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너의 빛

2019. 1. 15. 작성 | 공백 미포함 10,938자 | 아이돌au

이코님 썰 기반 작성


"운이 좋았죠."

어떻게 아이돌로 데뷔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인터뷰어는 한 번 웃고는 그렇지 않다며 멋진 아이돌이라고 나를 칭찬해주었지만 멋쩍은 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멋진 아이돌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아.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떨렸다. 아이돌을 존경하고, 아이돌이 되고 싶어 노력한 건 맞다. 그러나 막상 발을 들인 아이돌계는 내 생각보다 훨씬 눈부시고도 가혹한 것이었다. 이미 연예계에 진출한 수많은 아이돌. 그 속에 있는 내 빛은 너무나도 작고 나약한 것만 같았다. 사람을 가리고, 패션 감각도 없고, 아이돌다운 포즈나 표정도 모르고,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해도 순발력과 능청스러움이 부족했다. 지금 인터뷰만 하더라도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 해서 인터뷰어분을 곤란하게 하고 있잖아. 그나마 자신 있던 달변도 당황에 휩쓸려 사그라진 지 오래였다. 침착하자. 나는 물과 함께 솟아오르는 생각들을 삼켜냈다. 그것이 녹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쌓여가는 것도 모른 채.


"수고하셨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바로 다리가 후들거린다. 수고했다며 훈훈한 말들을 주고받던 스태프들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며 지친 몸을 이끌었다. 애써 웃어보지만 무대가 끝났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자꾸만 몸에서 힘이 빠졌다. 오늘 무대 괜찮았을까. 큰 탈 없이 마쳤지만 자꾸만 자잘한 실수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조금만 더 동작을 크게 할걸. 힘들어하는 거 얼굴에 티 나진 않았으려나. 생각이 한쪽으로 빠지자 몸도 한쪽으로 기울었다. 아차. 주변에서 헛숨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세이프!"

"고마워, 쥬시마츠..."

"수고했어, 쵸로마츠형! 다들 수고하셨슴다!"

쥬시마츠가 축 늘어진 내 몸을 지탱해주며 환하게 웃었다. 쥬시마츠의 우렁찬 목소리에 주변이 화기애애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그것도 잠시, 다음 무대를 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스태프들을 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돌 시트러스로 데뷔한 지 벌써 몇 달은 되었건만 무대가 끝나면 매번 이렇게 픽픽 쓰러지고 만다. 체력이 안 좋은 건 아닌데 긴장해서 몸에 힘이 과하게 들어가서 그런 걸까. 괜히 내 팔을 만져볼 때쯤 스태프들 사이를 헤치고 매니저 형이 다가왔다. 우리 무대 반응이 괜찮았는지 얼굴에 미소가 번져있었다.

"둘 다 수고 많았어! 내일은 오전부터 기획사에서 회의 있는 거 알지?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푹 쉬어."

"저... 매니저 형, 오늘 저희 스케줄은 여기까지인 거죠?"

"응. 왜?"

"그럼 다른 애들 무대 보고 가도 될까요?"

"바로 집에 안 가고?"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더 아이돌다워지기 위해선 다른 아이돌의 무대를 보고 배워야만 했다. 잠시 고민하던 매니저 형은 지나가던 스태프와 얘기하더니 우릴 데리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자신의 겉옷을 내어주며 팬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라는 주의도 잊지 않고서. 무대와 관객석 사이, 카메라가 배치된 공간에 조심스레 발을 들였다. 같은 건물 안인데도 무대와는 다른 긴장감이 흐르는듯했다. 연속되는 촬영으로 카메라 감독들은 다른 데에 시선을 주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가까이 있는 감독님께만 간단히 인사를 드리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섰다. 우리 바로 다음 차례였던 아쿠아의 무대는 벌써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록 비트에 지그시 자신의 귀를 막았다.

"카라마츠형도 이치마츠형도 멋있네!"

