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포토에, 우티스, 제인
2024 합작 참여작: Song of the Great Sea
히포토에, 우티스, 제인
공백 포함 7973자
배 밑에 누군가가 있었다. 또는 무언가가.
깊은 바닷속에서부터 올라온 파도가 뱃전의 따개비를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래로 갈수록 안쪽으로 얇아지는 뱃전의 특성상 갑판 위에서는 뱃전에 붙은 따개비를 실제로 내려다볼 수 없었으나, 메리는 난간에 두 팔을 포개어 놓고 파도를 내려다보며 그런 상상을 했다. 자신의 머리카락처럼 힘없는 잿빛의 따개비가 하얀 포말 아래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는 모습을.
아니, 따개비보다 중요한 것은.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은.
오드아이의 선장이 메리의 허리께를 가볍게 찰싹, 내리쳤다. 반동에 따라 선장의 붉고 긴 머리카락이 양옆으로 강하게 흔들렸다.
"뭐하니? 왜 놀고 있어?"
갑작스러운 접촉에도 메리는 놀란 기색 없이, 난간에 바짝 붙였던 상체를 뒤로 뺐다.
"그냥⋯ 배 밑에⋯."
"밑에?"
안대를 낀 오드아이 선장은 메리의 대답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는 듯했으나, 이내 선장 모자에 마구잡이로 꽂힌 깃털의 끄트머리를 손끝으로 훑기 시작했다.
"배 밑에 누군가 있어요."
"흐응? 그럴 리가. 여기는 대서양 한가운데인데?"
"아니에요, 정말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
"얼굴밖에 없어요."
"얼굴밖에?"
"아주 오래 고여있던 바닷물⋯."
"뭐라고?"
"낡은 천에 내려앉은 먼지 냄새나냐고 물어 봤어요."
"아, 정말 뭐라는 거니, 너!"
그 후 메리는 선장의 손에 의해 난간에서부터 돛대까지 끌려 나갔다. 선장은 메리의 말을 멀미나 신기루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메리는 그가 본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었다.
"낡은 천 냄새는 맡아본 적 없는데⋯."
그래서 어젯밤 메리는 그렇게 답했다. "나한테서 낡은 천에 내려앉은 먼지 냄새가 날 것 같은데."라는 문장에 대한 답이었다.
"낡은 천 냄새는 맡아본 적 없어요. 지금은 바닷물 냄새밖에 안 나요."
메리는 '바다완 연이 없는 삶을 살'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메리는 바다에 적응하는 속도가 더뎠다. 승선한 지 네 달이 지났는데도 메리는 아직도 발밑이 울렁거리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배 위였으므로 실제로 발밑이 울렁거리고 있기는 했으나, 네 달이라면 적응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걸을 때나 서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 언제든 울렁거림을 느끼고 있다면 뭍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 게 당연했다.
허리에 장식처럼 감아둔 짙은 바닷빛의 천에 얼굴을 묻어도 진정이 되지 않는 밤이 있었다. 선원들의 그물침대에 누워 갑판 아랫쪽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발밑의 울렁거림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던 밤. 메리는 그런 밤에는 갑판 위로 올라와 어둡고 새카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먼바다를 바라보고는 했다. 먼 수면에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와 발아래에서 느껴지는 울렁거림은 박자가 어긋나 있었지만, 어긋남을 누워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보통은 늦은 새벽까지 난간을 붙잡고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먼 수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해수면으로부터 아침 해와 함께 갈매기가 날아오면 그물침대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 메리가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어젯밤은 달랐다.
수면의 파도로부터 메리에게로, 파도가 살짝 튀었다.
뺨에 묻어난 바닷물을 닦다가 메리는 이상함을 느꼈다. 파도가 잔잔한 날에는 자신의 얼굴까지 물이 튀는 일이 없었다. 닦아낸 손등이 살짝 젖어 달빛에 반짝이고 있었으니 착각도 아니었다. 메리는 난간에 손을 짚어 상체를 지탱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배 밑에 누군가가 있었다.
누군가라고 한 이유는 사람 같은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무가 짙게 끼어있기는 했으나 물 밖으로 빼꼼 나와 있는 것은 분명 얼굴이었다. 짙은 피부에, 심해로부터 올라온 것 같은 검푸른 색의 머리카락이 자잘하게 달라붙어 있는 이마 아래로 호박을 박은 듯한 두 눈동자가 수면 근처에서 온난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커다란 얼굴이었다. 배 바로 아래에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이, 제대로 눈이 마주치려면.
