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가트

로니아 무어

커뮤용 by 커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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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로니아의 눈에는 그랬다. 4학년이 막 시작했을 무렵부터 로니아의 눈에 맑은 하늘은 없었다. 항상 깊은 안개가 낀 것만 같았다. 어둑한 회색 구름이 하늘에 일렁였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본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은. 수업이 아니었다면 로니아 무어는 절대로 보가트 앞에 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가 자신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을 갉아 먹는 생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로니아 무어는 ‘착한 아이’이기를 고집할지언정 멍청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아직 받아들이고 싶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불편한 진실은 결국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기도 전에 로니아 무어의 앞에 실체로 나타났다.

저의 앞에 서있는 것은 자신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훨씬 더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로니아 무어는 자신에게 손을 흔들었다.

눈앞의 로니아 무어는 자신의 뒤에 있는 수많은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눈앞의 로니아 무어는, 자신의 앞에서 한없이 불안해하고 있는 로니아 무어를 도울 생각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저, 그저 자신의 뒤에 있는 친구들에게만 시선을 둔다. 마치 아주 즐겁다는 듯이.

로니아 무어는 인지하기 시작했다. 근래 내내 자신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던 의문의 진실을, 자신의 손 끝이 항상 붉은 이유를.

로니아 무어는 ‘착한 아이’여야 했다.

다만 아직은, 로니아 무어는 그 진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순간 헛구역질이 나오며 결국 보가트의 앞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먹구름이 가득했다.

날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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