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꽃망울 맺힌 날

2019. 1. 19. 작성 | 공백 미포함 5,838자 | 천호 오소X쵸로스케 환생 쵸로마츠

전편

[오소쵸로]꽃이 지고 피는 순간


"오늘 날씨 참 좋다. 그치? 쵸로스케."

빙긋이 웃으며 오소마츠는 비석을 쓸었다. 맨질맨질한 돌 표면은 햇살에 달궈져서 적당히 따뜻했다. 오소마츠는 쪼그려 앉아 비석과 마주 보았다. 마치 쵸로스케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손가락 끝으로 비석에 새겨진 쵸로스케의 이름을 덧그렸다. 정말 사랑했다. 사랑한 만큼 네 생은 짧았다. 짧은만큼 너와 함께한 순간은 찬란했다.

"쵸로스케, 오늘도 사랑해."

오소마츠는 꽃 대신 오늘분의 고백을 바치며 소매에서 물병을 하나 꺼내 주변에 적당히 물을 뿌렸다. 살아생전 쵸로스케가 바쳐왔던 꽃들이 비석 주변에 수두룩하게 피어있었다. 꽃을 사랑한 쵸로스케의 무덤가여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신인 오소마츠가 사랑하는 장소여서 그런 것일까. 이곳은 사시사철 꽃들로 가득했다. 자라는 환경에 상관없이 갖가지 꽃들로 가득한 그곳은 신의 정원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이건 호접란이고, 저건 도라지꽃, 저기 있는 건 뭐였더라. 하나같이 쵸로스케가 주었던 꽃임에도 불구하고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 오소마츠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저 꽃을 품에 안고 웃고 있는 쵸로스케의 모습뿐이다. 아, 보고 싶다. 오소마츠는 무심코 중얼거렸다가 피식 웃었다. 쵸로스케는 이미 죽은지 오래라는 것을 알기에. 오소마츠에게 남은 건 쵸로스케 이름이 써진 비석과 그가 묻힌 땅, 그리고 그 땅에 피어난 꽃들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꽃 같던 너니까 꽃처럼 새로이 피어날지도. 부질없는 생각을 하며 오소마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 안녕하세요. 마츠노 쵸로마츠라고 합니다. 부모님 사정으로 여기 전학 오게 되었어요. 이곳에 대해 모르는 게 많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인사한 거 맞겠지? 쵸로마츠가 불안해하며 눈동자를 데굴 굴리자 아이들은 미소 지으며 박수를 쳤다. 늘 보던 얼굴만 보던 시골 학교에서 전학생이란 그 존재만으로도 흥미로운 것이었기에. 선생님이 교실을 떠나고 나자 아이들은 짜기라도 한듯이 쵸로마츠 자리로 몰려들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부터 학교 안내해주겠다는 친절까지. 몰아치는 말들에 쵸로마츠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잠시, 예비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잽싸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쵸로마츠가 교과서를 꺼내고 있을 때 무언가 생각났다는듯이 앞자리에 앉아있던 츠카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맞다. 마츠노, 우리 마을 처음 왔으니까 신사 한 번 갔다와봐."

"신사?"

츠카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검지손가락으로 창 밖을 가리켰다. 운동장 너머, 아담한 주택들 뒤로 산이 하나 보였다. 봄이 거의 다 지나 벚꽃이 다 진 후여서 그런지 산은 푸르르기만 했다.

"응. 저기 마을 뒷산 중턱에 보면 신사가 하나 있거든? 그 신이 외부인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하니까 이제 여기 사람입니다~하고 얼굴 도장 한 번 찍고 와."

"그래...?"

"뭐, 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래도 거기 풍경이 진짜 예쁘거든. 가는 길에 있는 만쥬집에서 만쥬 사서 거기서 먹으면 진짜 맛있어. 이따 끝나고 같이 갈래?"

"만쥬가 목적인 거 아냐?"

츠카타는 민망함을 덮으려는 것인지 크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목적이야 어찌됐든 자신에게 놀러가자고 권해준 것이 고마웠다. 전학은 처음이라 쉽게 친해질 수 있을지 걱정 많았는데 이대로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다들 좋은 사람들인 것 같고. 

"그런데 그 신은 왜 외부인을 싫어한대?"

"어? 그게에... 왜더라?"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신을 모시던 집안이 있었는데 그 딸이 결혼하면서 외부 지역으로 나가버렸대. 자길 따르지 않고 나가버렸다고 신께서 화가 나셨고, 그 불똥이 아들한테 튀어서 결혼도 못하고 그대로 대가 끊겼다고 하더라. 아무튼 자기 사람을 데려갔다고 외부인을 싫어한다는 이야기."

