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꽃점

2019. 2. 25. 작성 | 공백 미포함 5,058자 | 미스테리au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미도리토는 봄 햇살을 받으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추웠던 겨울과 매서웠던 꽃샘추위가 물러나고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하얀 눈이 한가득 쌓여있던 미도리토가의 정원도 푸르른 잎이 돋아나고 몇몇은 이미 꽃망울을 터트린 후였다. 조금씩 여러 색채로 물들어가고 있는 정원을 보며 쵸로스케는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시선이 정원에 있는 동생, 다요코에게 닿자 그의 입꼬리가 더욱더 부드럽게 휘어졌다. 꽃을 가까이 보려고 그러는 걸까. 다요코는 쪼그려 앉아 꽃을 보고 있었다. 모란인가. 붉은 꽃잎이 다요코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다요코, 하고 다정하게 부르려다 답지 않게 장난기가 발동해 쵸로스케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쵸로스케가 다요코에게 가까워질수록 다요코는 조심스럽게 꽃을 매만졌다. 이내 다요코는 꽃을 한 송이 꺾더니 뭔갈 중얼거리며 꽃잎을 하나하나 떼기 시작했다. 다요코같이 착하고 어여쁜 애가 왜 꽃을 저렇게? 처음 보는 충격적인 모습에 쵸로스케의 발길이 멈추었다.

"다, 다요코...?"

"오라버니?"

무심코 목소리가 튀어 나갔고, 다요코는 화들짝 놀라며 모란을 제품에 가두었다. 쵸로스케는 다요 코의 양뺨이 모란처럼 불그스름하게 물드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하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왜... 왜 꽃잎을 뜯는거니...?"

"네?"

"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니? 그렇지만 너같이 착한 아이가 왜 꽃을... 호, 혹시 사춘기? 반항기?!"

쵸로스케의 안색이 점차 창백하게 변해갔다. 온갖 상상으로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다요 코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쵸로스케가 정신을 차리고 다요코를 보자 다요코는 입가를 가리고 작게 웃고 있었다. 마치 천사와도 같은 미소에 쵸로스케의 얼굴이 맑게 개었다. 그래, 이렇게 예쁜 다요코가 그럴 리 없지. 쵸로스케는 다요코 옆에 나란히 앉아 다요 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상냥한, 그러나 대답을 재촉하는듯한 손길에 다요코는 꽃을 매만지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오라버니, 저는 꽃점을 보고 있던 거예요."

"꽃점?"

"네. 이렇게 좋아한다, 싫어한다를 말하면서 꽃잎을 하나씩 떼는 거예요. 마지막 남은 꽃잎을 떼면서 하는 말이 맞는 거죠."

"그래...?"

다요코의 이야기에 쵸로스케는 느리게 반응을 했다. 연애에 관심이 없고, 애초에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적다 보니 이런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쵸로스케에게 꽃이란 아름답지만 자신의 작품을 위한 재료였으니까. 점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발상이 참신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요코를 따라 하듯이 꽃잎을 만져보던 쵸로스케는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다요코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다요코 설마 좋아하는 사람 생겼니?"

"앗."

다요코는 대답 대신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이제야 붉어진 다요코의 얼굴을 확인한 쵸로스케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어딜 어떻게 보나 좋아하는 사람 있는 게 분명했다. 쵸로스케와 마찬가지로 다요코 그녀도 거짓말에는 소질이 없었다. 다요코는 눈을 질끈 감고서 이만 들어가 보겠다는 말만 남긴 채 다급하게 집으로 들어갔다. 쵸로스케는 따라가지 않고 쪼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굳은 채 멀어지는 다요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딱 맞는 붉은 기모노 자락이 나풀거렸다.

"언제 저렇게 큰 거지, 우리 다요코..."

그렇게 어렸는데, 아기였는데... 이미 몇 년은 훌쩍 지난 때를 떠올리며 쵸로스케는 다요코가 떨어뜨리고 간 꽃을 주워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사랑을 했던 걸까. 어떤 놈을 사랑하게 된 걸까. 이름도, 얼굴도 모를 놈에 대한 분노가 치솟아 올랐지만 그보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요코가 훌쩍 커버렸다는 사실과 다요코가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우리 다요코가 사랑도 하고, 이젠 오빠한테 숨기는 것도 있고... 쵸로스케는 하염없이 멍하니 붉은 모란꽃만 바라보았다. 마치 그게 다요코라도 되는 것처럼. 그런 그의 눈앞에 손이 불쑥 나타났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오오조우가 쵸로스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련님, 여기서 뭐 해?"

"오오조씨..."

오오조우는 봄이긴 해도 이제야 막 따뜻해진 참인데 춥지도 않은지 겉옷은 한쪽 팔에 걸쳐둔 채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오오조우는 한 번씩 웃고는 제 겉옷을 쵸로스케에게 걸쳐주었다. 쵸로스케가 그 겉옷을 살짝 쥐자 옷에 남아있는 온기가 쵸로스케의 등과 어깨에 닿았다.