"그러게."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쥬시마츠의 말에 조용히 동조했다. 어느 정도 아이돌의 정석을 따르는 우리나 프루티와는 달리 2인 밴드 형식을 채용한 아쿠아는 그 색채가 강하고 독특했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자리 잡은 팬층은 탄탄했다. 카라마츠가 구석에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손 키스를 날리자 객석에서 환호가 쏟아졌다. 이치마츠의 주먹도 날아갔지만. 저런 걸 어떻게 태연하게 하지. 팬서비스를 해주고 싶어도 카메라나 팬이 가까이 오면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는 나에게 있어선 오글거리는 걸 떠나 신기하기만 한 노릇이었다. 다음에 해볼까 싶어도 과연 기획사에서 허락해줄지 미지수였다. 다른 애들과는 달리 나에겐 촘촘한 기획사의 가이드라인이 있으니까. 그 덕에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긴 하지만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다른 애들을 보다 보면 우울해지곤 한다.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 걸까. 챙겨주는 게 고마우면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꺄~! 프루티 사랑해!!!"

가라앉으려던 생각은 함성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프루티의 두 사람, 오소마츠와 토도마츠가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여유 있게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에선 긴장감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넘쳐 보인다. 부럽다. 질투 섞인 감탄이 입 밖으로 새어나갔다. 눈이 마주치자 오소마츠는 보란 듯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저 녀석 나 윙크 못 한다고 놀리는 거지. 욱해서 일부러 알은체를 안 하자 오소마츠는 한 번 가볍게 웃고는 토도마츠와 함께 무대 중앙에 섰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두 사람에게 조명, 카메라, 모든 이의 시선이 쏠린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멜로디를 타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된다. 이곳의 모든 것이 마치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들의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가 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동시에 욱신거리며 아파져 온다. 아쿠아도, 프루티도, 내 곁에서 웃고 있는 쥬시마츠도 모두 무대에서 빛나고 있다. 나만 빼고. 그 모습이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좋은 아침! 4, 6, 3! Get you!“

"쥬시마츠, 제발 좀! 아, 안녕하세요..."

튀어나가는 쥬시마츠를 붙잡으면서 꾸벅 허리를 숙이자 다들 익숙해졌는지 그저 웃어주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기분에 휩싸이며 쥬시마츠의 등을 밀었다. 워낙 작은 기획사라 몇 걸음만 걸어도 회의실이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밀자 사장님과 매니저분들이 손을 흔들었다. 6명 중 도착한 건 우리들뿐인 것 같다. 맨날 늦지, 그 녀석들... 6명 전체가 있었으면 그래도 나았을 텐데 우리만 있으니 숨이 턱 막힌다. 매니저분들과는 제법 친해졌지만 사장님은 그 직책 때문일까 아직도 멀게만 느껴졌다.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건네주시는 대화도 뻣뻣하게 굳어 대답하니 죄송하기만 했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옆에서 태연하게 영문 모를 대답만 하는 쥬시마츠가 부러워질 때쯤, 소란스럽게 문이 열리며 나머지 4명이 들어왔다. 순식간에 풀어지는 분위기에 참아왔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회의라고는 했지만 실제 분위기는 면담에 가까웠다. 데뷔하고서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몇 달. 모처럼 6명 전원 스케줄이 빈 날에 아이돌 생활은 어떤지 이야기나 들어보려는 것 같았다. 편안한 분위기에 휩쓸려 혹여나 말실수할까 싶어 우물쭈물하는 나와 달리 다른 애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마련된 다과를 즐기며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라곤 모두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6인 3색, 애초에 다른 것을 컨셉으로 내세운 우리들이지만 한날한시에 데뷔한 만큼 기획사 대우에 있어선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잠깐의 대화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프루티나 아쿠아는 팬들과의 소통이 활발했다. 아쿠아의 게릴라 콘서트나 프루티의 팬 미팅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토도마츠가 SNS를 한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았다. 나에겐 SNS는 하지 말라고 해서 6명 전원 똑같이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몰래 토도마츠한테 왜 안 알려줬냐고 물어보니 그걸 굳이 말해야 하냐는 드라이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나는 못 하는데 왜 너는. 날카로운 말이 튀어 나갈 것 같아 그냥 입만 다물었다.

그 뒤로 어떤 이야기도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말들이 다 내 위치가 이 정도뿐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지그시 누르며 어떻게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웃었다.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나 한 사람 때문에 깰 순 없었다. 그러나 사장님이 너희 맘대로 하라며 프루티에게 말할 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짧은 그 한 마디에서 프루티에 대한 깊은 신뢰감이 느껴졌기에. 프루티와 달리 나는 그만큼의 신뢰도를 주지 못한 걸까. 그래서 내겐 매번 가이드를 주시는 걸까.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항상 실수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던 날들, 그 노력에도 기획사에 믿음을 주지 못했다면 나는...

"쵸로마츠군."

