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의 노란 등불 살인사건
20230329 커미션 작업물: 당근 라페 샌드위치 1만자
* 유혈 및 시체유기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전문 공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설산의 노란 등불 살인사건
공백 포함 10175자
“왜 내가 하필 당신과 홋카이도로 파견되어야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창밖으로 눈이 그칠 기미가 없었다. 홋카이도는 겨울에 워낙 눈이 많이 오는 탓에 도로에 열선이 깔렸다지만, 이름 모를 산을 건너가는 도로에도 그럴지는 의심스러운 참이었다. 그만큼 날씨가 궂었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제외한 뒷자리가 비어있는 작은 렌터카 안은 한동안 굵어져 가기만 하는 눈송이가 앞유리를 다닥다닥 두드리는 소리와 뿌옇기만 한 시야를 조금이라도 확보하고자 바쁘게 움직이는 와이퍼 소리뿐이었다.
워낙 급하게 파견된 데다가 '그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히라와 히요리 모두 하네다 공항에서 신치토세 공항으로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렌터카를 찾아 탑승하기까지 아무런 말도 주고받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동안 비행기가 이착륙할 정도로 괜찮았던 하늘은 흐려지더니 히라와 히요리가 탄 차를 향해 굵고 날카로운 눈을 쉬지 않고 쏘아 보냈다. 그렇게 날씨와 함께 얼어붙은 것 같던 침묵을 깬 것은 히요리의 말이었다.
운전은 자신의 몫이라는 듯 차 열쇠를 받아들고 시동을 건 히라는 자신이 운전하는 것이 렌터카였기 때문에 이것을 파견보다는 겨울여행에 가깝게 받아들이고 있던 참이었다. 짐을 거의 챙겨오지 못했지만 갑작스러운 여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히요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오는 대답은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히요리가 썩 달갑지 않은 티를 낸다면 히라도 순순히 답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까 브리핑할 때 제대로 안 듣고 졸았습니까? 어쩐지 비행기에서 침까지 흘려가며 자더라니.”
“그런 거 없지 않았습니까!”
“아, 아! 알겠어요. 처음으로 단둘이서 여행 온 분위기를 즐기면 어디가 덧나나? 받아온 사건자료가 뒷좌석에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거나 보세요. 지금 나한테 말 시키면 우리 둘 다 눈이 얼어붙은 도로에서 미끄러져서 깩, 죽어버려도 모릅니다?”
날카로운 히요리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히라는 그것을 즐겁게 모른 척했다. 히요리는 그렇게 몇 초를 더 노려보다가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뒷좌석에서 꽤 두꺼운 파일 철을 꺼내왔다. 비행기에서 잠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 대꾸가 없는 것도 살짝 떨어진 컨디션이 원인인 듯했다. 그러나 히요리는 히라를 포함하여 자타공인이 알아주는 일벌레였다. 제목조차 붙지 않은 파일 철을 열자마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옆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어두운 차 안에서 자료를 읽는 히요리를 곁눈질로 몇 번 바라보다가, 히라는 앞좌석 조명을 켜주고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면 앞유리로는 눈 내리는 산길보다 자료를 읽는 데에 집중하는 히요리가 더 잘 보였다.
“나는 얼어붙은 도로에서 미끄러져 죽어버리는 취미 없습니다.”
자료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히요리가 등을 꺼버리기 전까지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히라의 농담은 이런 불운한 상황에 대한 전조였음이 증명되었다. 히요리는 머리 한구석에 '홋카이도라고 해서 모든 도로에 열선이 깔린 것은 아니다'라는 정보를 집어넣었다. 히라는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렌터카가 다시 도로를 달리게 하려고 차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리거나 엑셀을 짧게 여러 번 밟거나 후진을 하거나 또는 그 셋을 한꺼번에 하는 중이었다.
“이거, 안 되겠는데요.”
결국 포기하고 차 열쇠에서 손을 떼어낸 히라가 말했다. 히요리는 내심 그가 더는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을 요란하게 시도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이제 어떡할 겁니까?” 안전띠를 풀어내며 히요리가 물었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차 안에서 밤을 새우면 얼어 죽을 테니까 근처에 민가가 있는지 좀 둘러보죠.” 가능성 없어 보이는 말로 히라가 대꾸했다.
“무슨 민가요? 이렇게 깊은 산 속에 민가가 있을 리가 있습니까?”
“없긴 왜 없습니까, 감찰관님. 아무것도 모르시네. 저기, 저렇게 버젓이 있잖아요?”
