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노래
엘쏜 합동지 『돌아갈 줄 모른다는 것』 수록
0.
인어에 대한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이베리아인이거나, 잠깐이라도 이베리아에 머문 적이 있다면 어렵잖게 “그렇다”고 답하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곳의 모든 것은 바다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 이베리아의 어느 지역에 가든, 심지어 바다와는 한참 떨어진 내륙지역에 다다르더라도 바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오래전 그들이 이룩했던 영광도, 광휘도 모두 저 바다로 인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 말을 비유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겠으나 이베리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보다 직접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리라. 인어, 혹은 어인이라는 환상의 종족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다. 이제는 더 이상 육지에서 그들을 볼 수 없다고는 하나, 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분에게 나의 벗, 엘리시움을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그는 이베리아 출신의 전달자였다. 엘리시움은 답답한 자신의 고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더욱 넓고 새로운 세상을 동경해 그 직업을 택했다. 누군가가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간직한 채 때로는 하늘을 날아서, 때로는 바다를 넘어서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내가 그와 처음 만난 것도 그가 업무차 빅토리아를 찾았을 때의 일이었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아주 잘생긴 청년이 보기와는 다르게 사람을 대하는 데 몹시도 능숙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부류가 놓치기 쉬운 타인에 대한 존중과 애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는 찾기 어려운 유형의 사람이었다. 나는 우연히 들어온 술집에서 귀한 인연을 만난 데 감사하며 그와 몇 잔의 술을 나눠 마셨다.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내가 가보지 못한 방방곡곡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 만에 친구가 되었고, 이후로도 그가 빅토리아를 찾거나 내가 이베리아를 찾을 때마다 종종 만남을 가지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이베리아의 해안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만난 지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때 이미 나의 몸은 쇠락하여 젊은 시절의 혈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고, 매끈하던 얼굴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던 차였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난 벗의 얼굴은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 그대로였다. 그는 나와의 만남이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는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반가운 모양이었다. 우리는 근처의 바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엘리시움은 고민 끝에 내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모두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옮긴 것이다.
1.
그는 자신이 처음 그 존재와 마주쳤던 것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이었노라고 회상했다.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창고 속에서도 가장 아래에 있는 깊고 깊은 추억들이 형성되었을 무렵, 막 새 옷을 받고 학교에 들어가 친구들을 사귈 무렵, 그리고 아직 한창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것을 즐길 무렵.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이베리아인은 걸음마보다도 빠르게 헤엄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한다. 그 또래의 아이들은 부모님의 애정 어린 걱정을 한 귀로 흘리며 시간이 날 때마다 누가 더 멀리까지 헤엄칠 수 있는지, 혹은 누가 더 오랫동안 잠수할 수 있는지를 걸고 내기하곤 했다. 엘리시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날 친구들과의 수영 내기에서 처참하게 패배했던 어린아이는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몰래 자신의 기록을 경신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남자애들 간의 유치한 자존심 싸움은 무시할 수 있더라도 담대한 이베리아의 남자로 태어나 헤엄을 치고 바다를 정복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는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바다와 하늘 앞에 떳떳하게 서고 싶었다. 그날따라 무섭게 느껴지는 약간의 비바람이 걱정스럽긴 했지만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자신을 품어준 고향의 바다는 이번에도 아무 문제 없이 자신을 끌어 안아줄 것이다. 그는 그리 생각하며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다면, 첫째, 바다는 한낱 인간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며, 둘째, 저 바다 아래 깊은 곳에 머무는 자의 존재였다.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란 것이 으레 그러하듯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바닷속에서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제대로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해안가에서 그를 발견한 부모님이 허겁지겁 집으로 그를 데려와 따뜻한 난로 앞에 몸을 덥히고 있을 시점이었다는 사실이다. 엘리시움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에 겁을 집어먹는 것도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궁금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허나 조심스레 부모님에게 여쭤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걱정 어린 일갈뿐이었다. 주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나마 전후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은 그가 얕은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파도에 휩쓸려 쓰러진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엘리시움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때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까지 나아갔고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의식을 잃은 동안 꾸었던 꿈이 그를 의문에 잠기게 했다. 그는 한 존재를 보았다. 온통 새카맣고, 밝게 빛나는 노란빛의 무언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형형하게 빛나던 그것은 눈이었으리라. 그 호박빛은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한편 부드럽고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바다의 두려움과 온기를 합쳐 놓은 것만 같은 눈. 바다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였다.
