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타샤

13살, 겨울.

비 내리는 베를린에서 보냅니다.

by 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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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승객 여러분, 잠시 후 브란덴부르크 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안전 벨트를 착용하라던가, 창문을 열어달라거나 하는 음성이 여러 나라의 언어로 반복된다. 덜컹거리는 기체 안에서 그제야 눈을 뜬다. 이 건조하고도 서늘한 공기는 또 얼마만인가.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장시간의 비행에 부어오른 발을 신발에 꿰는 것이 불편해서 혹 다른 신발을 잘못 집어든 것이 아닌가 확인하기도 했다. 불편하다. 왜 내게 주어진 것들은 모두 나를 불편하게만 할까.

두 발로 땅을 딛고 선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스타샤는 자신의 유별난 구석을, 몇몇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지적하는 부분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억울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자신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듯, 그들 역시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도 같았다.

그래도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으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곁을 망령처럼 떠돌았다. 불가해한 영역에 있다 한들 싫은 것은 아니었으니, 흥미를 좇아 눈길을 돌리다 보면 향할 곳은 뻔했다. 때로는 사람이 사람이 귀찮았으나, 지루한 것은 귀찮은 것 이상으로 싫었다. 나스타샤는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떼를 쓰고 보는 어린아이였지만, 무언가를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발을 옥죄는 신발을 신고, 제 몸집만한 가방을 끌고 공항을 걸었다. 그 커다란 가방 안에 든 것이라고는 인형 두 개와 종이 몇 장, 색연필 몇 자루와 돌멩이 몇 개 뿐이라는 것은 숨긴 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어. 기억이 나지 않아. 집에 있던 뻐꾸기 시계가 고장나버린 날이었는지, 엄마가 아끼던 화분이 깨진 날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먼 옛날이었을까.

하지만 학원에 가게 된 날은 기억해. 모처럼만에 날씨가 좋았고,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어. 아빠랑은 전날 저녁 이른 인사를 했고, 엄마는 그날 아침까지도 내 머리를 빗겨주고, 신발을 신겨 주려고 했었지. 난 10살이었으니까 그 정도는 내 손으로도 얼마든 할 수 있는데도. 고양이 엘라는 언제나처럼 창가 옆 선반에 앉아 졸고 있었고, 오빠는 내 손으로 들기에 모자라는 가방을 차 트렁크에 싣고 있었어.

‘네가 가면 우리는 허전해서 어쩌지?’ 지금의 나와 같은 나이로 했던 말도 기억해. 나는 이 집을 떠나게 돼서 아주 홀가분하다고, 그렇게 말했다면 오빠는 어떤 반응을 했을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어. 그냥 생각하기만 했지. 나도, 오빠도 정말 이상하구나. 우리는 너무도 다르구나.

텅 비다시피 한 가방에서는 안에 든 물건들이 구르고 부딪히는 소리가 났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번역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언어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열 몇 살 어린애의 가방 속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므로. 나스타샤 역시 자신이 끌고 있는 가방 속에 무엇을 집어담았는지는 어느덧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어렴풋한 기억과 몇 개의 안내판에 의지해 게이트를 향해 걸었다. 어지러이 붙어있는 열차 노선도 속에서 익숙한 번호를 찾았다. 여기서부터 집으로는 한 시간, 선생님을 만나러는 한 시간 반.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과 금액을 계산해 보고는 동전 몇 개를 꺼내 발매 부스 안으로 밀어넣었다. C구간으로 가는 티켓 한 장 주세요. 중년과 장년 사이, 그 어딘가에 서 있을 것으로 보이는 직원은 표를 내밀며 말했다.

“네가 혼자 들기엔 가방이 무거워 보이는데, 같이 온 어른은 없니?”

“아빠가 데리러 오기로 했었는데, 바쁘대요. 그래서 혼자 가기로 했어요.”

저런, 힘들겠구나. 직원의 말에 나스타샤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안녕히 계세요.

그렇지만 나도 때로는 기대라는 걸 해. 그때도 그랬어. 내게는 이미 앨리스라는 환상 같은 힘이 주어졌으니, 두번째 환상이 나타나도 이상할 건 없잖아.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발을 붙여도 괜찮고, 답답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곳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책이나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힘이 생겼으니, 나도 책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그랬듯 울거나 웃을 일이 생길 지도 모르지. 그게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서, 나도 한 번쯤은 그런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 그래서 기대가 됐나봐.

그리고 기대는 대부분 물거품이 되더라. 열 살 짜리 어린 애가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며, 어쩐지 섬뜩하다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기억나. 유령보다 네가 더 무섭다고 말하던 친구의 떨리던 손도, 내게서 도망치듯 멀어지던 뒷모습도 기억해. 지내는 건 좀 어떻냐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니 한숨을 쉬고 눈물 짓던 엄마와 아빠도.

하지만 그다지 슬프진 않았어. 10살이었던 그 때는 물론, 13살이 된 지금도 그래.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이상한 걸까.

열차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자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스타샤는 서늘한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물에 젖어 눅눅한 풍경을 감상했다. 지난 방학에도 베를린에 왔었으니, 약 반 년 만에 보는 풍경이다. 그 사이 이곳이 달라진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흥미롭지 않은 것은 곧잘 잊어버리고는 했으니, 머잖아 지금 본 풍경 역시 의식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 뻔했다.

