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애
무언가의 if?
“여태껏 행복했니?”
네. 행복했어요. 근데 왜 행복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후회는…”
없어요. 헌데 마지막에 무언가…
“그와는 이미 오랜 시간을 보냈잖니. 이제 충분하지 않아.”
그라니요? 그게 누구예요?
도량이 헛것을 보기 시작했다.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다. 그는 분명 어딘가 그립고 슬픈 감각을 주었다. 존재 자체로 나오는 기운이라면 필히 사기에 가까웠겠으나, 이는 망자의 왕을 돌려보낸 기억이 있는 도량에게도 이질적이었다. 냥이야, 이거 안 보여? 무엇 말인가. 사기로 된 몸과 인간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계약자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전적으로 도량의 부산물이었다. 외부적 소인인 귀신이 아니란 소리다. 그것은 항간의 소문처럼 구석에 숨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천장에서 거꾸로 튀어나와 놀래키지도 않았다. 그랬다면 이미 도량이 한바탕 쫓아내겠다고 한바탕 소란을 피웠음이 옳다. 도량은 이제 당장 해치우지 못할 일 가지고 전전긍긍하지 않았다. 동거인은 모르는 기묘한 3자 동거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것은 한낮의 아지랑이처럼 보였다.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묵묵하게 도량을 따라다녔다. 숙주라도 된 양, 물주러 가면 밭까지 따라오고 잠을 자면 그에 맞춰 앉은 형체를 취했다. 그게 마치 무릎베개를 하는 모습처럼 보여 손을 얹었으나 도량의 손을 바닥만 짚었다. 그럼 계약자는 부드러이 묻곤 하는 것이다. 무슨 일 있나? 도량은 답한다. 그러게,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러는 동안 계약자는 그 형체를 스쳐지나갔다. 때론 뚫고갔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계약자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헛것까지도. 몸이 뚫려 형체가 어그러져도 이내 돌아와 곁에 서있었다. 구름보다 더 흐드러지기 쉬운 것처러 보였다. 고되겠구나, 너도. 도량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때문에 제게 붙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량의 일상을 표현하자면 큰 주기를 두고 설명할 수 있었다. 일상과 여행. 이제 황명을 받지 않은 몸으로 계약자와 함께 사는 삶이었다.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거름을 뿌리고, 품이 가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 여행이 만만치 않았으나 그도 자리잡기 초반의 일이다. 그들에게는 어이, 도씨! 하면서 넉살스레 대신 물주러 와줄 이웃이 있었다. 천씨에서 제명된 지금 마땅히 내놓을 성이 없어 그냥 도량이며 성은 밝히지 않았더니 이리됐다. 서로 량아, 냥이야 부르는 것을 보니 성만 다르고 이름은 같은, 그 뭐 나이를 초월한 벗인가보다 그런 정도의 인식이었다. 이제 마흔줄된 지도 한참이 지난 도량을 손윗사람으로 보기 일쑤였는데 격의없이 호칭하는 모습과 시시덕대며 노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고 나서는 그저 의문만 남은 관계였다. 둘에게 물어도 그냥 제일 친한 벗으로 퉁치기만 해서 산아래마을 사람들은 하여간 특이한 집이라며 웃었다. 그런고로 오랜만의 나들이다. 이번에는 살짝 긴 여행이 될 터였다. 개춘원을 맞이한 이래 십년이라 일정이 조금 길어졌다. 정작 발의자는 희희낙락 밭에 잡초나 뽑고 있었다만. 실질적 주최자들이 일정을 넉넉하게 잡아두라 했으니 마땅히 그리해야할 사안이리라.
‘냥이야, 준비됐어?’
‘난 진작 끝났네. 헌데 자네 정말 그 짐 다 들고 갈 생각인가? 이제 몸도 생각해야 될 나이지 않아.’
