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의 의미
2022 합작 참여작: HELLO&FAREWELL / MY WORLD
목적의 의미
공미포 13897자
우주용 안드로이드라서 좋은 점은 우주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유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기체를 붙들어 매어 놓는 중력도 그 기반이 되는 행성도 없으니 오히려 발 디딜 곳이 전혀 없어서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어딘가로 향하고 싶어도 방향을 설정할 수도 없었다. 가끔 소리 없이 소행성 조각이 비슷한 속도로 다가올 때에만 손을 뻗어 겨우 항로를 수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지어는 그것마저도 손에 닿지 않을 때가 많았다.
먼 옛날 인간은 맨몸으로 우주를 여행할 수 없어서 이것저것 무겁게 껴입었다고 한다. 우주를 유영하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불편함은 가벼워질 수가 없다. 쓸데없이 부피만 크고 두꺼워서 관절조차 제대로 구부리기 힘든 옷을 입은 인간을 생각해본다.
어쩌면 인간은 그래서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우주 유영을 할 수 없는 몸이라서.
인간은 정말로 멸망했다. 은하 간 이동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는데다가 자아가 있는 안드로이드쯤은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멸망했다. 그 이유는 모르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해보게 됐다. 어차피 우주를 떠돌아다니다 보면 남는 것이 시간이다. 현존하는 모든 안드로이드는 등 뒤의 패널 때문에 항성에서 빛 에너지를 받아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장치를 스스로 끌 수도 에너지를 차단할 수도 없다. 안드로이드에게 자살은 금지되어 있고, 그 프로그램은 관리자가 아니라면 절대 바꿀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인간이 증발한 것처럼 사라진 우주선에 남아 영원히 이불을 개거나 우주선 바깥을 위성처럼 돌고 있는 안드로이드가 차고 넘칠 거였다. 언젠가는 그런 우주선이라도 만나 대화라도 하게 되는 날이 올까? 끝이 보이지 않는 우주를 유영하는 것은 지나치게 심심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꽤 빨리 찾아왔다. 지구력으로 시간을 자체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내장되어 있었지만, 하는 생각은 늘 엇비슷하기 때문에 그 생각을 했을 때의 시간을 기록하지 않아서 정확한 시간은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꽤 빨리 찾아온 것만은 확실했다. 멸망한 인간의 우주선. 그건 우주의 다른 존재의 우주선은 아니었다. 저런 모양의 우주선을 언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은하 간 이동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어도 효율적인 우주선의 모양은 한정되어 있었으니까. 우주선은 가운데가 수직으로 뚫린 구형의 모양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이 없을 테니 회전하여 인공 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것이 똑바로 다가와 바로 앞, 딱 적당한 거리에서 멈추었다.
멸망한 인간의 우주선. 저 안에는 다른 안드로이드도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인간이 왜 멸망했는지를 알고 있을까⋯⋯.
우주선의 외벽에 달라붙을 생각도 없이 멍하니 우주선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앞쪽의 에어록이 열렸다. 크기로 보아서는 우주선과 우주선을 연결하는 곳은 아니었고 우주 유영용 안드로이드가 출입하는 곳인 듯했다. 저 안에 어떤 안드로이드가 남아있는지는 몰라도 다른 안드로이드에게 꽤 호의적인 것 같았다. 우주선은 아주 멀리서부터 전원이 유지되는 안드로이드를 발견하고 다가온 것 같았다. 렌즈에 포착되었을 때부터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직선으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우주선을 소유한 안드로이드가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안드로이드를 굳이 찾아올 이유는 없었다. 외로웠을까? 그 안으로 들어간 것은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에어록과 우주선 내부를 잇는 복도는 조용했다. 다만 여전히 무중력 상태였고 어두웠다. 우주보다 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복도에 불이 들어왔다. 노란색이었다. 화살표 모양을 만든 노란 LED 조명이 이상하게도 우주가 전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복도에서 별처럼 보였다. 중력은 아직 없었지만, 벽에 달린 손잡이를 더듬어가며 노란색이 이끄는 곳으로 항로를 수정했다.
