
코코는 모르페우스이니 이것과 적어도 같아 보이는 것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건 더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문제였다. 코코는 물론이고 레아조차 이렇게 생긴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지구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본함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던 물질이라는 연락이 왔다. 모른다는 답이라도 제때 받은 것은, 혹시나 도움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재빨리 연락을 넣은 아라카즈의 빠른 대처 덕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 이거 일단 여기에 넣어두고 OVERED B-6-12로 가?"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일단은, 우리의 본 임무는 B-6-12를 탐사하고 정착 가능성을 조사하는 거였으니까요."
그때 코코가 끼어들었다.
"거기 탐사는 저에게 맡겨주시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면서 나츠키의 옆구리를 콕 찔러오는 손길이 제법 매서웠다. 지난 탐사의 아슬아슬한 성공으로 얻은 부상이었다. 나츠키는 옆구리와 어깨와 얼굴에, 아라카즈는 발목과 등허리에 소독하고 붕대를 맨 참이었다. 코코, 쿄헤이와 레아는 복도에 서서 나츠키와 아라카즈가 각자의 개인실에서 스스로 상처를 처치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쉽게 낫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상대적이었고, 통증은 인간과 똑같이 있었다.
나츠키가 곤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비하면 아라카즈의 웃음은 다소 뻔뻔해보이기까지 했다.
"코코, 혼자서는 위험한 거 몰라?"
"그렇지만 탐사선이 일인용밖에 안 남았는데 어떡해?"
"그럼 이렇게 할까용? 탐사용 우주선 자체를 착륙시키는 거예요. 위험부담은 좀 있겠지만, OVERED B-6-12에 별다른 생명반응은 감지된 바가 없구요."
누군가라 무어라고 반박하려던 그때, 마침 본함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그리고 부상 인원이 있는데요~"
"스텔라와 메모리얼, 둘이요~"
"⋯둘~"
아라카즈와 나츠키가 반응할 새도 없이 쿄헤이, 코코, 레아가 빠르게 보고했다.
"그러니까 다음 탐사는 저, 슈팅스타 혼자서도 충분해요. 본함은 슈팅스타 혼자서 초기탐사를 하는 것을 허락해주세요."
[ 부상 정도는? ]
"추위의 바다, 슈팅스타, 찰나의 속삭임!"
[ 스텔라와 메모리얼, 부상 정도를 보고하세요. 임무에 차질이 있을 정도입니까? ]
"⋯⋯."
나츠키는 부상 여부를 보고한 이들의 코드네임을 불렀으나 본함의 질문이 더 빨랐다. 코코는 통신화면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뒤를 돌아 있는 상태였고, 그것은 지부장인 나츠키를 제외한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통신 화면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나츠키가 유일했다.
'다치셨잖아요.'
입 모양으로 코코가 뻐끔거렸다. 옆에서 레아도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지부에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츠키와 아라카즈가 다친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서 초기탐사를 하겠다는 말은 지부장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츠키는 엄한 표정으로 코코를 혼내려다가 아직 본함과의 통신이 유지 중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표정을 굳혔다.
"보고합니다. 직전 탐사에서 다친 인원은 두 명, 메모리얼과 지부장인 저, 스텔라입니다. 메모리얼은 발목과 등허리에, 스텔라는 옆구리와 어깨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매뉴얼대로 샘플 확보 후 응급처치를 했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은 아닙니다."
[ 하지만 간이 탐사선은 유실됐고요. 맞습니까? ]
"맞습니다."
[ 본함에서 안내합니다. 본래 예정되어있던 OVERED B-6-12의 탐사에서는 일인용 간이 탐사선 대신 해당 우주선을 착륙시키십시오. 재조사 결과, 이륙을 방해할만한 그 어떤 위험요소도 발견된 바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방금 탐사에서도 그런 말 하지 않았어?'
코코가 쿄헤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언제나처럼 나이대 맞지 않은 웃음을 짓고 있던 쿄헤이의 웃음이 살짝 삐끗했다. 레아도 코코의 귓속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문제가 생긴다면 매뉴얼대로 해결 후 본함과 통신하십시오, 스텔라. 해당 지부의 탐사에 행운을 빕니다. ]
그 말을 끝으로 칼같이 통신이 종료되었다. 우주선 내부의 분위기는 살짝 경직되어 있었다. 행운을 빈다는 말은 허울뿐이었다. 경이로운 속도의 우주선으로도 지구 시간을 기준으로 몇 달을 항해해야만 하는 거리에 있는 본함이 당장 부상을 해결해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코코는 이보다는 좀 더 지부원들의 안전을 염려해줄 줄 알았다.
