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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진. 소꿉친구인 아템과 유우기입니다. 어나더 유니버스는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유우기는 좀처럼 칠판에 집중하지 못한채로 연필의 끝을 얼굴 한 구석에 찔러대고 있었다.

공부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찍이 포기한 것인지… 일단 칠판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는 갸륵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의 교과서가 얼마나 깨끗한지는 그가 나중에 자신의 페이지를 베끼기 위해 찾아올때 확인이 되고 있는 바이다.

공부를 하자고 한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해력이 좋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대충 흘려넘기는 요행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게임을 할 때의 유우기도 그런 면이 있어 그와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은 끊이지를 않았다. 게임도 잘 하고, 상대방에게 어울려줄 줄도 아는 그는 학교에서 게임을 좋아한다 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게임하면 재밌는 인물로 알음알음 알려져 나름의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된 것이다.

허나 좋아하는 것에 두각을 보인 대가인지, 그의 점수는 참담하다는 말이 모자르지 않게 되었다.

유우기가 이쪽을 보기 전에 칠판에 적힌 문구 중 몇 가지를 교과서에 옮겨 적어둔다.

이 선생은 사담을 칠판에 적힌 필기 사이에 끼워두는 경향이 있어 전부 적다가는 시험 기간에야 칠판에 적힌 온갖 것을 따라적기 시작하는 죠노우치, 혼다, 유우기의 노트와 닮은 꼴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문장이 적힌 노트를 보고 고뇌하다, 교과서를 좀 보여줄 수 없겠냐는 말을 하고, 시험이 지나가고 나면 이번엔 제대로 하겠다고 주장하다 두세 주 후에 원상 복귀가 되는 세 사람에게 노트를 빌려주려면 적어도 자신과 안즈의 교과서에는 항상 필요한 것만이 담겨야 할 것이다. 안즈는 매번 그들을 걱정하여 혼을 내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평화로움을 느끼기는 한다. 아마 높은 성적이 필요하게 되면 다 어떻게든 해낼 사람들인 것을 이 그룹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유우기는 잠깐의 시선을 눈치챘었는지 이쪽을 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샤프로 노트를 두드리니 그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칠판에 있는 것들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의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는지 지나간 세월과 함께 생각해 본다.

숫자에 의미가 없어질 정도로 오랜 세월 본 사이다.

허나 그 추억들을 되새기는 것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선생의 다시 시작된 사담에 흘끗 시계를 보자 앞으로 5분 뒤면 이번 과목의 시간이 끝날 것이 보였다. 나는 그 5분 동안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기며 보내기로 했다. 고의적으로 어정쩡하게 만든 귀염성 있는 미소를 떠올리는 것은 분명 저 사담보다는 큰 의미가 있다.

추억 속의 그는 나에게 선물로 건넨 여러 개의 카드 팩 중에서 어지간히 좋은 카드가 나오지 않자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고, 햄버거를 너무 자주 먹는 것은 아니냐는 말에 어색하게 미소를 짓기도 하고, 시험 기간에 노트를 들고선 어색한 미소를 띄운채로 다가왔다.


“또 들켰네.”

하교 도중, 그는 아까의 일을 말하는지 또 그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들켰다고 하기엔 새삼스러운 일 같은데.”

“그건 그렇지만… 부끄럽잖아. 안 그래도 매번 필기 보여주는거 싫을텐데.”

“그렇지도 않아. 나도 같이 필기하잖아.”

“그거랑은 다르지!”

세 사람이 안즈와 나의 교과서를 베끼러 온다고는 해도, 내 교과서는 나와 유우기만이 본다.

죠노우치와 혼다가 안즈의 교과서를 보며 경쟁하듯이 빠르게 베껴내는 (둘이 너무 늦게 베끼는 것 아니냐, 네가 너무 빠른 것이라 하는 말을 매번 교환하는 턱에 그들의 글씨를 적는 속도는 글씨체를 제물로 나날히 그 성장을 다르게 하고 있다.) 동안 유우기는 내 교과서를 베끼고, 나는 그 옆에서 복습을 위해서 노트에 한 번 더 같은 내용을 적었다.

“적는다는 것은 같잖아. 그러니 네가 신경쓸 필요는 없어.”

“아니… 그치만…".”

그는 마음이 편치 않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리다,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앞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걸로 대략 일주일 정도는 스스로 열심히 필기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별로 이대로 그가 졸업할 때까지 이 일을 반복한다 해도 불편할 것은 없다. 실제로 나는 어떻게 해야지 그가 스스로 열심히 필기를 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안다. 알지만, 지금처럼 굳이 그가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이 아니면 묵과하는 것이다.

