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한 번 써보겠다
고정충이 된 오타쿠의 글 수련일기
오늘부터 펜슬을 블로그 삼아 글을 한 편 씩 써보려 한다.
말이 글이지 그냥 일기 쓴다는 말이다. 일기장을 남들 다 보는 곳에 쓰기엔 부끄러우니 조금 은밀하게 지인들이 자주 쓰지 않는 펜슬을 사용하기로 했다. 네이버 블로그나 포스타입은 이미 너무 많이 알려져 있어 민망하기 때문에… 그래도 꽤 공개적인 일기장이긴 하다. 지인들에게 발견된다고 기겁하며 터트리고 사라지진 않겠지만 내가 직접 꺼내놓기 전까진 상냥하게 모른 척 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직 부족한 실력이 부끄럽다.
십 몇 년 간 글에는 관심 없이 어중간한 그림쟁이 소비러 오타쿠로만 살아온 내가 갑작스럽게 글을 쓰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메이저 장르의 메이저 cp만 잡고 올라운더 리버시블이라며 어떤 개적폐캐해연성도 남이 주는 대로 모두 수용하던 내가 요즘 들어 고정충 비슷한 것이 되었다. (그냥 고정충이라고 하기엔 진짜 좌상고 친구들과 비교하면 내 어중간함에 신물이 나기 때문에 애매한 표현을 쓴다.) 취향이 뚜렷해진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분명한 취향이 생기니 처음 보는 작품에서도 나의 호불호를 예측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겼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그 사람과 더 친해질 수 있는 배경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고찰하고 그것을 설득하기 위한 말을 늘어 놓다 보니 지금까지 했던 덕질은 깊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시선을 가진 것은 처음이라 덕질하는 것이 아주 신이 났다.
그러나 취향에는 싫은 것도 포함된다. ‘맛만 좋으면 그만~’ 이라며 다른 사람의 해석에 생각할 시도도 않고 무조건 받아들였던 이전과 달리 지금은 내 의견과 다른 것을 보면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것에는 스트레스까지 받아 인생 첫 지뢰라는 것까지 생겨버렸다. 어찌 되었든 그 또한 남들이 좋아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연성이고 캐해석일 텐데 오타쿠 제1의 미덕인 취존을 하지 못하고 마주칠 때마다 1호선 광인 할아버지처럼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참게 된다. 그거 그렇게 캐해하시면 안 된다고 훈수 두고 싶다. 대체 그따위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대체 뭐냐며 추궁하고 싶어진다. 내가 뭐라고… 나라고 그렇게 완벽한 캐해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는 캐해도 누군가에게는 이해받지 못할 취향이 들어가 있는 적폐일 텐데… 그래도 님 그렇게 캐해하시면 안될듯요.
서론이 너무 길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보고 싶은 글이 있는데 아무도 써줄 것 같지가 않아서다.
최근 잡은 cp가 파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마이너다. 마이너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려 메이저의 리버스다. 게다가 나는 cp판의 주류 캐해와는 조금 다른 캐해석을 밀고 있다. 물론 리버스에 비해 아주 못 볼 캐해들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주워 담기엔 먹고 살기가 팍팍하다는 뜻이었다. 또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이건 cp가 아니라 조합이다. 3인 논컾 조합. 사랑으로 가득찬 대한민국 애정촌 동인판에서 ncp 3인관을 파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해당 조합명을 서치하면 삼각관계나 폴리아모리가 나왔다. 키워드의 오염을 눈으로 확인하니 개같이 힘들었다. 자급자족이 필요했다.
돈으로 해결할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커미션도 넣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림과 다르게 글은 글자수를 채우기 위해 내가 바라지 않은 것까지 들어가게 되거나 조금 다른 방향으로 보여지는 경우가 많아서… 온전히 내 취향이 담긴 것을 보려면 내가 쓰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원펀맨 수련을 하겠다는 소리였다. 목표는 스스로 논컾 3인관의 글을 짧게나마 써보는 것. 그림과 마찬가지로 글도 많이 쓸수록 는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진짜 무작정 써볼 예정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주로 트위터에다가 밈과 비문으로 난무하는 140자 이내의 글만 쓰다가 정갈하게 쓰고자 노력하려니 식은 땀이 날 것 같다. 이미 못 참고 밈도 꽤 썼다. 그래도 앞으로는 컨셉 유지하겠다.
하루 한 장 크로키 하며 그림 공부하는 것처럼 글 한 편 정권 지르기 하는 펜슬이 될 것 같다. 종종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장르 글도 도전해 보겠다. 타고나길 게으른 성정이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유롭게 쓰는 글이라면 부담은 없겠지. 먼 훗날 심심한 나를 위해 미리 쌓아두는 잼얘 리스트라 생각하며 작성하기로 한다.
다 적고 쭉 읽어보니 일부러 가볍게 적었음을 감안해도 이야기가 아주 중구난방하게 튄다. 그래…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딨냐. 시작을 개판 쳐놔야 나중에 발전한 것과 비교할 때 즐거운 법이다. 나도 가끔 초딩때 그린 타락천사 그림과 요즘 그림을 비교하며 좋아하곤 한다.
이 펜슬을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이 있다면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좋은 말만 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음 여린 ISFP(가끔 INFP도 나옴)라 놀림 당하면 울면서 천 년동안 저주할 거예요.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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