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뒤에는 천사가 산다

아니, 찬사讚辭가.......

침묵으로 부식시킬 수 없는 비밀이란 없다고 믿는 너에게 한 번만 물을게

“그렇게 쉽게 찬동할 거야?”


노욱효(Lú Yùxiǎo)


선아교

2학년 4반 18세

무용과 한국무용 전공

여 157cm 45kg

#침묵의계승 #금고의이름은공허 #비인간적중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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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깔을 얹고, 장삼 끝자락을 여러 번 다림질 하고도 모자라 손끝으로 연신 펴고, 홍띠를 좁은 어깨에 둘러 매 주며 가역이 말했다.

네가 무대에 오르면 모두가 숨죽이고 너를 응시하겠지.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기를 약조하고 저 자리를 얻은 사람들이다. 동시에 저들이 너에게 찬동만 하겠다고 서약한 건 아니다. 넌 나의 이름을 딛고 올라서 왔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다. 이건 네가 네 발밑에 깔린 내 이름이란 디딤돌에서 내려오고도 허공을 디딜 수 있는가에 관한 싸움이다.

할 수 있겠느냐?

아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관객석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가역은 이 고깔을 벗길 준비를 언제든 하고 있다는 걸 아교는 알고 있을까? 아교는 무대 위에 세워진 북을 바라본다. 그 북을 찢는 것이 제 손에 들린 북채가 아니라 제 머리가 되지는 않을까, 기어코 상상해본다…. 둥, 둥, 북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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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이제 소리를 할 애가 아니야.

명희는 혀를 차며 북을 물린다. 이윽고 찻잔을 쓰다듬던 가역에게 일갈한다. 차나 마실 때야? 얘 어떻게 하냐고. 가역은 어깨를 으쓱인 뒤 주름진 손을 빳빳하게 편다. 지쳐 엎드린 어린 아교의 등을 바로 세워 입안으로 차를 넘긴다. 죽은 듯 굽었던 등은 그제야 숨을 쉬며 등뼈를 오므렸다 펴기를 반복한다. 까만 눈동자가 제 스승과 스승의 친우를 번갈아 보자 가역은 바깥을 향해 눈짓한다. 수고했다. 나가 있거라. 아교는 수긍과 거부를 잊은 사람마냥 고개를 한 차례 푹 숙인 뒤 학당을 빠져나간다. 걸음은 느리고 무게 없다. 발소리가 사그라든 후에야 가역은 알았다, 라고 대답했다. 한참 늦은 대답이었기에 명희는 제 질문 중 어떤 것에 달린 주석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아닌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뒷방 노인네 신세를 거부하고 치고 올라올 소리꾼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은 대가를 이렇게 치르고 있는 걸까. 애써 태연하게 땀 서린 손을 닦으며 묻는다. 뭐를?

자네 말에 나도 동의해. 아교는 이제 소리를 할 애가 아니지. 소리를 하기엔 속이 없어도 너무 없어.

