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블루판타지

[실바송] 짐승의 아이 上

그랑블루 판타지

2차 by 일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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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천중이 아닌 송 AU

* 편의상 CP 표기를 했으나 직접적인 로맨스 묘사가 있진 않습니다. 로맨스로 해석하셔도 무방합니다.

* 편의를 위해 공식 설정과 다른 부분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 2020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실바는 우선 가방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부싯돌을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문명의 산물에 그는 조용히 감사를 보냈다. 그는 조심스레 한 손으로는 혹시 모를 바람을 막고 한 손으로는 라이터를 켰다. 모아놓은 나뭇가지에 옮기기 전 마른 풀에 불을 붙이려는데, 유독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습기가 많은 장소도 아니었다. 실바는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았다. 구름을 봐도 비가 올 것 같지도 않는데.

해가 더 저물기 전에는 모닥불을 피워야 했다. 우거진 나무로 둘러쌓인 숲은 금방 어둑해지고 어느새 고요해져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예민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실바는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불을 키는데 집중했다.

탁. 타탓.

드디어 불이 옮겨붙었고 실바는 기뻐할 틈도 없이 재빨리 불이 붙은 풀을 나뭇가지 더미 속으로 내려놓았다. 힘 없는 불씨는 금방 되살아나더니 나뭇가지를 야금야금 먹어치우며 이리저리 옮겨가는 듯 하더니 금방 하나의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었다. 실바는 잠시 모닥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수통과 간이 식량을 꺼냈다. 제대로 된 야영 도구는 준비하지 못 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잠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오랜만의 생존 이번 임무는 적어도 하루내로 끝날 것 같진 않았다. 실바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바는 주로 정찰이나 호위 임무를 맡고는 했다. 가끔 마물 퇴치에도 동원하긴 하였으나 개인으로 나서기보단 다른 기공사와 잠시 협업하는 식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저격수였고 몰려오는 마물을 상대로는 몸을 숨기고 뒤에서 하나씩 꿰뚫는 것이 특기였다. 그 전에 세상의 어떤 저격수가 앞서서 행동하겠냐만은. 아무튼간 기공사가 앞에서 마물을 유인하며 상대하면, 숨어있는 그가 한발씩 총알을 장전하며 마물을 차근차근 쓰러트려갔다. 마지막에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우두머리가 쓰러지고 지휘를 잃은 잔챙이들이 흩어지면서 임무가 끝나고는 했다.

이번 임무는 다소 특이했다. 그의 단독 활동이었고 정찰 임무도 아니었다. 실바는 임무를 어떻게 분류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역시 토벌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임무를 제안한 쪽은 도시의 행정관이었다. 행정관과 마주친 것도 아주 우연이었다. 실바가 도시를 찾은 건 신세를 지고 있는 공방의 거래처 관련으로 중재를 돕기 위해서였다. 동행으로 동생처럼 대하던 쿠쿠루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대화는 잘 진행되었고 공방에 좋은 소식을 알리려 실바는 도시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광장쪽에서 무언가 소란이 벌어졌고 상황에 호기심이 많은 쿠쿠루가 먼저 다가갔고 실바는 그 뒤를 뒤쫓다가 행정관과 마주친 것이었다. 그는 실바를 보자 그 유명한 저격수가 아니냐며 반가움을 표했고 의외의 유명인이 된 실바는 난색을 표했다.

실바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행정관은 곧바로 사정을 털어놓았다. 가끔 숲에서 마물인지 뭔지 모를 것이 한 마리가 도시까지 내려오곤 하는데, 상점가를 털어가고는 그 자리에 죽은 동물을 덩그란히 두고 떠난다고 했다. 작은 쥐부터 토끼, 어느 날은 사슴 가죽이나 정체 모를 고기 덩어리나 마른 풀을 두고 간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행정관은 잠시 한숨을 쉬었다. 밤마다 몰래 오다보니 어떻게 생긴지조차 본 적 없고, 결국 요사스러운 마물을 잡기 위해 시민과 경비병들이 잠복을 하면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 날은 마을을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행정관은 손수건으로 제 얼굴을 닦으며 실바의 눈치를 살폈다. 그 바람에 실바는 순식간에 곤란해졌다. 어려운 사람을 도저히 거절하지 못하는 성미는 선천적인 것이었기에 저항할 수 없었다. 쿠쿠루도 실바의 고민을 한눈에 눈치챘다.