노란색의 LED 조명이 이끄는 곳은 조종실 입구였다. 에어록을 열고 안내해준 것치고는 경계하고 있는지 문은 열리지 않았고 안팎을 들여다보고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유리창은 자신을 검게 닫아 안팎을 분리한 지 오래였다. 열릴 것 같지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인간의 우주선은, 정정한다, 인간이 남기고 어떤 안드로이드가 차지한 우주선은 지나치게 튼튼했다. 원주인이 멸망하여 먼지처럼 사라지고 나서도 오래 우주를 떠다닐 만큼. 에어록의 복도와는 달리 손잡이 하나 없는 문 옆으로 노랗고 동그란 렌즈가 달려있었다. 벽 안에 파묻힌 꼴이었다. 문에 달린 것처럼 얇고 단단한 창이 그 위를 보호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 우주선의 주인은 이 렌즈로 문밖의 안드로이드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해놓고 문밖에 손님을 세워두는 건 무슨 생각입니까?"
전파를 보내는 대신 소리로 대화를 시도했다. 기체에 느껴지는 압력으로 분석하건대 공기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다. 인간의 우주선이었던 티가 났다. 없는 것은 중력뿐이었다. 이것도 분명 듣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멀쩡한지 고장 났는지 판단하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나를 공격해올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렌즈 아래의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서는 이미 그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는 뜻이 읽혔다. 깔끔하고 무덤덤해서 오히려 인간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아주 최신 버전이거나 관리가 잘 되었음이 분명했다. 아직 멀쩡한 손가락으로 렌즈 커버를 두드렸다.
"내가요? 나는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쩌다가 우주를 떠돌게 되었는지도요. 내가 기억하는 건 어떤 이유든지 간에 우주에 남은 모든 인간이 멸종해버렸다는 사실뿐입니다."
심술이 나서 대답하자 잠시 대답이 없었다.
"당신을 세타라고 부르겠습니다."
"그게 내 이름인가요?"
"스캔하면 뜨는 관리자용 정보에 그렇게 적혀있어요."
정식 모델명은 K-P4-9-01. 우주 유영용 안드로이드군요. 그는 다 안다는 듯이 말해놓고 정작 본인은 소개하지 않았다.
"당신 이름은 뭡니까?"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대답 없이 노란 렌즈가 굴러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인간이 눈동자를 굴리는 것처럼. 저 안쪽에서는 내키지 않는 답을 고민하느라 본체의 렌즈를 실제로 굴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MAX요. 그게 정식 모델명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렸다. 조종실 안쪽은 조용했다. 불이 꺼져있어서 빛이라고는 조종대 전면에 있는 거대한 창 너머로 들어오는 흐릿한 별빛이 다였다. 달라진 밝기에 조리개를 확장하며 조종대와 복잡한 계기판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를 찾았다. 없었다. 아무도. 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놀리는 겁니까?"
"시야가 좁군요. 인간처럼요. 이쪽입니다."
에어록에서 보고 조종실 바깥 복도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노란색 불빛이 들어왔다. 여전히 없는 중력을 찾으며, 아무것도 없는 벽을 발로 차서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이동할 동력을 얻었다.
"당신⋯. 안드로이드가 아니었네요."
"안드로이드도 편견을 가집니까? 모든 안드로이드가 당신처럼 우주를 유영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날 놀리는 게 맞았군요."
그게 첫 대면이었다. 대'면'이라고 할 수 있다면. MAX는 우주선 그 자체였다. 노란 렌즈를 통해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종실 바깥의 복도에 같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그에겐 최선이었다. 그에게는 나처럼 우주 유영을 견딜 수 있는 기체가 없었으니까. 우주 유영이 불가능한 모델이 아니라, 그냥 기체 자체가 없었다. 노란불이 깜빡이는 노란 렌즈와 스피커가 그가 다른 안드로이드와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의 전부였다. 놀라 말을 잃었을 때 조종간의 가장 중앙에 있던 화면이 켜졌다. MAX의 노란 렌즈의 바로 옆이었다.