속이 없다는 건 남을 속이겠단 의지가 없단 뜻이 아니며 남에게 하해와 같은 성정을 베풀겠단 선의가 들어찼단 뜻도 아니다. 그저 아교에겐 글자 그대로, 속이 없었다. 인간사 모두가 공허를 앓고 허무를 탄식하며 살아간다지만 단 한 톨의 유有라도 채웠어야 할 시기를 아교는 오래 전 놓치고 말았다. 그러므로 명희는 가역의 뜻을 묻지 않는다. 서늘하게 느껴지는 제 가슴 한 켠을 손바닥으로 뭉툭하게 눌러볼 뿐이다. 한때는 충만하다 믿었던 것들이 불가역의 시간을 타고 조금씩 유실되는 걸 세간에선 운명이라 말했다. 언젠가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로 목구멍이 헐어버리는 상상을 거듭한 적은 많지만, 그보다 이르게, 더는 소리하는 것이 즐겁지 않으리라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처럼. 그러나 명희와 가역은 당장 내일 명을 달리 한들 기이하지 않을 위치까지 흘러왔지만, 아교는 고작해야 열 살 먹은 어린애다. 사이에 낀 세월의 두께가 양손으로 잡고도 모자르다. 아교에게는 그마저 종이 한 장보다 얇은, 찰나처럼 느껴질까. 복도에서 아교의 목소리가 들린다. 명희의 제자들이 아교를 예뻐하는 소리도. 그러나 아교는 모르겠지. 누군가가 자신을 귀애한단 것을. 가역이 외투를 챙겨입으며 일어선다. 아교는 내가 데려가지. 부모에게도 내가 말해둘 테니 걱정 말고. 명희는 걱정 말라는 그 선언이 약간은 우스웠다. 사건의 충격으로 함묵증을 앓는다며, 아이 일곱 살에 살려달라며 끌고 와 입만 열게 해 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빌었던 것이 아교의 부모다. 삼 년을 명희의 손으로 가르쳤고 결론적으로 아교의 부모가 원했던 대로 아교의 입은 차츰 열리기 시작했으나 명희는 애시당초 아교에게서 함묵증이란 단어를 떼어놓고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고요와 침묵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저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아교는 처음 왔던 일곱 살에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소리를 낼 수는 있었으나 그 외엔 아무리 매질을 하고 팔이 떨어져라 북을 치게 해도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 수업 내내 아교의 부모는 학당 밖에서 초라하게 울었고, 빌었고, 절망했다. 아교는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들었다. 수확없이 일 년이 지나자 부모는 아교를 학당에 데려다 주고 난 뒤면 곧바로 돌아갔다. 문밖에서 더는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복도로 직접 나가 부모의 흔적이 없다는 걸 확인했을 때, 그러고도 모자라 주차장까지 나가 자신이 타고 온 차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아교는 명희를 돌아보며 말했다.

뭐라고 불러요?

명희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네가 편한 대로 해라. 선생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선생. 명희는 그 단어가 아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 어쩌면 이 나라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지도. 알고 있다가 이제는 잊었을지도. 그 단어가 아교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고 갔는지는, 제외시킨 채. 명희는 거부하지 않는다. 그래. 그러렴. 그리고 두 사람은 북을 치고 소리를 했다. 아교는 힘들다 라는 말은 해도 못하겠다 라는 말은 하는 법이 없었고, 명희가 이건 아무리 해도 안 되는구나 하며 포기하는 투를 보여도 풀이죽거나 수그러드는 일이 없었다. 아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자신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걸 명희에게 비밀로 부쳐달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했고, 다시 말을 시작한 지 오 개월이 지나서야 아교의 부모는 평소보다 이르게 아교를 데리러 온 날, 명희와 아교가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목격하고 신의 존재를 확인한 신도들처럼 환희했다. 부모의 품에 안긴 아교의 표정은 어땠던가. 명희는 그때만큼 아교가 선명히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던가, 지금도 간혹 돌이켜 본다. 아. 귀찮아졌다…. 라는 얼굴. 그런 아교가 이제 명희의 손을 떠난다. 가역의 손을 잡고. 무용원 학당 앞에서 명희는 아교와 싱거운 작별을 고했다. 아교는 감사했습니다, 했지만 소리를 그만둔다는 데에서 느끼는 실망은 없는 듯 했다. 그렇다고 개운해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누군가는 순하다 칭할 인상 위엔 한 점의 오점도 없다. 부처가 그토록 설파했던 무심無心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건 아마. 북소리가 끊긴다.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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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교의 스승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단 한 번도 아니요, 라고 대답한 적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아교는 무대로 나아간다. 하이얀 빛이 떨어지는 자리에서 아교가 고개를 든다. 목전의 관객석은 칠흑이다. 개개인의 표정이며 숨소리가 닿지 않을 거리. 고개를 든 아교의 머리에서 고깔이 곧 벗겨질 것만 같다. 바닥에 장삼 소매를 내려두고, 아교는 골몰한다. 자신이 언제부터 침묵하기 시작했는지에 관하여. 아무리 고뇌해도…….

