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동경, 선망, 애정 上

2018. 10. 1. 작성 | 공백 미포함 7,043자 | 아이돌au

※유의사항

- 아이돌 오소쵸로

- 프루티 오소X시트러스 쵸로

- 시트러스(쵸로마츠, 쥬시마츠) 이외에는 남남

- 새잎마츠 비중이 많지만 어디까지나 형제애입니다.


그는 빛나고 있었다. 끝도 없이 넓은 무대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서. 아니, 오히려 그 작은 몸으로 그곳을 압도하고 있었다. 무대 위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매혹적인 목소리로 모두의 집중을 끌어당겼다. 콘서트장의 뜨거운 열기와 함성의 중심은 누가 뭐라해도 그였다. 나는 입을 닫을 생각도 못 하고 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눈꼬리와 입꼬리가 곱게 휘었다. 붉은 눈동자는 그 어떤 조명보다도 눈부셨고, 귀에 그의 목소리만이 가득찼다. 아. 환호가 아니라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응원봉을 떨어뜨리고 시끄럽게 요동치는 심장 부근을 쥐어뜯었다. 눈 마주친 게 착각이든 진짜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제대로 치였다. 그게 그와 처음 만난 날의 감상이었다.


"쥬시마츠, 준비됐어?"

"아이!"

"너 흥분해서 무대 뛰어내리거나 하면 안 돼. 알겠지? 우린 그룹이니까 호흡 맞추는 게 중요해."

"아이, 아이!"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는 거 맞아? 배트 그만 휘둘러! 괜히 체력 빼지 마!"

"알겠슴다!"

"아,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두는 구나..."

헛웃음을 흘리곤 쥬시마츠의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배트를 휘두르고도 쥬시마츠는 땀 방울 하나 없이 밝게 웃었다. 저 바보 같은 체력도, 첫 데뷔 무대를 앞두고도 평소같은 모습도 부럽기 짝이 없다. 떨리는 손으로 잘하자며 쥬시마츠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리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심장이 거세게 요동친다. 이러다 터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심호흡도 해보고, 물도 마셔보고, 사람 인자를 세 번 써서 먹어보기도 하지만 긴장감이 쉬이 가라앉질 않는다. 몇 번이고 시착해봤던 무대 의상도 어쩐지 지금은 몸을 꽉 조여 숨을 막히게 하는 기분이다.

그동안 정말 쉴 새없이 달려왔다. 기획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연습생 때를 지나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눈물 섞인 땀을 쏟아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우리는 데뷔한다. 이게 골이 아니라는 건 아주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연예계로 들어서는 시작. 그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간 어떻게 될 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질릴 정도로 봐왔으니까. 달려온 이 길의 끝이 밝은 무대 위가 아니면 어쩌지?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해도 불길한 장면이 불쑥불쑥 치고 올라온다. 어떡하지. 토할 것 같아. 한 손으로 가슴을 지그시 누르자 쥬시마츠가 반대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쥬시마츠가 쓰고 있는 헬맷에 내 이마가 닿고, 내 체온으로 투명한 유리에 하얀 김이 서린다. 그 너머에서 쥬시마츠의 노란 눈이 빛난다.

"괜찮아, 쵸로마츠형아!"

그 한 마디에 머리 속의 먹구름이 솜사탕 녹듯이 사라져간다. 애써 쥬시마츠를 따라 웃으며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쥬시마츠. 착한 내 동생. 뭣도 모르고 아이돌이 되겠다는 나를 따라 여기까지 같이 와줬다. 쥬시마츠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진작에 도망쳤겠지. 그래, 괜찮아. 혼자가 아니니까.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쥬시마츠와 나 자신을 향해 괜찮다고 말하자 쥬시마츠는 잡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실례합니다~"

"아이! 실례하세요~!"

"여! 안녕, 우리 후배님들!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지?"

"아, 아, 아, 안녕하세요...! 프루티 선배님들!"