순진한 어린아이였던 그는 누구보다 믿고 사랑하는 부모님에게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이야기했지만 정작 그들은 제 아이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때 헛것을 보는 일은 흔했고 제 아이의 목숨을 구한 것은 바다의 삿된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거룩한 존재일 것이었다. 부모는 엘리시움에게 이 사실을 친절하게 일러주는 동시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절대로, 누구에게도 이 이야기를 들려줘서는 안 된다.” 엘리시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에 계신 분의 은총을 받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면 모두에게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던가? 부모님은 어째서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걸까? 하지만 곧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이후로 사정을 모르는 친구나 다른 어른들에게는 물론 가족 사이에서마저 그날의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었다.
사람들은 기억이 영원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진실로 그러할까? 내가 오랜 세월을 살아가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말로 화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서서히 닳고 먼지가 쌓이며 가려지는 법이라는 사실이다. 기억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눈뜰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그것은 영영 죽어 사라진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
엘리시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달의 춤에 이끌려 해안가를 빠져나간 바다와 함께 그의 기억도 점차 스러져갔다. 성장한 이성은 운명과도 같았던 만남을 우연한 행운으로, 호박빛 눈을 시야의 착란으로 둔갑시켰다. 그는 이쪽이 훨씬 합리적인 설명이라 생각했고 그의 부모 또한 이 변화를 기껍게 여겼다. 바다를 가로질러 돌아온 선원들이 인어에 관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그는 어디에나 있는 흔한 이야기 취급하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기억보다도 오래도록 남은 것이 있다면 몸에 새겨진 상흔이었지만, 그조차도 그가 성인이 되기 이전 종적을 감추었다. 상흔은 옷 아래로 감추어지고, 바다에 대한 공포는 더욱 광활한 곳을 향한 본능적인 갈망 앞에 무릎 꿇었다. 그가 처음으로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향했을 때, 하늘은 맑았고 모든 악몽은 영원히 기억과 함께 저 깊은 바닷속에 잠들어버린 듯했다. 그의 첫 여행은 다사다난했지만 적어도 막연한 의혹과 두려움을 거꾸러뜨릴 정도로는 순조로웠다.
한참을 잠들어있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은 그와 나 사이의 첫 만남이 있고도 수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당시의 그는 약 스물여덟의 나이로, 전달자로서의 생활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던 참이었다. 근처의 라테라노나 림 빌리턴, 빅토리아는 물론 저 멀리 우르수스 혹은 사미부터 사르곤의 오지에 이르기까지 그가 가보지 않은 곳은 없었다.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이야기. 그는 그것들을 사랑했다. 그에게는 숨을 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는 호흡하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바다를 넘고, 하늘을 넘었다.
십여 년 전의 사건 이후 그의 인생을 바꾼 두 번째 사건 또한 컬럼비아에서 이베리아로 향하는 선박을 타고 가던 도중 발생했다. 종착지인 항구를 목전에 두고 심각한 풍랑에 휩쓸렸던 것이다. 여행자를 환영하는 양 기분 좋게 철썩이던 고향 땅의 파도는 순식간에 고요함으로 바뀌었고, 고요함은 순식간에 재앙으로 뒤바뀌었다. 거센 폭풍은 무자비하게 선박을 뒤흔들고 짓이겼다. 수 시간의 사투 끝에 마침내 선박이 무너지는 순간, 엘리시움은 이것이 제 짧은 생의 마지막임을 직감하며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온통 새카만 어둠과 그 속에서 밝게 빛나는 별과도 같은 이형의 존재, 그것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엘리시움은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켜켜이 쌓인 기억을 끄집어냈다. 기억은 십여 년간의 부재를 무無로 돌리려는 듯 생생하게 되살아나 뇌리를 사로잡았다. 순간 깨달음과 함께 전율 어린 흥분감이 함께 온몸을 내달렸다. 십여 년 전, 내가 보았던 것은 당신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의식은 저물었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번에도 밤의 해변에 홀로 쓰러져 있었으나 떠오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이 본 것은 환상 따위가 아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의 실존을 확신하자, 이제 또 다른 문제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인간의 목숨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가치가 있다면, 그 목숨을 구해준 이에게는 남은 평생을 바치더라도 모자랄 은혜를 입은 것이리라. 하물며 두 번이나 목숨을 빚졌다면 어떠할까.
