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an 04
일부 설정은 오타쿠적 날조 / 용과 같이 7 외전 엔딩까지 스포일러 포함
2020년, 여름.
끈적한 습기와 미적지근한 바람이 피부를 간간히 스치고, 여기저기서 매미 울음소리가 잔잔히 정적을 메우는 때.
미야노코시는 뒷짐을 진 채 요시무라의 앞에 서있었다. 임무 브리핑 중간중간 요시무라는 짐짓 이마를 찌푸리고 눈 앞의 상대를 간간히 노려보았지만, 그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책상 위 톡톡 두드려지는 펜에 고정해둔 채였다.
“ …하지만 요시무라 씨. 「사자」는 아직 손이 다 나은 상태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상태에서 이번 건처럼 무리한 임무는….”
“못하겠다고?”
“……네.”
그런 물렁해 터진 소리를 할 처지인가? 네가.
요시무라는 당장 손에 쥔 펜을 미야노코시에게 던지는 대신, 코 앞까지 다가가 시선을 절대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안경이 살짝 비뚤어졌지만, 미야노코시는 방금 전까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하기엔 무색하게, 조금 긴장은 했어도 눈빛은 또렷하게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아하, 시선을 피한게 아니고 같이 노려본 거였단 말이지. 요시무라는 코웃음을 쳤다.
“물론 상부의 지시니까 거스를 수 없다는 건 압니다. 적어도 임무에 배치할 인원을 조금 더 늘려주시기만 한다면…”
“그 「죠류」과 싸운 맷집이야.”
“주제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 외려 네 쪽이 아닌가? 미야노코시.”
고양감, 흥분으로 아픔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 상태를 ‘전력을 다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미야노코시는 거기서부터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자도, 하물며 자신조차도 이 거대한 어둠의 조직을 이끌기 위해 사용되고 버려지는 처지이니, 상부의 결정은 잔혹하다면 잔혹하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그저 사자를 시험해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말 했을텐데, 주제 파악을 못하는건 네 쪽이라고.”
요시무라는 일부러 미야노코시의 명치부근을 손가락으로 꾹 눌러가며 말했다. 제법 아프게 찌르고 있음에도 미야노코시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기만 할 뿐 물러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네 몸이나 잘 간수하고서 큰소리 치지 그래. 담당 에이전트에게도 얕보이는 관리자라니,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미야노코시는 하는 수 없이 현장에 발걸음했다.
상부의 이런 미적지근한 태도라면 분명 저번처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게 뻔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담당 에이전트를 곁에서 최대한 보조하고 지키는 것. 그렇게 다짐하고 고개를 들어올리면, 지금껏 자신을 내려다보기만 했던 「사자」가 시선에 들어왔다. 그는 예상했으므로 딱히 놀랄 것은 없으나, 정말로 할 줄은 몰랐다는 것처럼 혀를 내둘렀다.
“한 번 사고친걸로는 부족했십니꺼.”
“그, 그야… 사자가 걱정되니까요. 이번 임무는 특히나 혼자 진행하기엔 더 무리가…”
“내는 분명히 말했십니더. 당신 도움 따위 필요 없다고예.”
“…….”
미야노코시는 그 말에 아랫입술을 살짝 뜯었다. 따지고보면 제 실책이 있었으니 그가 이런 태도로 나오는 것도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마치 오답노트에 더는 실수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적은 문제가 아예 시험지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애초부터 벽을 쌓고 있는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벽을 부숴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견고한 것이 문제였다. 거기서 오는 씁쓸함도, 실수의 아픔도 오롯이 저만의 것이었다.
“알고있어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물러설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관리자로서 사자가 임무에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미야노코시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시시도는 거기에 ‘쯧’하고 짧게 혀를 찼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재수 없는 꼬맹이를 향해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런데 괜히 힘을 쏟았다간 자신만 손해보는 것 같아 곧 그만두기로 했다. 그라모, 니가 참견할 수 없을 맹키로 빠르게 끝내주꾸마. 그는 작전 방향을 그렇게 정하고 근처에 놓여있던 야구방망이를 손에 쥐었다.