대기실 문이 열리고, 가까스로 차분해졌던 심장이 아까완 다른 의미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액정 너머나 멀리 무대 위에서만 봤던 프루티 선배님들이 내 눈 바로 앞에 서있다. 실제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아 눈을 연신 깜박였다. 오늘 우리의 데뷔 무대는 프루티 라이브 시작 전.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내 데뷔도 데뷔지만 프루티 선배님들의 무대를 망칠 수 없단 각오로 열심히 뛰었던 지난 날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간다. 긴장한 나와 달리 프루티 선배님들은 태연하게 쥬시마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우리는 고작 한 곡이지만 프루티 선배님들은 이 무대의 주역이신데 떨리지도 않는 걸까. 경험에서 오는 여유가 부러웠다. 남몰래 한숨을 삼키고 있을 때 선명하게 붉은 눈동자가 나에게 꽂혔다. 기분탓같은 게 아니다. 마츠노 오소마츠. 나의 우상이 나를 보고 있다.

"어라? 너는..."

"에? 앗!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시트러스의 쵸로마츠..."

"엥? 얘가 데뷔한다고?"

예의가 아니란 건 알지만 뒷말은 그냥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손가락이 나를 향하고 있었기에. 뭐라 뒷말이 이어졌지만 그 모든 소음이 다 그동안 들어왔던 힐책으로 느껴졌다. 재능 없다는 건 나도 뼈저리게 알고 있어. 긴장이라는 살얼음판 위에 있던 정신이 삽시간에 무너져내린다. 역시 난 안 되는걸까. 당신과 같은 무대에 서는 게. 무슨 이야기가 오갔던 것인지 날 가리키던 손이 악수를 건내는 손으로 바뀌어 있었다. 잡아도 되는 걸까. 팬 미팅을 하며 몇 번 잡아봤던 그의 손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죄송함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라!"

"아, 벌써? 열심히─"

"1! 2! 3! 겟츄─!"

"잠, 쥬시마츠으으으으!!!"

악수하려던 손은 그대로 쥬시마츠에게 잡혀 끌려갔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은 우리를 보고 놀란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와중에도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이 조금은 귀여웠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시트러스라고 합니다!"

자기소개에 난생 처음 받아보는 함성이 쏟아져 내려온다. 눈이 멀 것만 같은 조명빛에 숨을 크게 들이마쉬었다. 오랫동안 꿈 꿔오고 고대했던 무대는 내 상상과는 달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 흥분과 공포감에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쥬시마츠를 바라보자 커다란 입을 활짝 벌리고 양손을 흔들고 있다. 나도 저렇게 순수하게 즐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머리는 점점 새하얘지고 아까했던 리허설의 기억이 아득해지기 시작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손을 만지작거렸다. 긴장한 탓인지 손끝이 차다.

「엥? 얘가 데뷔한다고?」

아까 들은 말이 귓가를 계속 멤돈다.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별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보아도 기가 죽는다. 타고난 카리스마로 첫 데뷔 무대로 레전드를 찍은 그에겐 나같은 애가 데뷔한다는 게 이상해보이는 걸까. 어깨가 축 처질 때쯤 쥬시마츠가 내 손을 강하게 잡아온다. 마냥 밝아보여도 사실은 이 녀석도 긴장한 걸까. 손을 맞잡고 맨 처음 자세대로 등을 맞대자 아이같은 뜨거운 온기가 전해져온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나같은 애도 데뷔할 수 있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새하얘진 머리와 다르게 몸은 반주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이라이트 부분에 다다랐을 쯤엔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 제법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이 야광봉을 흔들어준다. 그런 당연한 일이 지금은 너무나도 감격스럽게 느껴진다. 벅차오르는 감정이 그대로 목소리를 타고 노래로 변한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엔딩을 향해가며 무대 정중앙으로 달려갔다.

"앗!"

왼쪽 발목이 꺾이고 몸의 중심이 기울어진다. 고통보다는 무대에 서기 전에 떠오른 온갖 불안감이 먼저 찾아왔다. 밝은 무대에서 내려와 그대로 끝나게 되는 걸까? 캄캄해지는 시야 사이로 쥬시마츠가 다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쥬시마츠! 마이크때문에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앞쪽으로 손을 뻗었다. 쥬시마츠가 얼른 한 쪽 손을 잡아당기고는 허리를 감싸안으며 날 세웠다. 순식간에 형제인데 마치 두 남녀가 춤 추려는듯한 자세가 되버렸다. 본래대로라면 처음 시작처럼 등을 맞댄 채 마무리지만 일단 최악의 사태는 피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쥬시마츠를 훔쳐보았다. 밝게 웃고 있지만 목에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감사함다~"

"가, 감사합니다...!"