그때밖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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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를 육십육 개를 접으면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그 사람은 말했다. 보통은 종이학을 백 마리나 천 마리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종이학이 아니라요? 반문하는 나에게 그 사람은 비어있는 유리병을 가리켰다. 종이학은 실제로 날아갈 수 없지만 종이배는 실제로 물에 띄울 수 있지. 아주 쉽게 젖고, 찢어진다 하더라도 소원에 조금이라도 닿아보는 것과 시도도 못해보는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단다. 아교는 똑똑하니까……. 알아듣지? 선생님 말? 스스로를 선생님이라 칭하던 사람. 나중에 나의 진짜 선생이 된 사람은 나에게 결코 선생이라 호명하지 못하게 했는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톱 끝으로 색종이의 가장자리를 꼼꼼하게 누른다. 순응했음에도 칭찬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 점은 나의 선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세상 모든 선생은 칭찬에 인색하라는 명을 받고 태어나는 양, 그들의 손바닥이나 입술은 내게 닿는 법이 좀처럼 없었다. 그들 역시 내가 칭찬 이란 개념을 꿰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은 것이겠지만.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다음 질문은 으레 소원의 내용을 묻는 것이지 않나. 그러나 그 사람은 묻지 않았다. 나의 소원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어린아이의 속을 꿰뚫는 것쯤이야 무엇이 어렵겠냐만, 그 침묵이 내게는 종이배를 다 접고도 소원을 이루어줄 일은 없을 거란 예고와 같아서,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 사람과 지내는 내내 그 사람은 내게 질문했지만 내가 그에게 질문하는 건 허락하지 않았고, 가끔은 나를 집에 잘못 들인 골동품 취급하는 듯 내 얼굴을 뜯어보다가도 좌절하는 일이 잦았다. 무료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다가 내가 어깨를 건드려야 간신히 깨어나는 일도. 화장실 바닥의 물기를 정리하지 않아 내가 넘어진 후에야 멍이 든 이마를 만져주며 후회하는 일도. 종이배를 오십 개쯤 접은 어느 날, 그 사람은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마냥 넓은 챙모자를 쓰고 나에게 말했다. 잠시 밖을 다녀올 테니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하지만 자신이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는다면 문을 열고 나가도 좋다고.

나는 그의 등 뒤에 자리한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키가 얼만큼 자라건 나는 조금도 닿지 못했던 문의 입구.

그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야 했던 것 같지만 그가 나에게 나의 소원을 물어보지 않았듯 나도 그의 행방을 의문하지 않았다. 그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렸다. 그가 끓여놓은 된장찌개에서 더는 먹을 수 없는 맛이 나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종이배를 유리병 안에 집어넣고도 소원을 이루어줄 사람이 오지 않아 몇 날이고 창밖을 바라봤을 때, 길을 지나던 모녀가 나를 발견하고 저 집에 애가 있던가? 하고 이상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문을 연 건 사소하고 초라한 계기 때문이었다. 앞선 이유나 배가 고파서도, 외로워져서도, 무서워져서도 아닌.

보일러가 고장나서.

