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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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물
테살로니키에 가자고 말한 것은 양양이었다. 언제나 먼저 말하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발언권은 획득된 것이라기보다 주어진 것에 가까웠다. 채릉은 그녀가 말하기 전에 말하지 않았고, 양양은 채릉의 다정한 무관심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것이 채릉이 양양을 좋아하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곁에 두는 이유 중 하나였다.
양양은 테이블 위에 세계 지도를 펼쳐두고선 손끝으로 움푹 파인 땅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종이로 된 바다와 만 위로 부드러운 그림자가 졌다. 양양의 손끝에서는 언제나 희미한 청사과 냄새가 났기 때문에, 양양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서 채릉은 저도 모르게 사과껍질 향이 나는 흙과 사과즙 같은 파도를 상상했다. 파란 흙과 연두색 포말 같은 것들이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채릉의 시선이 야트막하게 기울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양양의 목소리가 금세 뾰족해졌다. 채릉은 틈도 두지 않고 웃었다. 그럼. 듣고 있지.
이윽고 양양은 테살로니키와 올림포스산이 얼마나 가까운지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이것 봐, 한 뼘도 안 돼. 양양은 마치 테살로니키와 올림포스산, 이오니아 제도와 마케도니아가 한 뼘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들떠있었다. 채릉은 굳이 축척에 대한 그녀의 착각을 바로잡아주지도 않았고, 네가 말하는 모든 땅이 서로 그리 가깝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채릉은 그녀의 즐거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말 대신, 그녀는 제법 다정하게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입술을 묻었다. 머지않아 목소리가 잦아들고 웃음소리만 간간이 샜다.
침묵은, 늘 그런 식으로 종용 되었다.
짧은 변덕일 줄 알았는데, 양양은 그 주 내내 테살로니키와 그곳에 살고 있다는 먼 친척에 관해 이야기했다. 언제든 와도 된다고 했어. 별장이 비었대. 지금 가면 휴일 내내 우리 둘뿐일 거야. 근사하지 않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도시와 강, 산과 호수의 이름을 늘어놓는 양양의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면서 채릉은 운전대를 천천히 우측으로 기울였다. 반쯤 열린 차창 사이로 가을바람이 시원했다.
그리스에 가본 적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 양양은 그러니까 가보려는 거지. 하고 조금 토라진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채릉은 관성처럼 웃고선 그래. 하고 대답했다. 라디오에서 삼십 년 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양양은 곧 이마를 유리창에 댄 채로 졸기 시작했다. 길이 멀었다.
두 사람을 초대한 부호는 외젠 부댕의 애호가였다. 그는 프랑스 남서부에 별장을 지을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았고 부댕의 그림에 그려진 것과 정확히 같은 구도의 보르도 항구가 내다보이는 위치를 공들여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많았다. 이음매 없는 창문 너머로 강과 항구, 그리고 노을이 보였다. 그림에서 보았던 것과 정확히 같은 풍경이었다. 창이 마치 액자 같았다.
그 적확함에 양양이 먼저 감탄했다. 그녀는 창가에 바짝 붙어 한참이나 가론강을 바라보며 주인의 안목과 세심함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주인과 양양이 부댕의 탁월함에 대한 칭양을 수도 없이 나열하는 동안 채릉은 반 걸음 정도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타는 하늘이 강과 돛을 물들였다. 붉은 강은 대서양과 맞닿을 것이다. 그녀는 무언가 연상했다. 이를테면 사람의 이마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핏줄기, 그리고 천불에 그을려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을 정도로 묵직히 쌓인 잿더미 같은 것들을. 문득 불이 끼쳐왔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위로 올라가자. 그걸 보여주신대.”
채릉이 연상을 더 개진하기도 전에 양양이 그녀를 부르며 스스럼없이 팔짱을 껴왔다. 채릉은 그린 듯이 웃고선 걸음을 옮겼다.