그리고 히라가 장갑을 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정말로 창문에 불이 노랗게 켜진 건물이 하나 있었다.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는 없었다. 멀어서 형체가 분명하지는 않았으나 신기루나 헛것 같지는 않아서 히요리는 순순히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얇은 구두 안쪽까지 냉기가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히라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민가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몰랐는데요. 노란 게 보이는 것 같길래 찍었습니다.”
“뭐라고?!”
그새 눈이 쌓인 안경알이 쩍 소리를 내며 조용히 금이 갔다.
🏠︎
가까워질 듯 멀어질 듯한 노란 불빛만을 등대 삼아 눈길을 걸어가는 것은 참으로 고난이었다. 맨몸으로 눈길을 걸어봤자 시내의 도보를 몇 분 걷는 것이 다였던 그들은 눈 내리는 산을 걸어 올라가는 것에 준비되지 않은 아주 얇은 차림이었다.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구두는 산행에 완벽하게 부적합했으며 코트는 가볍고 깔끔해 보이는 만큼 온기를 전혀 가둬두지 못했다. 히라와 히요리는 처음에는 운전하는 자신 대신 안내판도 제대로 못 읽느냐는 둥, 그런 건 운전하는 사람이 제대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둥 티격태격하다가도 금방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기 위해 입을 열 때마다 끔찍한 추위와 눈송이가 입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마침내 도착한 노란 불빛은 2층짜리 통나무 산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랗고 밝은 조명만 봐도 그 집이 얼마나 따뜻하게 관리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예를 들면, 은퇴한 노부부가 근처 스키장에 놀러 오는 손자 손녀들을 위해 다듬어둔 곳 같은. 그래서인지 히라와 히요리는 동시에 이 산장에서 하룻밤 묵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것이 꺼려졌다. 손가락부터 굳게 만든 추위의 얼떨떨함이 팔 전체를 덮은 것 같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둘은 잠깐 문 앞에서 서 있었다. 문을 두드린 것은 그런 생각을 보다 빨리 떨쳐낸 히요리였다. 그의 합리성에 의하면 지금 여기서 얼어 죽을 바에야 출처 모를 찝찝함으로 하루를 지새우는 것이 나았다.
“…계십니까.”
크지 않은 목소리, 거기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손. 그럼에도 바깥의 소리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처럼 문은 빨리 열렸다.
“네? 어머, 누구세요? 이 날씨에 여기까지.”
“실례라는 건 알지만 저희가 길을 잃은 데다가 차까지 고장 나서요.”
히라가 차 열쇠를 보여줬다.
“하룻밤 묵는 것을 허락해주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집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망설이는 것이 느껴졌다. 히요리가 급하게 덧붙였다.
“댁에 혼자뿐이라면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희 경찰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망설이던 여자의 눈이 알 수 없는 빛으로 반짝였다. 둘의 얼굴과 히라가 보여준 경찰 수첩을 꼼꼼히 뜯어 본 여자는 잡고 있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들어오세요, 경찰 분들. 저는 가네코 메이사예요.”
🏠︎
예상대로 가네코 메이사는 이 넓고 고립된 산장에 혼자였다. 원래 이 산장의 주인은 자신의 할아버지인데, 작년에 할머니를 잃고 건강이 급격하게 좋지 않아져서 올해부터 자신에게 산장의 관리를 맡겼다고 했다. 가네코 메이사는 자신들을 길을 잃은 경찰이라고 소개한 남성 두 명의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산장 정리가 덜 되어서 원래 손님방으로 쓰던 1층 방 대신 2층의 방에서 묵으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히라와 히요리에게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된 방문을 열어주면서, 가네코 메이사는 들고 다닐 수 있는 등 하나를 놓아주었다. 그들이 도쿄에서 일하면서 만져보기는커녕 볼 일도 없던 기름등이었다.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묵고 가셔도 좋아요. 하지만, 저어…아직 정리 중이라, 되도록 1층에는 내려오지 않으셨으면 해요. 물병은 2층 복도 끝 탁자 위에 놓아둘게요.”
그리고는 문을 닫고 나가기 전 한 문장을 덧붙였다.
“밤새 소리가 좀 날 수 있는데 가구를 정리해야 해서 그래요. 이해해주세요. 그럼.”
문 닫히는 소리까지 깔끔한 안내였다.
“수상하지 않습니까?”
문이 닫히고 단둘만 남기를 기다렸다는 듯한 히요리가 물었다.
“대체 뭐가요.”
“여기 주인 말입니다.”