그때도 죽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날이 몹시 추웠고 잠옷 차림을 하고 길을 헤매니 행인 하나가 나의 손을 잡더니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끌었다. 나중에야 그곳이 경찰서 라고 불린다는 걸 알았지만. 소파에 앉아 그들이 가져다 주는 과자며 음료를 먹으며 나는 한동안 태평했다. 그들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저들끼리 떠드는 듯 싶더니 누군가가 어, 하고 탄성을 지르자 침묵에 빠졌다. 벽에 붙은 전단지를 손끝이 가리킨다. 그들 중 여럿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과자 봉투 위의 글자를 내가 좀처럼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때, 그것이 글자인지 그림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던 그때, 나 역시 뒤늦게 돌아서 내 키보다 조금 높은 위치의 전단을 바라보았다. 글자를 읽어내지 못하고 된장찌개의 찌개가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라도 매일 거울을 보는 것만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그 사람에게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질문의 답을, 나는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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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교는 여전히 아교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공허란 그런 별 거 아닌 이유에서 시작하는 것인지. 북소리에 맞추어 멈췄던 몸이 다시 박동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북소리가 멎은 자리를 아교의 북이 대신하기 위하여 허공으로 도약한다. 장삼이 다시 한 번 날린다. 소리를 그만두고 아교의 세상이 그토록 원하던 침묵의 궤로 진입했냐 물으면, 아니, 그건 아직 아니다. 사람들은 동작보다 정적을 두려워한다. 정지하기를 무서워하기보단 정지 당하기를 경계하는 것일까. 그들이 생각하는, 정지 당하는 일이란 결국 죽음과 다를 바 없어서? 북채를 쥔 손이 경련한다.

우스운 소리.

아교는 그만 비웃고 싶어진다. 가역이 그를 지켜본다. 일찌감치 스승의 이름에서 발바닥을 떼고 허공을 누비기 시작한 아교를. 세계의 저편과 세계를 이어주는 것이 춤이라 가르쳤고 너는 아교라는 이름을 가졌으니 마땅히 춤을 배워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독선으로는 밀리지 않는 가역마저 그 말을 아교에게 전했던 것을 종종 후회한다. 낡고 지저분한 후회다. 세계를 귀애하지 않는 자야말로 중개자가 될 수 있는 거라고 단언하면서도, 그것이 자신보단 아교에 가까운 것을 못내 시기하니까. 명희의 일갈이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게.

속이 없는 애라니까.

무대가 절정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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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를 두고 갓난아기 시절 유괴범에게 납치당하여 부모와 유년시절을 보내지 못한 불쌍한 아이라고 명명했다. 한 사람에게 붙는 이름치고는 꽤 긴 축일지도 모르지. 그러니 내가 나를 무엇이라 명명하기 싫은 데엔 고작 그런 이유밖엔 없다. 너희가 나를 입이 무거운 친구, 라 칭하며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 울고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말간 얼굴로 후련해할 때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너희는 강에다 쓰레기를 버리듯 너희의 비밀을 다시는 살아나오지 못할 지옥에 버렸다고 믿겠지만, 나는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영원히 열리지 않는 금고라는 건 없다. 왕의 무덤이 도굴당하고 숨겨둔 보물이 세상에 드러나 박물관이 전시당하는 것이 작금이다. 너의 비밀이, 너희의 비밀이 나의 금고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비밀이 가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나의 금고에선 썩은 내가 난다.

부모는 진작 이름을 지어두고 오랜 산고 끝에 낳은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갈 날만을 기다렸었다. 병원에서 아기를 도둑맞고 칠 년이 지났다. 흔적이라곤 그 날 씨씨티비가 없는 비상구를 통해 한 여자가 자신들의 아기를 데리고 빠져나가는 듯한 장면뿐이었다. 모두가 포기하라고 하던 차, 아기가 그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아기는 이미 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자란 상태였다. 남은 날이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은 자명했으나 잃어버린 칠 년동안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가 없어서, 그들은 몹시 괴로워했다. 평범하디 평범한 집안이었다. 부유하지도 않았고 직업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유괴범은 칠 년동안 협박 한 번 한 적 없었고 제 호적에도 올리지 않은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글자를 읽거나 쓸 줄 몰랐고 경찰서나 책, 만화 같은 단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키워진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아이가 입을 열질 않았다. 모두가 그에게 유괴라던가 납치, 진짜 부모 등의 단어를 언급하지 않으려 극도로 경계했음에도 어느 새 아이는 모든 걸 알고 있었다. 하긴, 한 달이 넘도록 온세상이 그 사건에 대해 떠드는 시기였다….

