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Scene 03

일부 설정은 오타쿠적 날조 / 용과 같이 7 외전 엔딩까지 스포일러 포함

DREAM by 구운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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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완연한 봄.

벚꽃이 흩날려 바닥을 수놓고, 강을 따라 흐르는 계절이건만. 포근하게 스치는 바람마저 무겁게 가라앉은 어느 부두에는 한 때 배신을 꾀했던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있었다. 니시타니 호마레의 이름을 3대째 물려받았던 이와, 쓰레기 같았던 인생을 새로 고치라는 뜻에서 시시도 코세이라는 이름을 받았던 남자. 그 중에서도 3대 니시타니였던 남자는 허리춤에 적당히 매달아놓은 칼집을 매만지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는 참 아쉬웠지, 시시도. 성급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성공했을텐데."

"……."

"응? 설마 정곡이었어?"

시시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대꾸조차 할 기색이 없었다. '여기서 나가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미야노코시를 이용하자는 의견을 냈던 건 니시타니였다. 미야노코시는 척 보기에도 사람 좋은 녀석, 나쁘게 말하면 호구지만, 니시타니가 그에 대해 처음 느꼈던 감상은 거기서 지나지 않았다.

'저녀석, 너를 어지간히도 좋아하나본데.'

미야노코시가 시시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의 기류를 읽어낸 니시타니는 그 말을 하면서 히죽 웃음을 지었었다. 그 말에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시시도는 '그렇습니꺼.' 라는 무미건조한 한마디로 답변을 마쳤다. 생각보단 재미없는 반응이 돌아오자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그는, 시시도를 향해 귀를 빌려달라는 것처럼 손가락을 까딱였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니시타니를 통해 생지옥이나 다름 없는 시절을 겪어본 시시도는 한숨을 쉬면서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시시도오. 너 말야.'

'사실은 여기서 나가고 싶잖아.'

시시도는 마찬가지로 어떤 긍정, 그리고 부정은 따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니시타니는 알 수 있었다. 긴 시간동안 그의 목숨까지도 장난감마냥 제 손바닥에서 굴려먹은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으니.

'그럼 애초부터 협조적인 녀석만 확실하게 네 편으로 만들면 돼.'

'평소 하던 것처럼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하고, 아첨이나 떨고, 그렇게 방심하게 만들면 틈이 생기는 법이거든.'

'특히 네 관리자라는 저 녀석은 조금 구슬리기만 해도 껌뻑 속아 넘어가줄걸.'

'재미있는 장면을 한 번 연출해보라고.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이 어렵겠어?'

그말에 넘어갔던 시시도는 약 2주간의 구금조치를 받았고, 절반의 기간은 미야노코시가 상부에 부탁하여 떼어갔다.

결론적으로 두 사람은 1주간 세상과 단절되었다. 시시도에겐 그 시간이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빛 한줄기 들지 않는 방은 무거운 쇳덩이를 목에 건 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짊어지고 하루 하루를 버티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고, 희미한 형광등 하나가 깜빡, 깜빡하고 타들어갈 때마다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았다. 밑바닥에서부터 줄곧 올려다 본 밤하늘 아래를 거닐기까지의 시간. 압도적인 힘이 주는 만족감. 허망한 꿈을 꾸짖던, 이름을 지운 자의 목소리.

그리고 다정함을 힘이라 믿으며 제게 정면으로 부딪혀오는 한 존재.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에는 꽤 긴 시간과 힘이 든다. 스스로 답을 깨닫기까지 드는 노력은 온전히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그러니 그 잠깐의 시간만으로 시시도는 제 삶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었다. 태생이 미천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당연한 일이었다.

1주일이 지난 후 그런 시시도를 가장 먼저 찾아온 건 미야노코시였다. 관리자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문밖을 나서면 가장 먼저 보고싶었던 사람이 사자여서 이기도 했다. 시시도는 이번에 '쓸데없는 짓을 했다'며 화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것보다, 먼저 따듯한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목구멍으로 어떤 감정을 끝끝내 삼켜 넘기고 싶었다.


"───그래도 제법 즐거웠어. 설마하니 도지마의 용과 맞섰던 네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수에 당할 줄이야."

잠깐동안 기억을 되짚어 올라가던 중, 그를 다시 현실로 돌려 세운 것은 니시타니였다. 어처구니 없는 수라는건, 역시 별 것도 아닌 기술에 몸이 뒤집혔던 그때를 말하는 거겠지. 시시도는 그에게 패착을 지적당하자 심기가 약간 거슬렸던지, 제 입술을 저도 모르게 살짝 비죽였다.

"아아, 여기가 캐슬이었다면 무척 재미있는 광경이었을텐데. VIP들의 표정도 꽤 볼만하지 않았을까?"

"……하고싶은 말이 뭡니꺼?"

"응? 딱히. 말 그대로야. 심심하던 차에 유흥거리를 줘서 고맙다고."

역시 재수없다. 시시도는 생각이 빤히 드러나는 눈빛으로 니시타니를 보았고, 그는 큭큭 웃음을 지으며 뒤돌아섰다. 그러자 어느새인가 제 뒤에 서있었던 어떤 이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니시타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다시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시시……, '사자'의 관리자군. 네 위치는 여기가 아니잖아."

"앗, 안녕하세요. 그게……, 임무가 시작되기 전에 사자에게 말해줄 게 있어서 잠시 들렀어요. 엄청 긴 내용은 아니라서요."

"헤에, 그렇구나. 그러고보니 아직 통성명도 못했던 것 같은데. 성함이?"