“수상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는데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공교롭게도 하나밖에 없는 손님방 침대에 풀썩 걸터앉는 동시에 누우면서 히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 감찰관님은 생각이 너무 많아. 뭐가 그렇게 또 수상하십니까~. 등 따숩게 잘 수 있는 침대를 얻었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자면 될 것을요.”
“그러는 당신은 늘 그렇게 대충이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다음 문장을 잇기 전에 히요리가 침대 근처의 의자에 와 앉았다. 히라가 발이나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였다. 예상외로 가까운 탓에 히라가 고개를 들어 히요리를 바라보는 동안, 히요리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고 무릎에 팔꿈치를 괴었다.
그리고 말을 이을 틈을 주지 않고 히라가 히요리의 어깨를 와락 잡아 눌러 침대에 눕혔다. 히요리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붉히면서도 순순히 그 옆에 누운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히라는 그것이 제법 만족스러웠다.
“자자, 복잡한 생각은 그만두고 잠이나 잡시다. 어차피 여긴 우리 소관도 아니라구요.”
이불을 덮어주는 척, 은근슬쩍 허리에 감겨드는 히라의 팔을 쳐내며 히요리가 대꾸했다.
“팔이나 치우라고.”
“새삼 부끄러워하는 겁니까? 이제 침대에서 이 정도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그렇게 잠들었던 것 같다. 전혀 움츠러들지 않은 눈송이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중, 누군가의 속삭임을 듣고 히라는 잠에서 깼다. 뒤척여 누우려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눈을 뜨니 침대 가장자리에 히요리가 걸터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응…? 또 저 감시한답시고 밤새는 겁니까?”
“쉿. 조용히 하고 창밖이나 보세요.”
잠기운 하나 없는 눈동자를 안경알 너머로 확인한 히라가 못마땅하다는 티를 숨기지 않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렇게만 해도 침대 머리맡에 있는 창문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뭔…엇, 저건.”
어둠과 거센 눈보라로도 가려지지 않은 검은 인영이 무언가를 끌고 가고 있었다. 그 뒤로 눈보라로도 지워지지 않은 깊은 도랑이 남았다.
“집주인입니다. 가네코 메이사. 산장 입구에서 나왔습니다.”
“고작 심증 때문에 잠을 안 잔 겁니까? -라고 말하기에는 수상하긴 하네요. 저 정도 크기라면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는데요.”
“사람 맞을 겁니다. 당신이 자고 있을 때 팔다리같이 생긴 것을 갈무리하는 걸 봤습니다.”
“그럼 살인사건? 이런 고립된 산장에서?”
“살아있다면 좋겠지만…그런 가능성은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히요리의 옆모습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일단 증거를 확보하러 나갑시다. 가네코 메이사가 이 이상 증거를 훼손하기 전에 말입니다.”
눈보라는 여전히 거셌고 그들은 이 산장의 구조는 잘 모르는 데다가 바깥에는 이 미친 날씨에 시체를 처리하려는 용의자가 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도 히라는 눈이 녹아 축축이 젖은 코트를 집어들었다. 히요리는 이미 말을 하면서 그 자신의 코트를 입은 채였다.
“아, 참으로 빠르기도 하시지.”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전등이 은은한 불빛을 내뿜고 있어서 2층 복도는 어느 정도 밝았으나 난간 아래로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냥 내려가려는 히요리 뒤에서 히라가 기름등을 낚아챘다. 뒤에서 불 그림자가 일렁이자 히요리가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히요리와 히라의 눈이 마주쳤다.
“… ….”
“… ….”
히라는 꺼질 듯 흔들리다가도 다시 단단히 자리를 잡는 기름등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다시 앞을 바라보기 직전에 히요리가 지은 표정을 히라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주 조용했다. 1층은 가구 하나 없이 텅 비어있었다. 히라가 등을 들고 이리저리 비춰보는 곳마다 새카맣게 비어있었다. 가구가 없으니 이런 작은 산장도 아주 크고 넓어 보였다.
“어째 으스스하네요.”
“당신은 겁도 많군요.”
“당신만 하겠습니까?”
또 투닥거린 히라와 히요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계단 뒤쪽에 있는 작은 문이었다.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고, 히요리가 문에 귀를 대고 안쪽의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식료품을 모아두는 창고인 듯했다. 캔 몇 개가 남아있을 뿐 텅 비어있던 창고의 특이한 점은 짙은 색의 액체가 커다란 웅덩이를 그리며 살짝 고여 있다는 점이었다. 그 웅덩이로부터 시작된 끌려간 듯한 자국은 정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면에는 밖으로 향하는 문이 있었는데 살짝 열려서 눈보라가 불어 닥치는 중이었다. 벌써 문가에 눈이 조금 쌓여있었다.