"다요코가... 우리 다요코가요..."

"아가씨가 왜? 아까 봤을 땐 어디 아픈 것 같진 않던데... 엑? 울어?!"

태평한 그의 태도를 보니 긴장이 탁 풀려버렸다. 쵸로스케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러내리자 오오조는 당황하며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오오조우가 계속 말을 들어줄 것처럼 보이자 쵸로스케는 히끅거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우리 다요코가아... 좋아하는 사람이 있대요..."

"뭐? 아니, 잠깐만. 그거 때문에 우는 거야?"

"그거 때문이냐뇨! 제가 다요코를 얼마나 금이야 옥이야 하며 키웠는데! 감히 어떤 녀석이! 게다가 저한테는 말도 안 하어엉.."

"알겠어, 알겠으니까. 진정해봐, 도련님. 말이 이상해지고 있다고."

오오조우가 쵸로스케의 부드럽게 토닥여도 쵸로스케의 눈물은 쉬이 멈출 줄 몰랐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안 하고 들고 있는 꽃만 꼭 쥐고 있는 쵸로스케를 보며 오오조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의외로 거부하지 않는 쵸로스케의 뺨을 오오조의 손이 감싸고, 엄지손가락이 눈물 자국을 살살 쓸어주었다. 그 끝에 눈물방울이 맺히고, 오오조가 부드럽게 웃으니 쵸로스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진정되었어?"

"네... 안 좋은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귀여웠는걸. 항상 고고하고 고상하게 무표정을 유지하는 쵸로스케였으니까. 의외로 잘 화내고 드물게 웃기도 하지만 우는 모습은 처음 봤다. 눈물이 뚝 떨어졌을 때는 가슴이 철렁하기도 했지만 우는 이유가 쵸로스케답고 귀여워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지금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엽긴 하지만. 오오조는 잠깐 닿았다가 바로 떨어진 손을 아쉽다는 듯이 매만졌다.

"다요코도 그럴만한 나이인데 왜 그래~"

"뭐라구요?"

창피해하던 사람은 어디에 간 건지, 쵸로스케는 욱해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다요코인데! 다요코인데! 당장이라도 우다다 말을 쏟아내려는 쵸로스케의 어깨에 오오조가 가만히 손을 올렸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튀어 나가려던 말은 들어가고, 열었던 입이 오므라들었다. 오오조는 그걸 바라보며 쵸로스케쪽으로 얼굴을 느리게 들이밀었다. 재킷에 은은하게 묻어있던 오오조우의 체향이 쵸로스케에게 훅 끼쳐왔다. 그의 눈빛이, 입술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이 가까워진다. 당황한 쵸로스케의 자세가 흐트러지자 오오조우가 잽싸게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얇아. 짧은 감상을 떠올리며 오오조우는 쵸로스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마치 누군가가 들으면 안 될 것처럼, 둘만의 비밀을 나누듯이.

"도련님은 좋아하는 사람 없어?"

귀에 달라붙은 목소리가 장난스러워서, 그러면서도 진득해서 쵸로스케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걸 묻는 저의가 무엇일까. 그냥 단순히 궁금해서? 아니면 누구라도 소개해주려고? 쵸로스케의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보았던 맞선 상대들의 사진과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저 마주 앉아 식상한 대답을 하며 흘려보냈던 사람들. 연애니, 결혼이니, 사랑이니. 그 사람들이 아무리 예쁘게 웃으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그런 걸 말해도 쵸로스케는 어떠한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이 사람에게는. 쵸로스케는 밀어내려고 뻗은 손으로 오오조우의 셔츠를 붙잡았다. 하얀 셔츠가 구겨지고 그대로 생긴 선을 따라 손톱이 파고들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쵸로스케가 조심스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오오조우는 더 가까이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두른 팔을 푸르지도 않은 채 쵸로스케를 응시하기만 했다. 자신은 여기까지만, 다음은 쵸로스케에게 맡기겠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상냥하다고 해야 할까, 짓궂다고 해야 할까. 쵸로스케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서 붙잡았던 손으로 그를 지그시 밀어냈다.

"...없어요."

"그래~?"

오오조우는 가벼운 말투와 함께 미련 없다는 듯이 바로 떨어지며 몸을 일으켰다. 다리를 주무르는 걸 보니 그새 쥐라도 난 모양이었다. 오오조우를 올려다보던 쵸로스케는 뒤늦게 제품에 있던 모란을 살폈다.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꽉 준 터라 꽃대가 으그러져 있었다. 이미 꽃잎 몇 개가 떨어지긴 했지만 이래선 아예 못 쓰겠네. 쵸로스케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봄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불어오고 모란 꽃밭을 흔들며 지나갔다. 붉은 모란꽃과 그 옆에 선 오오조우는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그 풍경을 눈에 새기려는 것처럼 쵸로스케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오오조우씨는요?"

"나?"