그러니 눈을 감았다. 나고 자란 나라의 익숙한 언어가 귓가에 생생히 들렸다. 행선지에 대한 기대감, 함께하는 일행과 나누는 친밀감, 일상에 담긴 성취감 같은 것을 말하는 낯선 목소리들을 들으며 생각했다.

익숙하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다. 편안하다. 그러나 편안하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덜컹. 상념을 가르듯 차체가 한번 들썩인다. 반사적으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덧 익숙한 거리가 보였다. 내려야 할 때가 됐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하차용 벨을 누르자 통로 너머에 앉아있던 낯선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와달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음에도 커다란 가방을 열차 문 앞까지 옮겨주려던 그는 가방을 들어올리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에 띄게 커다란 가방이 겉보기와는 달리 지나치게 가벼웠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머쓱한듯 웃는 그가 다른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나스타샤는 가방을 끌고 열차에서 내렸다.

나는 내가 무서워하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 나는 늦은 밤에 치는 천둥도, 옆집 할머니가 키우는 까맣고 커다란 개도, 영화에 나오는 미치광이 살인마도 무섭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

누군가는 나를 보고 대단하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부럽다고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상하다고도 말했지. 어떤 게 가장 타당한 생각인지는 모르겠어.

그렇지만 사실은 나한테도 무서운 게 있더라. 아니,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기에 궁금해서 직접 보기로 했거든, 그랬더니 익숙한 곳이 보였어. 새하얀 벽, 원목으로 만들어진 바닥, 정돈된 테이블 위에 올려진 나무 블록과 인형, 서류철과 뭉툭한 펜. 모를 수가 없는 곳이지. 엄마의, 아빠의, 때로는 오빠의 손을 잡고 갔던 바로 그곳이 보였어.

떨어지는 빗방울의 온도가 제법 서늘하다. 캐리어 바퀴가 보도블럭 위를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느리게 걸었다. 그 지난날의 환상에서 보았던 풍경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하며, 나스타샤는 여전한 의문을 곱씹었다. 나스타샤는 그 공간이 답답하고 지겨운 곳이라고 생각했다. 싫고 지루한 곳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곳이 두렵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포심을 투영한다는 앨리스는 어째서 내게 그곳을 보여주었나. 오고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순순히 발을 들인 데에는 그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릴 때엔 주에 한 번씩, 앨리스 학원에 들어간 뒤에는 2주에 한 번씩. 세데스 지부로 이전한 뒤에도 방학이면 꼬박꼬박 돌아올 수 밖에 없었던 건물 앞에서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나스타샤는 숨을 한번 내쉬었다. 겨울 공기에 하얀 입김이 스며들었다. 일렁거리며 사라지는 것이 유령 같기도 했고, 하필이면 새하얀 것이 그 환상 같기도 하다. 딸랑. 경쾌한 도어벨 소리를 들으며 문 앞에 깔린 진녹색 매트에 신발에 묻은 물기를 문질러 닦았다.

“어서 오세요, 노이쾰른 병원입니다.”

“5시에 예약했어요. 13살, 슐로트예요.”

3번 상담실로 들어가세요. 나스타샤는 가방을 로비 한쪽 구석에 밀어두고 새하얀 복도를 걸었다. 3번이라는 문패가 걸려있는 문을 찾아서. 꼭 닫혀있던 문을 열자 익숙한 풍경과 익숙한 목소리가 그곳에 있었다. 딱 맞춰 왔구나.

무섭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 모르겠어.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날 것 같고, 비명을 지르고 싶어지는 기분이라던데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거든. 무섭다는 것 뿐만이 아니야.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그 무엇도 명쾌하게 알 수 있는 게 없어. 누구도 나에게 명쾌하게 가르쳐주지 않았어. 세상이 참 이상하고 신기하지, 이상한 건 나도 마찬가지고. 아마 좀 더 이상한 건 내 쪽일 거야. 항상 혼자인 건 나였으니까.

언제부터였는지, 무엇이 나를 이상하게 만드는 건지. 여전히 모르겠어.

그래서 도망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차고 넘쳐서, 소용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으로는 기대인지 미련인지 모를 한 가닥을 놓지 못해서. 아늑하고 어둑한 곳에서 지켜보는 대신, 차디찬 빗물로 발목을 적시기를 택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추위에 지치고 말 것이다. 그 언젠가가 오기 전에 답을 구할 수 있을까, 그 언젠가가 오면 나는 이제 어디로 도망쳐야 하는 걸까.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것들이.

“오랜만이야, 타샤. 그동안 잘 지냈니?”

“그럼요.”

“잘 됐네. 그럼 자세히 얘기 좀 해볼까?”

답을 알 수 없으니 돌아왔다. 발을 붙일 곳을 찾지 못했으니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곳 또한 나스타샤가 발을 붙일 곳은 아니다. 켜켜이 쌓인 의문들에 답을 주지 못하는 이곳에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으니까. 단지 텅 빈 구멍을 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집어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갈구할 것이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나를 ■■하게 만들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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