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식스 드림
유료

삼위일체론(2)

레인보우 식스 GSG-9 드림 장편

14. "둘이서 무슨 재미난 얘기를 하시나?"

휴게실에 예거와 앉아있으니 자연스레 블리츠가 다가와 옆자리에 턱 앉았다. 그리고 또 자연스레 예거가 먹고 있는 간식에 손을 댄다. 예거는 궁시렁거리지만, 결국 내어주는 모양을 보니 일상인 듯하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지!"

"아하, 설마 또 엄청나게 긴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거야? 그래서 티라노의 그 옹졸한 앞발은 어디에다 쓰는 거래?"

바나나 깔 때.

"큭, 크하학!"

내 답변에 블리츠가 거의 소리를 지르며 웃었다. 옆에서 예거가 무어라 반박했지만, 들리지 않는 듯 싶다.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영 마음에 안든다는 듯, 예거는 뚱한 티를 내었다. 그리고 그걸 전혀 신경쓰지 않는 블리츠가(이것도 일상인 듯싶다.)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갑자기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다.

"그만 좀 괴롭혀, 응? 일일이 맞장구쳐주느라 우리 파일럿께서 얼마나 힘들겠어?"

"괴롭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본인도 흥미롭다고 했단 말이야! 억…(여기서 말을 잠시 더듬고 내 눈치를 봤다. 왜?) 억지로 보고 그런 거 아니야!"

아하. 스킨십까지 하며 왜 친한 척인가 했더니 예거를 놀리기 위함이었군. 둘 사이에서 나는 그저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었다(너무 어색해 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하던 대로 둘이서 계속 떠들 것이지, 어쩐지 예거가 내 눈치를 보는 기색이기에 결국 입을 열었다. 난 정말 재밌어서 같이 보는 거야.

"뭐!"

"봤지?"

"아니, 정말로 그 긴 영상을 다 봤단 말이야? 허…."

내가 예거 편을 들어줄 줄은 몰랐다는 듯 블리츠는 짧게 한숨 쉬었고, 예거는 의기양양해져선 내 어깨를 감싼 블리츠의 팔을 떼어냈다.

"전에는 NASA의 태양 탐사선 편도 봤어."

그랬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우스, 닥하고 핀카한테는 의료 관련 영상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어? 왜 얘한테만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보내?"

그랬단 말이야? 나는 예거를 본다. 예거는 다시 급하게 반박한다.

"마구잡이 아니거든! 그냥, 그냥-"

설마 '그냥'으로 끝나진 않겠지? 나는 그냥인 인간인가? (약간은 동의하지만, 또 약간은 서운할지도.)

"무슨 얘기든 다 잘 들어주니까, 그런 거지."

이런. 결국 문장을 끝마친 예거가 꼬리를 추욱, 늘어트렸다. 나 이런 모습에 약하단 말이야. 나는 다시 예거를 옹호했다. 네가 해주는 얘기는 전부 좋아. 정말로. 듣고 있으면 재밌다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블리츠는 다시 반박했다. 자세한 내용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거기에 예거는 또 반박하고, 내가 다시 예거를 달래면, 또 블리츠가 반박하고… 그렇게 대화 주제가 점점 산으로 가서 결국 어떻게 끝이 났는지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

15. "어때?"

끝까지 읽은 노트를 덮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이 꽂혔다. 아이큐의 푸른 눈을 마주한다. 그 안에는 기대, 떨림, 흥분,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과 그걸 덮어버릴 정도로 강한 열망이 존재했다. 정말… 미인이군. 나는 답했다. 좋네. 특히 주인공의 전투 씬이 몰입되고 좋았어. 구체적이고. 기기의 설명과 사용 방식이 환상적인걸.

"정말? 사실 그 부분 말인데, 내 탐지기의 원리를 약간 응용해서-"

아이큐의 표정이 단박에 밝아진다. 이어서 설명이 쏟아진다. 빠르고, 강조되고, 많은 양의 단어는 그 사람이 그것에 얼마나 열정적인지를 말해주는 가장 쉬운 지표다. 그런 면에서 아이큐는 왜 예거와 같은 팀인지 알 수 있었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시작은 예거였다. 내가 예거가 공유해준 다큐멘터리를 본단 사실이 아이큐의 귀에도 들어갔고(얘들은 공유 안 하는 게 뭐지? 오늘의 팬티 색? 비꼬는 건 아니고, 정말 궁금해서.), 거기서 본 다양한 주제에 관해 얘기하다가 공상 과학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러다 아이큐가 넌지시(그렇게 자연스럽진 못했음.) 자신이 쓰는 소설에 대해 말한 거고.

16. 난 아이큐에게 주인공이 비행선을 운전하는 장면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을 첨언했다. 아이큐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자신의 방식대로 정리하여 공책에 메모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자신이 쓰는 기기를 응용했다면 출판은 힘들지 않을까…? (애초에 그가 소설가로서 활동하게 된다면 은퇴가 먼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응용 과정은 지금 설명을 들은 나조차도 완벽하게 이해하긴 어려워서, 아마 일반인들은 이것이 소설보단 논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좋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얼굴에 열기를 띨 정도로 활력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 꼭 내 학창 시절 베프가 떠올랐다. 다른 부분들도 많지만… 흠, 예를 들면, 그가 나만큼이나 친구가 없다는 점 같은?