"⋯자아! 그럼, 분부받은 대로 탐사선의 착륙을 준비해볼까용?"
아라카즈가 가벼운 목소리와 함께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 의도를 알았기에 통신이 종료된 후 나츠키의 표정도 어느 정도는 풀려 있었다. 레아가 쿄헤이와 코코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코코는 여전히 찜찜한 표정이었지만 버티지 않고 레아와 쿄헤이와 함께 착륙을 준비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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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복은 우주선 안에서 입는 가벼운 유니폼 바로 위에 덧입을 수 있었으므로 따로 탈의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주선의 협소하고 지나치게 효율적인 구조 또한 탈의실의 부재에 대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유니폼과 탐사복은 재질과 기능에서 큰 차이가 나는 대신 착용감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코코는 탐사복을 입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다. 탐사 중 산소 농도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어도 헬멧과 장갑을 훌렁훌렁 벗어버리고는 했다. 그것은 안전 의식의 부재라기보다는 어른들의, 오버드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언제나 마안을 꺼내어놓는 나츠키의 옆과 아라카즈의 영역 안에서라면 코코는 안전함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 탐사는 코코가 허울뿐인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맞는 초기탐사였다. 제대로 된 탐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다친 나츠키와 아라카즈를 생각하면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회복에 레니게이드를 집중해야 할 그들이 무리해서 레니게이드를 끌어오는 것은 코코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쿄헤이와 레아, 심지어는 아라카즈도 마찬가지였는지 헬멧까지 꼭꼭 착용한 상태였다. 나츠키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모두의 복장을 한 번씩 직접 점검해주었다. 코코는 나츠키의 손에 헬멧을 맡기고 헬맷과 탐사복의 홈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소리를 느꼈다. 나츠키가 탐사복의 장갑으로 지워지지 않는 헬멧의 얼룩을 문지르고 레아의 것을 확인하고 있을 때, 코코도 장갑을 낀 손으로 얼룩 위를 괜히 문질렀다. 이것은 코코가 직전의 지부에 있을 때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나츠키는 이 얼룩이 헬맷의 기능에 그 어떠한 위협도 되지 않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난 다음에는 내려버두었다. 본함이 말한 '행운' 같은 거였다. 행성에서 살던 인류가 본함으로 이전했음에도 버리지 못한 것이었다. 이전 지부장은 코코가 헬멧에 일부러 만들어놓은 얼룩을 문지르고 문지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얼룩이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 준비됐나요? ]
조종실에서부터 도착한 나츠키의 목소리가 코코의 정신을 바짝 잡아당겼다. 나츠키는 조종실에, 코코는 원래대로라면 간이 탐사선이 있던 곳에서 착륙을 준비하고 있어서 나츠키와 아라카즈는 코코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코코는 누군가 정말로 헬멧 위의 장식을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자세를 꼿꼿이 세웠다.
[ 조종실은 준비 완료예요~ ]
"여기도 준비됐어요~"
아라카즈와 쿄헤이의 목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오는가 싶더니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했다. 코코의 자세는 아직도 누군가 위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꼿꼿하고 뻣뻣했다. 대답이 늦은 것은 그것 때문이었다. 별 이유는 아니었다. 탐사선이 착륙하기 전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코코, 긴장했어? 맥박 오르고 있어."
"으, 으응? 나 그래 보여?"
어쩌면 레아가 걱정할 정도로. 코코가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올려 이마를 쓸어올리려고 했으나 꼼꼼히 착용한 헬멧에 장갑을 낀 손이 부딪혔다. 당황했다는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엄청나게 긴장한 것 같은데? 왜 그래, 코코?"
"쿄헤이까지?! 아냐, 나 괜찮아. 정말이야. 그냥 긴장 좀 할 수 있는 거지!"
"코코, 행성으로 직접 탐사 나가는 거 처음이랬지?"
레아의 물음에 코코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종실의 어른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는다지만 코코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깃든 목소리로 대답해서 괜히 그들의 걱정을 사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코코의 뒷목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그럴 수 있어. 처음이니까.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해."
"괜찮은데⋯. 정말이야."
우물쭈물하는 코코의 시야로 쿄헤이의 웃는 얼굴이 불쑥 들어왔다.
"지금 네 표정 거울로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은데.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거든."
"놀리는 거야?"
"걱정하는 거지, 걱정. 나도 처음엔 그랬어. 코코처럼 긴장도 하고 식은땀도 흘리고."