결국 쿠쿠루만 먼저 보내기로 하고 홀로 남겨진 실바는 기꺼이 그 정체모를 것이 산다고 하는 숲에 발을 내딛었다. 숲의 깊숙한 곳까지 저벅저벅 걸어가면서 몇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별다른 이상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해가 지자 공기는 순식간에 서늘해졌기에 그는 모닥불 쪽에 몸을 더욱 기울였다. 실바는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말린 육포를 씹었다. 저녁 식사를 대충 마무리한 후 시장에서 급하게 구한 침낭을 펼쳤다. 행정관이 말하길 보수는 토벌이 끝난 뒤 주겠다고 했으니 전부 사비로 구한 것이었다. 실바는 다시금 지금 상황에 대한 미묘함을 느끼지만 고통받고 있을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실바는 모닥불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곁에는 단검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쨌든 내일은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했다. 실바는 눈을 감았다.

얼마쯤 잠들었을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에 실바는 눈을 번쩍 떴다. 반사적으로 곁의 단검을 쥐고 총을 세워둔 가방쪽으로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총은 그대로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안심하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모든 건 그대로였다. 모닥불만이 타탁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군."

실바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다. 잠결에서도 예민하게 느껴질 정도의 시선이 제 얼굴을 훑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그러나 막상 눈을 뜨니 이상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탓인가? 그렇다 해도 보통 사람보다 몇 배나 시력이 좋은 실바가 놓쳤을 리 없었다. 그는 저격수의 훈련을 받으며 용병으로 일을 하며 익힌 감을 잊지 않았다. 살기는 아니었으나 감시당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느꼈던 순간이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실바는 긴장을 하며 총을 꺼냈다. 어디를 조준해야 하는지는 아직 찾지 못 했으나 어쨌든 총의 존재 자체로 상대에게 위협을 줄 수는 있었다. 실바는 단검을 언제든 꺼내들 수 있게 허리춤에 끼워두고는 총을 완전히 들었다.

"거기 있나?"

실바는 괜스레 정체 모를 존재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솔직히 누가 대꾸할 거라는 자신감이 들지 않았다. 그는 반쯤 허공에 하는 혼잣말쯤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눈치챘으니 나오지 그래?"

이번에는 좀 더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주변에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잘하는 짓일까라는 확신은 없었다. 다만 살기는 느끼지 못 했다. 실바는 그것 하나에 도박을 걸기로 했다. 주변은 고요했다. 그 흔한 풀벌레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하필 바람도 불지 않아서 나뭇잎마저도 잔잔했다. 실바는 무안함에 짧은 한숨을 쉬었다.

총을 내릴려는 찰나에, 그의 목덜미에 차가운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곧 그것이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위험. 이것은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실바는 성급히 행동하지 않기로 했다. 그대로 멈췄고 잠시 기다렸다. 여전히 아무런 말도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의 기척으로 실바는 정체를 단번에 눈치챘다. 기괴한 정체모를 마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 인간 혹은 고블린일지도 모르지. 실바는 허리춤의 단검을 힐끔 보았다. 뒤는 돌지 않았다. 움직였다간 과녁이 될 게 뻔했다.

"나는 너를 공격할 의도가 없다."

실바는 담담하게 말했다. 대꾸는 없었다.

"나는 여기에 부탁을 받고 왔어. 그러니 대화를 할 수 있겠나?"

끝없는 공백. 실바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는 상대가 놀라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는 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은 겨냥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다음 허리춤에 고정해놓은 단검도 꺼내서 총과 나란히 두었다.

"자, 이제 믿어주겠어?"

마지막으로 실바는 무해하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보였다. 이제 그의 몸에는 어떤 무기도 없었다. 맨주먹과 발로 싸우는 격투술을 알고 있긴 했으나 상대는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나무 기둥 사이로 한 그림자가 조심스레 모닥불의 빛을 향해 몸을 내밀었다.

정체는 사냥꾼의 가죽 옷을 입은 어떤 사람이었다. 삼나무의 껍질 같은 밝은 갈색의 머리칼을 가진 평범한 사람. 그는 화살을 채운 활로 실바를 겨냥하고 있었다. 목덜미를 매섭게 훑고 지나갔던 바람의 정체는 그것이었다. 고블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실바는 약간은 안도했다.

