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에 대하여, 혹은 연극이 시작하기 전

- by bam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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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정의하는 일은, 그 성격에 의해 구분된 세부 항목들을 발견하는 일에 가깝다. 이때의 세부 항목이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미 발견된 사실이며,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그러니까 나비는 절지동물의 하나로, 나비목에 속하는 곤충이잖아.

-어.

-하지만 절지동물은 거미가 있잖아.

-…그래서?

-거미랑 나비가 같은 종류일 리가 없어. 이건 누가 잘못 쓴 거야.

-…….

…의심하는 사람은, 조금 바보같아진다. 지금으로부터 조금 오래 전, 언젠가 물어볼 게 있다며 책을 들고 대뜸 찾아온 어린 동생 하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서 공부는 다시 하라고 쫓아내버린 유진은 그런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 유진은 생각한다. 나와 너-라는 각각의 존재는 어쩌면, 절지동물이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거미와 나비. 그와 같이 일부 항목을 공유하면서도 일부는 다른 존재일지도 모르지. 이를테면, 종을 말하자면 인간. 그리고 그외에 자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 중 어떤 것이 겹친 정도의.

그렇게, 유진은 개별 인간의 다양성에 관심을 두는 편이었으므로. 기숙사 앞에 모인 언젠가 '종의 희소'에 관해 얘기하는 백색에 가까운 금발과 감정을 읽기 어려운 푸른 눈에는 눈길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만일 어느 날의 대화를 안다면 너는 ‘나비와 거미는 다른 종류’라고, 명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할까. 이제 겨우 처음 보았을 뿐인 제 추측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조금도 맞지 않겠지만.

그러나 적어도, 유진에게 낯선 동급생과의 지금의 만남이 갖는 의미는 단순한 시간의 흐름보다는 중대한 것이 되어갔다.

'우리'로 묶이는 경험. 그리고 '우리'의 하나인 네가 건네는 '마법사'로서의 자각에 관한 물음들. 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유진이 스스로를 '마법사'로 규정한 첫 경험이자 마법사인 자신의 내부를, 마치 작동하는 인형의 안을 열어보듯 관찰한 첫 경험에 가까웠다. 편지를 받고 입학한 뒤로도 스스로를, 자신도 채 알지 못하는 변화를 겪은 자신으로만 정의한 제게 스스로를 ‘마법사‘로 규정하는 경험 자체는 극도로 생경할 수 밖에 없는 일이어서.

그것은 하필 회관의 2층에서 이루어졌고, 그 방은 공연의 준비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었다. 막이 열리고 극이 시작하기 전까지 모든 준비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 ‘마법 학교의 학생’으로 모든 준비가 마치기 전에 그곳에 있었던 우리들.

먼지 쌓인 소품의 사이에서 왕관 모양의 나무조각은, 그것이 좀 더 정교하고 빛나는 보석으로 치장된 금과 은의 도색을 입었다면 네게 몹시 어울렸을테지만. 그러나 제 감상은 '장면' 안에서는 당장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잘못 분류 되었다는 것은, 올바른 분류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 네 말을 들으며 유진은 생각했다. 네게는 종을 포함하여, '바른 분류'를 하게 하는 기준이 있고, 그를 토대로 무언가를 구분해 나누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리고 그를 의심하지 않는 굳은 믿음도. 차근히 정리되어가는 소품들은 각각 크기와 종류가 어울리는 것끼리 나뉘었다. 네 분류법이 옳았던 탓이다.

다만 여전히, 유진은 구획의 안에 머무르는 대신 특이성의 일부를 제 것으로 삼는 것을 떠올리다가. 문득, 생각하는 것이다. 소년은 자유롭게 탁 트인 공간이 좋은가 하는 네 물음을 듣고서야.

어떤 깨달음은 질문을 마중물 삼아 시작되는 모양이지. 그러니까 유진은….

…나는, '종'이라는 분류가 내게 좁고 갑갑하게 느껴져, 경계선이 없는 자유로움을 바랐나 보다고.

누군가가 말하기를 인생은 한바탕 벌이는 한 편의 연극. 유진이 생각하기에, 가장 단조로운 인생조차 연극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이런 때에는 삶의 우연성보다는 극적 연출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닐까 잠시 생각하고 만다.

특히 저와는 정 반대의, 좁은 곳, 조밀한 것, 마치 비율을 맞추어 크기를 줄인 이곳의 소품들처럼 손에 쥐이고 눈에 닿는 것을 좋아한다는 네가. 하필 나와 마주쳐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이 장면은, 연극 혹은 영화, 이름이 무엇으로 불려도 좋을, 극의 장면이 아닐 수가 있을까?

오로지 무대 위에만 존재하는 닫힌 세상.

그렇게 잘 짜인 좁은 세상에 관한 비유를 기껍게 하는 너는…,

“꼭 연출자 같네….”

의식을 따라 흐르는 혼잣말은 나직하게 흩어진다. 그러나 이 순간이 연극이고 연출된 하나의 장면이라면, 마치 그 연출가는 너인 것 같다는 것은 진심에 속한다. 지금의 자신과 이 공간, 그리고 공기 하나도. 너를 만나기 전에는 상상하지 않았던 것들이므로.

그리고 네 물음에 장면은 다시 새롭게 열린다. 온전한 내 것. 그런 것을 생각한 일이 있었나? ‘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쓰게 되는 일. 혹은 손에 쥐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런 것이라면 있겠지만. …있을까? 이전에 해본 적 없는 고민을 시작하게 하는 네 물음들을 조금 느리게 하나씩 소화해간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온전한 네 것’이 시작부터 끝까지 눈에 닿는 안정감. 그런 것이라면. 그리고 같은 이유로 ‘아주 작은 학교’를 원하는 것이라면.

혹시나 하는 추측은 확신이 되지 않는다. 이것도 너를 대하며 알아가는 것이지만, 자신은 쉽게 확신하지 않는 성격인 듯 싶으니.

정확한 정답을 읽을 수 있게 정리된 책. 그런 것이 있을까? 너는 왜 그런 것을 갈망할까? 묻고 질문하고, 의문을 가지고 생각하거나 꺠닫기를 반복하며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이 곳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은 우리일지도 몰라. 그 종류가 무엇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겠지만.

궁금해진 것을 입에 담으며 말을 골라낸다. 어쩌면, 제 ‘대사’가 될 말을.

…네가 좁은 세상에 편함을 느끼는 것은 그럼, 넓은 세상이 버겁기 때문이야, 아니면 지나치게 넓은 세상은 네가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이야?

나를 이해하게 하는, 너를 이해하기 위한. 그런 답을 건네고 물음을 전할 가장 적합한 단어의 총체를 찾아. 차례로.

“내가 무엇에 안정감을 느끼는지는...사실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마 너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

그보다는, 시작부터 끝까지 눈에 닿는 것은 내 것이 맞는가의 의문. 그리고 내가 무엇을 쥐고 있다는 감각이 왜 안정감을 선사하는가에 관한 질문. 떠오르는 것은 공감이 아닌 물음들이다.

“너는 왜 그런 것들에서 안정감을 느끼는지 물어봐도 돼?”


예카테리나와의 대화가 즐거웠어요u///u 즐겁게 썼으니 편하게 읽어주세요~! 이어주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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