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마츠상 2차 창작 백업

[오소쵸로/데비메가]메리 크리스마스

2019.12.24. 작성

 하얀 입김이 공중에 퍼졌다가 사라진다. 그게 재미있는지 쵸로마츠는 몇 번 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새하얗게 퍼지는 하얀 입김과 마른 몸을 덮으며 흘러내린 하얀 옷자락이 꽁꽁 언 연못 표면에 흐릿하게 비쳤다. 밤새 잠깐 내린 싸라기눈을 발로 살살 밀어내며 여신은 설핏 웃었다. 겨울이네. 금방 녹아 없어질 게 뻔했지만 점점 눈 보기가 귀해지고 있는 요즘에 이리 작은 눈송이에도 반가움이 일었다. 조금만 더 오래 남아있기를. 작고 작은 눈송이를 차디찬 연못에 올려놓던 여신님에게 돌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놀라지도 않고 그저 눈과 같은 반가움을 품은 채 쵸로마츠가 뒤를 돌아보았다.

"여신님!"

"악마님, 오셨…어?"

 씩 웃고 있는 오소마츠의 머리에는 악마의 상징인 뿔 대신 부드러워 보이는 솜 방울이 달린 붉은 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복장도 평소의 정장 외투가 아니라 모자와 세트인 것으로 보이는 붉은 외투를 입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붉은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빨강, 빨강, 빨강. 다소 과할 정도의 붉은 색 일색에 쵸로마츠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 꼴은 또 뭔가요?"

 "그 '꼴'이라니 너무하는 거 아니야, 여신님?!"

 "붉은색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여기엔 중요한 이유가 있다구!"

 날개를 접고 공중에서 연못가로 내려온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와 마주 섰다. 유일하게 평소에도 붉은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오늘 말이야. 크리스마스라고 인간들이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날이거든. 그래서 나도 분위기 좀 내봤지!"

 "크리스마스… 그건 또 무슨 날인가요?"

 "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맛있는 것도 먹고, 선물도 주고 아무튼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날이야!"

 "와, 그렇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무척 좋은 날인 거네요?"

 "응응, 그런 거지! 그래서…"

 오소마츠는 잠시 말을 끊고 들고 온 보따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어차피 들어있는 거라곤 하나밖에 없으면서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한참 뒤적거리는 시늉을 하던 오소마츠는 쵸로마츠가 호기심에 못 이겨 가까이 다가오고 나서야 안에 든 물건을 꺼내 들었다.

 "짜잔!"

 "와!"

 "선물이야! 받아, 여신님."

 크기는 쵸로마츠의 얼굴쯤 될까. 눈꽃 모양 패턴이 들어간 초록색 포장지로 꽁꽁 싼 상자를 쵸로마츠가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상자 육면 다 포장지로 감쌌고 붉은 리본도 달았지만 포장지 곳곳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서툰 손놀림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물에 쵸로마츠는 설핏 웃었다. 빨강과 초록. 정반대의 색을 보고 있자니 붉은 오소마츠가 쩔쩔매며 포장을 하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작은 웃음소리를 흘리던 쵸로마츠는 리본 끝을 매만지다 말고 눈썹을 추욱 늘어뜨렸다.

 "어쩌죠. 전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

 "괜찮아, 괜찮아. 정 뭘 주고 싶다면 난 여신님 몸으로 충분…"

 "죽어주실래요, 악마씨?"

 "너무해!"

 여신님 내가 선물도 줬는데 이러기야?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뒤에서 끌어안고 아이처럼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오소마츠가 익숙한지 쵸로마츠는 가볍게 말을 넘겨들으며 붉은 리본을 길게 잡아당겼다. 사락거리며 리본이 연못에 떨어지고 초록색 포장지가 그 뒤를 따랐다. 어서 열어봐. 언제 칭얼거렸다는 듯이 쵸로마츠보다 더 신난 표정으로 오소마츠가 쵸로마츠를 재촉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쵸로마츠는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맘에 들어?"

 "네, 무척요."

 상자 안에는 겨울에도 푸른 상록수 가지가 둥근 원을 그리고 있었다. 중간중간에는 동그란 솔방울과 아기자기한 붉은 열매가 매달려 다소 밋밋할 수 있는 고리에 활기를 심어주었다. 포장할 때 쓴 것과 똑같아 보이는 붉은 리본은 맨 위에 곱게 매듭을 지은 채 양 끝을 길게 늘어뜨려놓고 있었다. 리본을 제외하면 고리부터 모든 재료가 진짜 식물인 것으로 보였다. 난생처음 받는 선물을 쵸로마츠는 한참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자신의 머리 위에 얹었다.

 "어때요?"

 "응, 잘 어울려."

 화관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리스지만 뭐 됐나. 오소마츠는 피식 웃었다. 우스워서. 얼마나 찾는 이가 없었으면 크리스마스 리스를 화관인 줄 알고 쓰고 있는 여신이나, 악마이면서 신의 탄생을 기리는 기념일을 챙긴 자신이나. 알고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인간에게는 축복이고 악마에게는 고통인 날. 오늘 이렇게 밖에 나서는 것만으로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이 어리숙한 여신은 결코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랬기에 더더욱 여신님이 만나고 싶었다. 인간들이 탄생을 기리고 축하하는 신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신'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당신도, 한 명의 신인 당신도 누군가의 축하를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오소마츠는 크리스마스 리스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써보는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입에서는 아직도 하얀 입김이 나오고 있었다. 신이 추위를 느끼고 있다니. 오소마츠는 크리스마스를 모르는 신이나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악마보다 그 사실이 더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추앙을 받아야 할 신이 인간과 다름없는 존재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니까. 오소마츠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메리 크리스마스, 여신님."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나와 만나줘서 고마워. 언제인지 알 수도 없는 당신의 생일을, 언제 떠날지 모를 당신을 위해 이 특별한 날에 빌어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어. 차마 소리 낼 수 없는 말을 한 문장에 녹아내며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더욱 끌어안았다. 변변찮은 옷 없이 찬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피부가 시체처럼 차가웠다.

 "악마님도 메리 크리스마스예요."

 추위 따위 모른다는 듯 쵸로마츠는 눈처럼 티 없이 맑게 웃었다. 죽음마저 지워버릴 것 같은 미소에 살짝 입을 맞췄다. 뜨거웠다. 따가웠다. 그리고 달콤했다. 둘은 이마를 맞대고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크리스마스 리스 아래에서 키스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부디 내년에도 함께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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