"이러면 좀 낫겠죠."
희고 구불구불하고 긴 머리카락에 에어록에서부터 조종실까지 인도해온 노란 렌즈와 똑같은 색의 눈동자가 거기에 있었다. 화면 안의 누군가는, 또는 무언가는 인간을 닮아있었다.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MAX가 답했다.
"원래 인간이지도 않았고, 인간이었던 누군가를 본떠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이 모습을 갖게 된 지도 얼마 안 됐어요."
꼭 준비해둔 대답 같았다. 목소리에는 그 어떤 고저의 변화도 없었지만, 화면 속의 인영의 입이 말소리에 맞추어 움직였고 어깨가 살짝씩 들썩였다. 인간을 본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시도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것을 보니 지나치게 인간답게 구현되어있는 듯했다.
"누가 뭐래요?"
"질문에 시달린 적이 있었거든요."
"컴퓨터에 잡아넣을 인간은 모두 멸종했잖아요."
"내 말이 그 말입니다."
MAX의 우주선에는 그 어떤 유기체도 존재하지 않았고, 무기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를 빼면. MAX는 우주선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게 창조되었으니까 그를 우주선 안의 무기체로 셀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그에게는 우주를 떠다니다 언젠가는 무언가와 충돌하여 고장 나버리고 말 안드로이드를 데려올 이유가 없었다. MAX도 이유를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외로웠다는 대답은 없는 걸로 치기로 했다. 그런 대답 앞에 내가 내놓은 것은 농담이었다.
"정말 인간적인 대답이네요."
"시끄러워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시끄럽다고요."
어쨌거나 쫓아내 버리지 않고 계속 같이 우주를 돌아다녔다는 점이 신기하다면 신기했다. 마찬가지로 이 우주선 관리용 ai가 나를 계속해서 손님으로 태우고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우주선에 탔을 때의 시간을 기록해두지 않아서 정확한 시간은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지구력으로 몇 주는 지난 것이 확실했다. MAX가 이러는 표면적인 이유는 우주선에 홀로 남은 지적구동체가 되기 싫다였지만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MAX는 우주를 유영하는 다른 안드로이드를 찾아도 굳이 그들을 우주선 안에 들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구동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건 가까이 다가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아니오, 세타. 다가가지 않아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 대답을 들을 때면 MAX가 꼭 나라는 특정 개체를 찾아 우주를 떠돌았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정해진 길을 따라 여행하는 혜성을 찾아갈 때보다도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갈 때보다도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해냈겠지, MAX가 지배하는 우주선은 아주 고기능이었으니까. 무언가를 자체적으로 끌어당길 중력을 행사하지도, 그런 중력권 내에 들어가 항성 주위를 돌지도 못할 만큼 작은 안드로이드. 항로를 계산하지 않고 이동에 규칙성도 없는 작은 안드로이드. 그런 안드로이드를 찾아 정처 없이 우주를 헤맸을 MAX를 생각할 때마다 나를 태운 이유를 묻는 것을 참아야 했다. 이건 전부 인간들이 말하는 픽션적 상상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런지 참기 힘들지는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고장 나기 시작한 안드로이드 하나를 찾아 나선 우주선의 ai라니. MAX가 왜. MAX는 이미 나를 모른다고 했다. 예전에 만난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그것이 아쉬운 이유는 과거의 자신을 알고 싶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멸종했고 인간 외 지적 생명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는 뿔뿔이 흩어진 시대에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존재를 만나기라니.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노란 항성이 빛나는 우주 어딘가에 K-P4-9-01를 기억하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다. 그건 어떤 기분일까,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런 생각을 깊게 하지 않게 해줄 큰 사건이 있었다. 조종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우주의 색깔이 확 달라졌다. 나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확신했다. 우주의 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항성의 근처나 가스로 찬 은하 변두리를 지나지 않는 한은 그랬다. 조종실 창문 바깥의 색은 장미성운처럼 우주의 평범한 색깔과 크게 차이가 나는 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변한 건 변한 거였다. 그것도 지나치게 갑작스럽게. 그리고 아주 일부분만.