가네코 메이사가 이곳에 시체를 보관해두었다가 밖으로 끌고 나간 것이 명백해 보였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둘은 꽤 호흡을 맞춰 본 경찰 파트너였다. 히라가 기름등을 웅덩이 옆에 놓아두고 웅덩이와 끌려간 자국을 살피기 시작하자 히요리는 허리춤의 홀스터에 단단히 숨겨놓은 리볼버를 꺼냈다. 산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존재를 강렬히 인식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히라의 옆에 서서 밖으로 향하는 문 쪽으로 겨누었다. 누가 언제든 들어올 수 있었다.
“예상은 하셨겠지만, 이거, 피인 것 같은데요. 좀 됐습니다. 다 굳었어요.”
“당장 신호가 터진다고 해도 신고를 넣는 건 어려워 보이는군요. …등은 놓고 갑시다. 눈이 많이 내리지만 아직 자국이 덮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히요리의 말대로 덜 덮인 발자국이 설원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인 한 사람만큼 큰 무언가를 질질 끌고 간 자국이 설원에 깊은 흉터를 남긴 것이 보였다. 숲은 무척 어두웠지만 거의 기듯이 몸을 낮춰 발자취를 더듬어 간다면 못 따라갈 것도 없었다. 게다가 가네코 메이사가 향한 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히라와 히요리에 방에 놓여있던 기름등과 같은 색이었다.
등을 들고 왔다면 놓쳤을 만큼 매서운 눈보라였다. 하지만 가네코 메이사는 기름등에 의지한 채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일렁이는 등불이 가네코 메이사의 웃고 있는 얼굴을 기괴하게 비추어 등허리에 오싹 소름이 돋게 했다. 히요리도 같은 것을 보았는지 눈가를 미미하게 찌푸렸다. 그때.
“-숙여요!”
삽으로 얼어붙은 땅을 헤치던 가네코 메이사가 히라와 히요리가 있던 곳을 돌아봤다. 소리를 들었거나 감이 아주 좋은 사람인 듯했다.
“… …거기 누구 있어요? 아. 설마 경찰 분들?”
“들켰네. 감찰관님은 숨는 것도 제대로 못 합니까?”
“왜 당연히 나 때문에 들켰다고 생각하는 건데?”
“경찰 분들이 맞으셨네요. 제가 분명 ‘되도록 1층에 내려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리지 않았던가요?”
다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삽으로 방금 내린 눈을 잔뜩 짓이기며 가네코 메이사가 그들 근처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 좀 해보십시오!”
“왜 내가!”
“누운 채로 총을 어떻게 뽑습니까? 그쪽은 아까 산장에서부터 총 뽑아놨잖아요. 어떻게 해보라고요!”
“하…….”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라서, 턱 아래로는 눈을 잔뜩 묻힌 채로 일어난 히요리가 가네코 메이사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조준이었다.
“삽 내려놓으십시오. 가네코 메이사, 당신을 살인 용의자 및 시체 유기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총을 보자 가네코 메이사가 삽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총구에 겨눠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히요리는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만, 가네코 메이사에게
“삽은 이쪽으로. 살짝만 발로 치세요.”라고 말하고 히라에게 그 삽을 압수하라는 고갯짓을 해 보였다.
가네코 메이사는 협조하는가 싶더니, 히라가 삽을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움직였다.
“…큿!”
팔이라도 맞출 생각으로 히요리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가네코 메이사가 더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다시 삽을 낚아채 총을 쥔 히요리의 팔을 향해 휘둘렀다. 삽을 휘두르는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눈 아래로 망설임 없이 발을 디뎠다. 힘도 속도도 보통의 여성이 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반면, 히요리는 이곳의 지형을 전혀 몰랐다. 눈으로 쌓인 곳 중 어디를 밟아야 하는지를 망설인 순간 히요리의 패배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읏, 절 방해하지, 마세요!”
“당신…!”
그러나 가네코 메이사가 휘두른 삽에 맞은 것은 히라의 왼쪽 발이었다. 재빠르게 히요리와 가네코 메이사의 사이에 끼어든 히라가 가네코의 발을 건 결과였다.
“…저 다리 부러진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뱉은 뒤에 히라는 눈 위로 풀썩 엎어졌다. 히라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놀란 것은 가네코 메이사뿐만이 아니었지만, 히요리는 그것을 기회로 잡았다. 이번에는 피하는 것보다 총알이 더 빠를 것이다. 추운 곳에 오래 나와 있어서 눈처럼 차가워진 총신 위로 눈송이가 몇 내려앉았다. 총구가 겨눠진 가네코 메이사의 이마에도 하나가 떨어졌다.
