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뒤죽박죽 얼렁뚱땅
1. 천도량의 아침은 여량의 밤보다 어둡다 / 현대au
그러니까… 좋은 침대 두고 왜 쇼파에서 자는지에 대해선 이미 알고있는 사안이지만 여량은 여전히 꼬깃거리는 소리가 날만큼 접혀 자는 계약자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량, 량아. 일어나게. 그리 자다 또 담 걸리면 고생이지 않나. 장난스런 음색이 천도량의 귓가로 흘러들었다. 으에-…엣, 얽! 상체를 일으킨 꼴이 공포체험 마네킹인형과 흡사했다. 여량은 익숙하다는 듯이 몸을 옆으로 틀어 천도량 가시는 길 부딪히지 않게 피했다. 천도량의 얼굴이 탄성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으로 쳐박힌다. 그리고 침묵이 돌아오면 이미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벌레처럼 동그랗게 말린 등은 보기에 안정적이다. 저대로 딱 한시간 더 자고 일어나면 허리 아프다고 찡찡대는 계약자를 마주할 수 있다. 여량은 천도량의 좌우로 이불을 말았다. 조금 더 둥그런 덩어리에 가까워 들기에는 버거워보였다. 천도량의 침대 옆에 고이 놓여있는 1미터 넘는 인형과 비슷한 부피감이다. 여량과 함께 살면서 천도량의 짐이 늘었다. 기능을 제한 전반의 물건이 늘어난 탓에 난잡하게만 보였다. 여량은 천도량의 변화를 달가워하는 쪽이다. 도량의 방은 어느 때의 과거와 닮은 구석이 있었으므로.
“이러지 말고 차라리 침대에서 자게.”
여량이 덩어리를 안자 인형 솜터지기 일보직전처럼 겨울 이불이 번잡하게 삐져나왔다. 덩어리를 오른편으로 밀고 시야를 확보하자 코너자리 비죽 튀어나온 모서리가 보였다. 부딪히면 꽤 아팠겠는걸. 아니, 이불에 돌돌 말려 아프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만. 하여간 천성 탓으로 몸에 멍 마를 날이 없는 천도량의 몸에 누런 멍하나 더 늘려주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문틀로 조심히 몸 먼저 욱여넣고 이불덩어리 데려오면 주인도 이불도 잃은 침대시트가 외로이 반겨준다. 매트리스 중앙이 패이고 동그란 덩어리가 긴 덩어리로 펼쳐진다. 그 모습이 꼭 빨리 돌아가는 번데기를 탈출하는 다큐화면과 닮았다.
웅얼웅얼. 얼굴이 이불에 묻혀 강제로 방음된 소리가 흘러나온다.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빛도 그 소리에 강제로 쓸려 거품처럼 사라졌다. 여량이 남아있던 틈마저 닫았다. 발소리 없이 문으로 향하면 천도량은 꿈에도 깨지 못하고 그저 잠을 쫓아 달아났다. 오늘따라 유독 힘들어하네. 어제 뭐, 아아-. 자료를 찾아주겠다며 삼국시대 이야기를 하다 꾸벅 잤다. 잠이 안 온다며 계속 노트북 화면이나 두들기는 통에 환기한답시고 시작한 이야기다. 천도량은 전생에도, 그 전생에도 들었을 이야기지만 항상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반짝인다. 그럼 여량은 항상 처음하는 이야기마냥 읊었다. 방문까지 조심스레 닫은 괴이는 쇼파에 늘어졌다. 아직 미적지근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저 상태면 아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는 잘 터다. 운동한들 땀은 나지 않고 먹지도 자지도 않는 몸으로 집을 소유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천도량이 산 쓸데 없는 장식 등이 집에 생기를 더했으나, 그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천도량이 없으면 이 집에서 숨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량은 먼지 굴러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고요한 거실에 드러누워 폰을 켰다. 아직 한참 남은 점심이나 준비해볼까-하고 배달앱을 눌러 창을 펼쳤다.
2. 카페 수다(+지희, 환) / 현대au
“대체 뭐가 문제야?”
“아니이-… 그러니까.”
“과거의 네가 지금의 네가 아니라는 이야기? 걘 니가 플라나리아로 환생해서 분열하면 둘이나 있다고 좋아할걸.”
