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름밤 3.6제곱미터 위의 공방전

테이블 밑으로 다리 위를 더듬는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한 손톱을 세워 허벅지를 감싼 천 위를 몇 번인가 가볍게 긁어 대다가 손 전체로 다리를 꼭 쥐어 온다. 천 너머로도 상승한 체온과 습기가 전해진다. 다리를 감싸 쥐고 힘을 넣는 손바닥에 촉촉하게 땀이 배었다. 굳이 곁눈질로 확인하지 않아도 옆자리에 앉은 동행인이 극도로 긴장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저녁의 주점, 한구석의 원형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오랜 지인 두 사람 중 한 명이 작은 위화감을 눈치채고 이쪽으로 시선을 보냈지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대답을 담아 한 번 힐끗 쳐다본 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떠 보이자 그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지만, 긴장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도와달라는 듯 손을 뻗어 오는 카베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딱 잘라 말하자면, 방해된다.

이대로 무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알하이탐이 손에 든 술잔을 테이블 위에 조용히 내려놓고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예상한 그대로의 표정을 한 카베가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상기된 뺨과 긴장 때문에 충혈된 눈으로 절실하게 응시하는 카베를 보고 한숨을 내쉬자, 그제야 입술이 달싹이고 작게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도……, 도와줘, 알하이탐. 부탁이야…….」

시선으로만 다음 말을 재촉한다. 제법 싸늘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상태로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맞은편에 앉은 지인들이 쓸데없이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데도, 역시 방해되고.

「제발…….」

이제 카베의 상체가 완전히 알하이탐 쪽을 향했다. 아예 양손을 허벅지 위에 올린 채 어린아이가 매달리듯 꼬옥 힘을 넣고, 카베는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헤드폰 좀 빌려줘.」

 

 

혼자 누워 있어야 할 침대 위에서 미묘한 열기와 위화감이 느껴져 몸을 살짝 일으키고 내려다보니 명백히 다른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얇은 이불의 끝을 쥐고 들추려던 알하이탐은 이대로 침대에서 내려가 거실로 가야 할지 잠시 생각했으나, 이곳은 자신의 침실이며 침대도 물론 자신의 것이기에 따지자면 한밤중에 멋대로 남의 침대에 들어와서 잠든 이자를 쫓아내는 것이 맞다. 당초의 생각대로 이불을 용서 없이 확 들추자, 역시 카베가 몸을 둥글게 말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침대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는지 아직 깨어 있던 그가 머뭇거리며 시선을 보내 온다.

“……깼어?”

“덕분에.”

안 그래도 더운 날씨인데 침대에 다른 사람의 체온이 더해지면 위화감에 깰 수밖에 없다. 카베가 몰래 침대에 숨어든 이유는 짐작이 갔다. 아까 저녁때, 주점에서 오랜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나왔던 화제 때문이다.

더운 날씨 탓에 각자가 아는 괴담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면 어떻겠냐는 말이 나왔고, 네 명 중 한 사람만을 제외한 세 사람이 찬성하여 오랜만의 술자리는 괴담 일색이 되었던 것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첫 번째로 나서서 이야기한 사람은 사이노였고, 그는 풍기관으로서 여러 범죄를 접하는 만큼 자신이 겪은 현실적 괴담을 늘어놓았다. 사회의 암울한 부분과 인간의 이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는 그래도, 카베는 잘 버티고 있었다.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느니 일이 힘들겠다느니 하며 자기 일처럼 공감하기도 했다.

문제는 사이노 다음으로 이야기한 타이나리의 이야기였다. 숲에서 행방불명되었던 사람들이 무언가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속속 이어진다는데, 이 시점부터 카베가 알하이탐의 다리에 매달렸기에 거의 집중하지 못했다. 몸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힘겹게 이야기를 듣는가 싶더니, 알하이탐에게 매달려 기껏 한다는 부탁이 ‘제발 헤드폰 좀 빌려줘’였다.

딱히 괴담이 아닌 것 같았는데. 따지자면 몽환적인 이야기였다.

자리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알하이탐은 한숨을 쉬면서도 곧바로 헤드폰으로 카베의 귀를 덮었고, 그야말로 친절하게 잡음 상쇄 기능과 음악까지 틀어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취침을 위해 각자의 침실로 들어갔다.

이 밤은 그걸 끝으로 끝났어야 했는데. 어쩐지, 별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싶었다. 밤이 되어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아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얌전히 혼자 자려나 보다 했다.

“안 그래도 더우니까 네 방으로 돌아가서 자.”

“좀 봐주면 안 돼……? 사실 아까 들은 얘기 때문에 무섭단 말이야…….”

“내가 알 바 아니야. 더워. 내려가.”

“아, 정말! 그냥 얌전히 떨어져서 누워 잘게. 손끝 하나 안 대고 잠만 잔다니까? 안심해. 갑자기 끌어안거나 덮치지 않을게. 한 번만…….”

믿을 수가 없다. 카베가 침대에 올라올 때는 항상 몸을 붙여 왔기 때문이다. 따뜻해서 잠이 잘 온다나. 평소 같으면 입씨름을 하기도 귀찮으니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다르다. 정확히는 기온이. 두 사람이 붙어 양질의 수면을 도모하기란 불가능한 기온이다.

