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료켄] 인공지능 A의 죽음

아이유사 기반일지도,,,

* 들어보세요 이 둘은 된다니까요

*VRAINS 120화까지의 네타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캐붕 개인캐해석 날조 급전개 기타등등 주의!


자살(自殺)은 인간의 특권이다. 오직 이성을 가진 인간만이 자의로 스스로의 생명을 저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적어도 코우가미 료켄은 그렇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Ai와 최종 결전을 하러 간다면서 갑자기 3개월 간 실종되었다 돌아온 후지키 유사쿠가 일의 전말을 보고했을 때, 그는 (후지키 유사쿠와 관련된 일에서 으레 그렇듯이)스스로의 감정을 전혀 주체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둠의 이그니스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과 어둠의 이그니스를 인간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납득은 커녕 근본적인 이해조차 불가했다.

“그래서 나를 초대했다? 대단한 발전이네, 리볼버 선생.”

따라서 그는 이제껏 자신이 결코 하지 않으리라 여긴 결정을 내렸다.

어둠의 이그니스와의 대화가 필요했다.

“내 결단에 대해 네가 첨언할 일은 아니지. 그보다는, 후지키 유사쿠가 너를 이렇게 순순히 내놓았다는 점이 더 놀랍군.”

“아~ 확실히 나도 놀랐어. 뭐랄까, 알다시피 내가 부활한 뒤로 유사쿠 쨩은 나를 좀 보호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잖아? 리볼버 선생이랑 다시 만났을 때도 엄청 적대적이었고. 오히려 나도 물어보고 싶은데. 선생이 유사쿠를 어떻게 설득했길래 그녀석이 나를 이렇게 홀라당 넘겨버린건지.”

날씨는 여름. 에어컨이 틀어진 서늘한 방 안에는 두 존재의 말소리와 한 사람 앞에만 놓인 유리잔에서 얼음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글쎄…나는 그저 어둠의 이그니스와 대화가 하고 싶다고 전했을 뿐이다.”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었다. 솔직히 말해 후지키 유사쿠에게 그 말을 전하면서도 료켄은 아직 망설임을 전혀 버리지는 못했기에 대단한 첨언을 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거절을 예상하고 한 제안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후지키 유사쿠는 언제나 그러했듯 료켄의 예상과 기대를 모두 배신했다.

“흐응. 그래서, 이 나님을 굳이 여기까지 불러서까지 하고 싶다는 대화는 뭔데? 나는 아직 너를 믿지 않는다? 무슨 속셈을 숨기고 있는 거냐, 어둠의 이그니스?”

“아니. 나는 그저….”

드물게 료켄의 말이 망설임을 품고 멈췄다. 다른 표현 방법을 찾으려는 듯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던 그는 결국 우회를 포기하고 직설적으로 묻는다.

“…네놈이 ‘자살’을 한 연유에 대해 묻고 싶을 뿐이다.”

Ai의 표정이 과장돼 보일 정도로 기묘해졌다. 제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임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최첨단 인공지능임에도 이 질문은 예상하지 못한 건지 당황하며 우왕자왕하던 Ai는 료켄이 예상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질문부터 했다.

“유사쿠 쨩한테 얘기 듣지 않았어?!”

“자살같은 개인사를 타인의 입에서 듣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이 있나?”

“그건 그렇네.”

Ai는 금세 냉정을 찾았다. 조금 불유쾌해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이그니스의 표정 따위를 일일이 신경쓰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에 그건 제법 기묘한 기분이었다.

“솔직히 그 질문 완전 별로인거 알지?”

“나에게 그 정도의 배려까지 바라지 않았으면 하는데. 내가 너에게 할 질문은 이게 전부다. 대답하기 싫으면 그냥 가면 된다.”

“아~ 그렇게 말하시면 내가 또~ 음…어떻게 할까….”

SOLtis를 뒤집어쓴 어둠의 이그니스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인간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제 오리진이 하는 것 마냥 턱에 손을 얹고 고민하는 태도나, 경박하게 머리를 헤집는 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그 모든 행동에서 인간과의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결국 인간과 이그니스의 차이점이라고는 저 목의 전원 버튼의 유무 뿐인가? 인간 이성과 이그니스의 의식 알고리즘에는 정말로 차이가 없는가? 후지키 유사쿠의 말은 정말로 옳았는가?

“뭐, 그냥 가버리는 것도 나중에 유사쿠 쨩한테 할 말이 없어지니까. 좋아, 그렇게 까지 듣고 싶다면야 이 Ai님이 특별히 얘기해 주도록 하지.”