처음부터 함께였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부모의 존재를 수용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내게는 애초 그런 값이 입력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차라리 추후 습득한 친구나 연인, 지인, 적 같은 개념이 내게는 좀 더 자연스러웠다고. 이것도 금고에 넣어두고 썩게 내버려둘까. 그럼 언젠가 꺼내볼 수나 있을까. 손바닥을 펼친다. 입을 막아본다. 약간은 안도한다. 내가 아직은 침묵을 쉽게 생각한다는 것을. 문득 손바닥이 아프다. 굳은살이 박인 자리를 매만진다. 뜨겁다. 아, 북소리가 멎는다. 그리고 들려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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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소 부는 소리.

아교는 북채를 내려두고 고개를 젖힌다. 고깔은 온전하다. 장삼과 고깔의 흰 빛이 반사된다. 누군가는 그를 두고 천사 같다고 찬사한 적이 있다…….

더는 태평할 수 없는 날들이여! 아교는 작별을 고한다. 태평소의 바람 소리가 높아지며 긴 장삼을 휘두른다. 고매한 흰 고깔을 빛내며, 홍띠로 세상을 둘러 껴안으며.

0과 1의 차이. 간격마다 존재하는 수많은 찰나. 나에게 0은 침묵이 아니매, 1은 내가 유有로 존재한단 확언이 되어줄 수 없다. 턱끝에 땀이 고인다. 버선이 바닥을 문지른다. 북소리가 고조되고, 차디찬 등뼈가 죽음을 흉내내며 바닥에 엎어진다. 찬사를 소망하거나 찬동을 갈망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의식을 하나의 유희로 범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리라. 신의 말씀을 오롯하게 믿고 배에 올랐던 성서 속 남자처럼, 우리는 속세의 풍파를 물 한 방울이면 찢어질 종이배 한 자락 타고 유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만 배에서 하선하고 싶다 애원해도 어쩔 수 없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자.

금고를 열어줄게.

네 비밀을 말해 봐…….

막이 내린다.


다시 막이 오른다

0. 세계

0-0. 1992년 10월 6일생 AB형 개암나무(화해) 세상을 잇는 사람이란 뜻에서 아교 라 지어졌다

0-1. 서울 출생 후 7세까지 경남 진해에서 거주, 이후로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0-2. 출생 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날 한 여성에 의해 유괴당한다. 이후 행적을 찾지 못한 채로 7년이 흘렀고 부모의 얼굴과 갓난아기 시절 찍어둔 사진 몇 장을 조합하여 만든 성장 후 예상 이미지를 실종 명단에 올렸었다.

0-2-1. 1996년의 11월, 금년보다 이른 한파가 찾아와 동파 사고가 많던 어느 날, 잠옷 차림의 아이 하나를 행인이 경찰서에 데려다준다. 접수된 실종신고도 없었고 아이 자체가 엄마, 아빠, 부모님, 보호자 같은 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기에 수소문을 하던 차 해당 경찰서 벽면에 붙어있던 실종 아동의 안면과 일치함을 발견한다. 이후 부모를 호출하여 유전자 검사를 거친 결과 7년 전 유괴당한 선아교임이 밝혀졌다.

0-2-2. 대대적인 뉴스 속보가 전해졌고 모두가 경악할 만한 사건이었으나 교육과 발달 면에서 또래보다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면 발육이나 정신 건강이 양호했기 때문에 경악스러운 사건보단 기묘한 일로 변질된다. 한동안 유괴범은 누구인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를 추적하려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매진했으나 선아교의 당시 증언대로 유괴범이 자택을 빠져나간 이후 행방이 다시 한 번 묘해졌기 때문에 몇 달 안 가 관심을 종결된다.

0-2-3.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 대화 능력이 상당히 떨어졌던 터라 직후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아이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자라길 바랐던 부모 탓에 학교는 모두 제때 마쳤다. 한동안 함묵증을 앓았으나 이후 완치하였고 성장 과정에서도 큰 이변은 없었다.

