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눈을 발견한 이야기
카노치카 첫 만남?
그때는 해 질 녘이었다. 황혼으로 가득 찬 거리를 누나와 둘이서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걸었다. 그날, 누나는 내게 눈이 맑아지는 뱀과 직접 대화를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만두라고,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말해봤지만 그런 말들 따위로 이미 굳은 결심을 한 누나를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누나한테 큰 걱정을 끼치지 말자, 그 생각 하나로 금방이라도 휘청일 것 같은 몸을 똑바로 유지하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오가는 대화 하나 없이 걸은 지 얼마나 걸었던 걸까. 집에 가까워졌을 무렵, 팬저마스크가 울려 퍼지는 골목길에서 누나는 문득 말을 걸었다.
"있지, 슈우야.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 누나."
"사실은 나, 너희와 비슷한 아이를 한 명 알고 있어. 내 후배인데 무척 차분하고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지만, 사실은 큰 상처를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그래도 강하고 참 좋은 아이야. 만약에,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 아이를 부탁할게. 검푸른 머리카락에 붉은 리본을 하고 있고, 무엇보다 너희와 같은 붉은 눈을 지녔으니까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응."
"고마워, 슈우야."
누나는 노을을 등진 채로 내가 사랑하는 그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 미소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누나의 미소가 되었다. 다음 날인 8월 15일, 누나는 내 눈앞에서 어제와 똑같은 황혼 속으로 뛰어내렸고 그때부터 내 악몽이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충격의 연타로 정신도, 내 능력도 제대로 붙잡지 못한 내가 누나의 부탁을 잊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거다.
"어서 오세요-"
─그리고 그때의 부탁이 지금 되살아났다. 친절한 듯하지만 실상 아무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청아한 목소리. 무의식적으로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본 순간, 그동안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검푸른 머리카락에 붉은 리본으로 단정하게 반 묶음을 한 어여쁜 소녀. 누나가 말했던 그대로의 소녀가 검푸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만큼이나 무감각한 눈빛이었다.
"아! 있다, 있다. 서점엔 없었는데 여기서 사게 되네~"
동요한 마음을 「속여버린 채」 아무 잡지나 들어버렸다. 뒤늦게 무슨 잡지인가 봤더니 '대특집! 초~그리운 걸 패션 대집합'이라는 쪽팔린 제목과 함께 지금으로선 절대 입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옷을 입은 여러 명의 모델이 나란히 등장하고 있었다. 잡아도 하필이면 이런걸. 이런 쪽팔리는 잡지 따위 당연히 서점엔 없겠지. 우연히도 무작정 뱉은 말과 맞아떨어져 버렸다. 그런 말을 하고서 다시 내려놓으면 이상할 것 같아서 대충 팔 사이에 끼었다. 그래도 대충 소제목을 훑어보니, 볼만한 기사도 꽤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이따가 메카쿠시단에 들어올 키사라기 모모 기사도 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치자.
과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 뒤 얼른 과자나 고르라는 키도의 말에 장난스럽게 대답하는 것으로 「속인 채」 소녀를 계속 주시했다. 그냥 가만히 카운터에 앉아있는 모습에서도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누나의 말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른다. 아직 확신할 수 없다. 게다가 뱀은 총 10마리. 다른 9마리 뱀들이야 이미 알고 있고 나머지 한 마리는 방학을 맞아 이곳에 오는 아이들에게 깃들게 할 것이라고 뱀이 말했었다. 10마리의 뱀에서 벗어나는 뱀이 있을 리가.
"키도, 이것 봐. 농후한 다시마 맛국물·남자의 간식이래! 푸흐흐... 이거 대체 누가 만든 걸까나?"
"너 같은 바보가 만든 거겠지."
