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꽃이 지고 피는 순간

2019. 1. 13. 작성 | 공백 미포함 5,478자 | 천호 오소마츠X쵸로스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나에게 꽃을 바치던 가문이 있었다. 차라리 먹을 거나 달라며 짓궂은 짓도 해보았지만, 오히려 더 정성껏 꽃을 바치길래 그만둔 것도 벌써 몇백 년 전. 아마 오늘도 어김없이 신사에는 이름 모를 꽃이 올라올 것이었다. 딱히 꽃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굳이 좋다, 싫다 중 하나를 고르자면 싫어하는 쪽이기는 했지만.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에게는 꽃이 폈다 지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라 그 찰나를 두고 아름다움이니 뭐니 떠드는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그 덧없음이 좋다나 뭐라나. 어차피 꽃이 지면 다 끝인데 바보같이. 내 눈에는 똑같이 짧은 삶을 살다가는 인간들이 그보다 더 짧은 꽃을 두고 미를 논하는 것이 퍽 우스웠다. 어느 봄날, 벚꽃이 만발하던 그 날 전까지는. 그날, 꽃을 올릴 사람 한두 명만 오던 평소완 달리 벚꽃을 보러 그 가문 가족 모두가 신사를 찾아왔었다. 토리이 위에 앉아 보기 드물게 조금 들떠 보이는 인간들을 보며 이번엔 쥐방울 같은 것들도 데려왔구나 하던 때였다.

「신님?」

싱그러운 초록을 머금은듯한 작은 눈동자가 나에게 향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애는 저 가문의 아이가 아니구나. 생김새도 영력도 모든 것이 다른 그 아이는 그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듯이 그들과 똑같은 기모노를 꼭 입고 있었다. 자신만큼이나 작은 꽃다발을 품고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아이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안녕, 꼬마야.」

꽃이니 인간이니, 아름다움이니 덧없음이니 그런 것엔 관심 없었다. 그래도 똑같이 짧은 생이라면 조금이라도 반응하는 쪽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단순한 생각이었다. 잠깐의 유희, 오래 사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순간의 변덕이었다. 그 변덕이 진심이 된 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또 거기 계시는군요. 할 일이 그렇게 없습니까."

날카롭게 날아오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붉은 토리이 밑에는 초록색 기모노를 단정하게 입고 있는 청년, 쵸로스케가 서 있었다. 그의 품에는 오늘도 이름 모를 꽃다발이 안겨있다. 한결같으면서도 어느새 너무도 커져 버린 나의 쵸로스케. 묘한 기분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나는 토리이에서 가볍게 뛰어내렸다.

"나 항상 할 일 없는 거 쵸로스케도 잘 알잖?"

"명색이 신인데 뭐라도 하시라는 말입니다. 매일 백수처럼 뒹굴고 있는 신에게 매일 꽃을 바치는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꼬박꼬박 꽃을 들고 찾아오는 너를 성실하다고 해야 할까,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너에게 싫으면 안 와도 된다고 했다가 진짜로 안 올까봐 장난으로도 말 못 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건 알겠다. 그저 피식 웃어 보이고 들고 있던 우산을 어깨에 기댄 채 네 옆에 바짝 붙었다. 처음엔 놀라고 화도 내더니 이제는 익숙해진 것인지 무덤덤하기만 한 네 모습에 헛웃음을 삼킨다. 살짝 머리를 기대니 뺨을 타고 온기가 전해져오고, 풀 내음이 섞인 네 체취가 코끝을 간질인다. 잠시 정신이 아찔해져 눈을 감았다 떴다. 정작 네가 들고 있는 꽃에선 별다른 향이 나지 않음에도 너의 향기는 날이 갈수록 진해져만 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건 무슨 꽃?"

"호접란입니다. 좋은 것들이 들어왔길래 가져와 봤죠. 예쁘지 않습니까?"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잎사귀 하나하나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손끝에 꽃잎이 스칠 때마다 네 입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제법 잘 웃는구나.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최근에 다요코마저 시집간 직후에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더니. 꽃을 만지는 널 따라 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나는 꽃보다 네가 더 예쁜 것 같은데."

"정말이지. 그런 말을 잘도 하시네요."

퉁명스러운 말투지만 뺨에 닿는 네 귀는 뜨겁다. 참지 못하고 그만 웃어버리자 쵸로스케는 눈을 매섭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본다고 해도 지금의 나는 그 눈빛마저 사랑스럽다. 솔직히 나는 그때 네가 꽃처럼 질 줄 알았다. 매일 성실하게 신사를 찾아오던 네가 신사에 갈 생각도 못 한 채 방구석에서 울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런 너를 보며 멍하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이미 무수한 사람을 떠나보낸 나로서는 고작 한두 사람 때문에 우는 널 이해할 수가 없었고, 살아온 시절이 무색하게 널 어떻게 달래야 할지도 몰랐다. 다만 네가 우는 것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손을 뻗어 네 눈물을 닦아주었고, 고개를 든 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언제나 싱그러운 초록으로 가득 차 있던 네 눈동자가 슬픔과 허무함으로 탁해져 있었기에. 손에 쥐기라도 하면 바로 바스러질 것처럼 너는 메말라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깨달았다. 지독히 길고 지루한 나의 삶에서 너의 존재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는 걸. 금방이라도 사라질듯한 너를 내 품에 가두고 그 온기에 파묻혀 네 존재를 실감하려 했다. 여기 있다며 쿵쿵 울리는 네 심장 소리만이 위안이 되어주었다. 맞닿아있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쵸로스케."