엘리시움은 고민 끝에 그를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존재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엘리시움이 모르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고향의 이야기라면 더욱이 그랬다. 그는 이제 어른들이 쉬쉬하며 감춰오던 비밀을 알았다. 극동과 이베리아에―마치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신과도 같이―동전의 양면 같은 형태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알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보았던 것이 환상이 아니라면, 어린 시절 손바닥보다도 커다랗던 동화책과 모험에서 돌아온 선원이 들려주었던 인어에 관한 이야기 또한 환상보다는 진실에 가까울지도 몰랐다. 수많은 이야기는 각각 다른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지만 공통적인 특징이 몇 가지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나 아름다웠고, 매혹적이었으며, 강인했다. 엘리시움은 바로 그 이방인을 찾아야만 했다.
엘리시움은 아마도 지금껏 수많은 사람이 꿈으로 삼았을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이 회복되는 대로 제게 몇 번의 죽을 고비를 선사했던 바다로 나아갔다. 바다에 사는 존재라면 바다에서야 만날 수 있을 터.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십여 년의 간격을 둔 두 차례의 사고에서 그의 도움을 받고 살아남아 깨어났던 해변 사이의 거리는 제법 가까웠다. 그렇다면 자연히 그 인근의 바다에서 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 엘리시움의 생각이었다. 그는 천천히 바닷물에 발을 적셨다. 차갑고도 섬뜩한, 죽음의 한기가 뼈까지 파고들었다. 앞선 두 번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바다로부터 생生보다도 죽음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고, 더 이상 폐로는 호흡할 수 없을 때까지.
하루가 지났다. 바다를 빠져나오자마자 온몸이 떨렸다.
일주일이 지났다. 별다른 수확은 없었지만, 더 이상 떨지 않고 바다를 헤엄칠 수 있었다.
이 주일이 지났다. 사흘에 한 번씩은 배를 띄우기로 했다.
한 달이 지났다. 마을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바다로 나아갔다.
한 달하고도 이 주일이 지났을 때, 엘리시움은 발을 헛디뎌 쪽배에서 미끄러졌다. 무게 중심이 흔들린 조그만 배가 일순간 뒤집히고 그의 몸 또한 바닷속으로 고꾸라졌다. 그나마 그의 작은 배가 침몰한 곳이 해안가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고, 조금만 무리한다면 아슬아슬하게 뭍까지 수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 다행인 일이었으나, 그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이는 그리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엘리시움이 허우적거리기를 멈추고 마음을 가다듬을 겸 눈을 꾹 감으며 몸의 긴장을 풀자 순식간에 무언가가 허리께를 강하게 잡고 들어올리는 것이 느껴졌다. 물고기나 해초와는 다르게 길쭉하고도 탄탄한, 마치 사람과도 같은 무엇이었다. 놀라 눈을 뜬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파란 바닷속에서도 분명하게 빛나는 호박빛의 눈을 가진 한 청년이었다. 엘리시움은 마치 제 몸이 바다의 일부인 양 부드럽고도 신속하게 유영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가 바로 자신이 오래도록 찾아온 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제 처지도 망각한 채 다급하게 청년의 어깨를 붙잡고 뻐끔거렸다. 잡았다.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을 터였지만 청년은 의식을 잃은 줄로만 알았던 상대가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움직임을 멈췄다. 청년이 머뭇거리는 찰나의 시간 동안 엘리시움은 그의 모습을 제 눈에 담았다. 이 근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탄탄한 갈색 피부와 새카맣게 어두우면서도 자개 껍질처럼 영롱한 머리칼, 호박빛으로 일렁이는 눈. 전반적으로 뭍 위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중성적인 미남자의 모습이었지만 그에게 맴도는 묘한 분위기가 눈앞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이형의 이방인임을 일깨웠다. 청년은 곧장 엘리시움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한계에 다다른 엘리시움의 팔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한 수 빨랐다. 청년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주저 없이 다시 그를 붙잡고 바다 위로 향했다.
두 청년이 암초 근처로 빠져나오기까지는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이 고개를 내밀자 물에 빠질 때와 같이 철렁이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공간을 채웠고 한 인간의 다급한 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그가 암초 위에 늘어져 호흡을 고르는 사이, 공기를 통한 호흡이 불필요한 또 다른 한 청년은 물속에 몸을 숨긴 채 상대의 동향을 살피고 있었다. 여차하면 내버리고 떠나기라도 하겠다는 얼굴이었지만 엘리시움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 숨이 돌아온 엘리시움은 기침 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잠깐만, 잠깐만…….”