부호의 방은 공히 수집가의 방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3세기의 황동잔부터 20세기의 레디메이드까지. 모서리부터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예술품들은 가격을 가늠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하나같이 유서가 깊고 이름이 쟁쟁한 것들뿐이었다. 양양이 다시 감탄했다. 채릉은 이번에도 뉴욕현대미술관의 소장품전을 그대로 옮겨둔 것만 같다는 그녀의 감탄을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두 개의 테이트를 합쳐둔 쪽에 가까웠을 것이다.
채릉은 방 안을 가득 채운 보물들의 이름과 제작연도, 이전의 소장처를 하나도 빠짐없이 읊을 수 있었지만 겸손한 태도로 부호가 늘어놓는 장사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따금 웃거나 맞장구를 치거나 적절한 너스레를 떠는 것은 양양의 몫이었다. 그것이 채릉이 양양을 좋아하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곁에 두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긴 말이 탄 장작처럼 부스러지면, 채릉은 부드럽게 말끝을 제 쪽으로 당겨왔다.
“그래서 보여주신다는 것은.”
그제야 부호가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도 본론에 들어가기까지 한참이 걸렸으나 채릉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윽고 부호가 금고의 깊숙한 곳에서 백양목으로 짜인 함을 꺼내왔다.
함은 아주 아름다웠다. 희귀한 석채 안료로 흑색을 입혔고, 모서리마다 도금한 구리로 겹꽃을 세공한 고급품이었으므로 함만 하더라도 상당한 가치가 있으리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았다. 그러나 채릉이 보고자 하는 것은 함이 아니었다. 간명한 침묵 속에서 함이 열렸다.
사람의 두개골이 들어있었다.
죽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보존된다. 사람이 쓰고 새기고 저장하는 동물인 까닭은 그들의 본질이 물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인간 신체의 칠 할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생물학적 사실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용되는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우주적인 진리를 시사하는 바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흘러간다. 고이면 썩고, 흐르면 돌아오지 못한다. 많은 것들을 가졌다가도 쉽게 잃고, 풍성했다가도 쉽게 빈한해진다. 굴곡과 변전이 무수하다. 영속과는 거리가 먼 종족이다. 따라서 삶은 단단하고 질긴 것들에 새겨진다. 시간 앞에서는 그것들조차 영원하리라는 법이 없었으나 적어도 우리보다는 그것들이 무한에 가까웠다. 돌이나 책, 나무나 철 같은 것들.
그곳에 새겨지는 것은 삶이었으나 동시에 죽음이었다. 때로 양극에 있는 것들은 놀랄 만큼이나 가까워지곤 한다. 삶은 새겨지는 동시에 그곳에 못 박혀 붙잡힘으로써 죽음이 된다. 박제된 삶은 그것이 붙잡힌 순간을 지나쳐 죽음을 향해 달음박질친다. 삶이 지나친 자리에 남긴 흔적을 보는 자는 나중에 온 자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므로, 흔적은 간명하게 죽음을 지시한다. 두 가지는 떨어질 수 없다. 하나로부터 다른 것을 제거할 수 없다.
올림포스산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채릉은 뒤늦게나마 그것을 제일 잘 알았던 것이 양양이라고 생각했다. 운전대를 왼쪽으로 느리게 기울이며 채릉은 습관적으로 옆좌석을 일별했으나 양양은 없었다. 검은 상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삼 년 전 부호의 집에서 보았던 것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함은 아니었으나 단정한 검정의 깊이를 가늠해보자면 결코 질이 낮은 물건은 아니었다.
양양은 그 안에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병증이 깊었으므로 죽음은 예정된 바였다. 그것이 채릉이 양양을 좋아했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곁에 두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사실은 유일한 이유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시한이 있었고 가느스름한 선으로 그인 끝이 점점 선명해질 때 즈음 채릉은 양양의 죽음을 예비하기 위해 보르도의 부호에게 편지를 썼다. 채릉은 줄곧 그것을 기다렸다.