"네."

"쵸로쨩~"

"네에."

"나의 쵸로스케~"

"왜요. 왜 자꾸 불러요."

"그냥~"

말꼬리를 늘리며 웃어버리니 쵸로스케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못 말리겠단 식으로 웃어주었다. 그래, 너는 이렇게 다시 피어났다. 그야말로 꽃처럼. 비바람에 꺾이고, 여름 땡볕에 말라가고, 겨울 냉기에 땅속으로 사그라들어도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너는 진한 향기를 품고 다시 나에게로 날아왔다. 꽃처럼 여리고 강한 사람, 나는 그런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꽃이니 인간이니, 아름다움이니 덧없음이니 이제는 그런 것들을 알 것도 같다. 끝이 있기에 살아있는 한순간 한순간이 찬란하게 빛나고,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음을 알기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시간. 그래서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담아내고 싶은 시간. 네가 떠나도 너와 함께한 시간은 내 속에 평생 살아 숨 쉴 것이 분명했다. 영원이 될 이 찰나를 너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쵸로스케, 사랑해."

"네, 저도요."

나는 매 순간 너에게 반할 거야. 부드럽게 입술이 맞닿고 너의 온기가 나에게로 전해져온다.


아버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꽃꽂이의 아름다움은 꽃을 꽂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그러니 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으라고 하셨다. 옷은 늘 단정하게, 네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말고, 그 누구와 이야기하든 예의를 갖추어서, 네가 생활하는 곳과 지나가는 곳 모두 청결하게 유지하라. 아버님의 말씀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고 행하며 나는 미도리토가 되었다. 반면 어머님은 꽃의 아름다움은 자연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여도 자연의 아름다움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따라서 자연의 아름다움, 즉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셨다. 그런 연유로 어머님이 살아계실 적에 가족 다 같이 신사로 벚꽃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님과 다요코는 즐거워 보였고 기분 탓인지 아버님도 평소보단 부드러운 것 같았다. 유난히도 푸르렀던 하늘 아래, 태양 빛을 받으며 흩날렸던 벚꽃의 색채를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신님?」

그리고 그 속에 그가 있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는 늘 듣던 옛날이야기와 어린아이의 상상이 만들어낸 환상인 줄 알았다. 내 상상력이 그렇게까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로 내가 본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벚꽃에 휩싸인 붉은 토리이 위에 그보다 더 붉은 옷을 입은 남자. 아무리 눈을 깜박여도 그의 머리에 난 귀와 풍성한 꼬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지루한 것처럼 공허한 눈동자로 우리 가족을 보던 그의 눈이 나에게 향하고는 곱게 접혔다.

「안녕, 꼬마야.」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의 눈에 붉은 기가 돌았다.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에 나는 내 품의 꽃다발을 더욱 세게 껴안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그는 말했다. 자신은 이 산의 신 '오소마츠'라고,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으니 이제 매일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부탁을 가장한 명령에 어린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얼마나 뒤척거렸는지 모른다. 상상력이 좋진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었다. 신의 저주라든가 천벌이라든가 카미카쿠시라든가.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상상들을 쌓아가며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그는 별다른 건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가져온 꽃이 무엇인가 묻고, 장난을 치며 이야기를 즐겼을 뿐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 무심했던 눈빛처럼 그는 나에게조차 무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태도가 내겐 안심이 되었다. 미도리토가의 장남, 도련님, 차기 가주, 다요코의 오빠….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이름이 그의 앞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쵸로스케. 그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선 아무런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강제로 시작된 신님의 말 상대는 어느새 내가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있었다.

"또 거기 계시는군요. 할 일이 그렇게 없습니까."

오늘도 오소마츠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토리이 위에 앉아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어 보인 그는 우산을 타고 나에게로 날아왔다. 언제 봐도 가볍고 날렵한 동작이다. 바람결에 그의 머리카락과 털이 흩날렸다.

"나 항상 할 일 없는 거 쵸로스케도 잘 알잖?"