엘리시움이 몇 번의 호흡을 가다듬는 사이에도 청년은 대꾸를 하지도, 자리를 떠나지도 않으며 영 못마땅한 얼굴로 빤히 상대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난 너와 대화하고 싶어. 조금만 시간을 내줄 수는 없을까?”
청년은 한참 동안 엘리시움의 눈을 바라보다 겨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헌데 기이하게도, 분명 입술은 달싹거리고 있는데 엘리시움에게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오랜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목소리를 잃는 마녀의 저주에라도 걸린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엘리시움이 자신의 오판을 깨닫기까지는 아주 잠시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하긴, 물속에 거하는 존재가 뭍 위의 인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거나, 같은 방식으로 발성한다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하고도 난감한 일이었다.
“미안. 이렇게 말한 것치고 정작 난 네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네. 우리의 귀에는 너희가 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야. 혹시 내가 하는 말은 너에게 들릴까?”
다행히도 엘리시움이 목소리를 낼 때만 입의 움직임이 멈추는 걸로 보아 이쪽의 소리는 들리는 모양이었다. 엘리시움은 미소 지으며 그토록 전하고 싶던 말을 건넸다.
“들리기는 하는 모양이네. 다행이다. 의미도 전달될지는 알 수 없지만……. 몇 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 십 년 전에도, 얼마 전에도, 지금도. 정말 고마워. 네게 이 말을 전하고 싶었어.”
그리고는 다시 청년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청년은 몇 번 입을 달싹이더니 엘리시움의 얼굴을 일별하곤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엘리시움은 한참을 암초 위에 앉아 물에 젖은 몸이 떨려올 때까지 청년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날 엘리시움은 자신의 힘으로 무사히 해안가에 돌아올 수 있었다. 되돌아본 바다는 천국의 모습도 지옥의 모습도 아닌, 그저 존재할 뿐인 만물의 고향이었다.
해묵은 소원은 이루었지만 엘리시움은 바다로 이어지는 발길을 끊지 않았다. 이유는 그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미 습관이 되었기 때문인지, 혹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인지. 물속에 몸을 담그고 저 너머의 암초까지 수영을 하거나, 배를 띄우거나, 해변을 거닐거나. 어떤 형태로든 바다를 떠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다분히 충동적이었을 이 선택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았다.
“네가 왜 여기에…….”
사고 이후로 문제의 해안가를 찾은 지 일주일이 되었을 즈음, 그는 해변에 서 있는 익숙한 인영을 발견했다. 햇빛을 받아 더욱 영롱하게 빛나는 눈과 머리칼. 지면을 밟고 우뚝 선 맨발은 며칠 전 자신을 품에 안고 해초 사이를 힘차게 헤치고 나가던 그것과 같았다. 그를 다른 누군가와 헷갈릴 일은 없었다. 엘리시움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때, 뭍 위로 올라온 바다의 존재―에기르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그러하였듯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들린다’는 말이 과연 적절할까? 공기를 매질로 삼은 파동이 귀에 전해진다기보다는 뇌리에 직접 꽂히는 것과 비슷했다. 그 소리라는 것 또한 일반적인 언어에 상응되는 이미지보다는 단순한 소음이랄까, 짐승의 울음소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절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뇌가 당장 뒤돌아 도망치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만약, 그가 익숙한 음을 내버려 두고 구태여 자신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로 발성하고 있는 것이라면……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지만, 그는 단지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몰랐다. 엘리시움은 빠르게 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키며 입술을 떼었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에기르의 ‘말’을 들은 엘리시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가 다시 호선으로 늘어뜨려졌다. 그는 눈가를 접어가며 실없는 미소를 짓곤 한 손을 내밀었다. 에기르는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것이 기나긴 대화의 시작이었다.
2.
엘리시움이 청년에게 처음으로 물어보았던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 청년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해변에 쓸려온 성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엘리시움은 그에게 쏜즈thorns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청년은 자신의 이름에 나름대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반대로 쏜즈가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그는 자신의 이름을 엘리시움elysium이라 답했다. 그의 발길이 닿았던 가장 머나먼 곳을 이르는 단어이자 그와 친밀한 이들이 그를 이르는 별명 중 하나였다. 쏜즈는 장음을 섞어 그를 엘리-시움이라고 불렀다. 엘리시움은 그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좋아했다. 그렇게 그들은 쏜즈와 엘리시움이 되었다.