0-3. 父 선수명 금융 회사에서 오래 근무한 평범한 회사원으로, 처음엔 아교의 예술계 입성을 반대하였으나 현재는 누구보다 지지한다. 말수 없고 애살 없는 딸이 가끔은 야속하다고 동창 모임에서 한탄하는 편.

0-4. 母 하예은 가정주부. 결혼 전에는 유치원 교사로 일했으나 아교 출산 직후 건강이 상당히 나빠졌고 유괴 사건 직후 그 여파가 더 커져 복직하지는 못했다. 아교가 집에 돌아온 이후엔 더더욱 딸과의 시간을 보내겠단 명목으로 전업주부로 전환하고 딸의 교육과 회복에 매진했다. 친구들 모녀만큼 살가운 모녀 사이는 아니지만, 딸과 자신의 사이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

0-5. 신율예고 입학 이후 본가인 서울에 가는 횟수는 많지 않아졌으나 가끔은 아교가 오지 않아도 부모가 직접 학교 근처까지 올 정도로 딸을 각별하게 생각한다.

1. 소음의 세계

1-1. 2008년 일반전형으로 신율예고 입학

1-1-1. 먼곳까지 학교를 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나 스승인 설가역의 권유로 입학하였다.

1-1-2. 2008년 1학기 특별반 합류.

1-1-2-1. 문양은 왼쪽 손목 안쪽에 새겨졌다.

1-1-2-2. 달리 종교를 가진 축은 아니나 승무라는 특성 때문에 불교 쪽에 조금 더 적을 두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종교에 관한 이렇다 할 신의는 미비한 편. 불교에서 믿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모든 건 굴레 안에 있다는 사실 하나.

1-1-3. 1학년 4반으로 입학, 현재 2학년 4반으로 재학 중이다.

1-1-4. 동아리는 무용단에 속해있으나 한국무용 특성상 독무가 많기 때문에 동아리 내에서는 발언이나 협력이 거의 없는 편.

1-1-5. 2009년 2월 무용제에서 승무 및 살풀이춤을 시연하였다. 해당 무대에서는 이례적으로 승무를 전공한 다른 학생과 두 개의 북을 무대에 두고 합동 승무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1-2. 신율예고의 금고

1-2-1. 입이 무거운 탓에 각종 비밀이나 고백을 보관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러나 발설자가 아교가 아닌 누군가에게도 비밀을 나누지 않는 이상, 아교의 금고로 들어온 은어는 풀려난 적이 없다.

1-2-2. 그 금고가 열릴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걸까. 아교는 가끔 의문했을 뿐이다.

2. 무의 세계

2-1. 7세부터 소리꾼 오명희에게서 소리를 배웠으나 10세에 한국무용으로 전향한다. 사유는 더 이상 소리에 있어 발전할 여지가 없다는 것.

2-2. 오명희의 친우이자 이매방류 승무의 대가였던 전북 설가역의 밑으로 들어가 승무와 살풀이춤, 태평무와 검무 등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개중 특기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승무. 흰 고깔과 긴 장삼, 어깨에 두르는 홍띠를 하고 무대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2-3. 애시당초 함묵증을 고칠 목적으로 부모가 소리를 시킨 것이기는 하나 실상 함묵증에 그리 도움이 된 축은 아니었고, 이후 나아졌다 한들 소리에는 더는 재능이 없단 평 아래 자식이 다시금 침전할까 두려웠던 부모의 의지로 인해 설가역에게 사사한 것에 가깝다.

2-3-1. 가역은 자신의 앞에 선 아교에게 말했다. 네 세계는 소리로 시작되었으나 너는 침묵을 세상으로부터 계승받았으니 다만 소리없는 춤을 추어야 한다. 그것은 고단하고 고독한 일이다. 너는 외부로는 소리할 수 없으나 내부로는 네 안의 소리와 치열하게 갈등해야 한다. 할 수 있겠느냐?

