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링크] 별의 재해

그랑블루 판타지

2차 by 일단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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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링크 에필로그까지 모두 감상한 뒤 작성한 글입니다. 리링크의 원작인 그랑블루 판타지(모바게) 세계관 역시도 언급됩니다.

* 원작 설정에 어긋난 점이 있더라도 2차 창작의 일환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의 민족은 하늘 세계로 이주한 후에 첫 침공 당시부터 실시하던 강경책 외에도 다양한 융화 정책을 시도하였다. 폭력을 동반한 강제 편입책은 하늘의 민족의 반발심이 거세게 불러오기도 했으므로 이를 중화시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였으나 ‘연구 목적성’이 강했다. 별의 민족들은 일차적으로 공역마다 ‘장류역’을 만들어 단절시켰다. 하늘의 민족간의 단합력을 저하시키는 효과도 있었으며, 문화를 단절시킴으로 변수 요소가 철저히 통제된 실험실을 만들고자 했다. 어느 공역은 기존대로 공포와 탄압으로 통치되었으며, 어느 공역은 하늘의 민족이 세운 왕국을 유지한 채로 혼약 등의 형태로 그들의 내정에 편입되는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제가 그랑데 공역은 별의 민족이라는 존재를 되도록이면 감추고 그들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잠입하고 지켜보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

실험군들이 뜻밖의 저항을 하거나 통제 요소를 벗어나려고 한다면 이것을 진입할 도구로는 ‘성정수’라는 것이 쓰이기로 하였다. 성정수를 고안한 별의 민족은 루시퍼라는 연구원이었다. 하늘 세계에는 기존부터 존재하던 ‘신앙’적인 존재가 있으며, 창세신과 또 다르게 민중들의 믿음, 대표적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의인화된 것 따위 사이에서 발생한 어떤 초월자에 대한 인식을 무기화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해서 첫번째로 만들어진 것이 ‘천사’라고 불리는 성정수들이며, 그들은 하늘 세계의 원소와 같은 고유화된 영역을 관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었다. 또, 별의 민족이 하늘 세계를 차지한 이후로 간간히 넘어오는 이질적인 요소들에 대한 방벽 역할을 수행했다. 성정수 시스템은 성공적으로 별의 민족이 가진 무기 중 하나로 정착되었다.

제가 그랑데 공역은 이 성정수를 통해 민중을 압제하기보단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성정수라는 명칭 대신 ‘성신’이라는 명사를 만들었으며, 이 이름을 하늘의 민족들에게 각인시켰다. 또한, 성신이라는 존재가 더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해 ‘아비아’라는 관념까지 창시하였다. 섬이 풍요로운 것은 성신이 돌보고 있기 때문이며, 만인이 느끼는 모든 은혜는 성신이 지켜봄으로써 성립한다는 신앙을 일상에 녹아들게 하였다. 수칙 자체는 단순하고 강제력이 없었으나, 하늘의 민족은 이를 믿었고 작물을 수확하고 나선 성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성신에게 행운을 비는 등 사소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별의 민족 연구원들은 신분을 숨긴 채 각각 섬에 숨어들어 하늘의 민족들이 관념적으로 실천하는 행동 양상을 조사하였다.

그렇게 해서 제가 그랑데 공역은 신체 능력에 한해선 별의 민족보다 월등히 뒤떨어지는 하늘의 민족이 어떻게 하여 그런 격차와 본능적 생존 공포도 무시한 채로 맞서 싸운다는 발상을 해내는지, 몇 가지 연구를 통해 측정된 그들의 고유 능력과 한계가 있음에도, 그 이상으로 끌어내는 ‘특별한 힘’의 기원을 연구하고자 했다.

제가 그랑데 연구소의 소장은 이를 연구하던 도중 성정수 제작을 위한 요청서를 상부에 제출하였다. 신앙적 매개체가 아닌 다른 용도의 요청이었다. 현재 공역 별로 단절을 유도한 장류역으로 인해 하늘의 민족뿐만 아니라 별의 민족도 항해하는데 사소한 불편함이 있으므로, 이를 간편히 해결할 수 있는 성정수가 필요하다는 제안서였다. 처음 그의 제안서는 반려될 뻔 하였으나 받아들여졌다.