엘리시움은 쏜즈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쏜즈 또한 엘리시움에게 그러하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는 매일같이 해변과 그 옆의 절벽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탐욕스레 느껴질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다에 관한 이야기, 하늘에 관한 이야기, 이베리아에 관한 이야기. 자신이 살아온, 사랑하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 해변은 그들에게 좋은 연습장이 되었다. 손가락이 모래를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과 밀물에 쓸려 사라졌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해가 뜨고 해가 저물 때까지, 때로는 밤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바람 앞에 꺼뜨려질 때까지 그들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본래도 영리한 이들이 새로운 지식을 익히기 위해 욕심껏 달려들었으니 서로의 언어를 습득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쏜즈가 이베리아어로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채 이 주가 걸리지 않았고 엘리시움 또한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에기르어의 문장 구조를 익힐 수 있었다. 그들의 언어가 지상 위의 어떤 언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음을 고려하면 몹시도 빠른 시간이었다.
쏜즈는 엘리시움더러 우리들의 언어를 말하고 듣는 뭍 위의 인간은 네가 수십 년만일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시움은 영광이라며 익살스레 답하긴 했지만, 그 시절의 그는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엘리시움이 아닌 누구라도 그러했으리라. 어쩌면 쏜즈 본인조차도 미처 짐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에기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곤 하나 그도 결국은 평범한 젊은이에 불과했으니까.
언어의 교환에 익숙해지자 점차 그들은 현실과 구체를 넘어 추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상과 감정, 욕망과 같은 것들. 언어란 곧 사고이고 이상의 가교였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말을 섞은 이들은 불완전하게나마 상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들은 명명을 통해 세상과 서로를 정의했다. 쏜즈는 엘리시움으로부터 사랑을 속삭이는 밀어를 배운 날 그의 손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고, 엘리시움은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런 건 어디에서 배웠어? 내가 가르쳐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너희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오래된 책에서 읽었다. 이거 우연이네. 나도 얼마 전 너희가 나오는 책을 읽었거든. 낯간지러운 대화가 몇 번 오고 가고, 엘리시움은 조심스레 손가락을 얽은 뒤 이마를 맞댔다. 사랑해. 행여나 누가 들을세라 자그맣게 속삭인 말은 바람에 실려 깊은 바닷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여느 날보다도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고, 밤이 무르익어 쏜즈가 바다로 돌아갈 무렵 그들의 인사는 당연하다는 듯 입맞춤으로 바뀌었다.
그날 이후 엘리시움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생겨났다. 언제나 현재로 가득 차 있던 그의 삶에 미래가 자신이 차지할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이 다가온다면 그곳에는 쏜즈가 있기를 바랐다. 그가 언제나처럼 바다를 등지고 해안가에 서서 자신을 반겨주었으면 했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는 일반적인 두 사람의 세계와 많은 것이 다를 것이다. 남들에게 당연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평생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세상의 엄포에 엘리시움은 설령 그렇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르게 생각하면, 자신은 방랑자였고 상대는 이방인이었으니 나름대로 좋은 파트너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해안가에 하얀 벽돌로 만든 번듯한 집을 짓고 살 수는 없더라도 하늘과 바다가 그걸 대신할 집이 되어줄 것이다. 연인으로서 살 수는 없더라도 형제로서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어떤 삶이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는 자신에게 내일을 만들어 준 사람이었으니까.
엘리시움은 그저 가장 알맞은 시점을 기다렸다. 당장 내일 제 마음을 털어놓고 손을 잡은 채 이곳을 훌쩍 떠나버린대도 좋았지만 조금쯤은 지금의 상태를 유지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잠자코 기다린다면, 더 나은 때가 다가오리라. 그는 그렇게 믿었다. 실상 그런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행복한 시간은 어째서 몇 배나 빠르게 흘러가는 걸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시간이라면, 조금쯤은 천천히 흘러도 좋을 텐데. 엘리시움이 긴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덧붙였던 그 말에 나는 어떤 대답도 건넬 수 없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처럼 덤덤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은 채 바다를 걷고,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내일을 기대하던 날들. 너무나도 평범하여 글로 쓸 만한 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것들. 그 모든 것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다가도 한여름 밤의 꿈처럼 사라져버린다. 누구나가 그렇다. 그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만큼 강인하지 못했을 뿐이다.