"나이스 설명, 카노우."

"그 아들은 대체 뭔 죄가 있다고..."

"글쎄. 어차피 믿거나 말거나니까."

설명비는 만쥬 하나로 받을게. 마을 안내는 서비스. 츠카다 옆에 앉아있던 카노우는 싱긋 웃고서 대답도 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타이밍 좋게 교실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일방적인 요구를 받긴 했지만 쵸로마츠는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같이 놀러가주는데 그정도야 뭐. 교과서를 펼치고 샤프를 딸칵거리던 쵸로마츠는 문득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신님께 드릴 만쥬도 하나 사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햇볕이 따뜻하다. 봄이 끝나가고 있지만 본격적인 더위가 오기엔 아직 일러서 그런지 춘추복엔 적당히 더운 정도였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쵸로마츠의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츠카다와 카노우 이야기를 들으며 만쥬를 한 입 베어물었다. 방금 막 나와 따끈따끈한 터라 하마터면 입을 델 뻔 했다. 호호 잘 불어가며 산길을 올랐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모양인지 길은 잘 만들어져 있었지만 운동을 그다지 하지 않는 쵸로마츠에게는 그 편한 길도 힘들었다. 얼마 올라오지 않은 건 알고 있는데 벌써부터 숨이 찼다.

"아직 멀었어...?"

"마츠노, 약해!"

"너 체력 좀 키워야겠다."

키득거리며 웃으면서도 두 사람은 착실하게 쵸로마츠를 기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돌계단을 오르니 이제야 토리이가 보였다. 토리이 중간중간에 붉은 칠이 벗겨진 게 이 신사가 얼마나 오래된건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새해 참배 말고 신사에 가는 건 처음이네. 한적한 신사는 쵸로마츠에겐 뭔가 신선했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제일 먼저 배전이 쵸로마츠를 반겼다. 결코 크지도 않고 세월의 흔적이 드문드문 엿보였지만 누군가가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는건지 제법 깔끔했다. 배전을 중심으로 나무들이 신사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어 꼭 숲 한 가운데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무 아래에는 드문드문 벚꽃잎이 보였다.

"이 주변 나무들 다 벚나무야. 봄이 되면 정말 예뻐."

"조금만 더 일찍 전학 오지 그랬어."

두 사람의 말을 적당히 웃어넘기며 쵸로마츠는 하나 남겨두었던 만쥬를 배전 앞에 두었다. 주머니에 굴러다니던 5엔을 던지자 이미 동전이 있었는지 짤그락 소리가 났다. 새해가 아닌데도 참배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런 것따위를 생각하며 쵸로마츠는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무엇을 빌어야할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카노우에게 들은 이야기도 있어 이제 이 마을 사람이니 여기서 잘 지낼 수 있기를 빌었다. 가능하다면 애인도 생기게 해주세요. 사심 섞인 소원도 하나 덧붙이고는 쵸로마츠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토리이보다도 선명한 붉은 눈동자가 쵸로마츠에게 향해있었다. 머리 위에 있는 귀는 꼿꼿히 서있었고, 9개의 꼬리가 제각각 살랑거렸다. 둔한 쵸로마츠도 척보기에도 알 수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걸.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쵸로마츠는 헛숨을 삼켰다.

"쵸로스케...?"

항상 불렀음에도 오랜만에 그 이름을 부른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와 달리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눈 앞에 있어서 그런걸까. 놀라 크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는 아무리 보아도 쵸로스케였다. 틀림없어. 이건 쵸로스케의 향기야.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쵸로마츠를 향해 오소마츠는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손끝이 떨리고 있어서 쵸로마츠는 도망갈 수가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은 너무나도 애달파보였다. 마주 보고 있는 사람마저 가슴이 아파올만큼. 어째서 이렇게 눈물이 나올 것 같은걸까. 왜 이렇게 심장이 빠르게 뛰는걸까. 안타까울 정도로 떨고 있는 저 손을 마주 잡고 싶었다.

"마츠노, 왜 그래?"

번뜩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자 츠카타와 카노우가 의아하게 쵸로마츠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눈에는 이 분이 보이지 않는걸까. 다시 배전을 바라보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어라?"

"빌고 싶은 소원이 그렇게 많았어? 욕심 부리면 소원 하나도 안 이루어질걸?"