일순 키도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그 순간, 소녀의 눈에서 「붉은빛」이 스쳐 지나갔으니까. 소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턱을 괸 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똑똑히 봤다.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분명 소녀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사람이 있는 데에서 능력을 쓰다니?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우리 외엔 아무도 없어서 그런가? 아니, 태도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야 나는 지금 소녀 눈에는 그냥 과자나 고르고 있는 것으로 보일 테니까. 그렇지만 11번째 뱀이라니? 누나가 말했던 애가 진짜 저 소녀인 건가?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져 있는 편의점 안임에도 불구하고 현기증이 일 것만 같았다.
키도와 과자, 음료수를 마저 고른 후에 카운터로 갔다. 속이느라 이것저것 집어 든 탓에 과자의 양은 꽤 많았다. 그중에는 무심결에 들고 와버린 농후한 다시마 맛국물·남자의 간식도 있었다. 그 수많은 과자를 소녀는 군더더기 없는 행동으로 바코드를 찍었다. 그 모습을 나는 뚫어지라 바라봤다.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다시 붉은 눈을 보고 싶었다. 내가 확신할 수 있도록.
"...저 손님."
"응?"
"제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요?"
아, 이런. 당황한 마음에 제대로 속이지도 않고 너무 빤히 쳐다봤다. 소녀는 물건들을 차례차례 봉지에 담으면서 눈만 살짝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딱히 기분 나빠하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좋아, 그렇다면 한번 떠보기라도 할까.
"아, 미안해요. 그게..."
"?"
"흥미롭게 생긴 눈이라고 생각해서 그만."
내 말에 소녀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다. 살짝 기분이 나빠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소녀는 그런 기색을 싹 지워버리고는 '하하... 그런가요?'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예상보다 훨씬 평범한 반응에 내심 실망해버렸다. 나가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던져보았지만, 소녀의 반응은 조금 찝찝해 보일 뿐이었다. ...역시 능력자가 아닌 건가. 새로운 실험 날짜가 다가오고 있어서 그만 예민해졌던 모양이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에?"
"응?"
딱 마주쳐버렸다. 그 소녀의 눈과. 후드로 써서 가리고 있었지만, 살짝 들쳐져 있는 눈의 색깔은 붉디붉었다.
"고양이 눈─"
"자자, 조용히 해야지!"
아무래도 날 기억하고 있었는지 날 부르는 소녀의 입을 서둘러 막아버렸다. 소리를 내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여긴 테러리스트가 있는 백화점이다. 잠깐의 주목이라도 너무 위험하다고.
입을 막으며 무심결에 본 소녀의 눈은 똑바로 날 향해있었다. 내 거짓을 모두 꿰뚫어 볼 것만 같은 깊고 깊은 붉은 눈. 심연을 바라본 것만 같은 섬뜩한 느낌에 서둘러 능력의 세기를 올렸다. 그럼에도 내 눈에 박힌 소녀의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무래도 이 괴물의 눈만큼은 소녀에게 「똑똑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무언가가 내 가슴을 훑고 지나간 것 같았다.
"아, 역시 너도 「붉은 눈」이네."
내 말에 소녀는 깜짝 놀라며 급히 후드를 깊게 눌러썼다. 역시 저번에 본 붉은 눈은 무의식이었던 거라는 생각과 함께 누나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은 큰 상처를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 태도를 보아하니 누나 말대로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눈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다. 뭐, 나보다 더하겠냐마는.
미안해, 누나. 그동안 부탁을 까맣게 잊고 있어서.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그 부탁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아.
소녀는 여전히 붉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놀랐나 보네. 뭐, 그야 쟤 입장에선 같은 능력자를 처음 보는 것일 테니 그럴 만도 하나. 같은 능력자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누나의 부탁이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내가 챙겨주는 수밖에. 근처에 있는 신타로군까지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게 심히 불만스럽지만. 그렇게 나는 누나가 맡긴 두 사람을 메카쿠시단으로 끌어들였다.
─설마 그 두 사람이 나를 구원해줄 거라고는.
특히 이치카쨩에게 반하게 될 거라고는 그때의 내가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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