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계 메이드

선량한 이세계인

1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마리. 킬리아드 후작 가문에 고용된 신입 메이드입니다. 이렇게 큰 저택에 고용된 것도, 저택을 경험한 것도 처음이라 낯설기 그지 없습니다. 전 주인님이 추천장을 써주시고 소개까지 해주신 덕에 킬리아드 가에서 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때는 몰랐습니다. 왜 저같은 경력 낮은 메이드를 덜컥 채용했는지 말입니다. 제가 살던 곳은 시골이라 귀족나리들의 은밀한 소문이 많이 퍼지지 않았으므로. 홀로 작은 집을 감당했던 저는 큰 곳에서의 협업이 익숙치 않습니다. 특히 저택의 지리는 저같은 신입에게 아주 큰 벽입니다. 오래된 가문인 킬리아드 가는 높아지는 권세, 명예와 더불어 저택을 허물지않고 증축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방법이 복잡합니다. 중앙의 저택을 두고 동쪽과 서쪽의 건물을 뒤로 덧댄 형태기 때문에 까딱 잘못하다간 길을 잃기 십상입니다. 이쯤되면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지금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지금 그런 말을 해봤자 제가 정확하게 길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치 않겠지요.

같이 청소하던 동료분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저는 1층의 어느 구석에 우두커니 존재했습니다.잠시 사태를 파악하고 들고있던 청소도구를 내려놓자 그와 동시에-

“안녕?”

어깨부터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실크로 만든 드레스. 흙이 조금 묻어있습니다만 그런 것으론 가릴 수 없는 고급소재가 눈에 들었습니다. 주인님의 자제분은 대외적으로 하나입니다만. 저도 귀가 있는지라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익히는 것보다 이 저택의 흉흉한 소문을 접하는 일이 더 빨랐을 정도로요. 첫째 자제가 붉은 눈이더라. 괴물이더라. 괴이한 힘 때문에 죽이지 못하고 가둬놨다더라. 악마를 소환하고 저주를 내린다더라. 터무니없이 허황된 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존재 자체는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 첨언 받았습니다. 허나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면 만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요. 이분을 만난 걸 보니 제가 돌아가면 선배에게 확실하게 혼날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터무니 없이 새하얗고 새빨간 색깔을 보며 잠시 딴 생각을 하던 중에 그분은 한참 모자란 키로 제 눈 앞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셨습니다.

“으음... 저기- 혹시 어디 아파?”

“네? 아니요. 최근에 새로 고용된 마리라고 합니다.”

킬리아드 가의 자제분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고용인의 제 1원칙인 쓸데없는 질문하지 않기는 잘 지켰습니다. 허리를 굽혀 예의를 드러내어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소문이 진실이리라 생각하진 않아도 귀족들을 상대할 땐 일단 예의를 차리는 편이 생존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제 허리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자 그분은 한걸음 더 다가와 치맛자락을 잡아당겼습니다.

“혹시 길 잃었어?”

여기 길 잃은 사람이 자주 멈추는 곳이거든. 저는 미소를 보고서야 허리를 폈습니다. 아랫사람일수록 윗분들의 눈치를 보거니와, 저는 발 뻗을 자리를 잘 구분하는 편이었기에. 다만 그분은 길안내를 까맣게 잊으시고 재잘거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자제분은 스스로를 ‘칼’이라고 불러달라 요청하셨습니다. 칼님은... 대외적 평가와는 달리 여느 아이와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면 아이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또각또각, 두 명분의 목소리를 제한 다른 소리가 더해지자 칼님은 제 뒤로 숨었습니다. 경계하는 듯 하면서도 설렘을 주체 못하고 들뜬 기분이 제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이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건 분명...

“여기 계셨나요? 이미 들켰으니 포기하세요.”

저와 똑같은 아니, 지금은 오전임에도 오후복장을 한 메이드가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장난기 짙은 말투, 칼님과의 친밀함이 느껴지는 반응을 듣노라면 제가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딱 하나입니다. 킬리아드 저택에 특이한 메이드가 있다고. 아니, 정확히 말소된 자제분을 돌보는 메이드가 있다고 말이지요. 행적은 잘 드러나지 않으나 칼님의 탄생 전후로 해서 집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날 칼님을 낳은 마님이 결국 돌아가셨다는 정보도 함께 들었습니다. 전해준 사람의 신용도는 차치하고서라도 누가 들어도 억지였습니다. 허나 그를 마주한 순간 그런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차가운 눈입니다. 금방 눈웃음에 가려 사라졌어도 서늘한 감각이 등을 타고 머리까지 치달았습니다. 흠칫하고 놀라자 칼님이 그에게 뛰쳐갔습니다. 안아달라는 듯이 팔을 벌리면 그는 자연스럽게 칼님을 안아듭니다.