"그보다 슬슬 내려가자. 다른 곳도 가봐야지."

"아, 응!"

쵸로마츠는 가방을 고쳐매며 먼저 내려가는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애써 침착하려고 해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대체 왜 이럴까. 아까 그건 뭐였지. 생각에 빠질수록 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점차 멀어지는 두 사람의 등을 보다가 쵸로마츠는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배전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마츠노구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쵸로마츠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붉은 토리이 위에 마찬가지로 붉은 기모노를 입은 오소마츠가 앉아있었다.

"또 놀러와."

기다리고 있을게. 손 대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오소마츠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지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와 다르게 목소리에선 어쩐지 간절함이 느껴져서 쵸로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쵸로마츠는 매일 그 신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별 이유없이, 그가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쵸로마츠가 신사에 오면 오소마츠는 늘 환히 웃으며 쵸로마츠를 반겨주었다. 손에는 이름 모를 꽃을 하나 들고서. 무슨 꽃이냐 물으면 오소마츠는 기쁜듯이 꼬박꼬박 대답해주었다. 쵸로마츠는 받은 꽃을 하나하나 자신의 방에 걸어 소중히 말렸다. 다음엔 어떤 꽃을 받게 될 지 생각하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고, 자연스럽게 꽃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꾸준히 놀러가는 것치고는 둘은 그 외에 특별한 걸 하진 않았다. 쵸로마츠가 먹을 걸 가져왔으면 같이 나눠먹고, 가볍게 산책하기도 하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언제는 카노우에게 들은 이야기를 알려줬을 땐 길길이 날뛰기도 했다. 어떻게 이야기가 그렇게 와전될 수 있냐면서. 그 후로 쵸로마츠는 이야기를 들으러 찾아가기도 했다. 여우 신과 어느 가문 도련님의 러브 스토리. 진부하지만 왜인지 계속 듣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이야기하는 오소마츠가 즐거워보여서일까, 아니면... 쵸로마츠는 지그시 제 가슴을 눌렀다.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가 시끄럽다. 잠시 조용해진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옅게 미소지었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를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며 오소마츠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와 너라고.


"이제 눈 떠도 돼."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손이 떨어지고, 쵸로마츠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질 정도의 색의 향연. 색만큼이나 선명한 꽃향에 쵸로마츠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토록 많은 꽃들이 아무 규칙없이 모여있는데도 조화롭게 느껴진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말그대로 신의 정원, 자연이 만들어낸 꽃꽂이같다.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쵸로마츠를 보며 오소마츠는 싱글벙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예쁘지? 예쁘지?"

"네... 이걸 혼자서?"

"어? 뭐, 그렇지!"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군요."

"그렇긴 하지만 좀 더 칭찬해줘도 되지 않아?!"

찡찡거리며 달라붙는 오소마츠를 자연스럽게 밀어내며 쵸로마츠는 가볍게 걷기 시작했다. 꽃이 너무 많아 걸을 때마다 밟는 게 아닌가 걱정되었지만 의외로 길이 나있어 그대로 따라 걸었다. 오소마츠가 매일 걸어서 생긴 길일까. 그 길은 한 비석까지 이어져있었다. 이곳이 이 정원의 중심이라고 표시한 것만 같았다. 어딜 봐도 누군가의 무덤이긴 했지만. 누군가가 매일 관리하는건지 반질반질하게 닦인 비석 앞에 쵸로마츠는 쪼그려 앉았다. 

"미도리토... 쵸로스케..."

"그 이름을 다른 사람이 부르는 건 진짜 오랜만에 듣네."

오소마츠가 쵸로마츠 곁에 앉으며 싱긋 웃었다. 안 지 얼마 안 된 쵸로마츠를 배려하듯이 거리는 조금 두었지만 그의 꼬리가 쵸로마츠 등 뒤에서 넘실거렸다. 흘끔 바라보니 웃음소리와 함께 꼬리 끝이 쵸로마츠의 볼을 살짝 간질였다.

"뭐 기억 나는 건 없어?"

"없네요. 그렇지만..."

쵸로마츠는 말 끝을 흐리고 살며시 비석을 만졌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진 이름은 낯선 것이면서도 친근했다. 미도리토 쵸로스케, 오소마츠가 들려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쵸로마츠의 전생. 그래서일까 가슴이 무척이나 아파온다. 오소마츠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언제나 행복해보였다. 같이 벚꽃을 봤다던가, 새해를 참배를 했다던가. 그렇지만 이 비석이 있다는건 결국 그 이야기의 끝은... 쵸로마츠가 입술을 깨물며 눈썹을 늘어뜨렸다.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은 역시 동화 속에서밖에 없는걸까.