진입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예상과는 달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녀석들은 조무래기들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자는 생각했던 것보단 싱거운 난이도에 사뭇 언짢아졌다. 설마 그 얼라가 손을 썼는교. …그럴 리는 없겄제.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앞코에 닿은 시멘트 조각 하나를 툭, 찬 순간. 무언가가 머리 뒤를 노리고 붕 날아드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도 그는 경험이 아주 많은 에이전트였기 때문에, 척 보기에도 노린듯한 큰 동작을 얼추 예상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습격한 상대의 머리를 역으로 아작냈다.
“흥. 걸거치구로.”
시멘트 조각 대신 쓰러진 상대의 머리를 툭툭 치는 것으로 확인을 끝낸 사자는 목표물이 있는 곳으로 발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그게 뭐였더라, 대충 어느 금속 캐비넷에 담긴 ‘세상에 나돌면 위험한 물건 1’ 같은 거였는데. 아무튼 손에 넣고 빠져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했던가. …간단하기만 한데 뭐가 그렇게 위험하다고 난리였는지. 사자는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떠올리며 배트를 바닥에 질질 끌었다. 쇠가 맞부딪히며 카랑카랑한 소리를 울리는 것이 꼭 어느 야수의 포효처럼 공간을 메웠다.
‘사자, 앞쪽 철제 캐비넷 뒤에 무장한 사람이───’
“…….”
그 정도는 내도 안다 안카나. 사자는 대답 대신 배트를 바닥에 쿵 내리치고는 입을 살짝 삐뚤게 내렸다. 실은 방금 전의 습격도 미야노코시의 주의가 있었지만 깔끔히 무시했었기 때문에, 사자는 두 번째로 심기가 상했다. 그래도 참을 인은 세 번은 쓴다고 어느 은인(恩人)이 가르쳐준 대로 다음 한 번 까지만 참아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달려나오는 험악한 보디가드들을 차근차근 쓰러뜨려갔다.
‘상대 조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어려운 상황이 되면 분명 인수로 밀어붙이기 시작할 겁니다. 그럴 때에는 무리하게 행동하기보다, 일단 후퇴해서 상황을 지켜보고…’
“뭐하러 그래 귀찮게 해결하는교. …대가리 잘 노려서 뿌사불면 얌전하다 안합니꺼.”
미야노코시는 눈 앞의 상대를 차례차례, 말 그대로 ‘부수는’ 사자를 보며 경악함과 동시에 차마 이 참혹한 상황을 목도할 용기가 없어 겨우 실눈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일전에 그가 다이도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많은 에이전트들을 쓰러뜨렸을 때에도 직감했지만, 역시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조금 힘조절을 해주시면 좋을텐데…. 그가 그렇게 바라며 실눈을 또렷하게 다시 뜬 순간,
‘──사자!’
벽면에 닫혀있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그를 향해 묵직한 무언가를 던졌지만, 나름 투기장과 뒷세계를 거치며 단련되어있던 야생의 감이 어김없이 제 실력을 발휘했다. 재미있구마. 그렇게 말하며 시시도가 입꼬리를 샐쭉 올리려던 찰나에 뒤쪽으로 무언가가 습격해왔다. 두 남자들에게 양 팔을 붙들렸지만, 남들보다 덩치가 두 배는 되는 사자에겐 턱없이 부족한 구속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은 곧바로 내동댕이 쳐졌다.
“3번……, …이긴 한데, 한번 봐주꾸마.”
‘네?’
“……신경쓰지 마이소.”
사자를 막아섰던 이들은 이제 거진 공포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상부의 명령에 따르자면 ‘전원 처리’하는게 목표긴 했지만, 미야노코시의 잔소리에 힘입어 나름 힘조절을 한 결과, 복도는 비록 피칠갑은 되어있어도 피바다는 면한 상태였다. 거기에 일직선으로 선을 그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사자는 망설임 없이 보안 카메라의 사각지대로 남은 자들을 몰았다.
“내는 얼라맨키로 자비롭지는 못한기라.”
“히, 히이익…!”
“특히 너거들같은 잔챙이한테는 더.”
