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 days Ⅳ
드림소설 '이치카의 다이어리' 백업
그날 이후의 내 생활은 완전 최악.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미 돌아가신 엄마에 이어 아빠까지 돌아가시자, 나는 자연스럽게 큰아버지, 큰어머니 집으로 입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죽였던 그 사람과 남매 사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사람과 한 지붕 아래에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난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내 눈이 붉게 변해버린 것이다. 거기다 붉은 눈과 함께 생긴 투시 능력은 정상적인 생활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투시해버려 눈을 뜨고 있는데, 앞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난 늘 보이지 않는 물건들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방에 들어가고 싶어도 문이 어디인지, 문손잡이는 어디 있는지 한참을 더듬거려야 했고, 사소한 일상생활 하나하나를 누군가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심지어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고소공포증도 생겨버렸는데, 이 능력 때문에 바닥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되어서 2층 이상은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날 이후로 몇 달 동안은 학교도 가지 않고 계속 방안에 박혀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시선들이었다. 기분 탓인지 아니면 이 능력의 여파인지는 몰라도 이후 사람들의 시선들이 적나라하게 다가왔다. 나를 향한 시선들은 하나 같이 기분 나쁜, 꺼림칙한, 괴물 같다는 시선들뿐이었다. 특히 그 사람의 시선은 더욱더 날카로웠다.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난 거지?」라는 의미를 지닌 그 시선은 눈빛만으로도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숨이 막혀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반드시 이 능력을 제어해야만 했다. 온종일 방에 틀어 박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제어에만 열중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뭘 해야 좋은 것인지 전혀, 하나도 몰랐지만 단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것.
날 걱정해주신 큰아버지, 큰어머니께서 여러 의사를 불러보았지만 하나같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반응들뿐이었다. 애초부터 이걸 과학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들어갔던 그 이 공간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테니까.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 혼자 힘으로 이겨내야만 했다.
눈에 힘을 주기도 해보고, 반대로 힘을 빼기도 하고. 종일 눈을 감고만 있기도 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 보기도 하고. 온갖 노력 끝에 3개월 만에 겨우 능력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고, 눈 색 역시 예전처럼 검푸른 색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난 드디어 거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3개월 만에 보게 된 내 모습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저..."
"이치카! 드디어... 드디어 말을 해주는구나!"
그 말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난 분명 드디어 원래 눈 색으로 돌아왔냐고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드디어 말을 해주는구나!'라니... 난 그제야 내가 그날 이후로 말을 단 한마디도 안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의 충격으로 함묵증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날 많이 아끼시고 생각해주신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무도 내가 말하지 않는 거엔 신경 써주지 않았다. 나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그걸 미리 알고서 이렇게 기뻐해 주시다니... 찔끔 눈물이 새 나왔다. 확실히 두 분은 좋은 분들이다. 두 분의 눈에 깃든 것은 「애정」이 아닌 「책임감」뿐이었지만... 그걸로도 감지덕지해야지.
하지만 이 집에 있기는 싫었다.
그 사람이 있으니까.
내 함묵증은 이후 선택적 함묵증으로 변해 그 사람 앞이나 그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말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는 그걸 눈치채고 계신 듯했지만 이에 대해 말을 아끼셨다. 더는 나를 건들고 싶지 않아서 그러신 듯했다. 그건 정말 감사드릴 일이지만 반대로 이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해져만 갔다.
내 눈 색이 돌아온 이후 나는 다시 학교에 나갈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그냥 내가 아팠던 거로만 알고 나를 반가이 맞아줬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이 애들도 모든 걸 알게 되면 나를 피하게 될까 무서워졌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능력에 대한 걸 숨겼다. 한동안은 능력이 불안정해 가끔 붉은 눈이 될 때도 있어서 후드는 내게 필수 불가별 한 요소가 되었다.
후드는 내 붉은 눈을 가릴 수 있다. 어차피 붉은 눈이 되면 후드도 투시해버리니까 생활에는 문제없었다. 그리고 후드가 나를 감싸는, 묘한 밀폐감이 좋았다. 어린아이들은 머리만 숨겨도 상대방이 자신을 못 본다고 생각한다던데 딱 그런 꼴이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되찾고, 공부 진도도 빠르게 쫓아갔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만은 도저히 되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가지 결정을 내렸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저 혼자 살까 해요."
"뭐?!"
"자, 잠깐만. 이치카. 그게 무슨 말이니?"
"이미 타지역의 중학교에 원서를 넣고 합격했어요. 죄송해요."
도망쳤다.
그 집으로부터,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쳐 나왔다. 집은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알아주셨고 매달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내주시기로 했다. 두 분께 큰 민폐를 끼치는 일이란 건 알지만 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자기합리화한 건지도 모른다.
중학생 때부터 시작한 독립생활은 그야말로 자유라서 처음에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이젠 아무도 이상한 시선으로 나를 봐주지 않는다. 이 주변의 사람들은 내가 붉은 눈이란 걸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뻐서 초반에는 무척 행복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런 것들은 흐지부지 없어져 버렸다. 큰아버지, 큰어머니께 받는 돈은 점점 부담이 되어갔고, 부담을 지우려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너무 힘이 들었다. 어린 나를 써주려는 곳 자체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불합리한 일을 겪은 적도 있었다. 가끔 큰아버지, 큰어머니께서 안부 전화를 거실 때면 혹시 다시 돌아오라고 할까 봐 애써 밝은 척, 괜찮은 척을 해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주변의 사람들도 언젠가 날 뒤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하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될 것만 같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그날이 없었던 것이 되지도 않았고, 내 붉은 눈도 없었던 것이 되지 않았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과 마음들을 숨긴 채 하루하루 겉으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생활했다. 마치 현실에서 회피하려는 듯이. 필사적으로. 그렇지만 그 마음은 점점 커져 웃고 있었지만, 진심으로 웃지 못하게 되었고,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그 누구도 완전하게 믿을 수 없었다. 가식과 위선으로 치장한 그 어른들과 같이. 그렇게 외로움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말들이 마음 한쪽에 쌓여만 갔다. 바보 같은 소리지만 살아간다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때 나는 왜 살고 싶다고 대답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그 여자가 했던 『좋아. 하지만 이건 네 선택이란 것을 잊지 마라.』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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