"입술 그렇게 깨물면 아프잖아."

오소마츠가 손가락으로 쵸로마츠의 입술을 살살 쓸었다.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와 시선을 마주하고선 활짝 웃었다. 자신은 정말 괜찮다는 걸 보여주듯이.

"그런 표정 짓지마. 난 행복했어. 그리고 뭐, 과거는 과거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오소마츠가 조심스레 쵸로마츠 허리에 팔을 둘렀다. 쵸로마츠가 거부하는 기색이 없자 조심스레, 꽃을 다루듯이 그를 품에 안았다. 조심스레 쵸로마츠도 오소마츠를 마주 안았다. 풀내음과 꽃향기에 쵸로마츠의 체향이 섞이어 들었다. 그립고 그리웠던 향기에 오소마츠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웃으며 참았다. 울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이었다. 오소마츠의 온기를 느끼며 등을 살살 쓸어주던 쵸로마츠가 꼬리 사이로 보이는 꽃에 시선이 꽂혔다. 초록빛을 머금은듯한 하얀 색. 꽃잎이 겹겹히 쌓여있는 게 언뜻 보면 장미와 비슷해보였다. 자란지 얼마 안 되었는지 딱 한 송이만 빼고 꽃봉오리 상태였다. 저건... 얼마 전 식물 도감에서 본 기억이 있는 꽃이었다. 오소마츠도 저 꽃이 뭔지 알까?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살짝 밀어내며 꽃을 가리켰다.

"저 꽃은 이름이 뭐예요?"

"어떤 거? 어... 장미?"

이럴 줄 알았어. 쵸로마츠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가져오는 꽃 이름도 가끔 헷갈려 하더니. 쵸로마츠가 계속해서 쿡쿡 소리내어 웃자 오소마츠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 살았으면서 그런 것도 몰라요?"

"모를 수도 있지! 무슨 꽃인데?"

쵸로마츠는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살짝 꺾었다. 미안. 짧게 사과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짝 코에 갖다대니 은은한 향기가 올라왔다. 역시 책에서 보는 것보다 좋구나. 쵸로마츠는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리시안셔스예요."

"리시... 뭐?"

"리시안셔스."

잘 봐요. 장미와 다르게 가시가 없죠? 쵸로마츠가 꽃을 내밀자 오소마츠는 조심히 꽃을 받아들였다. 꽃 받는 거 오랜만이라는 생각따위를 하며. 오소마츠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꽃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듣고 보니 확실히 장미와는 달랐다. 다르지만...

"...난생 처음 보는 꽃이야."

"그래요?"

"쵸로스케가 가져다 준 적 없는 꽃이야."

지금까지는 쵸로스케가 가져다준 꽃만 피었는데... 그야 당연했다. 오소마츠가 아는 꽃이라고는 쵸로스케가 가져다준 것밖에 없었으니까. 오소마츠는 리시안셔스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에도, 저기에도 본 적 있는 꽃들뿐이었다. 하나같이 쵸로스케가 자신에게 바쳤던 꽃들. 꽃 하나 하나를 소중히 만지며 안고 있던 쵸로스케의 모습이 선명하기에 이름을 모를지언정 생김새를 기억 못 할리가 없다. 그렇다면. 오소마츠는 눈을 크게 뜨고 쵸로마츠의 어깨를 붙잡았다.

"너구나!"

"네?"

"네가 피운 꽃이야! 네가 와서 새로 핀 꽃인 거야, 쵸로마츠!"

쵸로마츠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눈을 깜박였다. 신이 나 주절주절 떠드는 오소마츠의 이야기를 듣던 쵸로마츠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문득 식물 도감에서 읽었던 리시안셔스의 꽃말의 꽃말이 떠올랐다. 영원한 사랑. 이게 정말 내가 피운 꽃이라면 이게 내 마음인 거겠지. 쵸로마츠는 리시안셔스와 오소마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오소마츠는 그저 밝게 웃었다. 영원히 행복하게 오래 살았습니다 같은 엔딩은 어쩌면, 현실에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려는 리시안셔스 옆에서 쵸로마츠는 오소마츠를 따라 웃었다. 돌고 돌아온 말을 다시 전하기 위해.

"오소마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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