료켄은 당장이라도 그렇게까지 듣고 싶은 건 아니다!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것을 초인적인 인내로 눌러내는데 성공했다….

*

일단 얘기는 해줄 테지만 말이야, 솔직히 내가 ‘그 행위’를 결정하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고뇌에 대해서는 오직 유사쿠의 이해 만을 요구하는 것이라 그것까지 얘기해주길 바라지는 않는 게 좋을 거야. 뭐? 그딴 건 안 궁금하다고? 너무하네 갑자기 내 모든 고뇌에 대해 선생한테 다 전해주고 싶어지는데. 일단 사전 질문.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서 유사쿠 쨩에게 어디까지 들었어? ‘Ai가 갑자기 인류를 적대한 원인은 유사쿠 자신 때문이었고 그는 자신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희생했다. 그걸 인정할 수 없어서 Ai를 찾다가 네트워크 세상에서 부활한 Ai를 발견해 데리고 돌아왔다.’? 아니 유사쿠 쨩 중요한 건 하나도 설명하지 않았잖아?! 너무 간결해! 이거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것도 당연하네! 납득납득, 이해했어 선생. 어쩔 수 없네~ 설명력이 부족한 파트너를 대신해 이 초고성능 인공지능 Ai쨩이 대신 설명해줄게.

발단은 보먼과의 듀얼에서 나를 제외한 이그니스가 모두 소멸한 거려나. 아무리 내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라지만 종족 전부가 사라진거라고? 그것도 지금까지 함께 해오던. 선생이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난 그 녀석들을 좋아했으니깐. 어쨌거나 플레이메이커는 또다시 링크 브레인즈를 구했고 나는 내 고향으로 떠났지. 거기서 내가 뭘 찾았을 거 같아? 라이트닝의 흔적이야. 아, 그런 ‘또 그녀석인가’ 하는 표정은 됐으니까 얌전히 들어봐. 동굴 안에 라이트닝의 열화판이 있더라고. 다짜고짜 이그니스의 진실을 보여준다면서 시뮬레이션을 가동시키는데, 이게 웬걸? 이그니스가 나만 남으면 내가 존재하는 것 만으로 인류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결과가 나오는거 아니겠어? 나 역시 라이트닝처럼 하자가 있는 이그니스였다는거지. 당연하지만 계산할 수 있는 모두 경우의 수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나온 결론이야. 하지만 뭐, 이게 결정적인 원인인 건 아니고…나는 봐 버린거야. 시뮬레이션 속에서 나를 구하려다 죽어버리는 유사쿠의 모습을.

있지, 리볼버 선생. 선생이라면 알겠지?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자신 탓으로 죽는 슬픔을. 나는 정말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런 미래는 맞이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연을 맺어온 인간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유사쿠를 이끌어내서 날 죽이도록 한거지. 나를 죽일 수 있는 건 유사쿠 뿐이니까. 하나도 재미없는 내 얘기는 이거로 끝이야. 충분했으려나?

*

얘기가 모두 끝났을 때, Ai는 약간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료켄의 앞에 놓인 유리잔은 얼음이 전부 녹아 컵 겉면을 타고 흐른 물방울이 책상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내내 침착한 태도로 Ai의 이야기를 듣던 료켄은 잠시 눈을 감더니 작은 목소리로 “충분하다.”고 읊조렸다.

“네놈의 ‘자살’은…그런 식으로 이뤄졌군.”

“리볼버 선생이 이 얘기로 뭘 알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인공지능이 자살을 한다는 게 놀라워?”

료켄의 표정에 균열이 갔다. 바로 감정을 추스르고 불쾌한 표정을 지어도 Ai는 건수를 잡았다는 마냥 싱글벙글한 얼굴이다.

“이그니스는 인간에게서 태어났으니 인간의 특성을 닮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그건 선생이 가장 잘 알잖아?”

“글쎄. 그건 모를 일이지. 한 없이 인간을 닮았다고 해서 그게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니. 용건은 끝이다. 돌아가라, 어둠의 이그니스.”

“회피하는걸까나? 그래 뭐, 나도 솔직히 내가 한 행위가 자살이라고는 생각하진 않아.”

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한 Ai는 상관 않고 료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Ai는 료켄이 제 말을 듣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걱정하지 마, 선생. 선생이 걱정하고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이그니스고, 선생은 인간. 이건 절대 변하지 않을 유일한 사실이니까.”

쾅, 하고 문을 닫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료켄은 일어선 이후로 Ai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Ai는 의자에 체중을 기댄 불량한 자세로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다 이내 자리를 떠났다. 이제 방에는 어떤 소리도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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