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치카]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나
아샤 시점 독백
*1부 죽은 자의 거짓말 챕터까지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각종 날조와 시점 끼워넣기가 존재합니다. 감상에 주의 바랍니다.
댕- 댕-
교회의 종소리는 시가지까지 닿을 듯 널리 울려 퍼졌다. 아샤는 사람들이 모여 장례식을 거행하는 것을 멀찍이서 바라보다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조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는가? 아샤는 미간을 좁히며 일전에 만난 이를 떠올렸다.
표트르 세르게예비치 벨로프.
유능하고 쓸만한 남자, 혁명가가 아닌데도 그 누구보다 혁명가처럼 말하는 남자.
'페챠.' '...아나스타시아.' '아샤라고 부르라니까.'
동지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았다. 리자베타의 친구이기도 하니 우린 접점이 참 많아.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하고 싶었고, 믿었고, 늘 그를 생각했다. 도움을 주려고 손을 뻗기도 했다.
그 대가는 참혹한 배신이었지만.
감옥에 갇혀서 꽤나 고초를 겪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 겠다고, 미래의 전망을 그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새끼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탈옥하며 길게 기른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면서 다짐했다.
네 생각을 하는 것도 이젠 지쳤어.
만나주려면 한 방 갈기려고 했다. 절대 곱게 죽여주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잘게 떨면서도 올 게 왔다는 듯 후련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바뀌었다.
'이제는 당신을 배신할 수 없겠군요... 머리가 심장에 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남길 말? 당신에게? 아니오.'
차오르는 뒤섞인 감정들에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절대 네가 편하게 죽게 두지 않아.
탕!
어떻게든 네 목숨을 붙여놓겠어.
탕!
그래서 반드시,
탕!
배신의 대가를 치르게 해줄게.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가 눈을 꾹 감은 채 덜덜 떠는 모습은 가소로웠다. 아샤는 그대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선 가벼운 걸음으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이보다 더 힘든 일도 많을 텐데.
바보같은 페챠.
아샤는 극동의 찬바람 너머로 들려오는 사람들의 울먹임 소리가 들렸다. 몇 번이나 쓰러질지언정 언제나 그녀를 일으키는 소리였다.
그녀의 친구도 종종 그렇게 울곤 했다. 천주님의 신실한 신자, 다소 심약하지만 상냥한 옐리자베타, 리자. 표트르는 죽은 사람처럼 위장해야 할 일이 생겼기에 신문란에 부고가 난 것이니 너무 상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리자베타는 울어서 붉게 부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에도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표트르의 유언장 속 상속인이 자신이기도 하고, 언제 또 장례를 치르게 될 지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쩌면 너희들은 내가 모르는 곳에 죽어가겠지.'
아샤는 감히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리자베타는 목걸이의 십자가에 짧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지금이라도 그만두면 안돼?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멀리 떠나려고 하는 걸까?'
그 말에 답하지 않았지만, 리자베타와 아샤 모두 답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 답에 자신을 바치는 길이었다.
아샤의 걸음은 그렇기에 거침이 없었다.
댕- 댕- 댕-
이 조종은 그 누구를 위해 울리지 않아.
이 암울한 시대의 종막을 고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외치는 거야. 끝없이 울리는 거야.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올 때- 나는, 우리는 기쁘게 이 조종과 함께 안식에 들 수 있겠지.
그때까지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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