"......"

"쵸로마츠군!"

"네, 네?!"

"쵸로마츠군은 어떤가? 유독 우리 지시가 많아서 힘들 텐데."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저 때문에 매번 가이드를 미리 준비해주시느라 힘드실 텐데...”

"쵸로마츠군은 마음도 넓군. 매번 잘 해줘서 고맙네."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사장님을 따라 웃어 보였다. 제발 이번만큼은 자연스러운 미소가 지어지길 바랐다. 하지만 결국은 또 얼굴에 뭔가가 드러났는지 사장님은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슬슬 자리를 정리하자며 일어나셨다.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내 신경도 긁었다. 우리를 배려해주신 건지 사장님은 먼저 나가시며 다과 다 먹고 천천히 나와도 된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 뒤를 매니저분들이 따르고, 회의실 안에는 우리 6명만 덩그러니 남았다. 모처럼 모였으니 우리들끼리 대화도 하고 친해지라는 뜻일까. 원치 않는 배려에 오히려 목이 막혔다. 괜히 혼자 어색해서 오렌지 주스만 홀짝이고 있자 의자에 편히 몸을 늘어뜨린 오소마츠가 발을 흔들며 말했다.

"쵸로마츠는 편해서 좋겠네~ 기획사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고~"

"...뭐?"

장난스러운 말투 속엔 은근한 가시가 박혀있었다. 무심하게 깊이 파고드는 말에 제대로 된 반박도 못 하고 있으니 오소마츠는 씩 웃었다. 무대 위에서와는 다른, 마치 악마와도 같은 웃음이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아이돌이 아니라 그냥 인형 아님? 아이돌이 얼마나 안 맞으면 기획사가 그럴까~"

의자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소마츠는 내 앞에 넘어져 있었다. 카라마츠가 잡아챈 내 오른손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주먹뿐만이 아니다. 몸 전체가 떨리고 있다. 거칠어진 숨을 어떻게든 내시며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러나 생각을 헤집으면 헤집을수록 질척질척하게 변해갔다. 아까의 대화가, 오소마츠의 말이, 내 생각이 서로 뒤엉키고 부딪히며 나를 찔러댄다. 이윽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그딴 건..."

"뭐?"

"그딴 건 내가 제일 잘 알아!"

빽 소리를 지르자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마저도 내가 감정 조절도 제대로 못 하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싫었다. 모여드는 시선들, 웅성거리는 소리. 아이돌을 하면서 몇 번이나 겪어본 것이었지만 이번엔 확연히 질이 달랐다. 마치 나와 아이돌을 맞지 않는다고 질책하는 것만 같았다. 저절로 뒷걸음질이 쳐졌다. 점차 다른 애들의 표정이 시야에 들어왔다. 경악하고 흔들리는 눈빛들. 언제나 웃고 있던 쥬시마츠조차도 지금만큼은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싶은 후회하는 것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조소가 앞섰다. 결국은 일을 쳤구나, 쵸로마츠.

"내가... 아이돌 그만두면 되잖아..."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도망쳤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달려나갔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손은 아팠고, 목은 메고, 눈물은 계속 흐른다. 진짜 엉망진창이다. 그 와중에 누가 나를 알아볼까 두려워 후드를 눌러쓰고 달렸다. 눈길이 닿는 대로, 빛이 있는 곳으로. 그래, 마치 불나방처럼.


"...뭐야?"

나는 활짝 열린 회의실 문을 보며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얼굴을 세게 얻어맞았지만 그것보다도 현재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어 아픈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곱씹어도 쵸로마츠가 한 말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누가 뭘 그만둬? 뒤늦게 상황판단을 하기 위해 들어온 사람들에게 토도마츠가 똑같은 말을 반복해도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카라마츠가 나를 일으키고, 이치마츠가 정신 차리라고 말해도 그저 쵸로마츠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바닥이 뚫릴 정도로 그 자리를 노려보아도 쵸로마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가벼운 질투였다. 기획사가 전력으로 서포트해주고, 사장님이 칭찬해주는 쵸로마츠에게 작은 심술을 부렸을 뿐이었다. 언제나처럼 쵸로마츠가 화를 내고 내가 웃으며 넘기면 됐을 일이었다. 결코 울리려고 한 게 아니었다. 나는 울리려고 한 게...

"오소마츠형아."