아차. 쵸로스케가 황급히 제 입을 막아보았지만 이미 내뱉어진 말이 돌아올 리가 없었다. 뭐라 화제를 돌려야 하나 눈동자를 굴리는 사이, 오소조우가 제 쪽에서 먼저 툭 말을 던졌다.

"있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떡하려고?"

오오조우는 쵸로스케의 눈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강조하며 되물었다. 쵸로스케는 대답 대신 인상을 쓰며 그의 등을 밀었다.

"어쩌긴 뭘 어째요. 일에 집중하고 싶으니까 이만 돌아가시죠."

"엥? 나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자, 잠깐만, 도련님!"

오오조우가 안 나가려고 버티자 쵸로스케는 과장되게 한숨을 쉬며 그럼 손님방에서 있으라며 다시 등을 떠밀었다.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한 오오조우를 두고 쵸로스케는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기다리겠다는 오오조우의 한 마디 이후 복도에 적막함이 내려앉았다. 누가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바삐 발을 놀리던 쵸로스케는 자신의 작업실에 들어오고 나서야 길게 숨을 토해냈다. 다요코가 오오조우에게 차를 가져다줄 거고, 오오조우는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에 관해 묻겠지만 차마 그쪽으로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뺨에 살짝 손을 대니 역시나 뜨거웠다. 바로 등을 밀어버려서 다행이다. 쵸로스케는 방 가운데에 마련된 방석에 앉아 가져온 모란을 제 옆에 내려놓았다. 집중하고 오오조우에게 말한 대로 작업을 하려고 해보았지만 어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꽃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여러 번. 쵸로스케는 결국 꽃대가 꺾인 모란을 다시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떡하려고?'

오오조우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달라붙은 것만 같았다. 왜 그런 걸 물었을까.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 쵸로스케는 손가락 끝으로 모란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리고 뜯어냈다.

"좋아한다."

붉은 꽃잎 한 장이 그의 초록빛 기모노 위에 떨어졌다. 담담히 말하려고 했지만 쉰 목소리가 나왔다. 당사자가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렸다.

"좋아하지 않는다."

쵸로스케는 꽃잎 한 장을 더 떼어내며 곱씹듯이 말을 뱉었다. 자신에게 주문을 거는 것처럼. 자신의 태도를 눈치채고 쵸로스케가 헛웃음을 흘렸다. 꽃점은 참 비겁하고 치사하다. 운에 기대는 것처럼 보여도 꽃잎 수는 정해져 있으니까. 스스로 답을 미리 정해놓고 꽃점 결과가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건 다요코가 만지고 있던 꽃이다. 지금 들고 있는 모란에 꽃잎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그 쵸로스케도 알지 못한다.

"좋아한다."

꽃잎 한 장이 더 기모노 위로 떨어졌다. 혹시 어쩌면. 이러는 것이 자신답지 않다는 걸 알아도 쵸로스케는 꽃잎을 떼어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조용한 방에 쵸로스케의 말만이 나지막이 떠다녔다.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날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런 쵸로스케의 마음이 붉은 꽃잎이 되어 기모노 위에 쌓여갔다. 홀린 듯이 그 행동을 반복하던 쵸로스케의 손이 갑자기 멈추었다. 마지막 남은 꽃잎. 그리고 남은 말은 좋아하지 않는다였다. 역시나. 쵸로스케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마지막 꽃잎을 잡았다. 힘이 과하게 들어가 꽃잎이 짓뭉개지고, 그 위로 눈물 한 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고작 꽃잎인데, 미신인데, 더욱이 자신을 좋아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왜... 쵸로스케는 지금까지와 달리 꽃잎을 쉽사리 떼어낼 수가 없었다.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바들바들 떨다가 결국은 지쳤는지 겨우 입을 열었다.

"...좋아하지 않는다."

툭 마지막 꽃잎이 힘없이 떨어졌다.

"좋아한다."

갑자기 귓가에 떨어진 달콤한 목소리, 그리고 자신을 감싸는 온기까지. 쵸로스케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리자 코가 맞닿을만한 거리에 오오조우가 있었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지 알 수가 없어서 헛숨을 삼키고 눈만 깜박이는 쵸로스케를 보며 오오조우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쵸로스케 손에 들린 꽃대를 가져갔다. 그 끝에 살짝 입을 맞추며 오오조우는 아까처럼 장난스럽게, 동시에 사랑스럽게 미소지었다.

"있지, 쵸로스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면 어쩔래?"

"네? 아, 그..."

그 말에 쵸로스케는 참았던 숨을 토해내고 채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들을 버벅거리며 쏟아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쵸로스케를 보며 오오조우는 웃음소리를 한 번 흘리고선 꽃대를 바닥에 떨어뜨리곤 쵸로스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말랑한 감촉과 전해지는 온기에 쵸로스케가 놀라 뒤로 넘어졌고, 그 반동으로 기모노에 고이 모여있던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오오조우는 그 꽃잎을 지그시 손으로 누르며 쵸로스케를 가둔듯한 자세로 얄궂게 웃었다.

"꽃점 잘 맞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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