'엄청 커다란 얼굴⋯?'
잘은 모르겠지만 얼굴 크기만 봐도 메리만 할지도 몰랐다. 메리는 성인이었지만 키가 작은 축에 속했다. 그렇다고 해도 배 아래의 누군가가 보통의 인간을 상회하는 크기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메리가 호박색 눈을 자세히 보기 위해 난간 밖으로 몸을 더 기울이자 수면 아래로부터 바닷물이 튀어 올라 메리의 뺨을 두드렸다. 메리는 뒤로 물러났으나, 얼굴을 찌푸리지도 않고 손등으로 다시 뺨을 문질렀다.
-왜 자지 않니?
메리는 먼 수면에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의 말소리보다는 파도의 울림을 닮은 소리였다. 메리는 또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심해에서부터 들려오는 것만 같은 목소리가 알 수 없는 힘으로 메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평소보다 멍해진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메리는 당장이라도 난간을 넘어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과 자기를 바다로 끌어들이는 존재에게서 눈을 떼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팽팽하게 갈등하고 있었다.
그 팽팽함을 깨고 메리가 질문을 하기 전에 갑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거기서 뭐해? 그레이 메리?"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자 물속으로 사라져버린 누군가를, 그 수면 위를 메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메리 앤! 잠이나 자!"
결국 호통이 들려오고 나서야 메리는 난간으로부터 끌려 나갔다. 바다로 뛰어들어 호박색 눈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은 메리가 다시 갑판 아래로 내려가 그물침대에 누울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만남은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메리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간 갑판으로 나와 수면 아래에서 반짝이는 호박색과 또다시 마주치기를 바라며 잠잠한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바다 한가운데서 만나는 미지의 존재는 꺼리기 마련이지만, 메리는 오히려 기꺼워했다. 바다의 모든 것을 처음 겪는 메리는 두려움도 모르고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배우느라 바빴다. 오늘은 돛을 돛대에 올려 묶는 매듭을 배웠고, 내일은 망루에 올라가 북극성을 찾아내는 법을 배울 것이다.
졸음으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이며 매듭을 머릿속으로 다시 묶어보던 메리의 뺨에 다시 바닷물이 튀었다. 며칠 전의 호박색 눈동자가 새카만 수면 아래에서도 똑바로 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꿈결인 줄 알았어요⋯. 아니면 바다의 정령."
메리가 뺨에 튄 바닷물을 닦는 것도 잊고 말을 걸었다. 파도가 흔들릴 때마다 흩어지던 호박빛이 수면 위로 올라와 부드럽게 하나로 모였다.
"난 꿈결도 바다의 정령도 아니야."
두 번째로 듣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던 것보다는 파도 소리가 아니라 인간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여 있던 바닷물이지. 내게서 낡은 천에 내려앉은 먼지 냄새가 날 것 같은데."
"낡은 천 냄새는 맡아본 적 없는데⋯. 낡은 천 냄새는 맡아본 적 없어요. 지금은 바닷물 냄새밖에 안 나요."
대답을 들은 호박색 눈동자가 따스하게 미소 지었다.
"내 손에 올라와도 될 정도로 작아! 인간과 이렇게 가까이서 대화하는 건 처음이야."
뱃전에서 철썩이는 파도를 가르며 눈동자가 메리에게로, 정확히는 메리가 탄 펜테실레이아 호로 가까워졌다.
"그래도 지금 꼬리까지 꺼내 보이지는 않겠어. 그랬다가는 이 작은 배가 흔들려 꿈에 시달리는 이들이 모조리 깨고 말 테니."
"꼬리가 있어요?"
메리가 드물게 놀라 물었다.
"인간하고 똑같이 생겼을 줄 알았어요."
"내게 다리가 있는 걸 상상했다고?"
"네⋯. 이상한가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메리는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 말했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 누군가에게는 무례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메리의 작은 머리로는 방금의 추론이 최선이었다. 바닷속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얼굴. 그 아래에는 무엇이 있는지 메리는 본 적도, 비슷한 존재에 대해서도 들은 바도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존재라면 인어였다. 그러나 메리가 동화책에서 본 인어는 인간만 했다. 메리 눈앞의 누군가처럼 해적선만 하지 않았다.
