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사람은 왜 잠을 자야 하는가

0박2일 강남역 투어일지

젤리젤리 by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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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수가 부족할 때마다 나를 납치해 끼워주는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그들에게 일본 전자남돌의 콘서트를 가기 전 예행연습을 위해 토요일 밤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새벽 노래방을 즐길 예정인데 함께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전자남돌은 사실 잘 몰랐지만 자주 접한 덕분에 옆집 청년들처럼 익숙했고, 밤을 새워 오타쿠 노래를 부르겠다는 플랜이 매력적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20대 중반, 성장을 마치고 노화의 초입에 접어드는 내 나이를 망각하고 말이다.

나는 약속 없는 주말에는 식사를 불규칙하게 한다. 늦은 점심을 먹고 배가 꺼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녁을 생략하고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주린 배를 움켜쥐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잠에 드는 버릇이 있었다. 우리가 노래방을 예약한 시간은 11시. 한창 배가 고파지기 시작할 때였다. 마침 이동하면서 냉면 이야기를 했더니 냉면이 끌렸고, 밤을 새워 노래를 부를 예정이라면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아 대충 주문 수가 많은 식당을 골라 시켰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음식들은 훌륭했다. 함께 시킨 숯불 갈비에는 불향이 적절하게 입혀져 있어 질깃한 면과 잘 어울렸고 살얼음이 띄워진 육수의 감칠맛에 홀린듯이 들이켰다. 같이 시킨 파채까지 매콤달콤하니 식감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원래 좋아하는 메뉴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는 사이에 혼자 국물까지 싹 긁어 마시고는 그릇을 비웠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 기분이 좋았다. 이제 신나게 노래만 부르면 될 차례였다.

그리고 이 냉면은 밤새 가스를 품고 소화되지 않는다.

공복에 차가운 것을 한 사발이나 들이킨 탓이었을까. 위장 안에 풍선이 들어있는 것마냥 윗배가 빵빵해져서는 윗구멍 아랫구멍 어느 곳으로도 배출되지 않아 내내 더부룩했다. 명치를 바늘로 찔러서 터트리고 싶었다. 나를 걱정하느라 흥이 깨질까봐 친구들에게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죽을 정도로 힘든 건 아니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친구들의 열창에 있는 힘껏 호응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재롱을 부려댔다. 내 노래 뿐 아니라 아는 노래는 전부 복식호흡을 하며 복근에 힘주고 따라 불렀다. 열심히 움직이면 소화가 되지 않을까 해서…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마이크와 응원봉을 들고 춘 춤은 오타게가 아니라 냉면을 소화시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예약 시간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 5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강남은 어스름하고 지저분했다. 발에 채이는 여대생 셔츠방 전단지 따위를 치워가며 가까운 PC방으로 향했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시점에서 나는 이미 20시간 이상 깨어있는 상태였고 냉면 소화를 위해 계속 몸뚱이를 흔들어댔더니 장난 아니게 피곤했다. 마비노기를 했던 것 같은데, 고인물 친구들에게 니같다는 평가와 함께 쥐여진 옷으로 캐릭터를 취향껏 꾸미고 블로니라는 여자친구와 썸타는 퀘스트를 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근데 중간부터 PC방 의자에 기대 기절했던 것 같다. 게임이 재미 없었던 건 아닌데 그냥 쏟아지는 수마를 참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다음엔 멀쩡한 정신으로 하자.

내 꼬라지를 본 친구들은 일단 아침을 먹고 주변 만화카페나 수면카페같은 곳에서 한두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자며 비몽사몽한 나를 끌고 맥도날드로 향했다. 맥모닝으로 때우면 적절한 시간이었다.

아침을 먹는다… 라는 말이 묘했다. 보통 아침식사란 밤 동안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일어나서 먹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잠을 자지 않았는데 지금 먹는 것을 아침밥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게다가 아까보다 나아졌을 뿐 몇 시간 전에 먹은 냉면은 여전히 뱃속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입맛도 별로 없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맥모닝 메뉴를 먹어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베이컨 에그 맥그리들 세트를 주문했다. 이것도 단품만 먹으려 했는데 친구가 ‘진짜 해쉬브라운 안 먹어? 맛있을텐데? 바삭바삭할텐데??‘ 하길래 세트로 시켰다. 아무튼 다 먹긴 했다. 맛있었다.

찾아둔 수면카페의 오픈 시간에 맞추어 이동했다. 당시 시각 오전 10시 30분 경. 오픈은 10시라고 했는데 건물로 올라가보니 철문으로 닫혀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말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제야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잘 만한 곳을 찾으려면 이 피로에 찌든 몸을 이끌고 몇 분을 더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그냥 매장 앞 계단에서 자고 싶은 기분이었고, 실제로 그러려고 했다.

그래도 안에서 부스럭거리며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 혼몽한 정신을 붙들고 기다려 보았더니 11시 정각 쯤에 사장님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설마 일요일 아침 일찍 오픈타임에 맞춰 손님이 올 거라고 생각하진 못하셨겠지. 매장 앞 계단에 좀비같은 얼굴로 널브러져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을 보고 좀 놀라신 듯 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사장님께서 오픈시간 안 지키셨잖아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수면카페 내부는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적절히 따스한 공기와 편안한 정도로 어둑한 조도가 마음에 들었다. 학교 다닐 적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보건실에 왔을 때 약 먹고 한숨 자라며 보건 선생님께서 내어주신 침대 같았다. 나는 당연히 눕자마자 정신을 잃었고 3시간의 숙면 후 맑은 정신으로 깨어났다. 앞서 고생한 것들에 비해 머문 시간은 짧았지만 강력한 휴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는 안마의자 사용을 위해 방문하고 싶다.

슬슬 그녀들의 아이돌의 공연 시간이 다 되어간다기에 카페에서 나와서 우리는 바로 헤어졌다. 이틀 도합 꼴랑 3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주말이었다. 특별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살면서 처음 해보는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 후회 없이 기뻤다. 친구들도 콘서트까지 알차게 즐기고 돌아간 듯 했다. 6시간 밤샘 노래방, 불러 준다면 또 다시 어울릴 의향이 있다.

그래도 이런 짓은 20대 초반의 체력이 있을 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운동 더 열심히 해야지.

+

글이 길어질 수록 다듬고 정리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다. 이것도 많이 써보면 감이 잡히겠지. 오늘 쓴 것도 기록을 위한 일기일 뿐이지만 나중에 다시 볼 때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으면 했다.

음식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도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읽어보았다면 알겠지만 뒤로 갈 수록 힘이 빠져 대충 뭉개고 넘어갔다. 뭔가 불필요한 말 같기도 하고… 어떻게 글에 녹일지 모르겠다.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수려한 문장을 쓰는 것도 좋지만 술술 즐겁게 읽혀지는 글을 쓰고 싶다. 아까 문단을 잘라서 트위터에 올렸는데 개웃기다는 반응이 많았다. 성?공인가? 아무튼 재밌었다는 소리일 테니 다행이다. 쓰고 싶은 소설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기분이지만… 아무렴 어때… 재밌으면 됐지…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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