결국 짐은 반의 반으로 줄였다. 그 짐 중에는 헛것도 있었다. 비록 소유주가 의도한 짐은 아니어도. 제대로 달려있는 발은 산것이라면 나아가기 위해 움직였을 테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도량의 시야에 계속해서 잡혔다. 도량이 지금 헛것보다 슬픈 일이 생겨 다행이었다.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진다-의 산증인 같은 꼴로 여행길에 올랐다. 어차피 자네 젊었을 적도 저거 못 들었네. 내가 다 봤지 않아. 여량의 한마디에 도량은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애초에 계약자와 처음 만났을 때는 이 짐은 커녕 반도 못든 볼품없는 몸뚱이였으니까. 지키고 싶다는 마음을 자각하고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 눈 앞에 보이자 움켜쥐었다. 매일 잠 혹은 책상머리와 제일 가까웠던 생활이 한순간에 변했다. 책상 대신 연무장에 얼굴을 박고 침대 대신 딱딱한 바닥에 등을 대고 드러누웠다. 그러면서 도량은 믿지 못했다. 남들은 다 이렇게 살아왔다고? 계약자에게 생떼부려 들은 몇 이야기를 기억한다. 전장의 기억, 훈련의 기억, 전계약자의 기억. 분명 저보다 치열하게 살았을 계약자나 스승이나 스승의 계약자까지 그들은 군소리 하나 없이 일들을 행했다. 가끔 계약자까지(오라고 닦달했다.) 넷이 훈련하면 저만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다. 실로 셋은 서무인이었으니 크게 다르진 않았다. 잔인한 서무인들. 단말마를 남기고 쓰러지는 청랑인을 보며 즐거워하는 서무인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천도량이었을 적의 도량은 지키고 싶었고 강해지고 싶었다. 무엇보다 계약자가 생긴 이후로 계약자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천도량에서 벗어난 후의 일을 떠올린다. 운명이라도 된듯이 천씨의 성을 버리겠다 선언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계약자마저 보내려 했던 날이 있었다. 일부분은 어제처럼 생생하지만 일부는 물에 젖은 종이처럼 너덜거린다. 자주 추억하기 좋은 기억은 되지 못한다. 허나 도량은 가끔 일부러라도 들춰낸다. 모든 기억은 필연적으로 치우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도량은 제가 기억하지 못한 일부를 여량에게 확인받는다. 그림처럼 간직하고 있는 추억은 곧 두 장에서 한 장이 될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진 않지만 가끔은 한 장의 주인이 제가 됐으면 하는 생각을 주체할 수 없는 날이 있다. 대화를 나누느라 자연스레 마주한 여량의 모습은 첫만남과 다를 바 없다. 앞으로도 변치 못할 테다. 물론 자세히 찾으면 다른 바는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보여주지 않았던 눈이라든가, 그 눈이 꽤 날카롭게 휘었다든가, 나눠 낀 귀고리라든가. 찾아보면 소소하게 변한 부분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점은 도량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헛것의 형상이 변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개춘원은 생각만큼 즐거웠다. 행복이 빈틈없이 들어차면 그런 광경이 되리라. 축제아닌 축제 기간 도량의 짐을 대부분 줄어들었다. 대부분 그들에게 줄 선물이었으므로 당연했다. 다만 사람의 생각은 비슷하다. 그것이 오래 교류한 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도량은 준만큼 다시 채워지는 짐을 보며 돌아갈 최단의 길을 떠올렸다. 그닥 효과는 없었다. 당장 마차를 빌려주겠다는 친절이 도착했으나 거절했다. 돌아가는 길을 포함하여 일정을 짰다. 집으로 향하는 귀갓길길까지 여행이었으니 짐 때문에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힘들면 나눠달라는 계약자의 선의도 거절했다. 계약자의 짐도 만만찮다. 가져온 짐보다는 가벼우니 못 들 것도 없었다. 다만 아직도 따라다니는 헛것의 형체에게는 괜히 핀잔주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이렇게까지 신경쓰이게 만들었으면 짐이라도 들어달라고. 헛것은 헛것답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도량의 말은 짚신보다 너덜하게 밟혔다.