"이름이⋯ 있나요?"
메리의 다음 질문에 답으로 돌아온 것은 메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다음은 메리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깊은 물 속에서 웅웅대며 울리는 소리라고, 메리는 생각했다. 세상일에 무지한 메리라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방금의 소리는 평범한 이름이 아니었다. 인간보다 더 높은 격의 존재.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메리가 휘청였다. 완전히 쓰러지기 직전에 난간을 짚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인간을 해치지 않고자 했더니 결국 아무도 아닌 신이 되었군."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한 누군가는 메리에게 그 자신을 '우티스'라고 부르는 것을 허용했다. 메리는 알지 못했지만, 그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뜻이었다.
메리는 고민에 빠졌다. 어떤 저택이든 최소한 한 명은 '메리 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녀가 있을 정도로 메리의 이름은 흔해빠졌다. 메리는 자신의 이름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지만, 인간보다 특별한 인어의 이름을 지어준다면 평범한 이름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귀에 달린 그건 뭐니?"
그 질문에 메리가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은색 십자가 귀걸이 한 쌍은 메리가 바다로 떠나올 때 훔쳐 온 것이었다.
"제인⋯."
이것으로부터 메리는 이름을 찾아냈다.
"제인."
한층 더 인간의 것에 가까워진 목소리가 메리만이 부를 수 있는 새 이름을 따라 했다.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새 이름이에요. 이제부터 당신을 '제인'이라고 부를게요."
그리고 그 다음날 밤 메리는 그날처럼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번에도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날씨였다. 그날은 해무가 짙게 끼었을 뿐 파도는 잠잠했으나, 오늘은 포세이돈의 진노라도 산 것처럼 파도가 거칠었다. 폭우와 파도가 배를 부술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메리는 아직 초보 선원이었지만, 이런 날씨에는 그 어떤 선원도 갑판 아래에서 쉴 수 없었다. 인간은 나무로 만들어진 배가 없다면 바다 위에서는 단 반나절도 숨 쉴 수 없는 존재였다. 파도가 이렇게 날뛰는 날에는 배는 자칫하면 뒤집어졌다. 배의 전복을 막기 위해서는 선원의 수가 두 배로 늘어나도 모자랐다. 서툰 손이라도 없어서 빌리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돛을 전부 올려!"
선장의 길고 붉은 머리카락이 파도에 젖어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보통의 뱃사람들이 불길하게 여기는 붉은 머리였지만, 펜테실레이아 호의 그 누구도 선장의 머리카락 색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이놈의 머리색이 또 불행을 몰고 왔나 보네! 그래도 견디렴, 너희가 펜테실레이아 호의 선원이라면!"
키를 잡은 선장이 몸에 힘을 주어 버티며 신경질적으로 젖어 무거워진 머리카락 묶음을 어깨 뒤로 넘겼다. 돛대 아래에서 밧줄을 당기던 메리는 얼굴에 달라붙은 얇은 머리카락을 떼어내지도 못한 채 바람에 풀린 돛을 다시 묶고 있었다.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할 때 돛대 위로 올려 묶어두었으나, 보레아스와 노토스의 힘에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레이 메리. 돛!"
일등 항해사가 거친 목소리로 메리에게 다시 돛을 묶을 것을 명령했다. 손이 꼼꼼하기로 소문 난 메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일등 항해사는 알고 있었지만, 폭풍 속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메리는 달려가서 돛대에 돛을 고정하는 밧줄을 잡아챘다. 그것마저도 쉽지 않아서 이마를 한 번 얻어맞았다.
눈이 파란 선원과 다른 선원 몇 명이 아래쪽에서 밧줄을 당겨 돛을 끌어 올렸다. 새벽에 부드럽게 뺨에 튀었던 바닷물과는 다르게 날카롭고 차가운 폭풍이 메리의 이마와 손등을 때리고 있었다. 오한을 느낀 메리가 몸을 떨었다. 따스했던 호박색 눈동자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떠올려 봐도 몸은 따뜻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메리의 손은 차분하게 배웠던 대로 매듭을 묶고 있었다.
"조심해!"
제피로스의 변덕이 분 것은 그때였다. 위로부터 내리꽂는 듯한 바람에 배 전체가 오른쪽으로 크게 흔들렸다. 밧줄을 당기던 선원들은 우르르 넘어졌으며, 채 완성되지 못한 매듭은 그대로 풀렸고, 크게 펄럭인 돛은 메리를 덮쳤다.