열심히 한다면 말리지 않겠지만 그의 죄책감을 자극해서 작위적으로 열심히 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아직 다음 시험 보려면….”

분명 시험 기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리라.

“한 달 정도 남았어.”

“그래, 한 달 정도 시간 있지?”

내가 소리내어 웃자 그는 헷갈린 것이라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자. 그게 왜?”

“아니, 나 다음엔 진짜 열심히 해보려고.”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저번엔 시험 끝나고 말했잖아, 이번엔 시험 전에 말하는 거니까. 진짜 달라.”

“알았어.”

“진짜야!”

“알았어.”

진짜라니까! 그의 목소리가 더욱 단호한 기색을 띄웠고 나는 거기에 반응해서 좀 더 크게 웃어버렸기에 그는 나보다 조금 더 빨리 걸어가버리려 노력했다. (내가 그의 속도를 따라잡자 몇 번 더 시도를 하더니 먼저 지쳐버리고는 평소처럼 무사히 둘이서 돌아왔다.)


다음 시험,

유우기는 자신을 증명했다.

그것은 죠노우치와 혼다의 배신자라는 환호성에 힘입어 더없이 화려한 것으로… 점수 자체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동반한 것은 아니었어도 유의미한 한 걸음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와 할아버지께서도 기뻐하셨음을 자리를 함께한 나는 알고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이번엔 나의 교과서에 크게 의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미 지나간 것들을 무에서부터 창조해나갈 수는 없었기에… 시험 구간의 초반에 속하는 부분을 베끼는 일은 있었으나, 나머지는 제대로 필기를 했다며 적다 말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버리고 만 것이다.

그때의 모두의 표정에는 아직 웃음기가 남아있어 다들 흐뭇하게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이전 시험보다 점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불안함이 담겨있었다. 그 증거로 세 명 모두 유우기에게 필기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냐는 말을 각각 전해왔다. (새삼스럽지만 유우기와 자신은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고 느꼈다.)

허나 점수가 함께 석차가 공개되자 그들의 표정에는 웃음기가 사라지고 경악으로 가득해졌다. 마치 불온한 것을 목격하기라도 한 듯이… 그들이 웃음을 되찾은 것은 약 3분 뒤의 일로, 그 3분 동안 유우기는 나의 안타까운 시선을 오로지 혼자서 받아내야만 했다. (그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억울한 표정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었기에 안타깝다는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노력했다.)

유우기가 자신을 증명해낸 후, 그의 집에서 소소한 축하의 장이 마련되었다.

정말로 소소한 것이었기에 참석자는 유우기와 그의 어머니, 할아버지, 나 정도가 전부였지만. 굳이 누군가 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늦은 저녁이 되어 그 자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주말이 되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그의 방으로 올라간 후에서야 그는 내게 아껴두기라도 한 듯한 말을 꺼냈다.

“나 이번엔 꽤 잘 봤지?”

“방금까지 축하했는데 새삼스럽네.”

“아니… 그건 그런데… 나 저번에 한 말 있잖아.”

“응, 기억하고 있어.”

그는 굳이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그저 기쁘다는 듯이 웃음을 띄우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더 공부를 잘하게 될 수도 있잖아. 그때가 오면 내가 노트 보여줄게.”

나는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또 그와 반대로 그가 눈매를 치켜세우며 말한다.

“나 진짜 더 열심히 할거야!”

“그래.”

“나 진심인거 알지?”

“알아.”

그는 방 안에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저번처럼 먼저 나아가버리려 하지 않고 그럼 되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맨날 너한테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아… 네가 도와주는게 싫은건 아냐! 그냥… 반대로 네가 싫을 수도 있잖아.”

“안 싫어.”

“알고 있어. 근데 그것도 그렇고 그냥… 그냥 나도 널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게임은 내가 도와줄 수 있을 때도 있잖아. 근데 게임을 빼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은거야. 너한테 받기만 하는 게 더 큰 것 같아서….”

“파트너.”

“응.”

“난… 너와 함께하는게 즐거워.”

“나도 그래.”

“내가 너에게 노트를 보여주는건, 나도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야. 내가 함께 필기를 하는건, 너와 그 시간도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야. 저번에 내가 웃은건, 널 우습게 취급한게 아니야. 네 결심이 좋아서 웃었어. 너는 이미 나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어.”

“어… 고마워. 그치만 그거랑 이건 조금 다르지 않아?!”

“다르지 않아. 오히려 더 큰 거야”

“어떤 부분이?”

“너만이 줄 수 있는 것을 주잖아.”

그는 내 말을 어느정도 이해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을 보자 나도 그가 이해했음에 안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분명 같을거다.

무언가를 해주어서라도 곁에 있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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