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라나애
카게로우 프로젝트 드림 소설
"평화롭네." "그러게." 슈우야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조용히 중얼거렸다. TV에서는 원래 모모가 출연하기로 했던 드라마 1화가 방영되고 있었다. 이 드라마 역시 뻔하디뻔한 러브코미디라 평화로운 장면이 연속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모모가 출연했다면 좀 다르게 보였을까. 그래도 지난 여름날을 떠올리면 역시 우리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 여름날의
이치카는 보았다. 상자 속 작은 세상이 불타는 것을. 검은 소년 대신 하얀 소년이 대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붉은 머플러가 노을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이 눈으로. 열망, 분노, 허무, 그리고 사랑. 10년 조금 남는 삶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격렬한 감정들이 두 눈에 아로새겨졌다. 아자미의 눈을 통해 TV처럼 지켜보던 이전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나와 히요리가 영문을 몰라 서로만 바라보고 있을 무렵, 뒤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나더니 몇몇 단원들이 나타났다. 내 눈에야 히요리로 보이지만, 아무래도 다른 단원들 눈에는 웬 거구의 남성이 날 넘어뜨린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바짝 경계하며 날 감싸는 단원과 영문을 몰라 어이 없어 하는 히요리 사이를 중재하느라 잠시 진땀을 뺐다. 히요리와 오래 알고 지
시간의 개념을 잃어버린 아지랑이 데이즈에서 시간만큼 무상한 것도 없었다. 1초가 1초가 아니고, 1시간이 1초가 되기도 하는 세계. 그런 곳에서 바라본 본래 세상은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바뀌어 가는 것만 같았다. 가족과 나누는 미소, 친구들끼리의 투덕거림,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까지. 시간은 쉴 새 없이 달려 나갔다. 한 부부에게 흙더미와 뱀의 입
내가 부모님께 말도 하지 않고 타지 중학교에 지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날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집에 오셔도 업무 뒤처리나 쉬시기만 하던 양부모님이 나를 앉혀놓고 몇 시간이나 이야기했으니까. 부모님은 몇 번이나 나를 설득했다. 아직 다시 잡을 기회가 있을 거라고, 학교 가서 얘기해볼 테니까 근처 학교로 하자고. 슬그머니 눈을 뜬 나에게 두 분의 당황스러
「실례만 아니라면 당신의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방금까지만 해도 옥상에서 떨어졌던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음성이었다. 그래도 푸른 눈에 매달린 투명한 눈물방울이 그래도 소녀가 공포를 잊은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었다. 허리 뒤로 숨긴 두 손은 서로를 꽉 붙잡은 채 작게 떨리고 있었다. 아자미는 붉은 눈동자를 그것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더워..." "그러게." "학교까지 얼마나 남았지?" "이제 거의 다 왔어." 저기 봐. 손가락 끝으로 건물 사이 드러난 시계탑을 가리키자 키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얀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항상 긴 후드티를 입고 다니길래 더위를 잘 안 타나 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하긴 더위를 안 탄다 해도 요즘 날씨는
망각은 축복이고, 죽음은 안식이다. 그 단순한 것을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온 괴물은 너무나도 늦게 알아버렸다. 세는 것조차 포기한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아직도 자신의 어리석음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공포에 눈이 멀어 당장 눈앞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나날을 저버렸다. 행복을 대가로 만든 끝나지 않는 세계는 고통과 슬픔만을 영
"뭐야, 카노 너 혼자야?" "뭐냐니 너무하네, 신타로군~" 조용하디조용하던 아지트의 문이 열리더니 곧이어 노이즈 하나가 들어왔다. 노이즈의 주인, 신타로군은 정말 질리지도 않는지 똑같은 붉은 저지를 입은 채로 성큼성큼 아지트 안으로 들어왔다. 딱히 신타로군의 말이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볼멘소리를 내니 신타로군은 어깨나 한번 으쓱이고는 내
볼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부드럽고 상냥하게 볼을 어루만져주는 이 느낌...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빠? 아니, 아니야. 이건... 어젯밤의── "으음..." 느리게, 천천히 눈을 떴다.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에 반도 채 뜨지 못하고 찌푸리고 말았지만. 마치 길고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은 멍했고 몸 전체에 부유
그때는 해 질 녘이었다. 황혼으로 가득 찬 거리를 누나와 둘이서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걸었다. 그날, 누나는 내게 눈이 맑아지는 뱀과 직접 대화를 해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만두라고, 위험하다고 몇 번이고 말해봤지만 그런 말들 따위로 이미 굳은 결심을 한 누나를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누나한테 큰 걱정을 끼치지 말자, 그 생각 하나로 금
『다시 눈을 떴을 때 처음 보이는 풍경은 정말 가관이었다. 벽에는 위태하게 매달려있는 부서진 모니터, 바닥에는 각종 기기의 파편들. 그 사이 사이에 우리들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마치 길고 긴 꿈을 꾸고 일어난 것처럼 정신은 멍했고 몸 전체에 부유감이 일었다. 그 느낌을 곱씹으며 느리게 눈을 껌벅이다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모두를 찾았다. 다들 하나
미친 짓을 하는 뱀에게 붙어있는 게 싫어 억지로 몸에 힘을 주고 비척비척 걷다 보니 어느새 거대한 문 앞에 당도해있었다. 뱀은 아주 자연스럽게 잠금을 풀고는 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애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은 열어놓고. 나 자신은 문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문이 닫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문 안쪽은 실로 거대한 방이었다. 이 층 전체를 방 하나로 만들
『이번에도 또 실패인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번뜩 눈을 떴다. 하지만 보이는 건 검정, 검정, 검정.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 나는 붕 떠 있었다. 뭐지? 여긴 어디지? 분명 세계가 부서지고 있었는데? 『지금 부서진 세계가 처음부터 재조립되고 있다. 여긴 그 틈새의 공간이지.』 틈새의 공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찾
카노와 세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107」이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버린 것만 같았다. 빨리, 서둘러야만 해. 그런 생각을 하며 문고리를 돌리려는 순간─ "쫓아오지 마, 아줌─우왓?!" "히비야군, 위험해!" 갑자기 문에서 뛰쳐나온 히비야가 카노에게 부딪혀 넘어지고, 넘어지기 직전
"설마... 반복해왔던 거야? 이 짓거리를? 네가 말하는... 마리가 가졌다는 그 「여왕의 힘」이라는 건 설마...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인 거야?!!" "조금 수정하고 싶긴 하지만 뭐, 정답이다." 그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거짓말... 거짓말이지?!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니... 있을 수 없잖아!
