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記憶

기록할 기 생각할 억

냥이에게

안녕. 내 계약자. 나 없이도 잘 지내고 있어? 먹을 필요 없어도 밥 잘 먹고 잘 필요 없지만 잠도 잘 자고 벗들과 놀고 텃밭도 가꾸고. 즐겁게 지내고 있어? 오늘, 내 기일 맞지? 난영에게 나 떠난 날로부터 1년 후에 전해달라 했거든. 난영이라면 정확히 셈해서 전해줬을 테니까. 만난 김에 담소나 나누었으면 더 좋고. 아마 지희랑 내 이야기 했겠지? 혜연이까지 있으면 서로 계약자 이야기부터 늘어놓았을 거야. 안 봐도 뻔해!

그렇게 지냈으면 좋겠어. 여행을 떠나면 서신을 써서 소식을 전하잖아. 떨어져 있는 시간을 서러워하기보다 만날 날을 고대하는 마음을 쌓아가는 것처럼. 빈자리 허물어지지 않고 내가 냥이 너에게 돌아갈 날까지 그렇게 살길 바라. 내 소원 들어줄 거지? 여름에 갔던 춘영누이 집 들보 아래라든가. (사실 나도 못 찾을지도 몰라...) 진현 때 조각했던 백호 아래라든가. 개춘원에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오는 벗이라든가. 집 안에도 서신 몇 개 숨겨놨으니 이미 들켰을지도 모르겠네. 냥이 너라면 다 찾고도 남았으려나.

나와 이별을 준비하셨을 어머니를 떠올리면 슬픈 표정뿐이었거든. 그런데 이번 준비는 마냥 슬프진 않았어. 내가 아주 예전에 한 말 기억나? 내가 사라져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 그때는 답을 몰라 냥이 널 상처입혔는데 지금은 알겠어. 내가 누군가의 세상이 되면 되더라. 나는 불확실하고 어설프고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해 줄 누군가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다시 돌아갈 때까지 나도 냥이 널 사랑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줄게.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만, 꼭 다시 만나자.

실의 끝으로부터

카테고리
#기타

해당 포스트는 댓글이 허용되어 있지 않아요


추천 포스트