"……미야노코시 유키히코입니다. 그쪽은 코드 네임 「  」 이시죠?"

미야노코시의 물음에 니시타니는 눈을 두어번 깜빡거리다가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흥미로운 눈빛을 보내왔다.

"유키히코…… 라. 아하. 그래서 그런 거였나?"

"네?"

"시시도가 널 싫어하는 이유."

물론 사자는 미야노코시를 싫어했다. 그 이유는 나열하기조차 귀찮을 정도로 여러가지였고, 니시타니가 언급한 것도 그중 하나였을 테지만, 미야노코시는 그 한가지라도 알면 다행이다 싶었다. 좋은 건 아니라지만, 그게 '사자'면서 '시시도'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그를 마주한 시간은 기껏해야 몇 개월 남짓. 자신은 속을 꿰뚫어보는 신도 아니고, 자비로운 부처님도 될 수 없었기에 그만한 노력이라도 해야만 했다.

"표정에서 '나 궁금해요~'하고 다 드러난다고. 미야노코시. 그래서야 되겠어? 에이전트를 관리한다는 녀석이."

"앗, 그, 죄송합니다……. 하나와 씨나 요시무라 씨도 늘 지적하시는 부분이라 할 말이 없네요."

니시타니는 특유의 카리스마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사람을 순식간에 휘어잡는 재주가 있었다. 거기에 보기좋게 말려든 미야노코시를 보며 시시도는 쳇, 하고 혀를 한 번 차더니 조금 멀찍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본 미야노코시가 급하게 손을 뻗으려다 품으로 거두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몇 번 지나가고, 니시타니는 적당한 시점에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따지고보면 시시콜콜한 이유지만, 그래도 궁금하다면 못알려줄 것도 없어."

"그렇다면……, ……으음, 살짝만 귀띔해주실 수 있을까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니까. ……배경지식 정도는 갖고 있을테니 알고있겠지만, 사자는 원래부터 야쿠자가 아니었어. 내가 회장으로 있던 귀인회, 거기서 운영하는 '캐슬'에서 몇 년이나 노예로 살고 있었지."

"그때 저녀석이랑 했던 러시안 룰렛, 제법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하자고 해도 안해준단 말이야."

"……."

좀 더 경악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 니시타니는 내심 아쉬운듯 눈을 가늘게 떴다가 곧 평소처럼 입꼬리만 올려 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그런 녀석을 어느 날 밑바닥으로부터 꺼낸 자들이 있었지."

"그 사람들은……?"

"오미 연합의 와타세 마사루와, 츠루노 유키."

와타세 마사루라는 이름은 확실히 읽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츠루노 유키라는 이름은……, 문서 끄트머리에 얼핏 적혀있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이름을 들으니 얼추 짐작가는 바는 있었다. 잘 따지고 보면 발음도 다르고, 적는 방법도 완벽하게 상이할테지만──

"츠루노는 그녀석을 노예에서 와타세 조의 조직원으로 건져올리고, 와타세는 녀석에게 새 이름을 줬어. 그래서 지금 네 눈 앞에 '사자'가 있는 거란 말이야."

"궁금증 해결에 도움이 됐을까 모르겠네."

──이름이 비슷해서 싫은 거였구나.

누군가가 듣기엔 너무 단순한 이유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대략의 사실과 조합해보면, 그는 결국 은인을 배신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배신한 사람과 이름이 닮아있다면, 그리고 그 배신 행위가 실패로 마무리 되었다면……, 그렇다면 사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때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고 미야노코시는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헤에……, ……빨리도 물어보네."

"부,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만……."

"저번에 재미있는 구경을 시켜준데에 대한 약간의 성의라고 해둬."

재미있는 구경? 미야노코시는 자신이 그의 앞에서 신나는 춤이라도 췄던가,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제가 아무리 신나게 몸을 흔들어도 그의 입장에선 그닥 흥미를 느낄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저번에 사자가 탈출을 시도 했던 걸 말하는 거겠지. 그걸 재미있다고 표현하는데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미야노코시는 적당히 한숨을 내쉬고 품에 쥐고있던 태블릿을 다시 갈무리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제자리로 돌아가시죠."

"뭐야, 갑자기 이렇게 매정하게 굴기야?"

"대기중이긴 해도 자리를 이탈해선 안되니까요. 저도 어디까지나 안내 차원에서 잠시 온거고……, 다이도지의 처분은 어떤 것이든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아아, 알았다고."

니시타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가다가, 멀찍이 서서 둘을 바라보고 있던 시시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떠났다. 시시도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전부 싫어서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는 미야노코시를 향해 걸어갔다. 아, 역시 이녀석도 저녀석도 꼴보기 싫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죄송해요, 사자. 변경된 사항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려다가 그만……."

"저자슥이랑은 무슨 대화를 그래 길게 나눈기고?"

"사자가 저를 싫어하는 101가지 이유 중 하나…… 라고 할까요? 사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아주 유익한 대화였어요. 조금 기분이 좋네요."

"하아."

미야노코시는 다 들리게 내쉰 한숨에도 언제나와 같은 웃음으로 화답하며 태블릿을 들었다. 사자는 미야노코시의 그런 웃음도 싫었고, 확실히 어딘가 나사가 빠져서 타인에게 잘 휘둘리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소신이 뚜렷해서 제법 성깔이 있다는 것까지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게 없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그가 지나치게 솔직해서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하니 마음에 든다고 해둘까. 사자는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잠시 했다가 곧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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