노란색이 시야에 침투해왔다. 쥬시마츠는 쵸로마츠가 있던 곳에 똑바로 서서 날 바라보았다. 새까만 눈동자에선 오늘따라 유독 의중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오소마츠형이 잘못했어."

"내가 뭘! 그냥... 그냥 좀 장난친 것뿐이잖아!"

어린아이처럼 화를 내자 쥬시마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쵸로마츠는 데뷔한 뒤로 계속 자신이 아이돌에 맞는지 고민했다고. 어제 남아서 우리들의 무대를 본 것도 우리를 부러워해서 그랬던 거라고. 끊임없이 자신과 우리들을 비교하며 우울해했다고도 말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쥬시마츠 말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이야기였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쵸로마츠라구? 기획사 사람들한테도, 스태프한테도, 팬들한테도 사랑받는 녀석이잖아. 걔가 왜 우리를 부러워해? 미성에 얼굴도 예뻐, 노래도 잘해, 거기다 라이브든 촬영이든 모든 활동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칭찬이 자자한데. 툭하면 안무를 까먹어서 애드리브로 넘기는 나와 달리 쵸로마츠는 노래도 춤도 정확했고 매번 탄탄하게 짜인 무대를 선보이잖아. 그 녀석만큼 아이돌다운 녀석이 여기 어디 있다고. 그래, 부러운 건 오히려 나였다. 같은 아이돌로서도, 한 명의 팬으로서도 나는 쵸로마츠를 동경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쵸로마츠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똑같았을 텐데 정작 그 본인은 그런 것도 모르고 우리만 부러워하고 있었다고?

"바보 같아..."

쵸로마츠가 바보 같다고 하는 것인지, 나 자신이 바보 같다고 하는 것인지 말하는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 듣던 사장님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자신과 둘만 있으면 불편해하길래 여럿이면 나을 줄 알고 불렀던 건데 이렇게 악효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나 때문? 나 때문이야? 갑자기 쵸로마츠한테 맞은 볼이 욱신거리며 아파졌다. 다급하게 매니저가 쵸로마츠에게 연락을 했지만 회의실 책상 위에 있던 핸드폰 하나가 징징 울릴 뿐이었다. 진동으로 조금씩 움직이던 휴대폰은 바닥으로 떨어져 액정에 금이 가고 말았다. 다들 난리가 난 와중에 쥬시마츠는 쵸로마츠를 찾으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자기는 쵸로마츠를 잡을 수 없다면서. 무슨 소리야, 네가 우리 중에서 가장 빠르잖아. 그렇게 말해도 쥬시마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쵸로마츠형을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건 오소마츠형뿐임다."

쥬시마츠의 커다란 눈동자에 내가 비추어 보였다. 꼴사나운 내 모습이. 그 모습에서 도망치듯 후드를 뒤집어쓰고 기획사 밖으로 뛰쳐나갔다.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다른 애들이 말려준 덕인지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무작정 달리고 또 달렸다. 쵸로마츠가 어디로 갔는지는 짐작 가는 곳은 없었지만, 죄책감이 자꾸만 내 등을 떠밀어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도망쳐버렸다. 홧김에 아이돌을 그만두겠다는 말까지 하고서. 웅크리고 앉아 진정해보려고 내 몸을 끌어안아 보지만 오히려 내 떨림만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바로 뛰쳐나온 탓에 핸드폰을 기획사에 두고 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아마 지금쯤 엄청나게 울리고 있을 테니까. 오늘 스케줄은 딱히 없고, 내일은 포스터 촬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떻게든 대처해주시지 않을까. 이 와중에도 이런 걱정을 하는 나 자신이 웃겼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을 텐데. 펜스에 기대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노래도, 말도 들리지 않는 곳에 와서야 나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진작에 이래야 했다. 내 분수를 깨닫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이렇게 상처받는 일도, 누군가를 상처 주는 일도 없었을 텐데. 속은 후련했지만 마지막에 본 애들의 표정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무심코 힘껏 때려버렸는데 오소마츠 얼굴 흉지면 어쩌지. 내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다. 몰라, 그런 자식. 그 잘난 얼굴로 알아서 잘 먹고 잘살겠지. 손으로 눈물이나 닦아보려 했지만 눈물이 계속 쏟아져서 소용이 없었다. 닦는 게 아니라 아예 세수하는 것 같아서 그냥 흘러가게 두었더니 후드티 위로 눈물 자국이 하나둘 번져갔다. 어쩐지 피곤하다. 숨 가쁘게 달려온 탓일까. 햇볕도 따스하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어서 스르륵 눈이 감겼다.

