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치카]이치카의 다이어리

wander days Ⅱ

드림소설 '이치카의 다이어리' 백업

아빠...

아빠가 보고 싶다.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 그러다가 나를 더욱더 외롭게 만들어버렸지만, 결코 미워할 순 없는 나의 유일한 가족.

내 기억의 시작부터 「엄마」란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원래부터 몸이 약하신 분이라 나를 낳으시고 몸 상태가 급악화되어 얼마 못 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엄마를 본 건 오로지 사진뿐이라 목소리도, 성격도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일을 끝내시고 집에 돌아오신 아빠의 얘기를 통해 무척이나 온화하시고 상냥하신 분일 거란 걸 짐작할 수는 있었다. 엄마 얘기할 때의 아빠는 무척이나 사랑스럽고 그리워하는 동시에, 무척이나 슬픈 표정을 지으셨기에 내 쪽에서 먼저 엄마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

엄마가 안 계시니까 내가 아빠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사명감은 거기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아빠는 아빠대로 아내의 몫까지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워야만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지만.

그 때문일까, 아빠는 늘 바쁘셨다. 아주 어렸을 때도, 그리고 최근까지도. 아빠는 집에 하루 이상 있지 못하셨다. 늘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며 「아빠 갔다 오마.」이 단 한 마디를 남긴 채 일하러 가시곤 했다. 아빠가 제법 큰 기업의 사장이란 걸 안 것은 조금 큰 후였다. 아빠가 열심히 일하시는 동안에는 난 열심히 공부를 했다. 공부라는 것의 범위는 넓어서 기본적인 국어, 수학, 영어에서부터 운동, 피아노, 경영에 대한 것까지 배우곤 했다. 덕분에 내 주위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지만 난 언제나 외로웠다.

그야 내 주위에는 항상 어른들뿐인걸. 외로울 때마다 난 바깥을 내다보았다. 깔깔 웃으며 뛰어노는 아이들. 난 이 벽 너머의 세상을 항상 동경해왔다. 나도 바깥에 나가서 내 또래의 애들과 뛰어놀고 싶어. 여러 얘기를 하면서 함께 웃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를 닮은 건지 아빠를 닮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웬만한 건 보통 이상을 해내는 나를 보고 아빠는 날 칭찬해주셨으니까. 그게 정말 기뻐서, 칭찬받는 게 너무 행복해서... 난 반드시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언젠가부터 나를 짓누르는 부담감으로 변해버린 게 문제였지만.

...뭐, 이젠 아무래도 좋아.

난 죽어버렸는걸. 유일하다시피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촌 오빠한테 밀려 떨어져서. 너무나 어이없어 헛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이다. 만약 그 오빠의 웃음이 거짓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까?

결국 난 외톨이였다.

언제나 혼자였고 언제나 외로웠고 언제나 고독했다.

그렇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외톨이라니 너무 비참한 거 아니야?

『일어나라, 계집.』

...누구지?

『살고 싶지 않은 건가?』

살아봤자 뭐 하겠어요. 난 외톨이인걸. 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빠는 보고 싶다...

『...그렇다는데?』

「이치카...」

아빠?!

오랜만에 들어보는 듯한 아빠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떠졌다. 그제서야 내가 지금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보이는 건 무척 딱딱한 풍경이었다. 곳곳에 들어선 높다란 빌딩들의 숲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다. 위에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아래에는 그와 대비되는 딱딱한 회색빛 건물 옥상 바닥이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옥상 한편에 직원들의 휴식처라도 되는 냥 벤치와 좁은 화원이 있었지만 우습게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꽃은 전부 조화였다. 전부 보기 좋게 만들어진, 거짓된 모습들. 왜인지 그것들은 나를 둘러싸던 어른들을 닮아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부탁하는 거 너에게 참 미안하지만, 그냥 아빠의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살아주렴. 난 어찌 되든 좋으니까 너만이라도!」

아빠...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나는, 나는 잘 모르겠어요, 아빠!

「제발 살아가 줘! 부탁이다.」

『이렇게 말하는데 어쩔 거지? 살아갈 건가?』

아빠의, 부탁..... 그렇다면 살아갈래요. 난 착한 아이니까. 살아갈 거예요. 부탁이에요,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절 살려주세요.

『......』

그 사람의 침묵이 아프게 내리 꽂혔다. 역시 불가능한 걸까. 당연히 그렇겠지.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

『너는 지금까지 어른들의 거짓말 사이에서 살아왔겠지. 눈치채지 못한 채.』

...네?

『어른들은 거짓말을 반복하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치켜세우고 예쁘게 꾸미는 거란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그리고 아직 순수한 마음을 가진 너 역시 그렇게 되겠지. 그런데도 살고 싶은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입을 떼려는 순간 까만 머리카락을 붉은 끈으로 질끈 묶은 채 폭포수처럼 내려뜨린 여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날카로운 붉은 눈과 마주치자 온몸이 굳은 듯 뻣뻣해졌지만, 그 여자에겐 나에 대한 적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동정?

아니, 이건 공감이다.

『좋아, 하지만 살고 싶다는 것도, 그렇게 되겠다는 것도 전부 네 선택이란 것을 잊지 마라.』

그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건물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나는 또다시 추락하고 말았다. 눈이 인두에 지져지는 듯이 뜨거워지고 점점 아늑히 멀어지는 정신에도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은 확실히 내 귀에 들어왔다.

『자, 그럼 모든 것을 꿰뚫어봐라. 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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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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