반 박자 늦게 인사를 하고 진행자 멘트에 따라 빠르게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조명빛이 사라지니 무대 뒤 서늘한 공기에 몸이 약하게 떨린다. 긴장이 풀려 다리가 후들거린다. 불안한지 쥬시마츠는 아직도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도 나지만 쥬시마츠 역시 이 무대를 기대했을텐데 내가 망쳐버렸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손을 세게 맞잡았다.

"쥬시마츠, 미안해... 내가..."

"괜찮다 안 혀유~ 그보다 쵸로마츠형! 오늘 노래 평소보다 더 좋았어!"

"고마워..."

해맑은 미소가 지금은 듬직해 보이기만 하다. 언제 이렇게 커버린 걸까. 어릴 땐 좀 더...

"두 사람 다 수고했어~ 호흡이 척척이던걸?"

"앗, 토도마츠 선배님...!"

"감삼다~!"

황급히 쥬시마츠와 떨어져 바르게 섰다. 아까와 달리 무대 의상을 갖춰 입은 토도마츠 선배는 가볍게 윙크를 날렸다. 팬 서비스가 몸에 밴 것일까. 역시 프로. 거기다 입고 있는 새 의상도 너무나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새 의상을 입고 있는 오소마츠 선배가 뒤에서 나타났다. 오소마츠 선배의 새로운 의상! 그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가볍게 뛴다.

"아까 실수했더라?"

그리고 무겁게 비수가 꽂혔다. 순식간에 온 몸의 피가 차갑게 식으며, 아까 무대 위에서의 실수가 머릿 속에서 쉴새없이 리플레이 된다. 내 마음도 모르고 오소마츠 선배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분명 아플 정도의 세기는 아닌데 너무나도 아팠다.

"뭐, 신인 때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너무 기 죽진 말고..."

"...어요."

"엉? 뭐라고?"

"저도 잘하고 싶었다고요!"

결국 왈칵 눈물을 쏟아지고 말았다. 울고 싶지 않았다. 인정 받고 싶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이 모양 이 꼴이다. 거칠게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보아도 넘처흐르는 눈물은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팔로 얼굴을 가리고 다급하게 그 자리에서 벗어나버렸다. 내 뒤를 따라오는 쥬시마츠의 달음박질 소리와 프루티 선배님들이 날 부르는 목소리가 뒤섞여 머리가 웅웅 울려댄다. 아아, 이게 뭐야. 기다리고 기대하던 무대는 최악의 형태로 막을 내렸다.


울다 지쳐 잠들어서 그런지 기운이 영 없다. 퉁퉁 부운 눈을 겨우 식히고 쥬시마츠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내가 힘들든 말든 스케쥴은 돌아간다. 오늘은 예능 촬영이 한 건... 미리 받아둔 대본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출연진 시트러스, 프루티.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프루티 선배님들을 또 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날 대체 뭐라고 생각할까. 예전에만 해도 보고 싶던 프루티가 이젠 보고 싶지 않아졌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역시 보고는 싶은데 그쪽이 나를 안 봐줬으면 좋겠다. 그치만 무리지? 마주치기도 껄끄러운데 방송이라서 이야기를 안 나눌 수도 없고, 애초에 같은 기획사 선후배니까 만날 수 밖에 없고... 오히려 내가 인사하러 가야하는 입장이잖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대본을 휙휙 넘기다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쵸로마츠 형아, 괜찮아?"

"응? 어, 응! 물론이지! 나 완전 괜찮아!"

젠장. 삑사리 났다. 얼버무리려 어떻게든 웃어보지만 쥬시마츠는 고양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평소에는 세 발자국만 걸으면 잊어버리면서 왜 이럴 때에만 끈질긴 거야. 올린 입꼬리가 바르르 떨린다. 타이밍 좋게 자동차가 멈추고, 얼른 가자며 기세 좋게 차문을 열었다.

"여! 우리 귀여운 후배님들!"

"엑시던트!"