"쵸로마츠!!!"

쾅 소리와 함께 눈이 바로 번쩍 뜨였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두리번거리니 옥상 문 앞에 오소마츠가 서 있었다. 왜 네가 여기에. 도망치면서도 후드로 얼굴을 단단히 가렸고, 방학에 보충도 끝났을 시간이라 학교엔 사람이 거의 없을 터였다. 대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뒷걸음질을 치자 펜스가 나를 막아섰다. 5층 높이라 펜스를 넘어갈 수는 없고, 유일한 도주로인 계단은 오소마츠가 막고 있다.. 어쩌지. 건물 아래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침착하자. 오소마츠는 분명 날 잡으러 온 걸 테니까 곧 나한테 달려들 거다. 다른 건 다 오소마츠에게 뒤처질지 몰라도 다리만큼은 내가 더 빠르니까 오소마츠가 문에서 떨어졌을 때를 잘만 노리면... 미리 자세를 잡고 마른 침을 삼켰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끝이다. 오소마츠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데 오소마츠는 갑자기 허리를 숙였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힘이 쭉 빠졌다. 아니, 정신 차리자. 혹시 이게 작전일 수도 있는 거잖아.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오소마츠를 노려보니 오소마츠는 주저하는 듯이 느리게 허리를 폈다. 다시 마주하게 된 오소마츠는 어쩐지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기획사에서 연기 레슨도 받았나?

"...네가 뭘 잘못했는데?"

"그, 그거야 기획사가 시키는 대로 해서 편하겠다든가, 인형이라든가 말했던 거... 나는 진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맞는 말이잖아."

"뭐?"

"오히려 내가 너 때린 거 사과해야 하는 거 아냐?"

미안해. 사과할 테니까 나 못 본 척해줘. 오소마츠가 했던 그대로 허리를 숙이고 용서를 구했다. 실제로 미안한 마음이 반, 이러면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서 슬쩍 오소마츠를 바라보니 오소마츠는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무척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어이없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어라, 나 또 뭐 잘못했나? 허리를 제대로 펴기도 전에 오소마츠가 쿵쿵거리며 내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기세가 엄청나서 도망칠 생각도 미처 하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다 펜스와 오소마츠 사이에 갇혀버렸다. 망했다. 이 정도 거리면 도망치지도 못하는데. 억지로 끌고 갈까 무서워 펜스를 꽉 붙잡았다.

"너 진짜 몰라?!"

"머, 뭐를?"

"진짜 모르는 거냐고! 너 바보야?!"

"사과를 할 건지, 시비를 걸 건지 하나만 해!”

내 걱정과 달리 오소마츠는 그저 내 앞에서 씩씩거릴 뿐이었다. 혼자 개그라도 하는 것인지 제 머리를 뜯고 제자리에서 붕붕 뛰던 오소마츠가 돌연 내 어깨를 붙잡고 소리치듯 말했다.

"난 말이지! 좋아한다구!"

"뭘...?"

"그, 그러니까... 네 무대를!"

"...으응?"

"너 원래부터 목소리 엄청 예쁘고! 거기다 노래도 깔끔하게 잘 부르고! 음정이랑 춤 정확하게 딱딱 맞추는 게 얼마나 멋있는지 알아? 나는 맨날 대충 내키는 대로 넘기기 일쑤인데 넌 항상 완벽하게 해내고, 또 거기서 더 노력한다고 다들 널 좋아하고... 적성에 안 맞느니 그런 건 거짓말인 게 당연하잖아! 그냥 네가 부러워서 심술부린 거야! 그런데 네가 아이돌을 그만두겠다니 그게 말이 돼?"

속사포처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칭찬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날 꾀어내기 위한 말이라고 스스로 타일러 봐도 요동치는 심장은 쉬이 진정되질 않는다. 칭찬을 듣는 것 자체도 어색하고 민망한데 예쁘다느니 멋지다느니 그런 말을 오소마츠한테서 듣다니... 어깨를 붙잡힌 상태라 도망칠 수도 없어서 시선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거짓말...! 그런 입에 발린 소리 해봤자 소용없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니까! 애초에 네가 아이돌이랑 안 맞았으면 기획사가 무리해서 널 데뷔시켰을 리가 없잖아!"