"정말 고마워, 사실, 내 소설을 누구한테 보여준 건 네가 처음이야."

아이큐는 의식적으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수줍게 말했다. 출판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람. 눈앞에 심장을 떨리게 만드는 미인이 있는데….

블리츠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안 보여줘봤어? 나는 물었다.

"엘리아스는 안돼! 큼, 그게, 알잖아. 걔한테 보여줬다가 어떻게 될지."

알만하다.

"이런 것까지 보여줄 만큼 친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게 두 번째로 떨리는 포인트였다. 아이큐는 자신의 다른 여러 취미와, 남들이 얼마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리곤 그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아, 그리고 모니카라고 불러. 언제까지 콜싸인으로 부를 거야?"

이거 그린라이트인가?

17. "모니카를 이름으로 부른다며!"

레드라이트였군. 상체를 들이밀며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예거로부터 한 걸음 물러난다. 너도 그러고 있잖아….

"그건 그거고, 이건 다르지!"

대체 뭐가 불만이야? 예거는 꼭 뮤지컬 배우처럼 과장된 몸짓을 이어갔다.

"내가 너를 제일 먼저 알았잖아! 우리 중에 너를 보면 제일 먼저 인사하는 것도 나고, 제일 오래 대화한 것도 나지!"

미사일처럼 스스로를 가리키는 예거의 뾰족한(사실은 동그랗다.) 손가락 끝에 절로 시선이 집중됐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란 게-

"그럼 나를 제일 먼저 이름으로 불러줘야 순서가 맞다는 거지!"

알겠어, 마리우스….

"아니, 아니다, 그냥 애칭으로 불러도 좋아! 응, 이름으로 불리는 건 모니카에게 선수를 뺏겼지만, 이건 내가 제일 먼저 해야지!"

… 알겠어, 마리.

18. 전에도 말했지만, 얘들은 오늘 입은 팬티 색을 제외하곤 다 공유하는지, 며칠 지나지 않아 블리츠- 가 아니지. 엘리아스까지 찾아와서 또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갔다. 도미닉은… 딱히 그러진 않았지만(얘까지 이랬으면 난 정말 미치고 팔짝 뛰었을 거다.), 형평성을 위해 그렇게 됐다….

19.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들 하지? 마치 새가 된 것처럼 허공을 가르고(실제로 내 엉덩이는 좌석에 붙어있긴 하지만.),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느낌. 비행을 하는 동안에는 그렇게 들뜰 수가 없다. 그게 마음이든, 몸이든.

그런 의미에서 엘리아스의 훈련 방식은 나와 정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엘리아스가 들고 다니는 방패를 한번이라도 직접 보았으면 무슨 말인지 알 거다. 그가 하는 훈련의 전부를 내가 본 것은 아니지만, 중력으로 인간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고자 하면 꼭 그런 모습일 거다.

정반대인 부분은 또 있다. 이번엔 정신적인 면에서. 쉽게 말하자면 그는 타인과 간식을 쉽게 나누어 먹는 타입이다. 그게 상대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반면에 나는 무엇이든 내가 먼저 요구하는 경우가 잘 없다. 상대가 가져가면 가져가는 거고, 주면 주는 거겠지. 솔직히 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스스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도 진이 다 빠진다. 난 내가 그렇게 흥미롭지 않거든(다들 그렇지 않나? 아님 말고).

20. 아, 그리고 방금 한 말은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엘리아스는 자주 간식을 뺏어… 얻어먹으러 왔다. 덕분에 마리가 불평을 늘어놓는 일이 잦아져서 그의 몫은 따로 빼두는 중이다. 평균 나이 39세인 팀에 아주 걸맞은 모습이군.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엘리아스의 행동을 말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갖는 것보다 주는 것이 배로 많았기 때문이다.

21. 엘리아스는 마리 다음으로 이글루에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었다(마리가 또 삐지려고 하길래 네가 제일이라고 치켜세우느라 좀 힘들었다). 이 사실을 안 마리가 항상 1+1 상품처럼 붙어 다니기에 엘리아스만 보는 일은 꽤 드물었다. 이날은 그런 적은 확률 중 하나였다.

엘리아스가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자신이 챙겨 온 과자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간식을, 그것도 살이 찌는 종류로만 먹으면서 어떻게 저런 몸을 유지하는 거지? 이건 불공평했다. 주는 간식을 거절하진 않으며 꿍얼거렸다.

"알려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지 말았어야 했다.

"방법은 간단해. 실컷 먹고, 먹은 만큼 움직이는 거지."

듣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물었나? 아주 하버드 입학의 비결이 교과서 위주의 공부라고 해라. 표정에서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가 뒤로 넘어갈 듯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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