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쏜] 따뜻하게 해줘

 짧게 울린 메신저 소리에 엘리시움은 보던 영화를 잠시 멈추고 단말기를 집어 확인한다. 20분 뒤에. 단 두 어절만 적혀있는 메시지는 보낸 사람이 누군지, 어떤 의도로 보낸 건지 따로 보거나 묻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두 사람 간에 존재하는 일종의 신호였다. 알았어. 엘리시움 또한 간결한 답을 보낸 뒤 재생하던 영화를 완전히 종료했다.

 소파에서 일어나 난방기로 다가간다. 현재 실내 온도는 딱 적정 온도인 22도다. 엘리시움은 이 정도 온도에 딱히 추위를 느끼진 않지만, 난방기 온도를 3도 더 올린다. 자신이 아니라 룸메이트를 위해서다. 다음은 침대로 다가가 구석에 빼꼼 튀어나온 전기매트의 스위치를 켜고 3단계로 올린다. 룸메이트는 최고 단계인 4단계로 맞추길 바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체온이 높은 리베리에게 있어 4단계는 과하게 뜨겁다고 느껴지는 온도라 정말 무리였다. ‘진짜 화상 입을 것 같아. 한 번만 봐주라아…….’라고 사정사정하여 겨우 3단계로 합의했다.

 이후엔 예고된 시간으로부터 5분쯤 전에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미리 받아두었다. 메시지는 20분 뒤였으나 룸메이트는 항상 조금 더 빨리 오기 때문에 지금 물을 받아두는 편이 그가 도착하기 전에 준비해 둘 수 있으며 많이 식지도 않는 적기이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메시지가 도착한 지 정확히 18분 뒤에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바깥 공기와 함께 그 룸메이트가 들어온다.

 “어서 와, 쏜즈.”

 대답은 없지만 엘리시움은 익숙하단 듯이 웃으며 쏜즈를 맞이한다.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목도리를 둘러주고 보냈는데도 코끝이 빨갛다. 닫힌 문 앞에 선 채로 꿈쩍도 하지 않는 그에게로 다가가 양팔을 활짝 펴고 끌어안는다. 닿으면 생리적으로 놀랄 것만 같은 차가움에도 엘리시움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쏜즈의 냉기가 엘리시움의 온기에 뒤덮여 천천히 녹아간다.

 

 “……다녀왔어.”

 

 뒤늦은 대답과 함께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팔을 뻗어 엘리시움을 마주 끌어안는다. 숨을 쉬는 것조차 폐를 얼리는 것처럼 느껴져 얕게 호흡하고 있었던 쏜즈는 이제야 천천히 방 안의, 제 앞의 따스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내쉰다. 그 사이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엘리시움의 머스크 향이 몸을 더욱 나른하게 만들어 주고, 그만큼 이 짧은 시간을 끝내는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저녁은 먹었어? 추웠으니 별로 입맛도 없었을 것 같은데.”

 “귀환 전에 먹고 왔다. 지금은 그냥 빨리 샤워하고 잘래.”

 “그래, 그래. 물은 받아뒀어. 옷은 항상 두던 자리에 뒀고.”

 떨어지기 싫다는 듯 옷자락을 꽉 쥐는 쏜즈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면 한 번의 날숨 후 결국 스스로 손을 놓는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발걸음은 몇 번을 봐도 마음을 불안케 한다. 욕실에서 넘어지지 않아야 할 텐데. 엘리시움은 몇 번이고 하던 생각을 다시 한번 하고서, 커피포트에 물을 담고 차를 준비하기로 한다.

 

 

 엘리시움은 계피차가 담긴 두 머그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욕실로 다가간다. 문은 열지 않고 대신 두어 번 두드리기만 한다. 간단한 확인 절차다. 브라더, 또 욕조에서 그대로 잠든 건 아니지? 문 너머를 향해 그리 말하면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던 욕실에서 물소리와 함께 인기척이 들려 온다. 정말이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 시기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처음에 무슨 익은 물고기 마냥 새빨간 얼굴로 욕조에서 눈을 감고 있는 쏜즈를 보았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서둘러 욕실 밖으로 꺼내 몸을 식히고 의무실로 옮겼던 당시의 상황이 여전히 엘리시움의 기억 속에서 선명하다. 연인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겨울에 샤워하다 열사병에 걸려 죽는다니, 그런 일은 절대 사양이다. 물론 다른 이유로 죽는 것도 뭐든 안 되지만.

