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네 이름을 부르길

2019. 5. 26. 작성 | 공백 미포함 3,913자 | 데비메가au

 조용한 숲속에 발을 끌며 걷는 소리만이 맴돌았다. 새도, 동물들도, 심지어 벌레들까지 그 발걸음의 주인에게 겁을 먹고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정작 그는 숨을 헐떡거리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점차 느려지는 속도에 따라 푸르른 풀잎 위에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이 점점 큰 원을 그렸다. 비틀거리는 몸은 몇 번을 더 휘청거리다가 결국 붉은 웅덩이 위로 쓰러졌다. 그가 일어나려 버둥거려 보아도 땅바닥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흐릿해진 눈동자가 제 몸 아래쪽으로 향했다. 한 손으로 얄팍하게 틀어막은 배의 구멍은 아직도 꿀렁거리며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무력하다는 것이 한눈에 보여도 그 어떤 생명체도 그의 앞에 나서질 않았다. 그렇겠지. 다 죽어가는 악마한테 다가올 동물이 어디 있어. 악마, 오소마츠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등에 매달린 날개가 자연스럽게 축 처졌다.

별일은 아니다. 오소마츠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악마가 공격당하는 거야 흔한 일이니까. 자신을 공격한 게 누구인지,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따위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런 자들이야 널리고 널렸고,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 흔한 원망 같은 것도 할 수 없었다. 원망할 대상이라고 해봤자 어쩌다 방심한 자기 자신 정도였다. 그래도 나름 길게 버텼다고 생각했다. 오소마츠가 태어난 그 날, 주위에 있던 악마들은 100년도 못 버틸 것 같이 생겼다며 킬킬거리던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 그들을 비웃듯 오소마츠는 100년을 넘기고, 그들의 최후까지 볼 정도로 살아남았다. 이렇게까지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그게 방심을 만들고, 죽음으로 이끈 거겠지.

곧 죽을 것만 같았지만, 실제로 죽어가고 있었지만 오소마츠는 눈을 부릅뜨고 숨을 색색 몰아쉬었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단 하나만이 또렷했다. 죽고 싶지 않다. 그는 한 손으로 풀을 쥐어뜯었다. 이젠 설 기운도 없는 다리를 끌며 남은 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해도, 모두가 제 죽음을 바란다고 해도 그래도. 바닥에 박혀있던 눈동자가 위로 향한다.  푸르른 하늘 대신 새하얀 천 자락을 본 오소마츠는 헛숨을 삼켰다. 여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속으로만 웅얼거렸다. 대체 어느 틈에 온 거지. 아무리 죽어가는 중이라고 해도, 자신과 상반되는 신의 힘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오소마츠는 천천히 시선을 더 위로 올렸다. 마주친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두려움이 어리는 것이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오소마츠는 무의식적으로 깨달았다. 아, 이 여신도 죽어가고 있구나. 악마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신성력으로 그저 하루하루 흘려보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구나. 죽기 싫어 발악하는 악마 앞에 나타난 이가 죽음을 기다리는 여신이라니. 오소마츠는 설핏 웃음을 흘렸다. 아직 내가 죽을 때는 아니구나. 이건 기회였다. 신성력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저 힘이라도 취해보는 게 나았다. 오소마츠가 그런 생각을 할지 꿈에도 모를 어리숙한 여신은 망설이다가 오소마츠 앞에 쪼그려 앉았다. 오소마츠가 애처롭게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내밀자 그 손을 잡아주기까지 했다. 조금만 힘을 주면 부서질 듯 보드라운 손이었다. 오소마츠의 입꼬리가 기이하게 비틀렸다. 흐릿했던 눈동자에 이채가 돌고, 날카로운 손톱을 세우려던 찰나.

여신의 눈동자와도 같은 초록빛이 그를 감쌌다. 따스하고 상냥한 빛이. 오소마츠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붉은 피와 상처도 함께 사라져갔다. 숨 쉬는 게 편안해지고 어느 정도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오소마츠는 일어날 생각을 못 했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소마츠는 어정쩡한 자세 그대로 다시 한번 시선을 위로 올렸다. 아까의 두려움은 어디로 갔는지, 여신은 초록빛 눈을 어여삐 접어가며 웃었다.

"이제 괜찮아요."

신에게 반(反)해야 하는 자가 신에게 반하는 순간이었다.


"여신님~"

"오소마츠, 또 온 건가요."

여신은 들으라는 듯이 크게 한숨을 쉬며 오소마츠를 흘겨보았다. 오소마츠는 여느 때처럼 코밑을 문지르며 넘길 뿐이었지만. 태연하게 제 옆으로 쪼르르 날아와 헤실 웃는 오소마츠를 보며 쵸로마츠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물론 여신이나 악마에게 있어서 일주일이란 눈 깜짝할 새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여신과 악마가 함께 있는 시간이라 하기엔 길었다. 그날 이후 다시 온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자신을 공격하거나 타락시킬 기미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악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아 왜 자꾸 오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오소마츠는 양 뺨을 붉히며 한결같이 대답했다.

"여신님 보고 싶어서~"

그 순수한 미소를 볼 때마다 여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여신이 아무 말 하지 않으면, 오소마츠는 개의치 않고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오늘 날씨 진짜 좋다! 옛날 생각나네. 딱 이런 날씨였을 때 말이지~ 제스처까지 섞어가며 늘어놓는 그의 이야기는 여신이 모르는 것투성이라 등을 돌리고 있어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만다.

"그리고선 음... 어떻게 되었더라. 가물가물하네~"

"...잘 좀 떠올려봐요."