“어떻게 찾았어?”

“알려드리면 또 못 찾을 곳으로 숨으시게요?”

“그래야 숨바꼭질이잖아.”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네요. 칼님을 고쳐 안은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습니다. 저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요. 다시 모퉁이를 향하는 발길이 우뚝 멈춘 건 칼님이 저에 대해 언급했을 때였습니다.

“안녕, 마리~ 다음에 또 만나자.”

그는 주인의 인사를 방해하지 않았을 뿐임을 증명하며 곧바로 멀어졌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직후 다시 칼님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맞다! 마리, 길 잃어버렸댔는데! 소리의 잔영이 채 날라가기도 전에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소리가 하나여야지만 되는데 어느새 두 개가 겹쳐 들립니다. 그들이 더 멀어지기 전에 급하게 쫓으려던 저는 그만 우뚝 멈춰야만 했습니다. 모퉁이를 돌자 마주한 인영에 놀라 빠끔거릴 수밖에 없어서요. 칼님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만 남아 저를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어, 분명 칼님께서.”

“그 분께 당신을 안내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말이예요.”

부탁이라니. 일개 메이드가 하기에는 건방진 소리입니다. 당시의 저는 그따위 사안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지 않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의미 없는 실랑이를 잠시 반복하고 저는 그에게 안내를 받아 다시 시끌벅적한 곳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인사를 하기도 전에 사라지지만 않았다면 조금 덜 무서운 기억으로 남았을 텐데 말입니다. 아직도 그때의 첫만남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합니다.

 

2

킬리아드 가문은 변함없이 굳건했고 별 탈 없이 흘러갔습니다. 쉬쉬하며 떠도는 풍문으로 다른 세력가의 실책을 발판 삼아 킬리아드 가가 한 번 더 도약했다는 소식정도는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아래 어떤 암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같은 이들은 봐서도 들어서도 안 되는 일이니까요. 다만 킬리아드 가의 비공식적 첫째 자제, 칼님에 대한 소문이 외부로까지 퍼져나간 건 주인님의 계획에 없던 일이겠지요. 칼님은 어느 날부터 본관에도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주위는 개의치 않은 듯이 메이드의 손을 잡고 서재에 출입하거나 이따금 식사를 챙겨가기도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주인님이 내린 대처는 무시였습니다.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방해하지 말 것, 대신 투명인간처럼 대우할 것. 요는 반응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령을 전하는 하우스 키퍼는 의미를 짐작하는 듯도 했습니다. 그날로부터 칼님에 대한 소문은 더욱 무성해져 갔습니다. 그들이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은 서재, 혹은 화원. 저희가 그들을 무시하는만큼 그들도 저희를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정말로’ 저희에 대해 안중에도 없다는 점이었고 저희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겠지요. 모든 대화가 정밀한 소문이 되어 자랐습니다. 그것은 다시 거리의 발 없는 말로 변모해 힘차게 달려나갔습니다. 그때의 그들을 더 자세히 관찰하거나 혹은 막지 않은 것이 가끔 후회가 됩니다. 주인님께서 어떤 변고를 당할지 알았다면. 이 당시만 해도 저는 그들이 인간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저의 안일이 불러온 결과같아 입맛이 쓰기만 합니다. 그들은 이따금 불온해보이는 혹은 정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렸습니다. 자신감과 더불어 일종의 오만과도 같았어요.

 

“저번에 먹고 눈물을 줄줄 흘렸잖은가. 오늘은 안 되네.”

“난 빨강이 좋은데에-.”

“그리 말해도 더 크기 전까지는 안 만들어줄 걸세.”

“냥이, 치사해.”

“날 두고 홀랑 도망친 계약자만 할까.”

 

계약자란 단어가 제 귀에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저는 자꾸만 그들을 시야에 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어디에나 존재했습니다. 분명 다른 이들은 여전히 모르겠다고만 하는데 말입니다. 혹시 제 눈에만 보이는 미지의 존재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할 무렵이었습니다.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들은 항상 제 앞에서 흔적을 남기곤 했습니다. 그들이 남긴 단서란 진흙탕 속의 신발자국 같은 것이어서 따라가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선명했습니다.

 

“아무래도 여길 먹는 편이 좋겠어.”

“응, 여기? 이곳 말인가.”

“응.”

 어느 날은 도련님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놀이방에서.

“역시 방해되네~.”

“무엇이.”

“......”