 얼마 안 있어 욕실의 문이 열리고 희뿌연 수증기 사이로 쏜즈가 나온다. 그 모습은 엘리시움의 예상과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똑같다.

 

 “머리는 제대로 닦으라고 몇 번을 이야기하잖아, 브라더. 안 그러면 나중에 춥고 감기 걸린다니까? 나는 베개 젖는 것도 싫고!”

 “귀찮아. 그리고 어차피 안 해도 네가 말려주잖아.”

 “그거 내가 말려주는 게 좋다는 건지, 나한테 떠넘기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는데.”

 “…….”

 “에? 당연히 전자인 거 아니었어? 왜 대답 안 해줘?!”

 나무라고 속상하단 듯이 소리치면서도 엘리시움의 옆에 착실히 준비된 수건과 빗, 드라이기, 헤어에센스와 기타 등등의 종합 세트를 보며 쏜즈는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어디에서는 원래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지는 법이라고 한다. 엘리시움과 쏜즈 중 어느 쪽이 서로를 더 좋아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체로 지는 쪽은 엘리시움이었다. 지금 저 웃음에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솔직하게 두근거리고 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리며 마른 수건을 든다.

 머리카락을 가르는 적당한 온풍과 엘리시움의 부드러운 손짓에 샤워로 달아난 잠이 다시 쏜즈에게로 몰려온다. 눈꺼풀이 감겼다 뜨길 반복하며 시야가 점등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현실과 무의식의 경계가 희미해질 때, 엘리시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쏜즈, 고개 들어야지. 차분한 목소리가 그를 다시금 현실로 이끈다.

 

 “자, 이걸로 끝.”

 

 언제, 무엇이, 어느 순서인지도 알지 못하고 몽롱한 채로 끝이 온다. 여기까지 오면 쏜즈는 반쯤 자는 상태나 다름없기 때문에 말수가 줄고 대부분 행동으로 대답하게 된다. 다 뜨지도 못한 눈으로 엘리시움에게 몸을 기대고 그가 건네주는 차를 별말 없이 받아 느리게 홀짝인다.

 

 “이번 임무는 어땠어? 거긴 꽤 추웠지? 어디 크게 다치진 않았어? 뭐, 너라면 다쳐도 금방 회복하긴 하지만 추위에 상처가 언다든지 그런 일이 생겼을까봐 말이야.”

 “응…….”

 “물론 메딕 오퍼레이터가 함께 가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걱정되는걸. 무사하다면 다행이지만.”

 “응…….”

 “그래도 추운데 고생했어. 너는 추위를 엄청나게 잘 타잖아. 나름 단단하게 옷도 여며주고 보낸 건데 제대로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네.”

 “응…….”

 “그래, 그래.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거지? 도움이 됐구나. 고마워. 나도 가능하다면 같이 가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럼 브라더가 따뜻해질 수 있게 하루 종일 꼭 안아줬을 거야.”

 “응…….”

 

 제대로 듣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대답이 이어져도 엘리시움은 전부 알아듣는다는 듯 혼자 묵묵히 대화를 이어간다. 쏜즈가 출장을 나가고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지, 그동안 로도스 내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자신에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평온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쏜즈를 수마로 이끈다. 더 이상 차를 마시지도 않게 될 즈음엔 엘리시움도 말을 멈춘다. 손에 힘 없이 잡힌 잔을 가져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팔을 끌어당겨 쏜즈를 일으킨다. 아까보다도 훨씬 휘청거리는 몸을 부축하고 세면대 앞으로 향해 칫솔을 쥐여준다.