더군다나 ‘손끝 하나 안 대고 잠만 잔다’느니 ‘덮치지 않겠다’느니, 명백하게 앞으로의 플래그 같은 대사를 하고 있다. 그것도 꽤나 진부하게.

“카베.”

“왜.”

“정말 끌어안거나 덮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 

밤의 어둠 속에서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역으로 다시 물어보니 본인도 장담을 못 하는 것이겠지. 이런 혹서의 날씨만 아니라면 얌전히 베개 역할을 해주었겠지만, 덥다는 말을 더 꺼내기도 지치기 시작했다. 덥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더 더워지는 것 같았다.

알하이탐이 거실로 나가기 위해 몸을 뒤척이자 한쪽으로 몰린 체중 때문에 침대가 삐걱 소리를 냈다. 침대 위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어둠 속에서도 곧바로 감지한 카베가 몸을 던진 것도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넌 나를 그렇게 못 믿어? 너무한 거 아니야?”

“……지금 온몸으로 날 덮친 사람은 어디의 누구인데?”

“네가 나가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네 침대에서 자면 꼭 그러는 줄 알아? 그야……, 그럴 때가 많긴 했지만……. 오늘 정도는 그냥 재워줄 수도 있잖아!”

“더워. 떨어져.”

알하이탐을 위에서 꼭 끌어안은 채 카베가 꾸욱 체중을 실어 왔다. 얇은 천으로 스며든 체온이 더위 속에서도 간지럽게 피부를 파고들었다. 혼자 자기가 어지간히 무서운지, 카베는 끌어안은 팔에 점점 더 힘을 실었다.

──불길하다. 카베가 이렇게 끝까지 오기를 부릴 때는, 갑자기 폭발적으로 화를 내거나 하고 싶은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어 결국 둘 사이의 대화가 과격해졌기 때문이다. 

“후배가 이렇게 기대하시는데 선배로서 저버릴 수 없지. 원하는 대로 덮쳐줘야겠어. 넌 얌전히 누워서 자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어쨌든 날 밝을 때까지 여기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일 줄 알아.”

“난 원한 적 없어. 적어도 지금은…….”

“시끄러워, 벗어.”

무더위와 공포감에 취해 기어이 제정신을 놓아버린 모양인지, 카베는 양손으로 알하이탐의 상의를 붙잡고 위로 휙 끌어 올렸다. 역시 예상대로다. 불길함은 곧바로 현실이 되었다. 알하이탐은 옷을 끌어 올리는 카베의 손목을 붙잡고 움직임을 막으려 했다. 카베도 막무가내였지만, 더 힘을 넣었다가는 그의 피부에 자국이 남고 말 것이다.

“진정해, 카베. 지금은 아니야. 이 날씨에 하다간 네가 도중에 기절할걸.”

“차라리 기절할래…….” 

타이르듯 말을 건네자 돌아오는 말끝이 흐려졌다. 다행히도 양손에 붙잡은 손목에서도 조금씩 힘이 풀려, 알하이탐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물러났다. 그러나 여전히 몸 위에 올라탄 채 내려가려고 하지 않는 카베의 어깨에 손을 얹어 둥글게 어루만진다. 한사코 혼자 잠들기를 거부하며 매달리는 이유는, 아마도 저녁에 들은 이야기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상상력이 풍부한 카베이니 물론 그것이 대부분의 이유를 차지하겠지만,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고 숨어들기까지 했는데 날씨를 핑계 삼아 곧바로 떠나려 한 알하이탐이 원인이다. 이 무더운 밤에도 그에게는 체온이 필요한 모양이다.

“별로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잖아. 어차피 넌 도중에 헤드폰을 써서 못 들었을 테고.”

“그건 그런데…….”

“악몽을 꿀 것 같아?”

한동안 대답이 없던 카베의 머리카락이 한 번, 살짝 흔들렸다.

말 없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하는 카베에게서 시선을 돌려 천장을 올려다보며 알하이탐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느긋하게 자는 건 포기해야 할 모양이다.

오래전, 사이가 좋던 그때도 이따금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찾아와 기대어 오던 무게를 기억한다. 「역시 여기 있었네」라며 힘없는 미소와 함께 짤막한 인사를 마친 그는 알하이탐의 어깨에 기대기가 무섭게 잠들고는 했던 것이다. 학업 때문에 지친 기색과는 달랐기에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굳이 묻지는 않았는데, 나중에 고해성사하듯 털어놓는 그의 말에 따르면 악몽을 자주 꾼다고 했다. 잠들지 못하는 긴 밤을 지새고 나면 어딘가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알하이탐을 찾아와, 어깨에 기댄 채 부족한 잠을 채웠다. 그런 카베를 지켜보는 시간이 싫지만은 않았다. 맞닿은 체온은 의외로 기분 좋았고, 귓가에서 반복되는 숨결이 아주 편안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 자세로는 둘 다 못 잘 테니 일단 내려가서 누워.”

“응…….”

“기대는 정도라면 참아줄게.”

미약한 진동과 함께 작게 웃는 기척이 흘러 떨어진다.

지극히 사적인 공간, 이 작은 침대 위에서조차 그의 자리를 허락해버리고 마는 자신을 향해 다시 한숨을 내쉰다.

머지않아 옆에서 들려올 숨소리가 무더운 밤의 열기를 가라앉혀주기를 기대하면서, 알하이탐은 카베의 어깨에 대고 있던 손으로 윤곽을 더듬어 등을 둥글게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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