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ing day Ⅱ
드림소설 '이치카의 다이어리' 백업
「실례만 아니라면 당신의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방금까지만 해도 옥상에서 떨어졌던 소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음성이었다. 그래도 푸른 눈에 매달린 투명한 눈물방울이 그래도 소녀가 공포를 잊은 게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었다. 허리 뒤로 숨긴 두 손은 서로를 꽉 붙잡은 채 작게 떨리고 있었다. 아자미는 붉은 눈동자를 그것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눈에 힘을 풀고 소녀의 표정을 살폈다. 두려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약간의 희망. 언제 생긴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막내 뱀을 통해 소녀의 감정이 투영되어 보였다. 이렇게 작고 어리석은 나에게서 소녀는 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막내 뱀도 흥미로운 것은 마찬가지인지 아자미의 목 부분에서 혀를 날름거렸다. 아자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녀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짧게 아 소리를 내고는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정석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도 하지 않고 물었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시라키 이치카라고 합니다.」
『…아자미다.』
「그럼 아자미씨.」
『씨는 빼거라. 소중한 사람에게서 받은 이름이니 쓸데없는 말은 붙이고 싶지 않다.』
아자미. 우연히 홀로 자라난 풀꽃처럼 이 이름 세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아자미의 단호한 말투에 이치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자미라고 말을 정정했다. 인사하는 것까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더니 막상 '씨'라는 호칭어 하나 빼는 것은 무척 어색해 보였다.
「아자미… 무엇을 그렇게 보고 있나요?」
『저쪽 세계를 보고 있었다.』
「저쪽 세계?」
『그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가 살아있던 곳.』
너도 한 번 보겠느냐. 슬쩍 손을 내미니 이치카는 경계하듯 아자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아버지 다음으로 따르던 사촌오빠에게 밀려 사망했던가. 쉬이 남에게 마음을 못 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아자미에게 다가온 것도 나름 여러 고민을 거쳐 용기를 낸 결과일 거다. 머쓱하긴 하지만 손을 막 거두려던 그때 살포시 따스한 온기가 아자미의 손에 얹어졌다. 아자미도 결코 큰 손은 아닌데 그보다 더 작은 손은 시온이 어렸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아자미는 그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치카가 떨어질 때, 그 마지막 순간까지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던 손을.
『눈을 꿰뚫어 본다, 눈을 집중시킨다, 그리고 눈을 돌본다.』
아자미가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자 이치카의 눈앞에 빨간 벽돌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꿰뚫어 보는 능력으로 저쪽 세계를 보고, 눈을 집중시키는 능력으로 관련 사람을 찾은 후, 눈을 돌보는 능력으로 아자미의 시야를 이치카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아직 이 시간대에는 두 뱀에 어울리는 이가 아지랑이 데이즈에 넘어오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몇 차례 뱀이 자신에게 맞는 이를 찾아 떠나간 적이 있다. 매일 누군가가 태어나고 죽는 세상이니, 아마 이 뱀들도 예외는 아닐테지. 그때까지는 이 힘을 소중히 여기자고 아자미는 혼자 다짐했다. 한편, 자그마한 방 안에서는 후드를 뒤집어쓴 세 명의 아이가 붉은 머플러를 두른 소녀를 따라 웃고 있었다. 메카쿠시단은 오늘도 영웅 흉내를 내며 비밀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의 저쪽 세계는 저런 풍경이군요. 정말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
부럽다. 이치카가 입을 닫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말이 들린 기분이었다. 그 뒤로도 둘은 같은 시야를 공유한 채 저쪽 세계를 바라보았다. 시간과 생사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과 같은 시간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같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가족처럼 그 둘은 같이 웃고 울면서 떠들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라 그들이 아무리 크게 소리쳐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치카가 오기 전까지 아자미가 무슨 소리를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뜻이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길고 지루한 아지랑이 데이즈에서 아자미의 말동무가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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