“…지금 발언, 냥이 의견도 들어봐야하지 않을까?”
“지금 나 의심해?”
“아뇩- 아, 혀 씹었어!”
잘됐네. 나 의심한 대가야.
“으익, 가는 길에 알보칠 던져주면 나 진짜 울 거야.”
“네가 뭐가 예뻐서 알보칠을 주고 가.”
“어라, 안 예쁜가~?”
“니 계약자한테나 가서 하라니까.”
“우앵, 냥이 보고 싶어…”
“그 마음 그대로 쓸데없는 고민하느니 지금 있는 시간이나 잘 보내. ”
“예지희, 하여간 맞는 말만 해. 얄미워…”
“그나저나 애는 왜이렇게 안 와?”
“무슨 이야길 하고 있었어.”
“후후후… 네 뒷담!”
“뒷담이라니. 내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직접 말하는 편이 효율적이지 않나.”
“그런 애기 하는 애들은 그냥 너 욕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그렇군.”
“아잇참, 우리가 진짜 네 뒷담했겠어~? 했으면 눈도 못 봤지! 내 눈을 봐, 우리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이 많으니까.”
“으잉? 어? …날 그렇게 봤다는 거잖아!”
“농담을 칠 거면 얼굴 근육부터 바꿔, 얘 아직도 속잖아.”
“…농담이다.”
“…응!”
그나저나 난영이는? 뭐하긴 일하지. 도량, 너야말로 매번 붙어오더니. 그야아- 냥이 몰래 상담하고 싶어서. 이익, 혜연이는?! 선약이 있다던데. 걔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 법이니까. 흐응…뭐 그렇다 치자.
3. 장보기 / 현대au
“왼쪽, 오른쪽”
“으으…… 아냐, 아냐. 이게 더 낫지 않아?”
“그건 만두가 아니라 샤오롱바오잖나.”
“…달라?”
“다를걸?”
“그럼 그냥 세 개 다 사자-.”
이것도 천천히 추가해갑니다……
4. 병간호 / 계약 초반
잔병치레가 잦다. 대신 크게 앓아누운 적은 많이 없다. 천도량은 앞으로도 그 인생이 몸뚱이처럼 가늘고 길게 이어지리라 예상했다. 혹은 지리멸렬이란 수식이 붙은 채로. 그러니 죽을듯이 앓아누워 온 이불을 적시는 일은 당시에는 생각치 못했던 일이다. 광에서 바스라져가는 물건은 아무도 찾지 않는 것처럼 천도량의 별채는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가 된 지는 그리 먼 일은 아니었다. 이제 어머니의 별채가 아닌 천도량의 별채가 됐다는 사실은 아직 새삼스러우나 앞으로 살아가려면 그 사실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아야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천도량은 지금이라도 그 사실을 슬퍼해도 되지 않냐며 세상에 반항하곤 하는 것이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눈물겨울 적도 이리 드러눕진 않았는데, 고난 산허리 넘자마자 무게중심 잃고 나자빠진 꼴이었다. 힘을 빠져 사지말단에는 누군가 칼로 도려낸 듯 힘들어가지 않고 가슴께는 근심걱정 올라타 묵직하였으되 머리는 누군가 자근자근 밟는 중으로 전신은 열이란 놈이 전신을 휘저었다. 대저 이런 상황에서 의원을 찾아야지만 제대로 된 처방을 받을 수 있다만. 쓰잘데기 없는 천가의 핏줄은 그를 막았다. 정확히는 사통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점이 천도량을 막았다. 이대로 가다간 죽겠구나 싶으면서 기운 차릴 음식도, 정성스런 병간호도, 하물며 물 한모금도 차려먹기 힘든 탓에 관 속의 시체처럼 자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마치 새 삶을 얻은 것만 같은 느낌에 괜히 어머니께 감사인사까지 드린 추억이다. 하도 크게 앓던 탓도 있고 청룡님의 가호라고 생각하고픈 심정도 있고 후로 크게 앓은 적은 없었다.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네.”
“……”
“내게 할 말은 없고?”
“잘못했습니다…”
“그러게, 감모 든다지 않았나.”
“이익, 그래두- 눈싸움 재밌었지?”