2-3-2. 입이 아교로 붙어있는 듯 꿈쩍 않던 아교의 입이 열린다. 너무도 쉽게. 이곳의 문을 열고 들어오던 것처럼. 네…….

2-3-3. 내 자신을 고립시키는 건 나에게 너무 쉬운 일이다….

2-4. 2008년 신율예고 입학과 동시에 출전한 전국청소년무용대회에서 승무로 고등부 대상을 수상한다. 승무라는 장르에 걸맞는 절제된 표정과 침묵 같은 몸짓에서 느껴지는 고뇌가 탁월하단 평이 뒤따랐다.

2-4-1. 그러나 스승인 가역은 알았다. 절제된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다. 고뇌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공허할 뿐이라고.

2-4-2. 세상은 해석하는 자들의 손에 있다는 걸 재차 확인했을 뿐인 무대.

2-5. 제자를 받지 않기로 유명한 설가역의 제자 중 하나였기에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축에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스승의 명성을 해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3. 다시, 세계

3-1. 4회를 굴레에 갇혀 있었다.

3-2. 죽고 싶지 않았기에 자진하여 죽은 적은 한 번도 없다.

3-3. 3회의 삶을 기억한다. 소음을 처음 입양했던 때, 소음을 처음 파양했던 때, 소음을 입양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때.

3-4.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단 한 번도 받은 적 없으나 세상에서 그나마 참아줄 수 있는 소음은 그 애가 유일했다.

4. ???

4-1. 好 단 것, 신 것, 온기가 없는 사물, 뉴에이지 음악, 침묵

4-2. 不好 짠 것, 매운 것, 온기가 있는 동물, 가사 있는 음악, 소란

4-3. 의외의 대식가. 체구에 비해 많이 먹는다는 평을 받으나 본인은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고 있으니 당연하지 않냐고 반문한다.

4-4. 말해야만 하는 것들과 말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의 차이를 여전히 모르겠다.

요약되지 않는 세계

1번의 생

2011년 3월(1) S 대학 무용과에 한국무용 전공으로 입학

2011년 7월(1) 대통령배 한국무용대회에서 최연소 대상 수상

2011년 12월 31일(1) 새해 기념 서울에서 개최된 우리문화공연에서 승무 시연 및 타종

2015년 2월(1) 대학 졸업 후 스승 설가역이 운영하는 무용원에 들어가 무용 전공 청소년을 대상으로 승무 강의 진행 당시 수강생 경쟁률 103:1

2016년 8월(1) 무용원 수강생들과 함께한 기념 공연에서 수강생 하나가 무대 위 조명 사고로 부상

2017년 1월(1) 설가역이 중태에 빠지며 무용원 운영 중단

2019년 4월(1) 설가역 사망 및 장례 진행 설가역에게는 자손이 없었기에 상주는 선아교가 진행하였다 설가역의 생전 친우이자 선아교의 전 스승인 오명희가 자리를 함께 지켰다 고인의 부탁에 따라 화장하여 전북 함원사에 안치했다

2021년 5월(1) 석가탄신일 및 설가역의 2주기를 맞아 방문한 함원사에서 지소음(10세, 남)을 만나 제자 및 양자로 입양한다

2022년 8월(1) 지소음이 오명희를 사사하여 청소년판소리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다

2023년 6월(1) 지소음이 원인불명의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상주는 선아교

2024년 6월(1) 설가역과 지소음을 기리는 추모 공연을 앞두고 공연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다 탈출 불가 원인은 긴 장삼에 들러붙은 불길을 진압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2번의 생 (전략)

2014년 9월(2) 대학 졸업을 앞두고 돌연 휴학 후 신율예고 동창들을 제외한 사람들과 소식 단절

2015년 7월(2) 전북 어느 사찰에서의 목격담 추후 해당 사찰은 함원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6월(2) 양친이 교통사고로 사망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아 상주는 부친의 형이 맡았다