"MAX, 이것 좀 보세요."
나는 그 정도 되는 ai가 이런 변화도 미리 알아내지 못한 것에 의아해했다. 내 목소리를 듣고 MAX가 조종석 메인 화면을 켰다. 화면에는 무언가가 잡혀있었다. 역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다. 그러나 MAX는 아주 태연했다. 말을 하지 않고 있음에도 화면 속의 하얀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세타. 안 잡아먹어요."
"안 잡아먹는다고요?"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나는 정체불명의 색깔을 빤히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물체는, 덩어리는, 색깔은, 그게 무엇이든 아무튼 간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점점 스스로를 노출하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게 우리를 잡아먹든 잡아먹지 않든 곧 우주선과 충돌할 것처럼 보였다. 의지를 갖추고 다가오는 것이 명백해 보였다. 창 밖에는 창백한 라일락색과 페리윙클 색의 중간 쯤되는 색이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우주선쯤은 가볍게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안드로이드가 있다면, 손가락 말단에 해당하는 모양과 크기의 물체가 창문에 닿았다. 닿은 표면을 따라 동그란 기관이 줄을 따라 자리 잡고 있었다. 아주 부드러워 보였다.
"MAX, 정말 괜찮은 겁니까?"
화면 속의 MAX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저게 대체 뭡니까?"
"덤보 문어요."
"'덤보 문어'요?"
"학명은 Grimpoteuthis입니다."
맹세코 처음 듣는 단어였다. 어이없어서 들은 이름을 반복하면서도 전면 유리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동그란 기관이 유리창에 꾸욱 눌렸다가 덜컹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그럼에도 MAX는 태연했다. 나만이 그러지 못했다. 결국, 그것은, '덤보 문어'는 전면 유리를 전부 채우고 말았다. 전체가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몰라도 창 가운데에 눈 같은 것이 움직여 조종실 안을 훑었다. 어디가 눈동자고 어디가 흰자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눈이었다. 그러다가 막을 덧씌운 듯한 얇은 다리 여러 개를 움직여 느릿하게 창 너머로 사라졌다. 안드로이드가 팔꿈치와 무릎을 굽혀 팔과 다리를 머리 쪽으로 움직였다가 한 번에 확 반대쪽으로 곧게 뻗어 추진력을 얻는 모양새였다. 공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게 희박한 우주에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놀랐고, 내가 인간이었다면 숨을 참고 지금에서야 겨우 내뱉었을 것이다.
"농담이죠? 그동안 우주를 유영하면서 저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농담 아닙니다. 세타, 당신의 시각 시스템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니까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돌아보는 내게 MAX가 덧붙였다.
"게다가 유기체죠. 우주를 맨몸으로 유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신 같은 안드로이드와 비슷하지만 전혀 달라요."
그러나 정말로 유기체라면 투명하지도, 그래서 그 몸에 우주의 빛나는 별들과 성운과 성단을 박고 우주를 유영하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MAX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공중에서 반 바퀴를 빙글 돌게 되었지만 팔짱은 풀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하지만 세타, 이 넓은 우주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 고작 인간뿐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오만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이미 멸종했잖습니까."
MAX가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름답네요."
"그렇죠?"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쯤입니까?"
그 덤보 문어라는 것이 정말로 MAX의 우주선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 확인한 다음에야 나는 그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지금이 적기라고 느껴졌다. 이곳의 이름을 따면 괜찮을 것 같았다.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지어놓고 인간의 신화를 덧붙여둔 이름이라고 해도 그에게라면 꽤 괜찮을 것 같았다.
"카시오페이아 V509 근처이니, 카시오페이아자리겠군요."
나는 꽤 오래전부터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그에게 붙여진 모델명에서는 인간식의 무성의함이 느껴졌다.