"그거야 사람이 적어서 운 좋게 나도 데뷔했을 뿐이고..."

"그니까 그런 게 아니라고!"

아! 답답해! 오소마츠는 소리를 빽 지르고는 내 옆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세워 앉아 고개를 떨구고 한숨만 푹푹 내쉬는 게 아까 내 모습이랑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억지로 끌고 가려는 것 같진 않아 슬그머니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흘끔 날 훔쳐보는 오소마츠의 볼이 잔뜩 부풀어져 있었다. 삐진 걸까. 무심결에 볼을 쿡 찌르니 오소마츠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너 안 가?"

"안 가."

"기획사가 나 안 데리고 오면 오지 말래?"

"응. 너 없으면 우리 망한다고 혼자는 절대 오지 말래."

"또 거짓말..."

"넌 속고만 살았어?"

"믿을 수 있어야 믿지..."

"일단 기다려봐. 네가 그렇게 모르겠다면 내가 알려줄게."

그러니까 속는 셈 치고 나랑 있어 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깊고 조용했다. 거짓말이 아닌 걸까. 아니면 단지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뿐일까. 그 답을 알고 싶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소마츠가 나를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그때야말로 기획사와 제대로 담판을 짓고 아이돌을 관두면 되는 거니까.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소마츠는 씩 웃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같은 나이면서 묘하게 형처럼 행동하는 구석이 있다니까. 그래도 햇볕도 따스하고 바람도 기분 좋게 불고,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도 포근해서 스르륵 눈이 감겼다.


오소마츠마저 뛰쳐나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기획사 직원분은 혹시 모를 스케줄 펑크에 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남겨진 멤버들도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신경 쓰여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어색한 공기만 돌아다니는 회의실에서 토도마츠의 스마트폰만 울어댔다. 한 번, 두 번... 이윽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알림 폭탄에 하는 수 없이 토도마츠는 분위기 때문에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을 잡았다. 익숙하게 잠금을 풀고 원인을 찾아 트위터에 들어가니 프루티 공식 계정 알림창은 리트윗과 마음, 온갖 멘션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토도마츠는 헛숨을 삼켰다. 이 계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프루티 매니저와 오소마츠, 토도마츠 단 세 명뿐이었다. 토도마츠는 오늘 공식 계정에 들어간 적이 없고, 매니저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쵸로마츠의 일을 메꾸러 들어간 상태라 뭔갈 했을 리가 없다. 그럼 남은 건... 문제의 트윗을 확인하고서 토도마츠는 웃음을 터트렸다. 호기심에 다가온 다른 멤버들도 하나같이 트윗을 보고선 똑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소마츠형답네. 모두 그렇게 입을 모았다. 토도마츠는 멤버들을 한 번 둘러보고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사무소 중심엔 사장님이 서서 계속 상황을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토도마츠가 헛기침으로 인기척을 내자 사장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나 평온해 보이던 얼굴에서 지친 기색을 볼 수 있었다.

"저기 사장님."

"무슨 일인가, 토도마츠군."

"아무래도 우리 리더가 또 사고를 친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토도마츠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사장님께 내밀었다. 프루티 트위터 계정으로 올라간 짧은 트윗 하나가 액정에 떠올라있었다. 우선 제일 먼저 보이는 쵸로마츠 사진에 사장의 눈이 커졌다. 곤히 잠이 든 것인지 쵸로마츠는 눈을 감고 세모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우선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찾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서야 트윗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13시! 시트러스의 쵸로마츠가 모교에 등장!』

짧은 텍스트를 몇 번이나 읽은 후 사장은 다른 멤버들이 그러했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자기 입으로 마음대로 하라고는 했지만 오소마츠의 행동은 항상 상상을 초월했다. 큰 박수 소리로 직원들의 집중을 모은 사장은 토도마츠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런 사고는 환영해야지 어쩌겠나."


"쵸로마츠, 쵸로마츠~ 일어나봐."

"으음..."

날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언제 잠들었던 거지. 눈을 비비며 잠을 몰아내니 오소마츠가 웃으며 내 볼을 톡톡 건드렸다. 그제야 오소마츠한테 기대어 자고 있었단 걸 깨닫고 황급히 몸을 뗐다. 너무 가까웠잖아! 왜 진작 안 깨운 거야! 따지기도 전에 오소마츠는 내 손을 잡고 날 일으켜주고선 에스코트하듯이 정중한 몸짓으로 나를 이끌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기획사로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따라가니 반대쪽 옥상 끝에 가까이 갈수록 소란스러운 소리가 커진다. 이윽고 학교 운동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여?"

