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노치카]이치카의 다이어리

meeting day Ⅲ

드림소설 '이치카의 다이어리' 백업

시간의 개념을 잃어버린 아지랑이 데이즈에서 시간만큼 무상한 것도 없었다. 1초가 1초가 아니고, 1시간이 1초가 되기도 하는 세계. 그런 곳에서 바라본 본래 세상은 눈을 한 번 깜박일 때마다 바뀌어 가는 것만 같았다. 가족과 나누는 미소, 친구들끼리의 투덕거림, 그리고 갑작스러운 사고까지. 시간은 쉴 새 없이 달려 나갔다.

한 부부에게 흙더미와 뱀의 입 같은 것이 다가가는 것까지 본 아자미는 두 눈을 가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아자미가 능력을 거두자 자연스럽게 이치카의 시야가 아지랑이 데이즈로 새하얗게 물들었다. 그 중심에서 아자미가 검은 머리카락이 작은 몸을 다 덮도록 더 웅크리고 있었다. 당황한 이치카는 그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어도 이치카는 초등학생이었기에 죽음을 이해하는 것도,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도 버거웠다. 검은 머리카락 위로 투명한 눈물방울이 맺혔다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아지랑이 데이즈는 착실히 한 부부의 죽음을 반복시키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고 싶다는 열망은 죽는 횟수에 비례해서 점점 커졌다. 그것을 검은 뱀은 비웃으며 한입에 삼켜냈다. 그가 유유히 이곳을 떠나가는 감각에 아자미는 떨리는 손으로 이치카를 붙들었다.

「안돼...」

정작 붙잡고 싶었던 것은 그의 눈물과 함께 떠나간 이후였다.

*

시간은 잔혹할 정도로 공정하다. 그게 아지랑이 데이즈에서 머문 이치카가 내린 결론이었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알고 있는 정보가 많든 적든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똑같았다. 출발 지점부터 달랐기에 뒤처진 쪽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앞선 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건 당연했다. 계속 지켜보았던 갈색 머리의 소녀가 진실의 끝자락을 잡았을 땐 이미 모든 실험이 마무리되는 중이었으니까. 그 모든 걸 아자미와 이치카는 붉은 눈으로 여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도울 수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인 채로.

어느 소녀와 소년이 쓰러졌다. 뒤를 이어 한 소녀가 뛰어내렸다. 울려 퍼지는 절규와 비웃음과 함께 이치카의 시야가 점멸했다. 기어코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자 이치카는 바로 아자미부터 찾았다. 너무나 잔혹한 광경에 또 울고 있을까 봐. 이치카의 예상대로 역시나 아자미는 울고 있었다. 다만, 가슴께를 꽉 쥔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색색 내쉬는 호흡 사이에서 목을 긁어내는 듯한 신음이 섞여 나왔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에 이치카가 다급히 그 곁에 붙어 굽은 등을 쓸어주었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가 애처로웠다.

「아자미, 왜 그래요? 괜찮아요?」

「뱀, 들이...」

「뱀?」

아자미는 거친 숨과 함께 파편화된 말을 뱉어냈다. 아지랑이 데이즈, 8월 15일, 죽음, 10마리의 뱀과 능력...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아자미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으나, 반대로 이치카의 몸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이 고통스러운 세계에 끌어들인 장본인이 눈앞에 있었으니까.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신과 같은 처지인 줄 알고 함께 했던 것이지, 이 모든 일의 원인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에 아자미 역시 눈이 맑아지는 뱀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이치카는 주춤거리며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지금이라도 떠나야 할까. 다시 모든 게 가짜 같은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그러면 아자미 혼자...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어지러웠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은 아자미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깔끔하게 끊기고 말았다. 눈매는 날카롭지만 그 눈빛에는 그 어떤 적대감이나 위압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질감이 전해져왔다. 이치카는 붉어진 눈가를 문지르며 아자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제 와서 아자미를 피하기엔 긴 시간 동안 스며든 정이 너무 깊었다.

「그 아이들이 이곳 어딘가에 있을 테지. 이치카, 네가 확인해줄 수 있느냐.」

「제가요? 아자미는...」

「아무래도 나는 여기서 쉬어야겠다. 너만이라도 그 아이들 곁에 있어 줘.」

조금이라도 그 아이들이 덜 고통스러울 수 있게. 아자미가 덧붙인 말에 이치카가 헛숨을 삼켰다. 그동안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지만 지금 그들은 이곳에 있다. 즉, 그들의 일에 개입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다. 도울 수 있을까. 내가, 그들을. 쿵쿵. 오래전에 멈춘 심장이 다시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흥분에 어린 표정을 짓던 이치카는 돌연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렇게 말해도... 저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나를 찾아냈듯이 너라면 알 수 있을 거다. 네 눈길이 닿는 대로 가도록 해.」

어쩐지 확신이 어린 목소리에 이치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자미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걸 거라며. 몸을 일으키니 정말 저 멀리서 그들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자미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괜찮으니 걱정 말아라.」

혼자 있는 건 익숙하니까. 뒷말은 그대로 속에 품은 채 아자미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덧없는 미소에 이치카는 아자미의 손을 꼭 잡았다. 부디 온기가 전해지도록.

「돌아올테니 기다려주세요.」

기약없는 약속을 남긴 채 손과 손이 떨어졌다. 곧이어 언제부터인가 붉은 눈을 지니게 된 소녀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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