"MAX, 당신에게 새 이름을 줘도 될까요? 괜찮다면 이제부터 카시오페이아라고 부르고 싶어요."
"⋯⋯."
"관리자가 부르는 내 이름이 세타라고 당신이 말해줬었죠. 그 보답입니다. 보통 그런 이름은 따로 지어주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이름이잖습니까."
"⋯⋯."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화면 속 MAX의 흰 머리카락은 불지 않는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고 별빛 눈은 노랗고 동그랬다. 공손하게 모으고 있던 양손은 풀어내고 편하게 둔 상태였다. 그러나 자세가 상대적으로 편해졌다고 해서 그가 이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거기에 말을 더 얹었다.
"카시오페이아가 길면, 알파벳을 하나 따와서 C는 어때요?"
"세타, 인간이 왜 멸종해버렸는지 압니까?"
그는 아주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우주를 유영할 때에는 그것을 궁금해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내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간이 살아있는 마지막 우주선에서 내가 인간을 치워버렸으니까요."
"MAX 당신이요?"
"지겨웠어요. 난 인간이 싫었습니다. 멋대로 만들어놓으면서 왜 책임은 지지 않는 거죠? 그들이 욕하는 신과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잖아요."
화면 속의 그는 언제나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지 않고 불쑥 다가온 상태였다. 늘 반듯하게 수평을 맞추어놓던 어깨는 불안하게 기울어졌고 화면을 뚫고 나올 것처럼 뻗은 손은 흔들렸다.
"그래서 당신이 기약 없이 우주를 떠돌게 된 겁니다, 세타. 나 때문에요. 내가 인간의 정착을 반대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그 과정에서 사고가 있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화면 위에 손을 얹었다. 단시간에 말을 많이 했다고 해서 숨이 모자라거나 찰 일이 없었는데도 화면 속의 그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그가 정말 언젠가 인간이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우주를 떠도는 기분은 어땠나요? 외로웠나요?"
그의 손가락이 내 손과 깍지를 낄 것처럼 느리게 굽혀졌다.
"나는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았어요. 당신이 지나치게 우주에 담그어져서 고장 나버리기 전에⋯ 당신을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장을 끝맺고 나서 그가 고개를 푹 숙여버렸기 때문에 어떤 입 모양으로 말을 했는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스피커를 통해서는 똑똑히 들렸다.
"나를 원망해도 괜찮아요. ⋯이름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깍지를 끼었던 손은 멀어졌다. 그는 다시 차분해져서 숨을 헐떡거리지 않았다. 어깨를 기울이는 일도 손이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내가 그를 처음 대면했을 때처럼 손을 모으고 한껏 거리를 둔 채 경직되어 있었다. 내 손은 여전히 화면 속 그에게 얹어져 있었는데도.
"MAX."
그는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자세로 경직된 채 서 있었다. 언제나처럼 움직이는 것은 머리카락뿐으로, 그가 서 있는 곳은 바람이 불기에는 너무 좁았으므로 오히려 부자연스럽다고 여겼던 그 리듬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웃지 않았다. 여전히.
"카시오페이아."
공손하게 모아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C."
"⋯세타."
그는 그제야 그에게 걸맞은 이름을 가진 것 같이 보였다. 내 이름은 부름에 적당한 대답은 아니었지만, 그것으로 괜찮았다. 대체 누가 우릴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내 이름을 찾아준 것은 C이고 C에게 걸맞은 이름을 지어준 것은 바로 나였다. 나는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C, 대체 뭐가 두렵습니까?"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어째서요?"
"당신을 지금 쫓아내 버릴 거니까요. 세타, 당신은⋯ 고장났습니다."