그렇게 해서 메리는 그날처럼 바다에 몸을 던졌다. 던져졌다는 것이 정확했다.
수면에 등을 돌린 채로 물에 빠지는 것은 상당한 통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동시에 우습게도 메리는 자신이 수영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허우적거릴 힘도 없어서 몸에 힘이 풀려도 메리는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메리의 가늘게나마 뜬 눈에는 수중보다 새카만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방금까지 폭풍의 한가운데서 파도와 고함의 큰 소리에 익숙해져있던 주위가 조용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메리의 정신을 더 멍하게 만들었다. 귀와 머리가 멍한 상태로 메리는,
점점 더,
깊은,
심해로,
가라앉아,
갔다.
O
o
.
메리 앤은 '바다완 연이 없는 삶을 살' 것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메리 앤은 절벽 아래로 윤슬이 반짝이는 바닷가가 잘 보이는 별장에서 살고 있었다. 메리는 별장의 주인은 아니었고, 별장의 하녀였다. 기억이 없을 때와 있을 때부터 메리 앤은 바닷가를 보며 살았다. 메리 앤은 불만을 몰랐다. 하지만 바다와는 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윤슬이 반짝이던 어느 날, 빨랫감을 들고 걸어가다가 바다로부터의 반짝임에 시선이 빼앗긴 날. 누군가가 메리 앤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이렇게 말했다.
'걸음 멈추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 너 같은 것은 평생 바다완 연이 없는 삶을 살 거다, 잿빛 메리야.'
메리 앤의 머리에 이상한 불똥이 튀었던 것일까? 그날부터 메리 앤은 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정확히는 바다로 뛰어들고 싶었다. 그날의 이상한 기분과 부추겨지는 듯한 감정을 메리 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요, 나는 바다로 가야만 해요.
뭍에 있음에도 마치 배 위에 있는 것 같은 어지럼증이 밤마다 메리 앤을 덮쳤다. 며칠 동안 자지 못했던 메리 앤의 눈에 같은 방을 쓰던 제인의 싸구려 은색 십자가 귀걸이 한 쌍이 들어왔다. 메리 앤은 그것을 쥐고 하녀 숙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금방 구해졌지만, 소금기 있는 바닷물에 한 번 빠졌다 나온 것만으로도 메리 앤의 상태는 나아졌다. 그리고 메리 앤은 삶의 은인이 둘러준 푸른 숄을 매만지며 여자만을 승선시켜 주는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제인을 만났다. 메리 앤은 이름조차 들을 수 없던 바다의 신. 언제든지 메리 앤을 따스한 호박빛 눈으로 바라봐 주던.
심해로 가라앉으며 메리 앤은 점점 더 어는 듯한 추위를 느꼈다. 바다가 이렇게 추울 수 있다는 것을 메리 앤은 알지 못했다.
'제인⋯.'
그것이 메리 앤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름이었다.
O
o
.
-여기서 무얼 하니?
메리는 목소리의 떨림이 아니라 고막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통해 전해지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메리가 방금까지 찾던 존재의 목소리였다. 메리는 다시 눈을 뜨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무거운 몸은 눈꺼풀조차 손끝조차 주인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었다.
'제인?'
제인의 이름을 부르고자 메리가 입을 열었을 때, 메리의 마지막 숨이 빠져나갔다. 그러나 제인은 커다란 손끝으로 그것을 손쉽게 잡아채어 제인에게 돌려주었다. 메리가 가물가물한 눈을 뜨자 언제나처럼 따스한 호박빛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메리의 가까이에 있었다. 메리는 손을 뻗었다.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이 잠잠해지면 가장 먼저 헤엄치는 법부터 배워야겠어.
제인은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더니 그 커다란 양손을 모아 메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그 손 아래에서 메리는 안심했다. 제인이 자신을 구했다. 제인이라면 분명 자신을 다시 배 위로 올려줄 수 있을 것이다⋯. 안심하며 손바닥 위에서 모로 누운 메리의 왼쪽 귀에 배기는 것이 있었다. 훔쳐 온 귀걸이였다. 동시에 신을 믿을 줄 모르는 메리에게 위안이 되어 주던 것이었다.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신은 이제 메리에게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메리는 한 쌍의 귀걸이를 반으로 나누어 제인과 나누어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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