코코가 놀라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쿄헤이의 헬멧 위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려는 순간, 마찬가지로 장갑을 낀 쿄헤이의 손이 무릎에 얹은 코코의 손 위로 닿아왔다. 코코가 손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손을 빼내지는 않았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흐르느라 차갑게 식은 뒷목이 쭈뼛거리며 다시 체온을 찾아가는 느낌. 쿄헤이는 샐러맨더라 그런가.
"나는 식은땀은 안 흘렸지만, 긴장했던 것 같아. 그래도 괜찮아. 나츠키와 아라카즈, 강해. 나도, 쿄헤이도, 코코도, 모두 강해."
레아도 코코의 위로 손을 얹었다. 코코가 탑처럼 쌓여있는 손을 바라보느라 살짝 고개를 숙였다. 코코의 시야의 한쪽에는 여전히 언제나처럼 웃고 있는 쿄헤이와 언제나처럼 표정없는 단단한 얼굴의 레아가 보였다. 그러면 그제야 깨닫는 것이다. 코코가 걱정하는 것은 이 지부를 잃고 다른 지부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몸이 성치 않은 어른들과, 그럼에도 마무리되어야 하는 임무 사이에서 직접적인 탐사가 처음인 코코는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 맞습니다, 코코. 걱정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
[ 어른들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위험 요소도 없고! ]
코코가 통신이 쏘아지는 헬멧의 장식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언제나처럼 자신 넘치는 목소리로,
[ 저 정말 괜찮아요, 나츠키, 아라카즈! ]
그리고 기억은 거기에서 끊겼다.
여전히 흰색의 모래가 폭풍처럼 날아들어 헬멧을 따각따각 두드리고 있었다. 코코는 정신을 차렸으나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탐사선은, 아마 추락했던 것 같다. OVERED B-6-12의 대기를 통과하면서 탐사선의 엔진이 이유 없이 멈춰버렸다. 나츠키는 조종간을 잡고 최대한 충격이 덜한 착륙을 시도했고 아라카즈는 자신의 영역인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잘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왜?'
이상하게 어지럽고 머리가 사방으로 조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착륙에 실패한 것치고는 코코의 탐사선과 몸은 아주 멀쩡했다. 다른 오버드들은 어떻게 된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코코는 다시 몸을 뒤집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흰색의 모래는 폭풍처럼 날아드는 것도 모자라서 코코의 발목을 감싸 행성의 중심부로 끌어당겼다. 이대로라면 비틀거리면서도 코코는 레니게이드를 집중하여 발밑에 튼튼한 발판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런데 잘되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부상으로 인한 증상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마치 몸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고 없어야 할 것이 생긴 기분이었다. 속이 허한 동시에 개운했다.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 것이다. 이곳은 레니게이드가 통하지 않는 곳이라고.
코코는 순간 겁을 덜컥 집어먹었다. 레니게이드가 통하지 않으면 탐사선은 절대 이륙할 수 없었다. 탐사선의 엔진을 이루는 기술의 86 퍼센트는 인간의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오버드의 것이었다. 그러나⋯. 털썩 주저앉은 자리에서는 탐사선에서와는 달리 양손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래가 있었다. 변하지 않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아까 느낀 이상함은 이것 때문이었다. 손에 닿아도 모래가 변하지 않는다. 단단해지지도 않고 색깔이 변하지도 않고 그저 여느 모래처럼 흐를 뿐이다. 오버드는 레니게이드 없이는 몹시도 인간 같아졌다. 코코가 배우기를 인간과 오버드를 나누는 기준은 유일했다. 레니게이드를 만들어내는 장기가 있느냐, 없느냐.
"⋯⋯."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오버드라는 이름 아래 묶어둔 능력이 통하지 않을 때에만 고향이 존재할 수 있다고, 코코는 생각했다. 우주선에서 태어나 늘 이동하며 우주선에서 우주선으로, 은하에서 은하로 옮겨갈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 우리의 레니게이드가 통하지 않아 탈출할 수 없는 곳. 그렇기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곳. 우주선에서 태어난 우리는 오늘 고향을 배신DOUBLE CROSS하고 정착한다.
코코는 그 무엇으로도 변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하는 모래를 움켜쥔다. 아직 모래밖에 보이지 않지만 충분하다. 저 너머에 반드시 우리가 살아갈 곳이 있을 것이다.
코코는 레니게이드가 만들어내는 단단한 받침대 없이도 자리에서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행성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일단 지부원들부터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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