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천칭의 한쪽 접시 위에다 보석을 올려놓았다. 보석은 투명한 붉은색을 수천 겹 쌓은 것처럼 깊고도 맑은 색이다. 등불의 빛을 입고서 가만히 내려앉는 보석 아래로 불그스레한 그림자가 번져간다. 단단한 광물이 유리 위에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는 경쾌했다. 그것이 잦아들 때쯤 천칭의 접시를 매단 금속 사슬도 보석의 무게에 흔들리다가 멈추었다. 찰그락, 찰그
문 너머에 대체 어떤 작자가 사는지는 몰라도, 잘났든 아니든 간에 직접 면상을 보고 주의를 환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고 알하이탐은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그로서는 드물게도 이웃집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명목상은 ‘주의 환기’였다. 제법 잘 지어져 벽이 그다지 얇다고도 할 수 없는 이 고급 맨션에서 어찌 그렇게 매일매일 벽을 뚫고 노이즈캔
하늘에는 금빛을 두른 보름달이, 그 옆에는 총총히 뜬 별이 반짝이거나 말거나 귀갓길을 걷던 알하이탐은 눈앞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지는 것을 언뜻 보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방금 귀에 들린 소리는 분명,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땅에 부딪치며 울린 것이다. 수메르성의 길은 보통 석재로 포장되어 있으므로, 낙하하여 부딪쳤다면 성대한 소리가 나야 한다.
말하자면 이건, 수메르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중 한 명인 네게 주는 특별 포상이야. 서기관으로서 매일 출퇴근하는 네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인센티브’, ‘보너스’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 내가 오늘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건 그런 이유 때문이고, 너는 내가 주는 이 포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다만, 네가 바라는 것을 이루려면 추가로 일을 더 해줘야 해. 현
반투명한 커튼 사이로 햇빛이 속속들이 들어왔다. 알하이탐은 반쯤 벗겨진 이불 속에서 느리게 눈을 떴다. 턱을 간지럽히는 머리카락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곤히 잠든 그의 애인이 보였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 조심히 카베가 베고 누운 오른팔을 빼려다 급격히 몰려오는 저릿함에 지그시 미간을 좁혔다. 알하이탐은 가시 돋친 듯한 고통이 잦아들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며 조
이 남자가 현관의 벨을 누르기까지 고민한 시간을 문장으로 옮긴다면, 책 한 권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많은 분량이 나올 게 틀림없다. 오늘은 그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어제 가게를 나서기 전 쪽지를 건넨 순간부터 반짝거리는 기대의 빛이 그의 눈에 떠오르기 시작했으므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 후로부터 가게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할
5 “깨울 필요가 없어서 편리하지만 넌 주량껏 먹는 게 좋아.” 일어나자마자 잔소리를 하는 건 너무 하지 않냐고…? 숙취 탓에 약간 두통이 있어서 카베는 손으로 이마 부근을 눌렀다. 자신이 있는 곳은 알하이탐의 방인 것 같았는데 침대 외에도 간소한 테이블과 소파가 갖추어져 있었다. 알하이탐은 그 위에 포장한 요리를 펼쳐놓던 참이었다. 새우 카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