오소마츠의 질문은 함성에 묻혔다.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보자 운동장엔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다들 한마음 한뜻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얼떨결에 꾸벅 인사를 하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오소마츠를 바라보니 오소마츠는 말없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프루티의 공식 트위터 계정, 거기에 뜬금없이 내가 자는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말과 함께. 그 아래에는 당장 보러 가겠다거나 못 보러 가서 아쉽다, 언제까지 있을 건지 묻는 등 수많은 멘션들이 달려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종 알림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었다. 혹시 내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비몽사몽한 머리로는 이 상황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오소마츠, 이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널 만나러 왔어. 갑자기 부른건데도."

그렇게 말하며 오소마츠는 뿌듯하게 웃었다. 내가 잠든 동안 정말 터무니없는 짓을 했구나. 학교랑 기획사 측은 어떡하라고. 헛웃음을 지으며 다시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눈을 몇 번이고 깜박여도 모여있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방학이라고는 해도 평일이고, 트윗을 올린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것도 시트러스가 아닌 프루티 계정으로. 그런데도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와주었다. 멘션들을 보면 아직 오는 중인 사람도 있었고, 여길 오질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었다. 무대가 아닌 곳에서 팬들의 반응을 이렇게 실시간으로 생생히 보는 게 처음이라 몸이 떨렸다. 날 기다리느라 너무 오래 서 있던 건 아닐까? 할 일이 있는데 던져두고 나온 건 아닐까?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이벤트에 오히려 실망하고 떠나가면 어떡하지? 불안해서 펜스를 꽉 쥐고 있는데 운동장 한편에서 누군가가 날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익숙한 회색 재킷. 매니저 형이다. 봤다는 뜻으로 손을 맞흔드니 매니저 형은 무언가 전하려는 듯 열심히 팔을 움직였다. 매니저 형 근처에는 언제 세운 것인지 천막 하나가 있었고, 그 아래에서 익숙한 노란 후드가 튀어나왔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임시 부스를 만든 건가? 학교랑 기획사랑 가깝고 우리 기획사에서 데뷔한 게 우리밖에 없다지만 대응 참 빠르다. 모든 것이 다 당황스러워 눈만 깜박이고 있는데 오소마츠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니 오소마츠는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이돌 그만둔다거나 그런 슬픈 얘기 하지 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단하고, 빛나고 있고,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어."

그러니까 돌아가자. 오소마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멍하니 내려다보다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졌다. 이건 이해할 수밖에 없다. 다른 아이돌들의 빛에 눈이 멀어 잠시 잊고 있었다. 무조건 노래를 잘 부르거나 춤을 잘 추는 게 아이돌의 모든 게 아닌 것을. 팬이 있어야 비로소 아이돌이 있다. 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내 팬들의 존재를 그동안 왜 잊고 있었을까. 그동안 내 안에 너무 갇혀 외부의 소리를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실수한 부분을 스스로 되짚어보기보다는 매니저 형에게 어땠는지 물어보고, 다른 팀의 무대를 보고 그저 부러워하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눠봐야 했었는데...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잡생각들을 몰아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팬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펜스에서 한 발자국 떨어지니 오소마츠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자신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처럼. 이상한 수를 썼다 싶었더니 의외로 정공법이었다. 나는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준비됐어?"

"응. 일단은."

"긴장돼?"

"조금. 쥬시마츠가 아니라 너랑 무대에 서려니 더 걱정돼."

"너무하지 않음?!"

오소마츠의 반응에 키득키득 웃으며 마이크를 다시 쥐었다. 시트러스 때 쓰던 이어 마이크가 아니라 핸드 마이크를 쓰려니 영 어색했다. 드디어 열린 우리 6명만의 콘서트. 팬들을 위해 준비한 파트너 체인지 무대가 한창 펼쳐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이치마츠와 쥬시마츠의 무대가 끝나고 우리 차례다. 머릿속으로 가사와 동선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벌써 팬들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물로 목을 축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오소마츠는 늘 그랬듯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쵸로마츠, 가자."

"그래, 오소마츠."

그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랐다. 머리 위에서 강렬하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무대 앞에는 여러 가지 빛깔의 펜 라이트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우리 둘은 함께 웃으며 그 빛 속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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