2017년 8월(2) 대학 중퇴 및 긴 잠정을 끝내고 무용계에 복귀한다

2018년 1월(2) 한국무용원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승무 강의를 시작한다 당시 경쟁률 200:1

2018년 10월(2) 제자이자 양자로 함원사 소속의 지소음(10세, 남)을 입양한다

2019년 4월(2) 중태에 빠졌던 설가역 사망 및 장례 진행 가역에게는 자손이 없었기에 상주는 선아교가 진행하였다 설가역의 생전 친우이자 선아교의 전 스승인 오명희가 자리를 함께 지켰다 고인의 부탁에 따라 화장하여 전북 함원사에 안치했다

2019년 5월(2) 양친의 유해를 서울 소재 납골당에서 전북 함원사로 이관하였다

2022년 8월(2) 지소음이 오명희를 사사하여 청소년판소리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2023년 6월(2) 지소음이 원인불명의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2024년 6월(2) 설가역과 지소음을 기리는 추모 공연을 앞두고 공연장에 화재가 발생하여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다 탈출 불가 원인은 긴 장삼에 들러붙은 불길을 진압할 수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

3번의 생 (전략)

2022년 8월(3) 지소음이 오명희를 사사하여 청소년판소리대회에서 출전하였으나 부정행위가 적발되어 제명된다

2022년 9월(3) 지소음을 파양한다 해당 사실이 알려져 한동안 세간의 비난을 받고 속해있던 무용원도 운영 중단에 들어간다

2023년 6월(3) 지소음이 파양 후 돌아간 함원사에 화재가 발생하여 사망한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불당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2024년 6월(3) 선아교의 서울 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하여 질식으로 사망한다 환풍구 및 비상구는 평소 개방되어 있었으나 화재가 발생한 날 청소업체가 방문하였기에 해당 루트가 폐쇄되어 선아교를 비롯한 고층 주민들이 다수 사망하거나 중태에 빠졌다

4번의 생 (전략)

2018년 10월(4) 함원사 소속의 지소음(10세, 남)을 지인에게 입양시키려 하였으나 지소음의 거부로 무산된다 지소음은 함원사에 남았다

2019년 4월(4) 중태에 빠졌던 설가역 사망 및 장례 진행 가역에게는 자손이 없었기에 상주는 선아교가 진행하였다 설가역의 생전 친우이자 선아교의 전 스승인 오명희가 자리를 함께 지켰다 고인의 부탁에 따라 화장하여 전북 함원사에 안치했다

2019년 5월(4) 양친의 유해를 서울 소재 납골당에서 전북 함원사로 이관하였다

2024년 6월(4) 설가역을 기리기 위하여 함원사에 방문하였으나 법당으로 들어서던 중 발을 헛디뎌 두개골이 함몰되며 사망하였다 그 모습이 가히 부처 앞에 절하는 모습 같았다고 아무개는 회상한다

주신의

아교를 쓸 줄 아는 사람과 이름이 아교일 뿐인 사람


소란스러운 낙원과 침묵의 지옥이 있다면 어느 쪽에 갈 건지 물어본 적 있잖아

내 대답은 언제나 후자야

너 역시 마찬가지이길 바랄게…….

원열우

원하는 대답을 해 줄까?

그래 그럴 일 없어

비연조

2년을 함께한 룸메이트

너의 괴로운 밤들을 기억하고

너의 찬란한 낮들을 함께하고

성찬주

찬희와 찬주

고작 이름 한 자 다른 만큼이 내가 느끼는 무게의 차이

호사평

그 간절함을 지켜주고 싶은 것뿐이에요

유단비

언젠가 다시 사라지는 일이 있더라도 떠나지는 않을 거라던 말은 유효해

류가빈

제가 쉽게 찬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 드시잖아요

계속 이렇게 지내요 우리

백강한

오늘은 네가 이겨야 해

아님 정말로 아교를 싫어한다 생각할지도 몰라

권다헌

미안 너까지 그 애를 만나게 해서

다시 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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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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