“그거라면 문제없네. 내 준비해둘 터이니.” 

어느 날은 복도에서.(칼님이 바라보고 있던 방향은 분명 가주님의 방이었습니다.)

 

“얼마나 필요해?”

“글쎄...”

“사람으로 치자면 스물 정도일까.”

어느 날은 부엌에서.

 

“있잖아, 냥이야. 아직 멀었어?”

“이제 곧일세. 조금만 참게나.”

 

화원에서 웃는 그들은 평범한 이들처럼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들이 어떤 계략을 꾸미든 서로를 위한다는 점만은 틀림없었어요. 오히려 그점이 그들을 이 저택에서 유리된 듯 만들었습니다. 화관을 만들어 노는 모습을 스쳐갔던 저는 칼님의 손에 들린 장미를 기억합니다. 그건 분명 사건 당일 화병을 장식한 꽃이었습니다. 제가 왜 그들의 순간을 많이 발견했는지는 모릅니다. 동료들에게 물어도 그들은 잘 보지 못하겠다는 답만 했으므로, 저는 저 혼자 간직해야하는 그들의 순간이 늘어났습니다. 흔적들이 하나하나 쌓일수록 명치께가 묵직해졌습니다. 이 무렵 저는 두려움에 떨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내게 경고를 보내는 것이었을까요? 너 따위가 알아봐야 막을 수 없다-는 그런 의미의 경고였을까요. 저는 아직도 그들이 어떤 속셈으로 이 가문에 숨어들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큰주인님이 살해당하신 당일, 칼님과 메이드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습니다. 하얀머리의 붉은 눈이라면 틀림없이 마녀 혹은 그에 준하는 괴물이다. 그래서 악마와 손을 잡고 제 아비에게 복수한 것이다. 벌써 전국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소문의 골조는 이렇습니다. 소문이 그렇듯 다들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면서도 진정 믿는 이는 없었습니다. 허나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범인은 칼님의 메이드가 분명합니다. 주인님이 죽기 전날 그자와 실랑이를 벌였던 주인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도 분명하게 문을 넘길 정도로 말입니다. 드물게 칼님 없이 혼자 돌아다니던 이유는 분명 변고가 생길 시를 대비해서 그런 것일 텝니다. 주인님의 주먹이 책상을 내려치고 잠시간의 정적이 일어났을 때, 저는 그때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시선이 마주치는 일도 없었겠지요. 목이 탄 저는 그저 마른침만 삼킬 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가만 복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뚜벅거리는 소리보다는 날카롭고 또각거리는 소리보다는 둔탁한, 일하기 편한 복장의 메이드가 신을 법한 발소리가 점차 가까워졌습니다.

 

문 열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매번 기름칠을 하고 잘 관리한 탓에 아주 부드럽게 열렸지요. 육중한 무게에 비하면 말입니다. 저는 그 순간만큼은 저택의 문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렸습니다. 문 안에서 몸을 내민 그는 우뚝 멈춰선 채로 고개를 틀어 똑바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복도의 어슴푸레한 불빛 아래 샛노랗게 빛나는 무언가. 그리고 웃어보이더군요. 예의 첫 만남과 똑같은 미소로요.

 

3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뒤의 일은 도저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도려낸 것처럼 말입니다. 벌써 십년을 훌쩍 넘긴 이야기입니다. 킬리아드 가문은 가주의 죽음을 계기로 쇠락하게 되었습니다. 저또한 얼마 가지 않아 퇴직해야만 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기에 근교에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렸습니다. 이제는 넝쿨만이 무성한 저택을 볼 수 있습니다. 킬리아드 가문은 저택을 팔고싶어 했습니다. 다만 저희같은 아랫것에게 소문이 퍼질 정도면 윗분들에게는 이미 씹다 버린 고기처럼 넝마가 되어 씹혔을 테지요. 그런 연유로 저택은 아직도 팔리지 않고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도시에 가려면 저택을 지나야할 일이 가끔 있으므로 오늘도 그런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을 마주한 것만 제외하면요.

 

키가 훌쩍 커버리시고 머리모양도 변했지만 칼님이 분명합니다. 저토록 새하얀 머리칼과 붉은 눈을 가진 이를, 저는 칼님을 제외하곤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전혀 변하지 않은 메이드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찾았다는 듯이 저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요.

 

 


쓰려다 못 쓴 티키타카도 있다네요.

그나저나 마리 말이야.

응?

뭔가 우리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냥 두게. 재밌잖나.

 

량, 자네 지금 행복한가?

냥이, 네가 있다면 언제든?

여기에도 가족이 있잖나. 동생이라든지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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