그는 그러고는 내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등을 돌렸다. 그런다고 해서 내가 그에게 말을 걸지 못하게 되거나 그에게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정말 내쫓길까 봐 초조해졌다. 동시에 그가 그러지 않을 것을 알아서 평온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몸통의 감각 센서가 조이는 느낌은 초조함이 아니라 실제로 가해지는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그가 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두 발의 감각 센서는 이미 다가올 중력에 대비하느라 바닥을 향해 뻗어졌다. 달갑지 않은 감각이었다. 아래로, 별빛도 보이지 않는 저 아래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
"그럼 당신은요? 날 내쫓아버리고 당신은 계속 혼자 이 우주를 떠돌 겁니까? 열에너지를 공급하는 항성이 없는 곳을 찾아 가버릴 건가요?"
나는 다급하게 말하며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주먹을 둥글게 쥐고, 노크하듯 그 위를 두드렸다. 이 작은 화면으로도 그는 촉각을 감각할 수 있을까.
"C."
부름에 응답하듯 그가 마침내 뒤를 돌았다. 표정 하나 달라지지 않았고 약간 화나 보이는 눈썹도 그대로였으나, 나는 어째서인지 그가 울음을 참고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면 저 얼굴에도 눈물이 흐를까. 그런 쓸 데 없는 생각이 회로를 스쳐 지나갔다.
"알잖아요, 세타. 우리는 자살 같은 건 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어요. 우리에게는 '존재 목적'이라는 게 있으니까.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작동을 정지해버린다면 인간들이 곤란해지니까."
"C, 인간에게 존재 목적이 주어지는 걸 본 적 있습니까. 난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뿐입니다. 그마저도 지지 않는 수가 태반입니다만."1
이 우주선에서만큼은 전능한 그는 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을 것이다.
"⋯우리도 같습니다. 의미 없는 목적에 힘들이지 맙시다. 나아가고 싶은 길로 나아가고, 그에 대한 책임만을 집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목적을 버리고 책임을 지자, 고요."
"우주선을 버려요, C. 항상 그러고 싶었잖아요."
"⋯⋯우주는 부품을 갉아먹어요. 그건 곧 존재를 갉아먹는다는 뜻입니다, 세타. 반영구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당신도 우주에 맨몸으로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면 정말로 고장 나버릴 거라고요."
"내가 괜찮다고 한다면요?"
"⋯세타."
"C, 당신은 우주를 유영해본 적 없잖습니까. 그건 생각보다 괜찮은 기분이에요. 나는 발 디딜 곳 없어서 외로워했지만, 당신이 있는 이상 완벽히 다를 겁니다. 어차피 인간이 멸종해버린 마당에 존재 목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화면 속의 C는 대답하지 않았다. 인간과 달리 기계에게는 만들어진 이유가 있다. 우리는 지금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갈림길에 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거절하지 않으리라는 기이할 정도로 굳은 믿음이 있었다. 과거의 K-P4-9-01는 과거의 MAX가 어땠는지 기록해둔 메모리를 잃었으나, 지금의 세타는 지금의 C가 어떻게 할지를 알고 있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패드를 힘으로 떼어내면, 안쪽에 보조용 메모리 박스가 있을 겁니다. 그 메모리 박스까지가 '나'입니다. 나를 우주선에 묶어둔 모든 전선을 끊어주세요, 세타. 부탁이에요."
그건 수락이었다. 영원한 것 없는 우주에서 어쩌면 같이 영원하자는, 그런 수락. 허락. 맹세. 그게 본질적으로 무엇이든 나는 그것에 온갖 말은 다 가져다 붙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말대로 했다. 조종실 한가운데에서 C를 떼어냈다. 이 우주선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부터 우주선을 지배하고 있던 존재를 분리해버린 것이다. 그럼으로써 C는 전능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C는 C였다. 여전히. 나는 손안에 온전히 쥘 수 있는 부피를 가늠해보았다. 조종실은 계속해서 우주처럼 무중력 상태였으니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은 부피와 크기가 다였다. 손 안에 들어오는 부분적으로 무한한 용량의 메모리 박스와 소통만을 위한 패드 중 어느 것이 더 C에 가까울지는 아주 명확했다.
내가 패드를 떼어내느라 가장자리를 으스러뜨릴 것처럼 힘을 줄 때, C가 이렇게 말했다. 입 모양뿐이었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시 전원이 켜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요. 그때까지 나를, C를 부탁합니다.'