“아무렴, 이웃집 망아지가 탈출한 줄 알았지.”
삐죽 내민 입술이 불만을 표했으나 여량은 그 의견을 묵살하고 이불이나 더 끌어 올렸다. 의원을 부르기 위해 분신이 출동하셨으니- 이제 계약자 고삐 풀리지 않게 막기만 하면 되었다. 음성은 여즉 쨍쨍하나 어디 하나 붉지 않은 곳 없는 신체가 병증을 보여주었다. 천도량의 온도로 미적지근해진 천은 아까보다 물기가 말랐다. 물 받은 대야로 천이 뛰어든다. 여량은 제 몸 식히려 뛰어든 천을 들어 비틀어짰다. 천이 말할 수 있다면 지금 아프다고 말하려나. 잡생각을 하던 천도량은 여량과 눈이 마주치자 예의 평소처럼 미소를 걸쳤다. 웃을 기운은 있나보아. 냥이 너보고 있으니까 웃음이 나네? 철면피적 발언도 서슴없던 사람이 답잖게 그 후로 침묵으로 일관했다. 물론 가만 있을 순 없는지 밭은 기침소리도 동반한다. 이내 잦아들었다. 머리가 베개에 쿵쿵 찧는 탓에 반쯤 앉았다 다시 드러눕는다. 여량은 기침이 끝나고서야 천도량의 이마에 아픈 사람 딱지를 다시 올려주었다. 시름시름. 능력 밖의 일을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약간의 불쾌함을 동반한다. 허나 여량은 천도량의 꼴을 보고 불쾌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불쾌의 감정이 전부 걱정으로 치환된 탓이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의원이 많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직 오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물길 흐를 정도로 축축이 젖은 천을 올려두어 계약자에게 ‘냥이야아…베개가 차가워…’ 소릴 들은 괴이는 없어지고 알맞게 물수건을 짜는 괴이만 남을 테다. 여량은 누군가의 병간호에 익숙한 이가 아니었다. 앳된 외모는 누군가를 간호하기보다 간호받는 일이 더 익숙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실제로 간호받을 수 있는 삶이었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이렇듯 어색할 조건이 충분히 갖춰진 것이다. 이는 여량의 기억이 냉병기 끓던 소리를 간직하는 한 당연한 일이었다. 적군만이 아니라 눈먼 아군과 자신까지. 전쟁터에서는 그 모든 변수가 적이다. 사망자가 속출하는 전장에서 하루라도 다치지 않을 수 있는 이는 높으신 나으리들 뿐이었다. 아직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삶이 남아있는 한 그는 지혈하는 법, 붕대감는 법은 알지언정 병간호에 무엇이 필요한지는 알지 못한다.
“오늘이 등청 안하는 날이라 다행일세.”
“힘내서 등청하는 날 아플걸.”
말하는 것만 보면 이미 튼튼한 사람인데. 천도량은 불리할 때마다 고개와 시선을 동시에 돌리는 버릇이 있다. 바람 들지 못하게 꽉 닫힌 창으로 고개가 돌았다. 접착 능력이 없는 천은 자연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여량이 손 뻗어 천을 집어들었다. 천도량의 얼굴 근처로 찬기운이 훅 끼친다. 이불에 숨어있던 손을 꺼냈다. 열 올라 뜨끈하고 이불 안에 숨어있어 더 뜨뜻하다. 평소보다 훨씬 높은 체온을 가진 손이 목표를 찾아 휘적거렸다. 뭐하나? 소온… 냥이 손-! 맹맹한 소리 담겼으나 아까보다는 차분하다. 물론 더 정신없는 듯도 보였다. 꽃 찾는 벌처럼 허공을 애처롭게 젓는 천도량의 손 위로 차운 손 하나가 겹쳐잡혔다.
“그리 찾던 손, 예 있네.”
천도량은 별말없이 뺨으로 끌었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계약자의 행동은 차라리 여량을 안심시킨다.
“시원해-…”
“괴이니 그렇지. 사기를 너무 가까이하면 영향을 받을지도 모르네. 자네는 도사잖나.”
“…으응, 전혀. 지금 엄청 시원하기만 한데.”