열자마자 보이는 붉은 색에 눈을 가리고 뒤로 넘어갔다. 타이밍 좋기는 개뿔. 최악의 타이밍이잖아. 머리를 쥐어뜯다가 뒤늦게 내 행동을 되짚어보고 스프링처럼 다시 몸을 일으켰다. 오소마츠 선배는 기운 넘친다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미소 한 번에 아까까지 뭉쳐있던 걱정들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나 진짜 중증이다. 붉어지려는 얼굴을 감추려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세요. 오소마츠 선배님...!"

"뭐야, 그 폴더 인사! 편하게 해도 돼, 편하게. 그보다 어젠 수고 많았어! 잘들 쉬었어?"

"아, 그, 네에..."

"오늘 방송도 잘 부탁할게!"

그 말 하러 온 것뿐이니까 긴장 풀어, 쵸로마츠. 오소마츠 선배는 어제처럼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고선 먼저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다. 너른 등이 사라지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토해내고 제자리에 웅크려 앉아버렸다. 미치겠다. 정말 그냥 나 긴장 풀어주려고 온 거야? 게다가 이름 불러줬어! 성이 같으니까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는 건 알지만 그래도 설렌다. 심장이 아플 지경이다. 이제 들어가야 한다고 매니저 형이 말해도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얼굴이 새빨간 게 뻔해서. 방송 어쩌지. 아까와는 다른 걱정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 상태가 어떻든 방송국은 돌아간다. 쥬시마츠의 무리수 개그로 어찌저찌 침착함을 되찾고 대본을 한 번 더 훑어보았다. 라이브는 지금까지 수도 없이 연습해왔지만 예능은 전혀 다르니 긴장감이 다시 몰려온다. 심호흡을 하며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너무 긴장하진 말자. 대본도 있고, 출연진들도 다들 프로시고 편집도 있으니까. 오소마츠 선배의 응원을 떠올리려다가 얼굴이 도로 붉어질 것 같아서 그건 관두었다.

이번에 출연하는 예능은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MC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토크쇼다. 시청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후, 근황을 얘기하면서 은근슬쩍 어필이나 곡 홍보가 가능해 아이돌이라면 한 번쯤은 스쳐지나가는 프로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출연진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인물이 도중에 특별 게스트로 참가한다는 것. 선후배,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상대, 라이벌 등 그 관계는 정말 다양하다. 친구집에 놀러온 것처럼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함께 출연진의 다른 인물과의 관계성,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간단해보이는 프로그램이여도 팬층은 꽤 두껍다. 원래는 특별 게스트는 비밀에 부치는 게 원칙이지만 우리같은 신인 그룹은 같은 기획사 인물이 나오는 게 정석인지라 이미 각종 SNS상에서 프루티의 등장 소문이 쫙 깔려있었다. 우리 기획사의 아이돌이 프루티와 우리밖에 없다보니 프루티 팬들은 우리 스케쥴까지 꿰고 있는 모양이었다. 팬들의 사랑 대단하다. 가능하다면 우리도 좋아해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큰 바람일까.

마음을 다 잡고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TV에서 많이 봐서 익숙한 쇼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스텔톤의 2인용 쇼파와 4인용 쇼파가 ㅅ자 모양으로 마주 보고 배치되어있고, 주변도 파티룸처럼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며져있다. 가볍고 편안한, 친구집에 놀러온 듯한 분위기. 그게 이 세트장의 컨셉이라고 들었는데 정말 딱 그대로다. 그 앞에 무수한 카메라와 조명, 스태프들만 없었다면... 표정 하나하나까지 다 보이는 거리에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긴장한 것이 훤히 보였는지 MC가 웃으며 말을 걸어주었다. 역시 프로, 이야기 이끌어나가는 게 자연스럽다. 몇 번의 실수가 있긴 했지만 방송은 물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겨우 찾아온 쉬는 시간. 긴장으로 바짝 마른 목을 겨우 축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이제 막 세트장에 들어오는 프루티 선배들이 보였다. 아, 그렇구나 쉬는 시간 끝나면 등장이구나. 가벼운 후드티 차림의 두 사람이 신선해서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소마츠 선배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착각인걸까 싶은 찰나에 눈이 장난스럽게 휘어졌다. 오소마츠 선배는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가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대고는─

"쉿."