번화가에서는 숙소를 잡고 인적 드문 산길에서는 야영을 했다. 예전이라면 찌뿌둥하게 일어났을 몸뚱이는 어느새 머리만 대면 잠에 들었다. 몸은 한참 예민한가 싶더니 이제 몸마저도 무던해졌다. 도량은 그런 변화가 기꺼웠다. 아직도 변할 구석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악귀가 들끓던 시절에는 채 잠에 들기 전에 귀곡성이 들렸으나 이제는 푹 자고 일어나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간혹 산적에게 당하던 행상인을 구해주긴 했어도 그것은 때가 들어맞아 일어난 우연의 일치에 가깝다. 나뭇잎 깔아모은 나름 푹신한 잠자리 위에 앉아 계약자와의 대화는 고요만큼 정갈했다. 잠기운을 빌어 조용한 탓이 컸다. 별이나 불도 한몫했다. 자연의 위상 앞에서 하염없이 작아지곤 하는 인간으로서의 본능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고갤 한 번 까딱일 때마다 오랜만에 올린 관과 주렴이 바람소리와 섞였다. 딩동댕동 두개골에선 날 수 없는 청아한 소리가 잇따라 울려퍼졌다.
‘피곤하면 그만 자야지.’
‘으으- 싫어. 지금 분위기 엄청 좋잖아.’
‘지금 안 자면 내일 못 일어나잖은가.’
‘으음- 엄마, 일각만요. …이러면 냥이가 일각을 더 자게 해주겠지?’
하하. 웃음소리는 모닥불 소리보다 낮고 작았다. 제 몸 살라먹어 불 키운 장작의 단말마가 아련하게 울려퍼진 까닭으로. 타닥타닥. 불티튀는 소리며 빛이며 조용하고 나긋했다. 멀리서 정말로 단말마가 울리기 전까지는. 새들이 한꺼번에 고향을 향해 치솟았다. 달 무서운 줄 모르고 하염없이 위로 향한 새들은 무형의 위협에서 벗어나고자 필사적이었다. 뒤는 뻔했다. 불을 끄고 혹시 모른다며 가져온 검으로 손이 향했다. 계약자의 분신이 도량보다 재빨리 소리의 진원으로 튀어갔다. 뭣모르고 뛰어드는 것과 적의 정보를 알고 뛰어드는 일은 천양지차다. 도량을 말리지 못한 여량은 항상 그런 식으로 의견을 앞세웠다. 소릴 죽이느라 분신보다 늦도착한 본신들이 정보를 전달받았다. 적의 수는 셋. 구출할 사람은 하나. 거친 욕설이 멈출 틈없이 날린다. 상황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최악까지 상정한 것치고는 아직 형세가 팽팽하게 유지 중이었다. 성인 셋이 아이하나 잡지 못해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도량은 때마침 필사적으로 달리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왜소했다. 별로 밝지 않은 찰나 마주한 시선은 형형하다. 도망치는 이가 가질 의무적 공포와 세상의 부당함에 대한 원망 등이 떠돌았다. 아이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디딤삼아 뻗음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검집에 꽂힌 채라 그저 몽둥이 대용이었다. 사람에게 검을 휘두르고 싶지 않을 뿐더러, 뽑지 않아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급소 없는 악귀보다 급소 있는 인간이 훨 쉬웠다. 뒤쪽에 위치한 여량에게 아이를 맡기고 검을 휘두르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죄송해요, 죄송해요….’
여량에게 곧바로 향했어야할 아이가 도량의 지근거리 있었다. 몸을 틀어 손을 뻗은 채다. 손 끝은 도량을 향했다. 중심을 잃은 검객의 몸으로 낫이 내리찍혔다. 원래 농부였던 자들이 틀림없다. 이게 마지막이라면 계약자를 보고싶은데. 희끄무레한 것이 도량의 앞을 감쌌다. 현국의 추위처럼 전신이 얼어붙은 감각이 마지막이었다.