눈도 못 뜬 천도량의 목소리가 사그라들 무렵이 지나서야 의원이 도착했다. 분신을 쌍둥이로 믿고있던 의원이 눈 앞에서 사라지자 까무라칠 뻔한 사건 빼면 전반적으로 조용한 진찰이었다. 전형적인 감모든 증상이며 무리하지 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한다. 약 달여줄테니 가져가라. 빈 속이었으니 부드러운 음식을 주어라. 잦은 병으로 들락거리던 사람이라면 자신도 줄줄 늘어놓을 수 있다고 코웃음쳤을 처방이었으나 확실히 정론이었다. 죽을 만들어…야 하나. 일단 시도하고 영 먹지 못할 결과물이 나오면 그때 사오자. 죽을 따로 파는 집은 없으나 아는 식당에 부탁하면 들어줄 일이었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사다주는 편이… 일단 재료를 살피기로 결심한 여량은 텃밭으로 나갔다. 의원이 오지 않았으면 꼼짝없이 잡혀있었을 손은 아직도 시원했다. 시금치, 상추, 배추, 파, 토란에 이것저것. 분신은 고기 사러 보낸 시간동안 야채를 손질한다. 부엌을 사용하는 것도 오랜만이라는 감회가 새록새록 올라온다. 구색만 갖추고 먼지쌓인 주방기구들이 증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물이 끓으면 밥을 넣었고, 야채를 썰어 넣었다. 간은 소금으로 맞추고 때마침 사온 고기는 잘린 그대로 종이를 잡아 털어넣었다. 요리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오늘 유독 빛을 발한다. 가마솥을 채울 죽이 완성되자 천도량의 죽을 퍼내고도 삼일 내리 먹을 양이 남았다. 곤란하군, 곤란해. 여량은 일단 가마솥 뚜껑을 닫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비록 가마솥이 넘쳐 끓어오른 자국은 가려지지 않았고 도마 위에 살벌한 흔적이 남았지만 이는 모두 계약자가 보기 전에 사라질 장면이니 문제 없었다.
“량, 일어나서 죽이라도 먹어보게. 울렁거려도 먹어야 한다잖나.”
“진짜 어지러워어...”
“그러지 말고- 한 술만 들어보게.”
여량이 숟가락을 쥐어주자 한 술 뜬 천도량은 입으로 넣은 후에 웬 죽인지 묻는 걸 잊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음식을 누가 탄생시켰느냐고. 고귀한 출생을 묻는 것을 잊었단 말이다. 알싸하고 짜고…설익은 건더기, 혹은 무른 건더기가 입 안에서 부조화가 입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음식을 먹고 기절한 적이 한 번 있었던가. 오늘 그 기록을 갱신하는 날인가? 맛이 느껴질 정도로만 씹은 입이 부동의 상태를 이루었다. 눈만 껌벅이던 천도량은 기어이 계약자 너머로 쟁반을 넘긴다. 황실에 숙수 좀 지원해줄 수 있냐고 물어볼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그 상태는 천도량이 여량에게 안기는 행위로 막을 내렸다. 몸을 앞으로 꾸물거려 다리에 머리를 뉘인다. 그, 그냥 이렇게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당황해서 바로 나온 말이기야 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을 빌리자면 천도량은 지금 진담을 내뱉을 수 있는 어드매의 상태였다. 정신없고 당황스럽고 하여간 제정신은 아니다. 인간이었다면 병을 옮길 수 있으니 혼자 있네마네, 그런 실랑이를 벌였을 모습이 빤했다. 병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몸을 지닌 계약자가 있어서 다행이다. 방금 떠오른 생각을 여량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말인즉 괴이여서 다행이라는 소리고, 그를 입 밖으로 꺼낸다면 스스로 견디지 못할 터였다.
“조금 뜬금 없는데 고마워.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좋다.”
천도량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최대한 입꼬릴 둥글게 말아 휘어 감사를 전하는 일이었다. 제법 진심을 전하고 기침을 토하는 바람에 강제로 이불로 밀려들었다. 이불에 파묻고 등을 들썩였다. 다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간 계약자와 쟁반이 번갈아 시야에 들어온다. 가끔 알면서도 해야만하는 일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표현한댔다. 여량의 입에서 차분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내 죽이 그렇게 맛 없었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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