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장미 정원에 네가 다시 찾아오면
전후편 합본
7월에 발행 및 배본된 『이름 없는 장미 정원에 네가 다시 찾아오면』의,
전편인 타이틀작과 후편 『이름 없는 장미 정원에 아침이 찾아오면』 합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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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 들었던 BGM은 최하단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볼드로 표기된 곡이 제 추천입니다ദ്ദി ˃ ᵕ ˂ )
# 이름 없는 장미 정원에 네가 다시 찾아오면
선생님처럼 다정하시고 아는 게 많으시고, 또 예술이라는 것에도 조예가 깊은 분의 말씀이라 저로서도 다른 말을 하기가 싫습니다만 선생님, 선생님께서 찾으시는 붉은 장미란 없습니다.
제가 비록 평생 마을 밖으로 멀리 나가지 못하여 견문이 좁은 것은 사실이나,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봐온 장미들은 보통 연한 보랏빛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장미가 아니라고 합니다만, 이 마을에서는 그 꽃을 소위 장미라 부르고 있다는 걸 선생님께서도 아실 터입니다.
꽃의 색이 아무리 여러 가지라 한들 우리 같은 사람이 평생 볼 수 있는 건 많아봐야 몇 가지가 전부 아니겠습니까. 들리는 소문으로, 또는 이야기책으로 아무리 많은 꽃을 듣고 본다 한들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그 아름다움을 새길 수 있는 꽃이란 인생에서 몇 개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조금 특이한 색이라고 해봐야 사막 저편 어딘가에 있다는 황금의 색, 그래 봐야 노란색이지만요. 어쨌거나 붉은 장미란 세상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환상의 꽃이란 뜻이죠. 아주 먼 나라에는 피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 속에서 그 장미를 알게 되신 것 같습니다. 제 말이 맞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붉은 피를 마시고 사는 흡혈귀의 전설이 사람의 입에서 사람의 입을 통하여 쭈욱 전해지고 있기는 합니다. 아주아주 오래된 이야기지요. 이 마을 바깥쪽, 외곽 어딘가에 있는 흡혈귀의 집 정원에 붉은 장미가 피었다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저도 어릴 때부터 들으며 자랐습니다. 밤늦게 혼자 나다니는 행실 안 좋은 아이가 이따금 행방불명되는데, 사실 그 아이가 흡혈귀에게 잡혀가는 것이라느니, 사로잡힌 아이는 흡혈귀의 먹잇감이 되어 피를 다 빨린다느니, 잡아간 아이의 피로 흡혈귀가 정원의 장미를 붉게 칠한다느니 하는 내용이죠.
물론 어릴 적에 어른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저도 무서워서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만, 다 자라고 나서 한 사람 몫을 다하게 되었을 무렵 문득 떠올려보니 이것은 아이들이 제시간에 집으로 얌전히 돌아가게끔 만들어진 이야기겠구나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도록 이 마을에는 사라진 아이가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마을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살았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여태 행방불명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거나 한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흡혈귀 같은 건 그저 이야기 속 환상에 불과합니다. 미지의 괴물 이야기를 들려주어,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얌전히 돌아오는 착한 아이가 되도록 만드는 마법 같은 것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주문이지요. 주문이란 원래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자세히 뜯어볼 무엇도 없이 근거라고는 없어 아주 허무맹랑합니다만, 어린아이에게 약간의 공포를 심어주어 버릇을 잘 들이게끔 만드는 데는 이만한 약도 없습니다──그래서 선생님이 처음에 물어보신 장미 이야기로 돌아와보자면, 이 옛날이야기에서도 ‘흡혈귀는 잡아 간 아이의 피로 정원의 장미를 붉게 칠한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이야기를 지어낸 사람 역시 평생토록 붉은 장미를 못 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칠한다는 말을 썼겠지요.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이니 이 마을에 붉은 장미는 없다는 뜻이나 똑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붉은 장미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내고, 오랜 세월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진 이야기인 것입니다.
있다면 저도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평소에 두르고 다니시는 그 옷처럼 선명한 빛을 띤 붉은색 장미 말입니다. 분명히 아주 예쁘겠지요.
혹시, 선생님께서는 재주가 뛰어나시니 직접 만들 수도 있는 게 아닙니까?
조화라. 조화도 시들지 않으니 좋지요. 선생님의 손재주라면 살아 있는 꽃과 똑같이,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장미를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화는요? 학자 선생님들께서 간혹 품종을 개량한다느니 새로 만든다느니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있는 걸 파헤치는……. 아니, 조사하는 일 또한 학자분들이 좋아하시긴 합니다만 새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도 역시 좋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붉은 장미를 피워내는 데 성공하시면 자기 이름을 붙일 수도 있잖아요.
“하하, ‘카베’라고요?”
“그럼요. 선생님을 닮아 분명 미인일 겁니다.”
“꽃이 미인이라니, 참신한 표현이네요. 새 품종에 관한 이야기는 제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어 물어봐야겠어요. ……장미 이야기는 이쯤 하죠.”
조심히 돌아가세요.
웃는 얼굴로 환자를 배웅하고 나서 문을 닫는 소리가 귀에 까끌하게 달라붙었다. 목제 틀과 문이 마찰하여 울리는 평범한 소리가 이토록 불안하게 들리는 이유는, 오늘 밤의 특별한 계획 때문이다. 일상으로부터 아주 조금 벗어날 결심을 했을 뿐인데 매일 듣던 소리도 물건의 감촉도, 모든 것이 생소하다. 방금 돌려보낸 환자가 했던 말처럼 자신에게도 주문이 걸려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착한 아이를 만드는 이야기 주문呪文이라.
그렇다면 카베는 오늘 밤, 나쁜 아이─아이의 범주에 들어가는 나이를 훌쩍 넘기기는 했지만─가 할 만한 짓을 저지르는 셈이 된다. 모두가 잠들고 바람마저 잦아들어 서늘하게 가라앉은 밤을 가로질러서, 하늘에 걸린 달을 의지하여 이야기 속 환상을 찾으러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카베는 이 작은 마을의, 이른바 ‘선생님’이었다.
잠깐은 공부를 위해 떠난 적도 있으나, 나고 자란 이 마을의 포근함이 그를 다시 돌아오게 했다.
번화한 도시에는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도 집을 만드는 사람도 병자를 치료하는 사람도 각각 따로 있지만, 작은 마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애초에 사람이 적은 마을이었고 그나마 배운 사람들은 마을을 떠났다. 결국, 소위 ‘전문가’가 해야 할 일들은 조금이나마 그 분야의 지식을 가졌거나 겉핥기 정도라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해야만 했다.
이런저런 잡일을 떠맡기 시작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은 교육자가 필요하거나 집에 구조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몸이 아프고 다쳤을 때 자연스럽게 카베를 찾아오게 되었다. 작은 마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카베였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긴 카베 역시 그들을 거절하지 못해 그런 일들을 떠안은 결과,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이 마을의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된 경위를 생각하기 위해 잠시 과거를 돌이켜보던 카베의 사고는, 이제 ‘이 마을에서 선생님이 사라졌을 때 일어날 일들’로 옮겨 갔다.
모두가 나서서 찾을까. 하루아침에 사라진 ‘선생님’을 찾아 마을 사람 모두가 카베의 이름을 부르며 온 마을을 헤맬지도 모른다. 혹은, 그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은 마을에 있기가 질려 간밤에 떠났구나 하고 각자 짧은 원망을 내뱉은 뒤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낼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흡혈귀에게 잡혀갔다’라고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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