"거짓말하는 건 특기야." "난 꿰뚫어 보는 게 특기야." "그래도, 본심은 좀 서툴러서 말이야." "괜찮아, 나도 그래. 남의 본심은 꿰뚫어 보는 주제에 정작 내 본심에는 숨기지." "이상하네, 언제나 진짜 이야기가, 가장 거짓말 같아." "자, 그럼 들려줘. 너의 거짓말 같은 진짜 이야기를." "...미안, 잠시만. 와야 할 사람이 더
그때 나는 왜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그래... 그런 생각을 하며 후회한 날들도 있었다. 날 밀어버린 그 사람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능력을 제어하던 날들도 있었다. 공중에서 몸이 추락할 때, 눈물을 흩뿌리다 커다란 입에 삼켜진 날도 있었다. 하나 같이 괴롭고, 슬프고, 좋지 않은 기억들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모든 기억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하아... 하아..." 갑자기 뛰는 탓에 거칠어진 숨을 정돈하며 자판기에 동전 몇 개를 투하한다. 정신없이 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입으로 숨을 쉬어버렸는지 목이 아플 정도로 마르다. 여름의 더운 공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전력 질주를 했으니 당연한 거겠지. 수분 보충엔 최고인 포카리스웨트 하나랑 키사라기씨가 뭘 좋아할지 몰라 코카콜라 하나를 뽑아 들었
그날 이후의 내 생활은 완전 최악.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미 돌아가신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돌아가시자, 나는 자연스럽게 큰아버지, 큰어머니 집으로 입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죽였던 그 사람과 남매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사람과 한 지붕 아래에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난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시원한 바람이 머리끝과 피부를 어루만져주고는 지나간다. 바람에 실려 온 향긋한 풀 냄새에 조심스레 눈을 떠보니 나는 푸른 들판 위에 누워있었다. 약간 몽롱한 머리를 부여잡고 상황 판단을 하기 위해 상체를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이 생각보다 훨씬 넓은 들판이란 것을 깨달았다. 대체 내가 여기 왜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려고 하는 무렵, 나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일 처음 보았던 것은 새하얗고 몽실몽실한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이었다. 어째서인지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태양 열기에 뜨거워진 길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어리둥절하게 몸을 조금 일으키니 누워있던 자리가 내가 떨어졌던 바로 그 위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저 위 옥상에서 추락한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삐거덕
"다, 다 됐어요..." "아, 고마워." 총알에 스쳐 생겨버린 상처에 고운 붕대가 칭칭 감겼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아프긴 해도 제때 치료했고 약도 잘 발랐으니 흉터만 안 생기면 된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이쪽이 아닌 저쪽이려나... 마리는 조금 서툴긴 해도 열심히 내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거까진 참 좋은데 왜 나랑 눈조차 맞춰주지 않는 걸까
아빠... 아빠가 보고 싶다.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 그러다가 나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어버렸지만, 결코 미워할 순 없는 나의 유일한 가족. 내 기억의 시작부터 「엄마」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원래부터 몸이 약하신 분이라 나를 낳으시고 몸 상태가 급악화되어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
한여름. 말 그대로 한여름 날씨다. 아니, 그 이상인가? 최근 여러 방송에서 평년 기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느니, 지구 온난화가 더욱 가속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느니 떠드는 걸 듣긴 했지만 실제로 체감하니 꽤 무섭다. 여름이 덥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올해가 가장 심한 것 같다. 내년엔 이보다 더 심해질 거라 생각하면 끔찍하다. 이 살인적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갑자기 발에서 느껴지던 딱딱한 감촉이 사라지고 공중에 붕 떠올랐다. 아까 등에서 느껴졌던 감촉은 분명 당신의 손이었을텐...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왜 이렇게 있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어서 그저 멍하게 있으니 슬로비디오처럼 몸이 천천히 떨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도와줘─! 미처 소리로 내뱉지 못하고 손을 앞으로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