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식스 드림
유료

Flower, gleam and glow

레인보우 식스 FINKA 드림 단편

[MM.DD.YY 23:35]

"아,"

짧은소리와 함께 핀카가 제 손가락을 감싸쥐었다. 닥이 흘긋 바라보자 1cm 정도 길이의 얕게 베인 상처에서 피가 조금씩 배어나고 있었다. 답지 않은 실수였다. 핀카는 제 상처를 살피는 대신에 서류에 혈흔이 남았는지를 먼저 살폈다. 닥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무척 열정적인 사람이었기에, 가끔 어떤 부분에서 둔감하기도 했다. 닥은 자리에서 부러 소리내어 일어나며 그 부분을 지적했다.

"오늘은 이쯤 하지. 시간도 늦었고, 자네 상처부터 먼저 보는 게 좋겠네."

별거 아닌 상처임에도 닥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깨달은 핀카는 작은 미안함이 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연구가 자신의 신경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깨닫지 못했다. 치료를 위해 서랍을 뒤적이는 닥을 가만 바라보다 갑자기 머리를 번뜩 스친 생각에 핀카는 벌떡 제 몸을 일으켰다. 의자가 빠르게 뒤로 밀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그 움직임에 닥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핀카를 바라보았다. 핀카는 닥의 행동을 말리는 손짓을 하며 책상 위에 늘어놓았던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 맞아요, 시간이 너무 늦었죠. 나머지는 제가 정리할 테니 이만 들어가 보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제 상처는 신경 쓰지 말고요!

그건 마치 부드럽게 표현한 축객령 같았다. 닥의 오른쪽 눈썹이 의아함을 담아 휘어졌다가, 이내 원래 자리를 되찾았다. 아무튼 굳이 그의 말에 반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닥은 대답 대신 서랍을 닫고 몸을 돌려, 자신의 짐을 챙긴 다음 간단한 인사와 함께 방을 나섰다. 핀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닥이 나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손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은 채.

*

[MM.DD.YY 23:42]

"그래서, 날 부른 게 고작 이거 때문이야?"

말은 불만스럽게 했지만 그의 연인은 연락을 받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의무실로 달려왔다. 그 사실이 핀카를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게 만들었다. 핀카는 능글맞게도 이미 피가 멎은 작은 상처 부위를 들어 보였다. 히죽거리는 표정은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제 연인이 대놓고 내쉬는 한숨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상대가 맞은편 의자를 끌어오자마자 오늘 얼마나 바빴고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결론만 요약하자면 '그래서 네가 날 치료해 줘야 해'였다.

"치료에 관해서는 네가 나보다 훨씬 전문가 아니야?"

"하지만 Healing song을 불러줄 수 있는 건 너뿐이지."

"맙소사.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단 말이야?"

상대가 기겁을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일주일도 넘은 일이었다. 핀카의 요청으로 혼자선 손이 잘 닿지 않는 부위의 밴드를 갈아주며 저도 모르게 흥얼거린 것을 그는 기가 막히게 잡아냈다. 어쩐지 하루 놀리는 거로는 끝나지 않을 거 같더라니.

"빨리. 나 지금 치유의 마법이 필요해."

얄밉게도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절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표정이 상대에게 얼마나 잘 먹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걸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는 당해준다는 사실도. 곧이어 서랍이 몇 번 여닫히고, 책상 위에는 서류 더미 대신 연고와 붕대가 자리 잡았다.

상처의 크기에 비해 치료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는 데만 한참이었으니까. 상처 부위에 닿지 않는 게 아니라 거의 피부에 닿지 않는 수준으로 상대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핀카는 그 과정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핀카가 얼마나 고통을 참을 수 있는지 알면서도, 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핀카에게 난 찰과상 하나를 더 중요시했다. 그 사실을 이렇게 직접 깨달을 때마다 배 안쪽에서부터 간지럽게 올라오는 감각이 핀카를 충만하게 만들었다. 굳은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면봉으로 덜어내 바른 다음, 적당한 크기의 밴드를 골라 조심스럽게 그 위에 붙였다. 그것도 그냥 붙이는 게 아니라, 손끝에 잘 붙을 수 있게 모양을 내어 자른 형태였다. 애정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아마 핀카는 흔히들 떠올리는 심장 모양이 아니라 잘린 밴드의 모양을 얘기할 것이었다.

"Flower, gleam and glow..."

아, 그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작은 노랫소리가 단 둘뿐인 방안에 울려 퍼졌다. 흰 형광등 빛에 비친 실내가 그렇게 밝아 보일 수 없었다. 핀카는 손끝의 온기를 느끼며 저도 모르게 숨소리를 죽였다. 저보다 조금 가는 손가락이 몇 번이고 밴드의 접착부를 더듬으며 잘 붙어있는지를 확인했다.

"Bring back what once was mine... ."

노래의 끝과 동시에 상대가 밴드 위로 짧게 입을 맞추었다. 확실한 마무리였다. 핀카는 더 이상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얼굴이 달아오른 게 스스로 느껴질 만큼 웃고는 반대 손 손가락으로 제 볼을 두어번 톡톡, 두드렸다. 손가락에만 해줄 건 아니지? 이미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연인은 주위를 몇 번이고 살피며 표정으로 핀카를 나무랐다. 하지만 핀카는 그가 이번에도 당해줄 것을 알았다.

*

(코멘트_G. 카테브: 핀카. 다음에 의무실을 대관할 때엔 미리 언질을 주게.)

(코멘트_L. 멜니코바: 그게무슨)

(코멘트_L. 멜니코바: 맙소사. 설마 그걸 다 지켜보고 있었던 거예요? 알겠으니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 주세요.)

(코멘트_G. 카테브: 주의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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