이후로도, 미야노코시의 추측이 아주 억측까지는 아니었던지 상대는 끝없이 몰려들었다. 대체 무슨 물건이길래 이렇게까지 지키는지 알 턱은 없었지만, 잔챙이들이 다같이 모여봐야 어차피 잔챙이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시시도는 목적지에 다다라서야 겨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아무래도 홀로 수십 명은 족히 뛰어넘는 적을 상대하는 것은 제 아무리 그라도 힘에 부쳤던 탓에,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해서 긴장감을 조금 털기 위한 것도 있었다. 아직 제대로 낫지 않은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은 조금 거슬리긴 했어도, 아주 못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시시도는 괜히 왼손을 쥐락펴락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이래 호들갑을 떨었는교.”
‘──사자, 들리시나요?’
“…예, 아주 성가실 정도로 잘들립니더.”
‘그럼 다행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으음, 화면 상으로 봐서는 정확하게 브리핑 할 수는 없지만, 뭔가…….’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하면 좋을까요? 뭔가 심상치 않아요, 주의를 요하셨으면 해서…’
“그 정도는 내도 안다. 사사건건 참견하기나 하고, 참말로 귀찮구로.”
사자는 일부러 으르렁거리는 듯한 긁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야노코시가 짧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일부러 들리게끔 한숨을 다시 한 번 내쉬었다.
‘저는……, 사자가 무사하기를 바라니까요.’
“……‘또’ 그딴 소리를.”
시시도는 일부러 쏘아붙이고는 굳게 닫혀있는 문 앞에 서서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당겼다.
───그리고 일순, 화면은 하얗게 점멸했다가 검게 암전되었다.
시간은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시도는 여러 에이전트들과 함께 항구의 컨테이너 창고에 숨어든 해적들을 소탕하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관리자인 미야노코시와 함께 현장에 나섰다. 관리자라면 에이전트를 통솔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 때 오미연합이 습격했던 건 때문에 하나와가 윗선에 건의를 한 결과, 현장 브리핑을 제외하면 최대한 멀리서 지켜볼 것이 권장되었다. ‘위’를 거슬러서 좋을 것은 하등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요원들은 그 지시를 따랐지만, 미야노코시만은 어째서인가 에이전트들의 지근거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저, 미야노코시 씨. 여기 있으면 위험한 거 아니야? 오늘은 안그래도 그런 작전인데.”
“앗, 괘, 괜찮아요! 여러분이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임무를 끝내고 복귀하시려면 저도 현장에서 도와야겠다는 판단이 서서요.”
“헤에, 그러다가 같이 부두에 둥둥 떠올라도 모른다?”
“……제 몸은 제가 지킬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여러분은 임무에 집중해주세요.”
딱 보아도 주먹을 내지르기는 커녕, 주먹에 구타당하기 딱 좋은 몸집을 하고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다들 탐탁치 않아 했지만, 직접적으로 입밖에 내는 일은 없었다. 그건 사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작전은 시작되어, 수 십분의 난전 끝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사전에 대비가 잘 되어있었던 덕분에, 대부분의 요원들은 다치긴 했어도 큰 부상 없이 복귀할 수 있었다.
“──위험해요! 사자!”
단 한 사람, 미야노코시 유키히코를 제외하고.
“………, 커헉, 콜록.”
눈 앞이 하얗게 물들고 나서 몇 분이 지났을까. 사자는 머리 쪽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과 이따금 목에 걸리는 매캐한 연기에 눈을 떴다. 어슴푸레한 시야, 목적지의 입구 너머로 보이는 방은 무언가가 폭발한 것처럼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목재 책상 위에 놓인 캐비닛의 모퉁이는 열로 녹아가고 있었다. 비록 이만한 폭발로 인해 떨어져나갔지만, 잡고있던 문이 나름 방패역할을 해준 덕에 큰 피해는 면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왼손을 바닥에 짚었지만, 곧 욱신거리는 감각과 함께 미끄러지고 말았다.
“큭, 하아, 젠장…….”
설상가상으로 지원을 요청할 수단마저 먹통이 되었는지,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작동하지 않는 이어폰을 빼 집어던진 시시도는, 겨우 바닥을 기어 틈새를 빠져나왔다. 목표물은 다행히 전소되지는 않았으니, 챙기기만 하면 임무는 종료. 타들어가는 가구들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때문에 때때로 눈 앞이 흐려지긴 했으나, 다시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내부로 최대한 빠르게 발을 옮겼다. 어서, 어서 밖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을 집은 순간, 등 뒤로 커다란 잔해가 쓰러져 주저앉아 출구를 막아섰다.