 

 

 쏜즈는 겨울이 오거나 추운 지방으로 임무를 나가게 될 때면 활동량이 극한으로 줄어들고 체온을 보존하려는 듯 잠이 는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실험도, 과하다 싶을 정도의 훈련도 최저한으로 줄고 아침에 쉬이 일어나지 못하며 낮 역시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면 금방 졸기 십상이다. 전에는 식사 도중 고개를 꾸벅거리다가 음식에 얼굴을 박을 뻔했던 걸 엘리시움이 겨우 붙잡았다. 이 시기엔 추위에 약한 에기르들에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쏜즈의 경우엔 그 정도가 남들보다 조금 더 심하다는 이야기를 루멘에게서 들었다. 성인의 평균 일일 활동량은 채우고 있으니 건강에 이상은 없다고도 했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쏜즈가 거의 다 감은 눈으로 침대에 눕고 그 옆자리에 엘리시움이 눕는다. 평범한 리베리에게는 아직 자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어떤 에기르에게는 이미 충분히 잘 시간이다. 엘리시움이 팔을 들어 올리면 쏜즈는 이미 몇 번이고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품 안으로 들어가 바짝 붙는다. 난방을 틀어두었음에도 닿아오는 몸이 서늘하다. 엘리시움은 그 서늘한 몸을 끌어안고서 바깥의 냉기가 최대한 스며들어 오지 않도록 이불로 빈틈 없이 감쌌다. 대화나 함께 노는 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쉽지만 대신 좋은 점도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이처럼 쏜즈의 어리광이 는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엘리시움이 자신을 도우리라 생각하고 의존해 많은 것을 맡긴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엘리시움 역시 누군가를 돌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야말로 서로 ‘윈윈’이었다. 네 몸은 따뜻해서 기분 좋다. 언젠가 쏜즈가 했던 말이다. 연인이기에 당연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신뢰받고 의지 받는 것은 기뻤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새근새근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든 쏜즈를 엘리시움은 조용히 바라본다. 품에 안겨 자신보다 조금 아래에 있는 머리가 보인다. 처음으로 같은 방을 쓰게 된 날에 쏜즈가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는 사실을 엘리시움이 알게 되고 엄청나게 잔소리하며 이것저것 세면도구를 나누어주었는데, 다행히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머릿결의 상태가 전보다 좋다. 자신과 같은 향이 난다는 사실이 애인으로서의 독점욕을 만족시켜 다소 기분을 고양한다. 조금 더 시선을 내리면 보이는 작은 얼굴은 성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되다. 찬찬히 살펴보면 속눈썹이 꽤나 길다. 백 년에 한 번 나는 절세미남―지극히 엘리시움의 주관이다―정도일지는 미묘하지만 그런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미인이다. 트러블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뺨은 아이처럼 동그래 상당히 귀엽게 보인다. 결국 참지 못하고 손가락으로 뺨을 콕 찌르면 보드랍고 말랑말랑한 촉감과 함께 살짝 눌려 들어간다. 아직 깊게 잠들지는 못했을 테니 엘리시움은 빠르게 손가락을 떼어낸다. 다행히도 깨지는 않은 듯 쏜즈는 입술만 잠깐 오물거리다 만다.

 키스하고 싶다……. 속마음을 말로 꺼내지는 않고 입만 삐죽거린다. 아무리 인자하고 웬만하면 다 봐주는 애인이더라도 역시 스킨십 욕구는 있다고, 브라더. 뚱한 마음이 들어 그 뺨이라도 살짝 꼬집어주고 싶지만……, 잠든 그 얼굴이 사랑스러워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그러지 않는다. 역시 좋아하면 져주고 싶게 되는 법이다. 다음부턴 자기 전에 꼭 굿나잇 키스를 하자고 할까. 뭐든 양보하고 돌봐주고 품까지 내주고 있으니 그 정도는 괜찮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새까만 머리 위로 짧게 입 맞춘다. 평소처럼 분명 이불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 쏜즈와 실랑이하게 될 아침을 상상하며 엘리시움도 눈을 감는다.

 리베리는 뜨겁고, 에기르는 차갑다. 그 둘이 만나면 편안한 잠과 달콤한 꿈이 온다.

 잘 자, 쏜즈. 좋은 꿈 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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