들고 있던 물병을 떨어뜨렸다. 뚜껑이 닫혀있어서 정말 천만 다행이었다. 아니, 아니 다행이 아니다. 방송 직전에 겨우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한다. 급한 대로 쇼파에 있던 쿠션을 끌어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대체 뭔데 아까 그 표정으으은!!! 프루티 나오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왜 쉿이라고 하는 거냐고! 그런 거 팬서비스 때도 본 적 없어! 물론 지금은 팬이 아니긴 하지만! 기분 같아선 쇼파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허공에 발길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남아있는 이성으로 가까스로 참았다. 떨어뜨린 물병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자 스태프분이 방송 재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스튜디오에 다시금 조명이 켜지고 프루티의 등장과 함께 2부가 시작되었다. 아까 일때문에 뻣뻣하게 굳어있었지만 그건 어떻게든 선배 앞이라 긴장한 모습으로 무마된 모양이다. 오소마츠 선배가 긴장 풀라고 말하면서 내 바로 옆에 앉은 바람에 한동안 그 상태는 지속되었다. 역시 선배라 그런건지 그냥 타고난 것인지 스튜디오에 밝은 분위기가 돌았다. 오소마츠 선배의 입담에는 몇몇 스태프들까지 입을 막고 웃을 정도였다. 지금까지 몰랐던 현장에서의 프루티를 보게 되어 기쁘기도 하고, 순수하게 현 상황이 즐거워 나도 웃음을 터트렸다.

"프루티에게는 첫 후배고, 시트러스에게는 유일한 선배들인데 서로 첫인상은 어땠어요?"

어? 이거 대본에 없던 질문인데? 애드리브였던 것인지 MC는 질문을 하고 태연스럽게 웃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눈만 깜박이고, 쥬시마츠도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데 프루티 두 명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시선을 주고 받고는 히죽 웃었다.

"음~ 두 사람의 첫인상말이죠~"

"쥬시마츠는 그렇다치고, 쵸로마츠하고는 데뷔 전 때 봤었어서~"

"에."

"하핫, 당사자인 쵸로마츠씨는 당황하고 있는데요? 그게 언제인가요?"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듯이 MC는 눈을 빛내며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데뷔 전에 날 봤다고? 언제? 어디서? 설마?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그래, 쥬시마츠!"

"팬미팅 때 맞슴까?!"

"음... 정답!"

"와아이~!"

"기, 기억하고 있었..."

"남자팬이 적은 것도 있고, 늘 촌스러운 초록색 체크무늬 셔츠에 안경 쓰고 꼬박 꼬박 오니까 당연히 기억하지~"

와악!!! 스튜디오 가득 내 괴성이 울려퍼졌다. 스스로도 놀라 다급히 손으로 입을 막으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졌다. 당황해서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MC와 프루티 두 명은 그저 웃기만 했다. 딱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는 그 표정. 망했다. 몇 번인가 다른 예능 프로에서 보았던 미소에 진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구나~ 쵸로마츠씨는 프루티의 열성 팬이었던 거군요? 와, 그럼 흔한 말로 성덕인 거네요?"

"정확하게는 오소마츠형의 팬이죠. 아주 그냥 오소마츠형에게서 시선을 못 떼던데."

"토, 토도마츠 선배님...!"

"내 팬이 데뷔한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던지! 아, 데뷔 무대 때는 어땠는지 알아요? 쵸로마츠가 실수를 좀 했는데 무대 내려오자마자 눈물을─"

"아악! 그만해요! 그만!"

"앗, 미안~ 또 우는 건 아니지?"

"쵸로마츠형 얼굴 완전 토마토같아!"

"부탁이니까 그만!"

다들 신나서 웃고 있을 때 나 혼자 팔을 휘저으며 난리를 피웠다. 방송이고 뭐고 일단 내가 살고 봐야했다. 이 이야기의 화제도, 뜨듯미지근한 시선들도, 은근슬쩍한 스킨쉽도 견딜 수가 없었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분위기는 쉬는 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몰래 스태프분께 다가가서 아까 그 장면은 편집해주실 수 없냐고 살며시 물어봤지만 그저 웃기만 하는 모습을 보고 직감했다. 아, 방송 타겠구나. 하긴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이 방송 출연시켜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어쩌겠어. 그 후 나만 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기가 쏙 빠졌다.

그리고 방영 날, SNS상에서 시트러스는 수없이 오르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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