“이게……!”
남아있던 잔당의 짓인지, 불길에 의해 자연스레 무너진 것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시시도는 애먼 대상을 향해 성을 내고는 근처에 최대한 멀쩡한 사물로 잔해를 밀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다지 거슬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흉터 하나가 결국 제 말을 듣지 않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자──!!”
유독가스를 많이 들이마신 탓이었을까. 설상가상으로 몸에 힘이 천천히 빠지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들리지 않을 목소리도 어렴풋하게 들리는 것 같은데. 인생의 마지막이 이런 개죽음이라는건 역시 억울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그마저도 일렁거리는 시야에 흘러 사라져갔다.
그러고보면 죽기 직전에 주마등이라는게 보인다던데, 이왕이면 더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게 좋지 않았을까. 자신의 인생이란 건 말 그대로 밑바닥 그 자체였으니.
“───정신 차리세요!! 시시도 씨!!”
그러나 흐린 시야 속에서 선명하게 보인 건, 내밀어진 검은 손과 더불어 두 번째로 껄끄러운 상대였다.
“뭐……,”
“다친 곳은……, 아, 이마에 찰과상이 생겼네요.”
“잠깐,”
“그래도 크게 다치신 건 아니라 다행이에요. 더 무너지기 전에 얼른 나가요!”
“니, 어떻게 여길…”
“저쪽에 계단이 있어요. 자, 일단 어깨에 팔 두르세요!”
“와 왔노?”
물에 젖은 커다란 천을 그에게 덮어주던 미야노코시의 분주한 말소리가 순간적으로 끊겼다. 일렁이는 불꽃 속에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면, 시시도는 어쩐지 귀찮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사자가, 위험했으니까…….”
그는 그 말을 예전에도 미야노코시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두 달 전에.
갑자기 그의 등 뒤를 노린 괴한의 공격을 대신 맞고 정신을 잃어가면서, 바보같이 왜 뛰어든거냔 질문에 미야노코시는 똑같은 대답을 돌려주었었다. 하지만 상황이 어찌되었든 쓰러진 그를 데리고 돌아가야 하는 것은 자신의 몫. 때문에 임무가 마무리 된 뒤에 사자는 요시무라를 찾아가 그에 대해 지독한 혹평을 늘어 놓았었다.
‘지 앞가림도 못하는 얼라를 내한테 붙이다니, 내를 지금 얕보는기가.’
그의 말을 멀리서나마 듣고있던 미야노코시는 내내 그 문장을 곰씹었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행동이 오히려 폐가 된다면, 그것은 행해선 안되는 일인가. 하지만 망설이다 결국 그 사람을 잃게 된다면, 차라리 폐가 되는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저번에는 사자 덕분에 무사히 살아서 돌아갔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미야노코시는 당장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기로 했다.
시시도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얌전히 부축받은 채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왜 이렇게까지 행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타인이 살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구는 그가 짜증이 났고, 더 나쁘게 말하면 거슬리기까지 했다. 어떤 일이든 타인보다 자신이 늘 우선이었던 그에게 특히. 지금도 그래,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있었을낀데… 하고 사자는 쯧, 하고 살짝 혀를 찼다.
“…뭐, 그건 맞지예.”
평소라면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냈겠지만, 마침 익어서 죽을뻔한지라 그 감정은 잠시 눌러두기로 했다.
참을 인 세 번이라더니, 세 번은 무슨. 그렇게 중얼거리며 입꼬리를 슬쩍 올려 웃고 있으면, 미야노코시가 어쩐지 자신을 신기한 눈으로 보고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야 만다. 지금… 웃으신 건가요? 하고 물어오는 얼굴이 짜증나서, 시시도는 잠시 미야노코시와 시선을 마주했다가 저도 모르게 이마를 꿍 부딪혔다. 다친 곳이 붙어 조금 아리긴 했지만, 칼에 맞았을 때보단 훨씬 덜 아팠다.
맞은 부위는 분명 이마였거늘, 어째서인지 미야노코시의 온 뺨은 붉게 물들어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뭐고, 징그럽게. 하고 적당히 대꾸하자 그는 활짝 웃으며 그러게요. 라는 한마디만 남겼다.
어느덧 매캐한 공기는 점점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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