거대한 들창은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본 그날의 세상을 담아 간직하는 일은 의무였으리라. 어머니를 잃을 생각을 하지 않더라도 이 세상이 세상을 살아갈 때 소중하리라 예감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손길은 항상 그렇듯이 따스하고 아스러웠다. 허나 나는 그 손길보다 살 내려 불편한 무릎베개가 더 좋았다. 어쩐지 어머니와 함께 본 뒤뜰이 아주 고독하고 적막하다. 하늘마저도 모두 고개를 숙여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은. 여문 햇빛이 눈물처럼 쏟아져내리는 광경이 눈부셔 그대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도 어머니는 그대로 계셨다. 다리가 저리실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어나지 못했다. 머리를 쓰담던 손이 손마디 하나씩 얽어 겹쳐있었다. 차갑다. 모닥불을 쬘 때 제대로 열을 전달받지 못한 곳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처럼. 눈 앞에 여전히 펼쳐진 광경과 대비되어 더욱이 확실하다. 깍지 낀 손이 타의에 의해 조금 더 구겨진다. 어머니가 낀 반지에 눌린 손가락은 조금 더 아팠다. 어머니의 손 반밖에 오지 않는 나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무던한 손길이 머리를 쓸었다. 기억이 났더냐는 질문에 그렇다 답했다. 고작 그 한 번의 공격으로 정신을 잃을만큼 나약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뒤가 잘린 것처럼 깨끗하다.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으나 손길을 받으면 모든 것이 부질없어지곤 했다. 수마에 빠진 것처럼 노곤함이 몰려온다. 이대로 계속 눈을 감아도 괜찮으리란 생각만이 온전했다. 이대로 자려무나. 그래도 괜찮단다.
그는요? 그는 어떻게 되나요.
“슬퍼하겠구나. 너는 그에게 소중한 이였으니까.”
하지만 그 사실이 결코 그를 죽이진 못할 거란다. 그는 슬플지언정 네가 돌아올 세상을 기대하고 그리하여 살아가겠지. 내가 입을 열었다. 그건 너무 불합리해요, 어머니. 제가 그에게 약속한 삶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무엇을 말이니. 저는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행복했단다.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없어도 그가 행복하길 원해요.
“그가 이겨내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구나.”
모르겠어요.
……
아뇨, 그는 결국 이겨내겠지요.
“허면 왜 돌아가야 하니. 다음 생도 있는데 말이야.”
대답하지 못했다. 행복한 삶의 마지막이 어긋났다고 원래의 삶을 부정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내 삶은 즐거웠고 행복했다. 매순간 생이 꺼지는 일은 마땅한 순리였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을 뿐이다. 운이 없다고도 할 수 없는 문제다. 이유가 없어도 살아야만 하는 것이 삶이다. 세상은 그리 만들어졌고 선택권을 쥔 자들은 소수다. 그런 매정한 세상이라면 차라리 이유 없이 사는 편이 낫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은 이유를 만들어 사랑하는 것이므르. 세상은 항상 잔인한 방향으로 뻗쳐있고 신마저도 그는 거스를 수 없기에 부당함 하나하나에 이유붙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다. 허나 나는 그런 삶을 택한 이를 안다. 나는 자네가 그 상실 겪고 이겨낼 때까지 손을 잡아주고 싶네. 연민의 마음으로 휘두른 칼에 힘껏 껴안아준 것도 그였다. 그와 있는 한 내가 보는 세상은 언제까지나 아름다울 테니까. 그러니까.
“잡을 수 있는데 잡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다. 잡힌 손을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켰다. 남은 팔로 힘껏 어머니를 껴안았다.
+
“으으…”
“량, 량아? 이보게! 여기 환자 좀 봐주게!! 어서!”
“…여기, 그러니까.”
“근방의 큰 의원일세. 자네 의식 없는지 벌써 며칠이야.”
“어쩐지 아프더라……”
“그러게 ㅎ-…”
“나, 환자다?! 화-어억…”
“여기 좀 빨리 오래도!”
“냥이야, 나 손… 손 좀 잡아줘.”
“손?”
응, 손! 그런 표정 말고. 다시 잡은 손은 여전히 차갑고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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亡愛로 해석하셔도 望哀로 해석하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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