너는 내가 죽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내 곁에 있는 거지. 양양이 평이한 어조로 단정 지었을 때 채릉은 다정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뭣 하러 그러겠어. 손을 뻗어서 귀밑머리를 넘겨주었던가. 면은 희고 해 질 무렵은 창백했던가. 부댕의 그림에 붙잡힌 것과 유사한 빛이 눈가에 들었다. 희귀한 순간이었다.
양양은 믿지 않았지만, 그것은 채릉의 진심이었다. 그녀는 양양의 죽음에 흥미가 없었다. 그보다는 정해진 끝을 특별히 가려서 좋아한 것이라는 설명이 적합했다. 따라서 양양은 채릉에게 완벽한 연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양양에게 토로하지 않았다. 아마도 양양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죽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같은 것을 원했다. 채릉은 물처럼 차갑고 호수처럼 고요한 이별이 준비되어있는 관계를 원했고, 양양은 울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매정하지만 입을 맞춰줄 수 있을 만큼은 다정한 사람을 원했다. 차이가 있다면, 채릉에게는 모든 것이 보다 손쉬웠다는 점이다. 그녀는 언제든 내다 버릴 수 있을 사람들만 골라서 사랑했고-우주를 한 사람으로 축소하고 그 사람을 다시 신으로 만드는 인류지고의 가치는 이처럼 손쉽게 폄하되었다-언제든 잊어버릴 수 있는 순간들만 골라서 살았다. 그것이 그녀가 삶으로부터 승리를 거두는 방법이었다. 그녀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그래서 양양은 채릉을 만났을 때부터 제 생의 끝에 패배가 적히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양양은 독특한 방식으로 죽음을 예비하고 싶어했다. 채릉아. 네가 내 뼈를 가졌으면 좋겠어. 뼈는 살과 달라서 오랫동안 썩거나 삭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남겠지. 사람들이 그걸 왜 태우거나 꺼내지 않는지 모르겠어. 유일하게 남는 조각이니만큼 조금 더 소중히 간직해도 좋을 텐데. 채릉은 웃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양이 한 번 더 재촉하고 나서야 간결한 대답이 맺혔다. 그럴게. 내가 네 뼈를 가질게.
거짓말이었다.
숲 안개가 자욱했다. 머지않아 디오니시오스 수도원이라고 쓰인 벽돌색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수사들이 야트막한 오솔길을 따라 걷는 모습을 눈여겨보던 채릉은 차를 세우고 검은 함을 꺼내 들었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렸다.
인골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보르도의 부호에게까지 걸음 했지만 처음부터 채릉은 양양의 뼈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뼈는 물속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불 속에 던져버리거나 흙 속에 파묻는 방식으로 완전히 구부러트리거나 잊어야만 했다. 그것을 태우고 품어도 불은 여전히 불일 것이며 흙은 여전히 흙일 것이지만, 그것을 담은 물은 다시는 물이 아니게 된다. 단단하고 질긴 것들은 물을 변하게 했다. 채릉은 뼈를 가지지 않을 만큼 매정했지만, 그것을 묻으려고 일부러 그리스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을 만큼은 다정했다.
함을 들고 숲길을 걸었다. 이른 여름이 미백색으로 무너졌다.
외지고 낡은 수도원의 구석진 묏자리를 비는 것은 채릉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절차상의 다난함은 그에게 별문제가 되지 않았으므로, 수사들은 별말 없이 움푹 팬 땅 앞으로 그를 인도했다. 묘표도 향도 없는, 조촐하고도 간소한 장례였다.
수사들이 함을 땅 아래에 밀어 넣고 그 위로 흙을 덮었다. 청금석으로 이름을 새기고 진주와 오팔을 박아넣은 아름다운 인골이 신산(神山) 아래 묻혔다. 수사들은 채릉이 송사도 조곡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매장이 끝나자 잠시간 머물렀다가 곧 물러갔다.
채릉은 양양(陽壤)의 곁에 볕과 토양이 안배된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았다.
물은 뼈를 가지지 않고 흘러간다. 그는 빈손으로 하산했다. 바란 대로, 고요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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