"명색이 신인데 뭐라도 하시라는 말입니다. 매일 백수처럼 뒹굴고 있는 신에게 매일 꽃을 바치는 제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랬다. 그날부터 계속 나는 꽃을 들고 그를 찾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도리토가는 우리 가문을 지켜주는 그에게 계속 꽃을 바쳤다고 한다. 본래는 가주가 하는 일이지만 천벌이 두려웠던 나는 매일 그에게 찾아가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아버님께 그 일을 맡겨달라고 부탁드렸다. 어린 애가 벌써 가주 자리를 노린다느니, 가주님의 몸이 안 좋아지신 것일지도 모른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돈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오로지 천벌 걱정만 머리에 차 있던 어린 나는 꿋꿋하게 고개를 숙였고 아버님은 의외로 순순히 내 부탁을 들어주셨다. 아주 미약하게 아버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그때 아버님은 자신의 끝을 이미 알고 계셨던 걸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다요코마저 떠나간 지금 가문이고 뭐고 이젠 다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꽃을 바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이게 그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니까. 그가 나의 옆에 바짝 붙어 서더니 머리를 기대어 왔다. 그의 머리카락이 내 귀를 간질여오고, 뺨에 그의 숨결이 닿는다. 짐짓 태연한 척을 해보지만 몇 번을 닿아도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는다. 오늘도 어김없이 쿵쿵 울리는 내 심장 소리에 눈을 돌리고 꽃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서 그건 무슨 꽃?"

"호접란입니다. 좋은 것들이 들어왔길래 가져와 봤죠. 예쁘지 않습니까?"

손끝으로 조심스레 꽃잎과 잎사귀를 쓸었다. 나비와도 같은 그 모습에 걸맞게 '행복이 날아옴'이라는 꽃말을 지닌 꽃. 처음으로 내가 꽃꽂이에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에게 주기 위해 꽃을 샀다. 사실 호접란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향기가 없는 것이 어쩐지 나와 닮은 것 같아서. 그래도, 아니 그렇기에 더더욱 이 꽃을 그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는 꽃보다 네가 더 예쁜 것 같은데."

"정말이지. 그런 말을 잘도 하시네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훅 올라오는 열기에 놀라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이 튀어 나갔다. 뒤따라오는 웃음소리에 오소마츠를 째려보니 오소마츠는 그저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웃을 수 있게 된 걸까. 기억을 더듬어봐도 당신의 미소는 늘 어딘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도 무심한 눈빛. 심연보다도 깊은 그 눈에 비친 나와 마주칠 때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소름이 끼치곤 했다.

아, 생각났다. 이 눈이 처음으로 색채를 띠던 때를.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다요코의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 결혼식 날에 모든 축복을 다 쏟아붓기라도 한 것처럼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나는 문이란 문은 다 닫으러 어둡고 눅눅해진 집안을 걸어 다녔다. 빗소리로 소란스러운데도 내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을수록 이 넓디넓은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발에 달라붙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다요코의 방을 보고 나서야 눈물이 떨어졌다. 천둥번개 소리가 마치 감정을 억누르라는 아버님의 고함처럼 들렸지만 도저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엄하지만 존경스러웠던 아버님도, 상냥하셨던 어머님도, 늘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다요코도. 미도리토가의 장남, 도련님, 차기 가주, 다요코의 오빠…. 항상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고 생각한 그 이름들을 빼면 나에겐 아무것도 남는다는 사실이 그토록 서글펐다.

「쵸로스케?」

빗소리와 내 울음소리에 날 부르는 목소리는 묻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가 신사에서 내려와 우리 집으로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제야 오늘 그를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때 그의 손이 내 뺨에 닿았다. 어색하게 눈물을 닦아주는 손은 밖이 추워서인지 꽤 차가웠다. 그 손길을 따라 고개를 들고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헛숨을 삼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매일같이 그를 만났지만 그의 그런 표정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에 내가 아니라 온갖 감정이 요동치는 것을 보았다. 우습게도 나는 그 눈빛을 보고 나서야 그도 역시 살아있는 존재라는 실감이 났다. 그는 나를 있는 힘껏 안아주었다. 허리를 끌어당기고 내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고서 내가 도망치기라도 할까 봐 꼬리로 나를 감쌌다. 손은 차가웠으면서 품은 따스했다. 쿵쿵 울리는 당신의 심장 소리에 되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미도리토가 가주, 도련님, 오빠…. 그 무수한 이름들을 놔두고 오로지 나의 이름만 불러주는 당신이 있었다. 나의 행복이 여기에 있었다.

"쵸로스케."

"네."

"쵸로쨩~"

"네에."

"나의 쵸로스케~"

"왜요. 왜 자꾸 불러요."

"그냥~"

말꼬리를 늘리다 웃어버리는 당신의 모습에 나도 그만 당신을 따라 피식 웃어버렸다. 당신은 알까. 내가 이렇게 웃게 된 것은 당신 덕분이라는걸. 햇살과 비가 꽃을 피우는 것처럼 당신의 한결같음과 애정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먼 훗날 내가 떠난 뒤에도 당신은 한결같이 나를 사랑해줄까. 그런 당신을 위해 내 무덤가에는 날 닮은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날 잃은 슬픔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를 잊지 않도록. 그래도 지금은 그 끝을 상정하고 싶지는 않다. 평생 잊히지 않을 순간을 지금 당신과 함께 있으니까.

"쵸로스케, 사랑해."

"네, 저도요."

부디 당신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주기를. 조심스레 입을 맞추고 당신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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