결국 오늘도 또 오소마츠의 승리.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야기를 보채는 여신을 보며 오소마츠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연못이 출렁거리듯 오소마츠의 목소리가 넘실거리며 이어진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하늘과 연못에 노을빛이 번져갈 때 쯤이면 오소마츠의 이야기도 끝이 났다. 이상하게도 그의 이야기는 중간에 끊기는 법이 없었다. 아까처럼 중간에 몇 번 멈추는 일은 있어도 항상 하루에 하나의 이야기를 다 풀고 나서야 돌아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고 오소마츠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태평하게 늘어져 있던 날개도 길게 펼쳐졌다. 둥실 공중으로 떠오른 오소마츠는 미련이 남은 듯 해를 등지고 그 자리에 맴돌았다. 제법 붉어진 연못 한가운데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 위로 여신이 오소마츠를 멀뚱멀뚱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여신님 이름 안 가르쳐줄 거야?"

"악마에게 가르쳐줄 이름은 없다니까요."

"하여간 냉정하다니까~ 알겠어, 그럼 내일 또 올게!"

말과 다르게 활짝 웃으며 오소마츠는 손을 흔들곤 멀리 날아갔다. 그의 모습이 점으로 변할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던 여신은 눈을 감고 스르르 물 아래로 빠져들었다.


"─여신님!"

번쩍 쵸로마츠가 눈을 떴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 무릎 언저리에서 찰랑거리는 물, 희미하게 올라오는 풀 내음, 그리고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오소마츠. 수마에 잠겨있다가 서서히 감각이 돌아오는 것을 느끼며 쵸로마츠는 약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최근 잠이 부쩍 늘었다. 아니, 그걸 그냥 '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쵸로마츠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작은 동작임에도 손가락 끝이 잘게 떨렸다. 그걸 지켜보는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여신은 길게 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들었다. 봄 햇살과 꽃향기를 머금어 따스한 공기가 가슴을 꽉 채우고,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새파랬다. 정말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과할 정도로.

"아무튼 그래서... 아,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여신님 어디까지 기억─"

"쵸로마츠."

"응?"

"쵸로마츠. 제 이름이예요."

항상 알려달라고 그랬잖아요. 수줍은듯 살포시 웃는 여신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반대로 얼굴을 뻣뻣하게 굳혔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말을 잇지도 못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왜 알려준거야. 오늘같이 좋은 날에. 가능하다면 끝까지 알고 싶지 않았다. 쵸로마츠가 이름을 알려주는 그 날이, 오소마츠가 그 이름을 부르는 그 날이 쵸로마츠가 사라지는 날이 될 것을 알았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죽어가던 쵸로마츠였다. 거기에 오소마츠를 살리기까지 했으니 수명은 더욱 앞당겨졌을 터.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런 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오늘도 어제처럼 사라지지 말아줘. 하고 싶은 말 대신 오소마츠는 다른 말을 꺼냈다.

"이름, 불러봐도 돼?"

쵸로마츠는 대답 대신 오소마츠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이런 날씨에도 차가운 손끝이 닿자 오소마츠의 어깨가 흠칫 튀었다. 쵸로마츠를 보자 여전히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오소마츠는 웃었다. 쵸로마츠와 마주 보고 웃었다. 마냥 슬퍼하기에는 쵸로마츠의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애써 끌어올린 입꼬리가 바르르 떨렸다.

"쵸로마츠."

고작 네 글자 만에 눈물이 떨어졌다. 쵸로마츠. 쵸로마츠. 쵸로마츠.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목이 메었다. 그럼에도 오소마츠는 고집스럽게 계속 말을 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의 이야기도 끊어지지 않게 끝을 맺어야 하니까.

"있지, 쵸로마츠. 우리 처음 만났던 날 기억 나?"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아무도 없는 숲속에 다른 누구도 아닌 악마가 온 날을. 쵸로마츠는 악마와 그토록 선명한 붉은 색을 그때 처음 보았다.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동시에 경이로웠다. 그의 붉은 눈에 어린 살고자 하는 의지가. 이미 오래전에 죽음을 체념하고 받아들인 쵸로마츠에겐 없는 것. 그래서 그의 손을 잡았다. 죽어가는 이 앞에서 살고자 하는 자를 어떻게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오소마츠는 그날의 쵸로마츠처럼 쵸로마츠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윽고 미약하게 남은 선과 악이 서로 부딪히고 반발하면서 하얀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떨어지려는 쵸로마츠를 오소마츠가 단단히 붙잡았다.

"오소마츠...?"

"쵸로마츠는 참 대단한 것 같아. 난 죽어도 절대 혼자 못 죽겠거든. 누굴 희생시켜서라도 내가 살아야겠고, 어차피 죽는다면 괜히 억울해서 혼자는 못 죽겠어."

굵은 손마디가 쵸로마츠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세게.

"그러니까, 나도 함께 갈게."

이마를 맞대고 오소마츠가 웃었다. 하얀 빛무리에, 고인 눈물에 눈앞이 흐려졌다.

"혼자는 외롭잖아."

아아. 쵸로마츠의 미소가 일그러지며 오소마츠의 앞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게 두고 싶지 않아. 두 욕망과 반대되는 결말에 어찌할 수 없을 슬픔과 절망이 몰려왔지만, 그래도 맞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오소마츠."

"쵸로마츠."

이름을 부르고, 이름이 불렸다. 어쩌면 이걸로 된 게 아닐까. 당신과 함께니까.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스파크에, 고인 눈물에 눈앞이 흐려지며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네 이름을 부를 수 있어서 기뻐."

언젠가 또, 네 이름을 부르는 날이 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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