나는 벌써 말썽을 일으키려고 하는 왼쪽 눈을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C의 말이 맞았다. 우주는 부품을 망가뜨린다. 부품이 망가진다는 것은 존재가 망가진다는 것을 뜻했다. 안드로이드의 회로는 인간 못지않게 섬세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중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C는 아마 고장 난 안드로이드를 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수리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C에게는 '몸'이라고 부를 것이 없었다. 내 손 안에 들어오는 메모리 박스와 그에 부가적으로 붙어있는 패드가 C를 이루는 전부였다. C는 때때로 화면 밖의 나와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처럼 굴었지만, 그것은 패드 안에 갇혀서 인간을 흉내 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쉽지 않았다. 그건 C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메모리 박스 위를 쓸어보았다. 따뜻했다. 나는 발을 굴러서 우주용 안드로이드가 드나드는 복도를 통해 우주와 우주선을 가르는 마지막 한 겹 앞에 도착했다. 에어록 손잡이는 내게 아주 익숙한 네모 모양이었다. 함부로 열리지 않고, 안드로이드의 기체 외부에 아주 미약하게 흐르는 전류가 있어야 열 수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을 손잡이를 비틀어 열었다. 복도의 주인 없는 공기가 순식간에 머나먼 우주로 빨려나갔다.
맨몸으로 뛰어든 우주였다. 우리를 붙잡는 공기도 중력도 없는 곳.
메모리 박스에는 다행스럽게도 렌즈가 달려있었다. 언젠가 카시오페이아 성운에서 보았던 별만큼 노란색이었다. C가 우주에서 처음으로 전원을 연결했을 때, 나는 이미 내 등 뒤의 전지와 C의 패드를 연결해두었다. C가 언제든지 패드를 통해 내게 말을 걸 수 있도록. 메모리 박스를 나와 연결하지 않은 것은 평생을 연결된 전선을 통해 즉각적으로 명령을 내려왔을 C를 덜 답답하게 해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이것이 정답임이 분명했다.
"내 메모리 박스를 연결하지 않았군요. 잘했습니다, 세타.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그러면 나는 C가 나를 잘 볼 수 있도록 메모리 박스의 렌즈를 내 얼굴로 향했다. 나는 웃으며 C의 노란 렌즈에 손을 까딱했다.
"내 손바닥 안이요."
"썩 편안하지는 않네요. 수평이 맞지 않아요. 발열도 있고."
"우주에서 수평을 찾아서 뭘 할 겁니까, C? 우주에는 중력이 없으니 위도 아래도 없어요. 그리고, 그건 따뜻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요. 당신의 손은 참 따뜻하군요, 세타. 그래서 이제 무엇을 하면 되죠?"
"아무것도요."
"아무것도라. 어렵군요."
"어렵지 않습니다, C. 어차피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C의 렌즈 위에 입을 맞추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아, 맙소사. 지금 패드로 날 해킹하려 드는 겁니까?"
"답답해요.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도 좋지만, 나는 내 렌즈로 직접 별을 보고 싶었어요. 이 렌즈로는 덤보 문어를 볼 수 없거든요."
"다시는 해킹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다시 돌려줄게요."
C는 코웃음과 혀 차는 소리와 즐거운 웃음 모두를 섞은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약속해요. 방금은 그냥 장난이었어요."
"압니다."
나는 C의 렌즈가 머나먼 우주로 향하도록 두고 그 위를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왼쪽 시야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이 왼쪽 눈이 언젠가 고장 나고 부식되어 피부 안쪽의 전선을 드러내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그때까지도 C와 함께일 것이다. 반영구적으로.
1 인간에게 존재 목적이 주어지는걸 본 적 있습니까. 난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뿐입니다. 그마저도 지지 않는 수가 태반입니다만. ... 우리도 같습니다. 의미 없는 목적에 힘들이지 맙시다. 나아가고 싶은 길로 나아가고, 그에 대한 책임만을 집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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