"나는 실바다."

실바는 우선 자기 이름을 밝혔다. 기꺼이 모습을 드러내준 것은 대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끌어가려고 했다.

"……."

그는 대답도 없이 활을 내리지 않고 실바 주위를 조용히 멤돌기만 했다. 모닥불 근처로 오니 사냥꾼의 모습이 더욱 잘 보였고, 실바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갈색 머리. 불타오르는 모닥불에 상반되어 비추는 녹빛 눈동자. 인상을 쓰고 있어선지 약간은 날카로운 인상. 갓 어린 티를 벗어난 정도로 보이는 성인 여성.

"네 이름도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실바는 사냥꾼을 향해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

그제야, 사냥꾼은 마른 입술을 움직였다.

"이곳까지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길은 반대편에 있으니까."

송이라고 이름을 밝힌 사냥꾼은 한번 입을 여니 제법 술술 말을 꺼냈다. 선뜻 잘 풀려가는 분위기에 실바가 두 손을 은근슬쩍 내릴려고 하자, 송은 시위를 더 길게 잡아당겼다. 그의 확실한 위협에 실바는 윽, 하고 짧은 신음을 낸 후에 도로 팔을 올렸다.

"말했지? 여기에 부탁을 받고 왔다고."

자신은 길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이 숲에 볼일이 있다. 실바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다. 송은 시위 너머로 과녁을 유심히 살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부탁?"

그는 의문을 숨기지 않았다. 순수한 호기심에 가까울 정도로 온화한 어조였다. 실바에 대해 흥미는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이 근처에 마물이나 위험한 짐승이 살고 있나?"

실바는 차분히 되물었다. 순간 송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무언가 그의 기분을 거스른 것 같았다.

"마물은 없어. 위험한 짐승도 도시까지 내려가진 않아. 그 아이들이 혹시 길을 잃으면 내가 유인해주고 있어."

그는 애써 불쾌한 감정을 숨기면서 말했다. 무엇을 질문하려고 했는지 의도를 짐작하며 대답을 했다. 실바는 어렴풋이 송이 이 의뢰와 관련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도시에서 온 거 아니야?"

황당해 하는 송의 목소리에 실바는 재차 그를 살폈다. 가죽으로 만든 사냥꾼의 복장. 직접 무두질을 하고 바느질까지 끼워넣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옷이었다. 문득 아직 자신이 저격수 훈련을 받을 때쯤, 산 속에서 만난 사냥꾼들이 떠올랐다. 외지에 있는 마을까지 고맙게도 안내해준 그들이 입은 복장도 이 같았다. 실바는 확신했다. 적어도 송은 도시 사람이 아니었다. 

"맞아."

딱히 부정할 거리도 없기에 실바는 곧바로 수긍했다. 송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트려졌으나 경계는 풀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까 무언가 심기를 건드린 것이 잘못된 듯 했다.

"혹시, 아까 내가 무언가 잘못 말했니?"

실바는 여동생들에게 타이르듯, 되도록이면 호의를 담아 말했다.

"아무것도."

송은 잠시 실바를 노려보더니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대화는 잘 해결될 것 같지 않았다. 실바는 대신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럼 마을이 있나? 숲 깊은 곳에 마을이 있다는 이야기는…"

"마을은 없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이 가로채듯 말했다. 여전히 두 손을 든 채 실바는 두 눈을 깜빡였다. 다시금 송을 살폈다. 매서운 눈빛에 반해 시위는 많이 느슨해진 상태였다. 대화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이제 충분했다. 적어도 공격하지는 않을 거라는 안심을 심어준 것으로도 실바가 유도한대로 흘러간 것이었다. 그리고 송은 슬슬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정체 파악도 대략적으로 끝났으니 용무를 해결했다는 낌새였다.

"그렇군. 하나 부탁해도 되겠나?"

실바는 잠깐 말을 멈추었다. 별다른 정보는 크게 얻지 못 했지만, 이번 의뢰가 송과 관련 있다는 촉이 매섭게 그의 온몸을 두드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남을 그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송은 고개를 살짝 들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아마도, 지금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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