종막의 날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터의 사람들은 친절했고 한 상인이 특별히 얹어준 과일은 신선하여 맛이 좋았다. 지상의 과일과 채소를 좋아하는 쏜즈가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니 엘리시움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콧노래를 부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해변을 향하는 도중 그는 광장에 몇 무리의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논의하는 그들의 모습에 거리를 두고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자 몇 가지 단어가 귀를 파고들었다. 바다, 괴물, 이단, 처벌.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를 죽여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들 중 한 명이 곧장 엘리시움을 발견하곤 외쳤다. 괴물! 그러자 무리의 모든 사람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엘리시움은 그들 모두가 날붙이를 손에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함소리가 광장을 울렸다. 저 녀석이 그 괴물을 만나고 왔어! 괴물의 하수인! 책에 나오는 전설처럼, 저 녀석과 그 괴물이 이 땅에 재앙을 몰고 올 거야. 돌을 던지고 불태워 죽여야 해! 수십 개의 눈이 한 청년을 향했다.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지만, 엘리시움은 그들이 정말로 자신이 아는 사람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광기에 찬 눈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뒤돌아 뛰어가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과일들은 떨어져 짓뭉개진 지 오래였다. 길을 찾는 일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저 감각에 맡긴 채 달리고 또 달렸다. 무릎이 찢어지고 폐가 터질 것처럼 아려올 때까지 달렸다.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은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가 시야를 가려 몇 번이나 넘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쏜즈에게 가야 했다. 그에게 알려야 했다. 영영 바다로 돌아가서, 절대로 이곳으로는 돌아오지 마. 저들은 미쳤어. 나를 죽이고 너도 죽일 거야. 그리고, 그리고……. 그에게 전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너무도 많았다. 그가 불어넣은 숨으로 살아간 이 생이 끊어지기 전에, 전해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시야에 푸른색이 들어왔다. 탁 트인 하늘, 그리고 바다. 쏜즈는 해안가 옆의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엘리시움은 마지막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 절벽을 향해 달려갔다. 누구보다도 보고 싶었던 얼굴이 천천히 이쪽을 향했다. 호박빛의 눈이 일순간 빛나더니 까마득한 소리가 들려오는 뒤쪽을 일별하곤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물었다. 저들이 너를 해친 건가? 엘리시움은 대답하지 않고 쏜즈의 팔을 붙잡았다. 욕지기가 튀어나오려는 가슴을 쥐어짜 겨우 숨을 토해냈다. 전해야 할 말이 그토록 많았는데,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생각했던 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네가 정말로 책 속에 나오는 괴물이라면, 나를 먹어줄래?”
어째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말이 튀어나온 것일까. 엘리시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깨달았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말이었다. 쏜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만히 엘리시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던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비명과 고함소리, 날붙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뒤섞인 끔찍한 소음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엘리시움은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고, 쏜즈는 엘리시움의 팔을 붙잡은 채 인간보다도 짐승을 닮은 입을 벌려 날카로운 송곳니로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아찔한 고통과 함께 살점이 뜯기는 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액체가 만발하며 힘이 풀린 몸이 쓰러졌다. 쏜즈는 엘리시움의 몸을 두 손으로 끌어안고, 그대로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
땅은 이제 그의 육신을 놓아주었다. 두 인영이 공기를 가르고, 철렁이는 소리와 함께 바다로 떨어졌다.
엘리시움은 포말처럼 아득하게 흩어지는 의식 속에서 자신을 감싸안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었다.
“어서 와라, 엘리시움. 우리들의 이상향elysium에.”
그는 깨달았다. 바다는 뜯어진 살점을 치유해주었고, 더 이상은 무엇도 그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무엇에도 고통받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의 육신은 다시 태어나―완전히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머니 바다의 축복 속에서 불멸의 영혼과 육체를 지닌 존재가 되었다.
3.
엘리시움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났다.
나는 그에게 후회하지는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 후회하지 않아. 그의 눈은 내가 지금껏 본 누구보다도 진실했다. 하늘을 바라보던 눈은 이제 바다를 향하고 있었지만 그 안의 빛을 잃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내게 건네주었던 말들 중 무엇도 의심하지 않는다.
바다로 돌아가는 그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그에게도 애환이 있고, 슬픔이 있을 것이다. 완벽한 행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불행하지 않으리라.
바다가 그와 그의 형제를 축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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