반려될 뻔한 이유는 이미 공역별로 각 별의 민족들이 소유물로의 영토라는 개념에 대해 인식을 하기 시작했으며 영토 분쟁과 같은 갈등이 얽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받아들여진 이유는 공역을 관장하고 있던 별의 민족 중 하나가 타 공역까지 침범하여 별의 민족과도 불싸안는 전쟁을 벌이려려는 시도를 하였다가 봉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별의 민족들 사이에도 반역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늘의 민족에게 동화된 이들이 기꺼이 동포와 척을 지려고 한다거나, 동포들마저도 배제한 채 독선적으로 지배하려는 동족들이 등장했다. 그러므로 공역간 단절은 더 이상 통제가 아닌, 별의 민족에게도 독이 되기 시작했다.

‘문’을 관장하는 앙그라 마이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현실 세계라는 범위에서 벗어난 다차원적 시공간으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장류역도 무시한 채 ‘적절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어느 거리도 한순간에 이동할 수 있었다. 다만, 그 대가는 성정수의 생명 코어인 성정이라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했으며 이동하는 거리에 따라 그 성정의 요구량도 증가했다. 능력 자체는 훌륭했음에도 연비 소모가 막대했기에 상부에서는 해당 성정수를 폐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소장은 그 결정에 불복했다. 탄원서를 제출하려 할 때, 패공 전쟁이 시작되었다.


아스타로트. 성정수 교육이라는 중책 중 하나를 맡았으나 별의 민족마저도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정황이 발각되었으므로 사형 처분을 내림.

루시퍼. 성정수 창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연구원이나 동포가 이주하여 거주 중인 하늘 세계를 파괴하려는 반란의 증좌가 있으므로, 성정수 루시펠을 통해 사형 처분을 내림.

미카보시. 타 공역까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한 민족 내란 죄. 거대한 벽을 통해 봉인 처분을 내림.

패공 전쟁이 아니었다면 하나의 이름이 더 새겨질 수도 있었다. 아마 조금만 더 늦게 전쟁이 일어났더라도 성정수는 폐기 조치의 다음 단계인 분해로 넘어갔을 것이고, 그럼 그는 꼼짝 없이 계획을 포기하거나 상부의 명령을 거역하는 두 가지 방법 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 세번째 가능성이 생겼다. 소장에겐 전쟁도 그저 ‘기회’였다.

전쟁의 발발 초기만 하더라도 별의 민족은 그저 사소한 반항쯤으로 치부하였으나 상황은 이상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별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하늘의 백성 중 하나로 재정체화한 동포, 성정수라는 역할에 저항하여 오히려 하늘의 민족의 편에 선 무기들. 그리고 가장 큰 변수인 하늘의 민족 특유의 능력인 ‘특별한 힘’. 이 모든 것들이 별의 민족의 퇴패로 이어졌다.

제가 그랑데의 연구원들은 진행 중인 연구와 관찰을 모두 중단하고 별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급히 자리를 떠야만 했다. 그러나 소장은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본래 역할을 내팽겨친 채 별의 세계로 통하는 통로를 끊을 때까지도 소장은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가 준비하려 한 걸작, 앙그라 마이뉴가 하늘 세계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공역을 횡단하는 능력을 발휘할 뿐인 성정수 하나에 별의 민족이 이렇게까지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소장의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그가 원래 횡단하려는 것은 공역이 아닌, 하늘의 끝이자 시작인 이스탈시아였다. 별의 민족마저도 도달하기엔 까마득한 결론을 낸 그곳에 가기 위해선 앙그라 마이뉴라는 성정수가 필요했다. 그게 소장의 최우선이었다. 연구원들이 모든 연구 자료들을 폐기할 때, 소장은 앙그라 마이뉴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았다. 계산한 거리와 필요한 열량을 기록한 기록물까지 모두.

앙그라 마이뉴를 완성시킨 후 별의 세계로 귀환한 후에 시도하는 계획이었으나 변경. 성정수를 회수 후 재기동시키고 별의 세계로 귀환한 후에 동포들에게 진정한 목적을 발표한 후, 별의 세계에서 이스탈시아로 향할 것.

다시 세운 계획 역시도 완벽했다. 소장은 만족감을 느꼈다. 비록 동포들은 저를 배신하였으나, 민족적 사명감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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