“둘만 더 죽이면 아무도 몰랐을 텐데 말이에요….”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손을 뒤로하고, 엎드리십시오.”
가네코 메이사는 이번에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혹시 더 모를 몸싸움을 대비해 히요리는 가네코 메이사를 기절시켰다. 이곳은 히라와 히요리에게는 너무 불리했다.
“당신.”
히요리가 설원에 엎어져 있는 히라를 흔들었다.
“끝났습니다. 왜 끼어들어선.”
“그러니까, 그냥 모른 척하고 잠이나 자자고 그랬잖습니까아? 감찰관님?”
“아쉽게도 입도 멀쩡한 것 같군요.”
🏠︎
눈보라는 잦아들었지만, 완전히 그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듯했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가네코 메이사가 들고 왔을 등불까지 꽤 멀리 걸었을 텐데, 그렇게 걷다 보니 산장보다는 그들의 차가 고장 난 도로에 가까워졌던 모양이다. 히요리는 히라를 부축하던 손에 힘을 줬다. 처음에 타고 왔던, 그러나 그때와는 달리 눈이 좀 많이 쌓인 렌터카가 보였다. 둘은 차 문을 열고 들어가는 대신 침묵하며 차 문에 기대어 섰다.
“…담배 좀 있습니까?”
먼저 입을 연 것은 히요리였다. 예상치 못한 요구에 히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그뿐이었다. 히라는 눈으로 잔뜩 젖은 코트 주머니에서 잔뜩 구겨진 담배를 꺼내 갑째로 히요리에게 건넸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이 구겨진 덮개 틈으로 한 개비를 빼내어 갔다.
“불도.”
“제가 다쳤다는 건 기억하는 겁니까?”
“당신을 부축해서 여기까지 왔으면 이 정도 요구는 들어주는 게 맞을 텐데요?”
틀리지는 않은 말에 히라가 이번에는 라이터를 꺼냈다. 등불의 빛깔을 닮은 자그마한 불이 담배를 물고 라이터 가까이 숙인 히요리의 얼굴을 오래 비추었다. 히라는 담배에 불이 잘 붙는지 라이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을 살짝 감은 듯 기울어진 히요리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
불이 붙기 직전에 히요리가 눈동자만 올려 히라와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히라는 라이터 부싯돌을 고정하고 있던 손가락을 놓았다. 다행히 담배에는 불이 붙어 붉은 점이 담배를 갉아 먹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나 참, 피도 흘려서 어지러운 사람한테….”
히라도 담배 새로 꺼내서 물자 히요리가 고개를 대각선으로 기울였다.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고정한 담배의 끝이 히라의 담배 끝과 맞닿았다. 아까 히라가 불을 붙여줄 때와는 달리 히요리는 처음부터 눈동자를 들어 히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는 히요리의 뒤쪽에서 떠오르고 있었는데도 그 눈동자가 또렷하게 잘 보였다. 아마 의도한 자세일 것이다. 히라도 눈을 피하지 않고 히요리가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기울였다.
불이 붙지 않은 담배를 문 히라가 익숙하게 숨을 훅 들이마셨다. 한 번에 불이 붙었다. 새 담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는데도 히요리는 담뱃불을 좀 더 오래 붙이고 있었다.
“이제 사건경위서를 쓰러 가보실까요?”
히요리가 담배를 떨어뜨리기 무섭게 히라가 물었다.
“당신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게 맞습니까?”
“그런 셈이네요.”
“하, 그런데도 쿨쿨 잘만 잤단 말이죠.”
“고립된 산장에서라면 경찰이라는 지위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 그것도 살인범과 같은 산장에 갇혔다면요.”
“경찰의 의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당신의 그런 태도는…마음에 안 들어. 언젠가는 내 손으로 직접 교화시키고 말 겁니다.”
“네에, 네에. 그 전에, 얼어 죽기 전에 차에 좀 타죠?”
히라가 자연스럽게 차 열쇠로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타려다가 멈칫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이 다리로 브레이크를 밟는 것은 무리였다. 그리고 브레이크 없이 눈 쌓인 도로를 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히요리도 그것을 깨달은 참인지 히라의 손에서 차 열쇠를 빼앗아 들었다.
“운전은 감찰관님이 하셔야 하겠습니다? 이거 영광인데요?”
“…당신은 그 입 좀 다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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